울음이 타는 강/박재삼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 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자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한국 대표 명시 3, 빛샘]===
박재삼 시인(나무위키에서 발췌)
1933년 4월 10일 동경에서 출생하여 3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시 서금동 72번지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박재삼 시인의 아버지는 지게 노동으로, 어머니는 생선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하였다고 한다. 1946년 수남초등학교를 졸업 후 3천 원이 없어 신설 삼천포중학교에 진학 하지 못하고 신문배달을 하던 중 삼천포여자중학교의 가사 담당 여선생의 도움으로 그 학교 잔심부름꾼으로 들어갔고 교장의 도움으로 이듬해인 1947년 삼천포중학 병설 야간중학교에 입학하여 낮에는 여중에서 잔심부름꾼으로 일하고 밤에는 수업을 들었다. 1948년 교내신문 “삼중(三中)” 창간호에 동요 ‘강아지’, 시조 ‘해인사’를 발표했다. 1949년에는 경영부진으로 야간중학교가 폐쇄되어 주간 중학교로 흡수되었는데 이때 야간 중학교에서 전교 수석을 한 덕택에 학비를 면제받고 주간 중학교 학생이 되었다. 삼천포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조시인 김상옥에게 시를 배웠다고 한다. 제1회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 ‘한글 시 백일장'에서 시조 ’촉석루‘로 차상으로 입상했다. 1950년에는 김재섭, 김동일과 함께 동인지 『군상』을 펴냈다. 1951년 4년제 중학 졸업 후 삼천포고등학교 2년에 편입학 하였다. 1953년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 졸업(제1회) 한 후 피난지 부산 동광동에서 제2대 민의원이었고 중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정헌주(鄭憲住) 선생의 집에서 식객노릇을 했다고 한다. 1954년 은사 김상옥의 소개로 현대문학사에 취직, 1955년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에 입학했다.
1997년 6월 8일 지병인 고혈압, 만성신부전으로 향년 64세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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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날 큰집에 모여
강가에 해지는 석양을 보는 것으로 시가 시작됩니다.
저녁놀은 하루의 끝렵, 사랑 이야기를 합니다.
가을 강에 하소연합니다.
저것 봐 저것 봐 하면서
어쩌면 체념하는 마음이 더욱 아프게 하는군요.
또 박재삼 시인님의 성장 과정을 보며,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고학, 독학.....
고통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라지만
아픔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8월의 첫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름답고 고운 한 달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