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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産王記
마한(馬韓) 이전의 일은 고찰(考察)해내기가 쉽지 않다. 전해지는 문헌(文獻)의 기록이 많지 않고 또 그나마 전해지는것들도 대개 해괴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 투성이라 진위(眞僞) 여부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 또 예부터 노인들로부터 구전(口傳)되는 이야기가 있으나 전해지는 과정에서 과장이나 왜곡이 많아 역시 가려내기 어렵다. 예부터 현인(賢人)들은 이런 구전되거나 문헌에 남은 괴이하고 기이쩍은 이야기들에서 참과 거짓을 가려 구분하여 전하였으나, 그것또한 오래된 일일수록 가려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옛적 마한(馬韓) 남서에 큰 섬이 하나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곳의 일들 몇가지를 수록해보았다.
마한이 생기기전 침미 혹은 신미란 나라가 있었다고 하나 역시 진위 여부는 증명하기 쉽지 않다. 침미에서 남서로 가면 큰 섬이 하나 나오는데 모양은 갸름하고 큰 계란같은 형태요 동서로 삼십여리 남북으로 50여리가 뻗어있다고 한다. 바다로 건나면 배를 타고 건너면 바로 도착이요 헤엄 잘치는이가 직접 수영하면 힌삭경도 지나지 않아 바로 당도하나, 물살이 빨라 일부러 헤엄을 쳐 건너는이는 없다. 배를 타고 건너면 갓난아이를 잠재웠다 바로 깨어나 응애 하고 울음소리 내기전에 당도한다.
섬은 이때 인구가 1천인이 채 되지 않았으며 3-4개 정도의 부락으로 나뉘어 살았다. 왕이나 족장은 아직 없고 다만 예부터 길흉(吉凶)과 재화(災禍)를 점치는 여인들이 무인(巫人)을 자처하며 대를이어 살았다. 무녀들은 이곳에서 배가 나가고 들어오는일, 고기를 잡기에 적당한때와 사람이 사람을 해치거나 남의 것을 훔친일 강한 남자가 부당하게 약한여인을 취한일들을 가려서 심판한다. 무녀는 모계(母系)로 성씨를 승계하며 이와같은 일을 대대로 물려받았다. 종종 무인 되기를 자처하는 젊은 여인이 찾아오면 양딸로 삼아 신내림을 주었다. 무녀장의 성씨는 셋이었는데 송씨(宋氏)와 이씨(伊氏) 그리고 봉씨(鳳氏)가 있었다.
섬은 여름에 비가 잦고 풍랑이 잦아 때가되면 무녀장들이 함께 모여 해신(海神)께 제를 올렸다. 한번은 풍랑이 걷힌뒤 날이 밝았을 때 동쪽 바다 한쪽에 커다란 닭의 형상을 한 괴물체 한 마리가 떠내려왔다. 섬의 백성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는데 이때 마침 무녀장이 병을 얻어 자리에 없어 장로(長老)들이 대신 와서 살펴보고 말하기를 ‘보아하니 덩치가 좀 큰게 문제일뿐 흔한 닭일뿐이다. 육지에서 풍랑을 만난 닭이 몇 마리 떠내려올수도 있는것이니 그냥 잡아먹도록 하자’ 하여 마을 청년들이 바로 노인들이 시키는대로 삶아서 쌀과 대추,인삼을 섞어 삶아먹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바다에서 강풍이 불고 하늘이 낮에도 밤처럼 검어지며 비바람이 몹시도 들이쳤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알 수 없는 형상이 휘몰아치더니 큰 해룡(海龍)이 나타났다. 색깔이 몹시도 검어 사람들이 더욱 두려워하였다. 해룡이 몹시도 노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바다 및 삼천리 깊은곳을 관장하는 신(神)이다. 본래 아홉명의 아들이 있어 해저에 각자의 영역을 주어 살도록 했고 삼천살이 넘어 본 늦둥이 막내딸이 있었는데 우리 세상에서 더 이상 물려줄 재물이 없어 닭의 형상으로 인간계로 내보내 살도록 하였다. 헌데 너희가 내 사랑하는 막내딸을 잡아먹었으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앞으로 이 섬에 큰 머리와 눈을 가진자가 태어날진대 나는 그 아이를 너희 소나무 다른땅의 무녀의 배를빌려 태어나게 할 것이다. 그 아이가 태어날시 이 섬에 오만년 재앙이 돌아올것이오 태아니지 못하면 천년의 화평이 올것이니 너희가 알아서 하도록하라.’ 하였다. 해룡이 이내 곧 사라지고 날씨는 맑아졌으나 다만 백성들이 해룡이 남긴 말의뜻을 알 수 없어 더욱 두려워만 하였다.
섬의 세 무녀장중 송씨(宋氏)는 어느덧 300년째 모계로 대를이어 무녀장을 맡았다. 이때 무녀장은 이름을 복희(復喜)라 하였는데 나이 스물에 신내림을 받았다. 종종 이채로운 타령과 창을 스스로 만들어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니 다들 신비로와했다. 이때 마을의 한 청년이 복희를 사모하여 은밀히 서찰을 보냈는데 답하기를 ‘나는 본래 무신(巫神)을 받은 몸으로써 혼사를 치르면 아니되나 무혼(巫魂)을 이어갈 여식(女息)을 생산해야할 책무가 잇소. 혼사는 치르지 못하는데 자식은 보아야하니 이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할것이나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방편이 있으니 은밀히 말씀드리겠소이다. 모년 모월 모시 동남방 조개무지가 있는 바닷가에 눈오는 여름에 가서 기다리면 내가 마땅히 그대를 받아들이겠소이다.’ 하였다. ‘눈오는 여름에 만나겠다’니 처음 이치가 맡지 않았으나 목수가 일단 곧이듣고 바닷가로 나가 복희를 기다렸다. 이에 결국 복희가 나오니 ‘그대가 신의있는 머슴으로 마땅히 내 여식을 생산할 재목이 되오’ 하여 결국 둘이 아이를 가졌다. 얼마후 복희가 꿈에 신비한 복숭아와 자두,앵두가 한없이 열린 금밭을 거니는 꿈을 꾸고 아이를 가졌다. 스스로 점을 쳐보고는 ’반드시 이 섬을 신령스럽게 융성케할 여재(女材)가 태어날것이디‘ 하였다..
이후 결국 여아를 출산하니 스스로 이름을 희수(嬉壽)라 지었다. 자라서 어느덧 열다섯이 되었는데 날마다 뒷산 소나무 있는곳에 올라가 뭇 사내들과 어울렸다. 이에 처음엔 복희가 근심하기를 ’마땅히 저아이도 때가되면 신내림을 받아야하는데 다른곳에 눈길이 가 있는것같아 근심되도다‘ 하였다. 희수는 인근에 나는 기이한 풀로 스스로 술을 만들었는데 이채로운 붉은빛이 났다. 이후 날마다 붉은술을 담가 사내들에게 먹이던가 스스로 그것을 팔아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붉은술은 기어이 소문이 나 육지에서도 사람들이 와 저마다 사가기를 다투었는데 이에 마을의 장로들이 근심하기를 ’원래 예부터 이 섬에 개와 소나무와 유채(油菜)가 영물이라 하였는데, 이제 무녀가 기이한 여식을 낳아 오히려 이단의 일을 보고 있으니 근심되도다‘ 하였다.
섬사람들은 예부터 고기잡는 것을 주업으로 삼았는데, 때론 먼 바다까지도 나가 고기를 잡았다. 멸치,꽁치,삼치,조기,갈치,고등어,광어,방어등 열두가지 생선이 많이 잡히니 예부터 섬의 주민들은 ’이 섬을 풍요케하는 열두가지 명물이로다‘ 하였다. 섬의 어류가 소문이 나니 멀리 신국(新國)은 물론 오월(吳越)에서도 생선을 구해갈 지경이었다. 이때 한번은 거센 풍랑이 일고 이후 날씨가 맑아지니 마땅히 다시 어업을 나가야하는데 청년들이 나가지 않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었다. 이에 희수가 의아하여 ’마땅히 지금이 풍어기(豐漁其)라 고기잡는데 더 열심을 보여아 할때인데 고기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놀고만 있으니 어찌된일인가 ?‘ 하였다. 이에 청년들중 우두머리가 말하기를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조왕(趙王)이라 일컫는이가 나타나 이 근방 해역을 주도하며 다른이들의 고기잡는 것을 방해하니 나갈길이 없고 조왕의 세력은 모두 거칠고 사나운 해적이라 우리같은 물질만 하는이들이 쉬이 상대할 수가 없다‘ 하였다. 희수가 듣고 노하여선 ’듣자하니 한낱 해적의 무리인데 그런자들을 못당해 고기를 잡지 못하다니 무슨 까닭인가. 내 마땅히 스스로 칼을 들고 나가 그들을 응징하리라‘. 하였다. 이에 다른 청년이 만류하며 말하기를 ’조왕이 한낱 해적이라 하나 몹시나 성정이 흉포하고 또 밑에 딸이 열둘인데 계집아이라 하나 다들 하나같이 스스로 오십에서 백의 무리를 거느리며 웬만한 사내도 당해내지 못하는 활과 칼을 쓰고 있다. 그대는 쓸데없이 덩치만 크고 목소리만 크지 함부로 전투에 나갈 무용이나 위략이 없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 하였다. 이에 희수가 바로 격노하여 ’너같은 겁대가리 상실한 자가 바로 이 섬의 수치다‘ 하여 단칼에 베어버린뒤 스스로 의병을 조직 조왕을 상대코자 하였다.
말한대로 조왕에게 모두 열두명의 딸이 있고 딸들은 하나같이 성정이 웬만한 사내보다 거칠고 사나와 쉽지 않았다. 첫딸은 이름이 금아(錦阿)라 하였는데 백오십여 무리를 거느리고 긴 칼을 차고 있었다. 이에 희수가 의병과 함께 나아가 금아의 화를 북돋운뒤 물살 빠른곳으로 유인해내 금아의 세력을 섬멸하였다. 금아가 당하자 다음엔 둘째 금진(錦晉)이 나왔다. 금진은 백이십의 무리를 거느리며 유성추를 휘두르며 바다를 제압했다. 이에 희수가 커다란 갈고리를 만들어 오히려 금진의 유성추를 희롱하니 금진이 걸려들어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금진의 수하들은 달아나거나 항복했다. 둘째 금진이 쓰러지자 세 번째 금영(錦影)이 나왔다. 금영은 묘한 쇠구슬을 쏘는 것을 즐겼는데 먼거리에서 쏘면 그 속도에 뱃전에 구멍이 나고 병사들이 맞으면 실명을 하거나 뼈가 부러질 지경이았다. 희수는 푹신푹신한 솜과 면을 수도없이 준비하게 하여 금영을 상대하니 구슬은 솜과면에 풀소리를 내며 들어가거가 걸려들기만 할뿐 소용이 없었다. 희수가 단칼에 베어버리니 금영의 휘하 백이십의 무르도 모두 달아나거나 도망쳤다.
금아,금진,금영이 모두 희수에게 당하니 이번엔 넷째 금옥(錦玉)이 나왔다. 금옥은 이상한 새모양을 한 창을 썼는데 희수가 금옥을 육지로 유인해내니 금옥은 바다싸움은 할줄알고 육지에서 싸움은 할줄 몰랐다. 금옥 역시 패퇴하고 말았다. 금옥까지 사라지니 이번엔 다섯째 금선(錦仙)이 나왔다. 금선 역시 일백의 무리를 거느리고 쌍칼을 썼다. 희수가 활을 쏴소 금선의 팔목을 맞히니 당황한 금선이 자신의 분신과도 다름없는 쌍칼을 바다에 빠트리고 말았다. 희수가 활을 쏴소 금선을 맞히니 그녀 역시 전사하고 일백의 무리도 모두 항복하거나 달아나고 발았다.
조왕의 열두명중 다섯명의 딸이 이미 스러지니 다음엔 여섯째 금세(錦洗)가 나왔다. 금세는 80여 무리를 거느리고 나왔는데 무기로는 철퇴를 쓰고 있었다. 역시 희수가 갈고리를 써서 절퇴가 결려들게 하니 금세 역시 바다에 빠져 익사하였다. 다음엔 일곱째 금란(錦亂)이 나왔다. 금란은 ’바다의 명궁수‘라 불릴 징도로 바다에서 활과 화살을 잘 다뤘는데 희수가 심야에 비밀특공대를 조직 무기창고에 불을 질러 아예 활과 화살을 쓰지 못하게 했다. 금란역시 죽고 금란의 휘하 칠십여 무리도 모두 투항하거나 달아났다. 다음엔 여덟째 금경(錦敬)이 나왔다. 금경도 칠십여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고 무기로는 도끼를 썼다. 희수가 먼저 금경을 격분시켜 육지로 나오게 하고 부리는 장사 해성(亥成)과 목산(穆散)을 시켜 금도끼를 부셔버렸다. 금경이 놀라 달아나려 할 때 희수가 단칼에 베어버리고역시 칠십여 무리를 모두 항복하거나 달아나게 했다. 다음엔 아홉째 금화(錦華)가 나왔다. 금화는 원반을 무기로 삼았다. 희수는 부리는 새를 시켜 원반을 빼앗아오게 하니 새가 금화의 원반을 물어 멀리 바다에 빠트려버렸다. 원반을 잃자 당황한 금화가 어찌할줄 모를 때 희수가 단칼에 베어버리고 역시 수하의 칠십여인은 투항하거나 달아났다. 열 번째로는 금동(錦動)이 나왔다. 금동은 스스로 제작한 희한한 톱을 쓰고 있었다. 희수가 지혜를 발휘 금동을 육지로 유인해낸뒤 어디선가 구한 이전에 볼 수 없는 크고 이상한 박을 던져버렸다. 톱날이 박에 박히고 말았는데 박이 생각보다 단단하고 두꺼워 오히려 톱을 부러뜨려버렸다. 놀란 금동 역시 당황해 어쩔줄 모를 때 희수가 단칼에 베어버렸다. 금동의 희하 육십여인도 모두 항복하거나 달아났다.
조왕의 열두명의 딸중 어느덧 열명이 희수에 의해 당하가너 목이 달아났다. 열한번째로는 금린(錦燐)이 나왔다. 금린은 커다랗게 만든 공을 무기로 썼다. 공은 단순한 놀이용이 아닌 굉장히 빠르고 무거워 웬만한 배도 박살을 낼 지경이었고 병사들도 한번에 열명도 넘게 깔아뭉갤수가 있었다. 역시 희수가 비밀결사대를 밤에 몰래 보내 공을 불태워버렸다. 무기를 잃은 금린도 당황한 사이에 희수가 단칼에 베어바리고 휘하 육십여인은 달아나거나 항복하였다. 조왕이 어느덧 딸 열둘중 열한명을 모두 잃어 피를 토하며 구슬피 울었다. 가슴을 쥐어짜는듯한 대성통곡이 십리밖에서도 들를 지경이었다. 이때 조왕의 막내 금성(錦盛)은 나이 열둘이고 수하에 오십여인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스스로 출병하여 언니들의 원수를 갚겠나이다‘ 하였다. 조왕이 ’이미 내 귀한 열두딸줄 열하나를 잃었는데 너마저 잃으면 난 어찌살란 말이냐.‘ 하였다. 금성은 아비의 거듭되는 만류에도 오십여 무리를 이끌고 출병하였다. 금성은 아직 어려 딱히 무기를 다룰줄은 모르고 다만 작은 새나 짐승과 노래로 소통할줄 알았다. 새와 짐승을 앞세워 희수와 대적하려 하니 희수는 미리 나무로 만든 사나운 호랑이,사자,표범 수십마리를 앞세워 새와 작은 짐승들이 모두 놀라 달아나게 하였다. 금성이 잡혀오니 너무 나이가 어려 금성을 살려주려 하고 특별히 자신이 직접 담근 홍주 한잔을 먹게해서 돌려보내려 했다. 허나 처음 독한 홍주를 든 금성이 취하여 자신의 아비의 일과 열한명 언니를 죽게한 일을 두고 원망과 원성을 계속 토해내니 수하들의 만류에도 희수가 더는 참지 못하고 결국 금성마저 단칼에 목을 베어버렸다. 이후 수하들에게 말하기를 ’조왕의 딸 열둘을 모두 내 손으로 처지했으니 이는 분명 다음생 내 업보가 될 것이다. 그들과 나의 이 생의 악연은 어쩔수 없으나 그 영혼들이라도 고이 묻어달라‘ 명하고 섬의 남서부에 명정산(冥貞山)이라 불리는 작은 언덕과 다름없는 산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열두자매의 시신을 모두 수습하여 고이 묻어주고 측근 복광(複光)과 계진(係進)에게 명하여 ’철마다 자매들의 천도제를 올려달라‘ 당부하여 측근들이 모두 실행에 옮겼다.
희수가 조왕의 열 두딸 시신을 수습하여 고이 묻어준뒤 벗님네들을 집 뒷동산으로 초청 종종 닭을 잡아 삶아먹으며 붉은술을 나눠주며 말하기를 ’내가 섬의 백성들 생계를 지키고자 부득이하게 외적에 대항하였으나 이로인해 남의집 귀한딸 열둘을 모두 해하여 대가 끊기게 만들었으니 내가 비록 섬을 지키는 무녀라한들 반드시 훗날 자손이 앙화를 받을 것이다. 이를 어쩌면 좋단말인가.‘ 탄식하였다. 이에 측근 해성과 복광이 먼저 나서 말하기를 ’누님의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현묘한 계책과 천하의 용력으로 외적을 무찌르고 섬을 지킬수 있게 되었으니 그 은혜 백번 죽어도 갚을길이 없나이다. 다만 듣기로 지금 육지는 물론 바다건너 대국(大國)도 저마다 영웅스런 인물들이 나와 신국(新國)을 세우고 있다는데 우리의 섬은 비록 작아 사면이 바다로 막혀있고 인구가 작아 다만 고기잡이로만 생계를 이어가는데 대대로 무녀를 구심점으로 하여 점을 쳐 앞날을 알아보며 살앗나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기틀과 법도를 만들어 나라를 세워 육지와 그 너머 더 큰 대국 아울러 동남방 외적을 상대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게 어떻겠습니까 ?‘ 하였다. 이어 목산도 거들어 말하기를 ’마땅히 누님께서 보위에 오르시면 저희가 천년의 왕으로 받들겠나이다‘ 하였다. 이에 희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기를 ’나의 재주는 본래 하찮은 무인(巫人)일뿐 왕재는 되지 못한다. 또한 옛 선현의 말씀에도 무(巫)는 계집의 일이오 통치(統治)는 사내의 일이다‘ 하였으니 어찌 계집된 자로 망령되이 권력을 꿈꾸겠는가. 섬은 다만 바다를 끼고있어 해산(海産)일 뿐이니, 이곳에 아우들이 굳이 나라를 세워아겠다면 반대하지 않으나 나는 뜻이 없도다’ 하며 한사코 여왕의 길을 사양하였다. 측근들이 거듭 아쉬움을 토로하니 다시 희수가 말하기를 ‘아우들이 정히 그러하다면 내 다시 옛 선현의 비결을 일러줄터이니 훗날 소나무 자손중에 반드시 세상을 밝게 비추는이가 나타난다 하였으니 진도(珍島)에 홍산(紅山)이 세워진 삼백년뒤의 일일 것이다’ 하였다. 다만 무녀는 혼자 자손을 생성할뿐 사내를 품에 안지 않으나, 만약 나의 자손이 태어나 스무살이 될 때까지 육지로 나아가지 않으면 이곳에서 왕이 되어 오백년을 다스릴것이오 나아간다면 이후에 다만 나는 소나무를 섬기는 무녀로 살아갈뿐이오 해산(海産)의 왕은 아우들이 스스로 찾아 나서도록 하라‘ 하였다.
하루는 희수가 혼자 집에서 꿈을 꾸는데 어지러운 가운데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수두룩하게 나타났다. 희수가 놀라 보니 이들이 하나같이 원한맺힌 눈으로 희수를 쏘아보며 말하기를 ’우리가 모두 조왕의 후손으로 본래 천도(天道)를 닦은 공덕이 있어 반도에서 신국을 세우기를 원했도다. 허나 네가 망령되이 우리를 해쳐 조왕의 길이 끊어졌으니 네 그 업보가 어찌 벗어날 수 있겠느냐 ?‘ 너는 자손을 보더라도 천상 계집은 낫지 못하고 사내를 낳아 무녀(巫女)의 대는 이와같이 끊어질 것이다’ 하였다. 희수가 놀라 깨어보니 꿈인줄 알고 다만 범상치 않은 일이라 이후 스스로 목욕재계한후 하연 소복으로 갈아입은뒤 정갈은 물을 떠서 치성을 올리고 또 열두자매가 묻힌 무덤가에도 항상 꽃일 바쳣다. 이후 삼백일이 지났는데 희수가 하루는 무인의 일을 쉬고 잠을 청했는데 바다건너 육지에서 산만한 호랑이와 곰이 건너와 희수를 품에 안았다. 이후 회임이 되니 스스로 탄식하며 근심하였다.
희수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 길흉을 스스로 점쳐보니 확실히 송가(宋家)의 무녀(巫女)는 대가 끊길때가 되었다. 사내를 낳을지 계집을 낳을지 아직 알길없으나 만약 사내아이면 내보내는수밖에 없으니 어찌하면 좋단말인가’ 하였다. 이에 스스로 근심하며 다른 점사를 찾아가 관상(觀相)을 보게 해달라 물으니 점사가 말하기를 ‘태평성대에 태어났다면 일국을 능히 섬길 명신이 태어날것이나 이제 곧 난세가 시작될터이니 어쩌란 말인가.’ 탄식하였다. 또다른 무인(巫人)을 찾아가 물으니 ‘육지에서 태어났으면 마땅히 세상의 일을 달통(達通)하여 어지러운 세상을 슬기롭게 이끌어갈 이인(異人)이 될 것이다’ 하였다. 또다른 아는 관상가를 찾아가 물었는데 이름을 배도(裵都)라 하였고 희수에게 외가로 7촌 아저씨가 되었다. 배도가 희수가 낳은 아들의 상과 사주를 모두 살핀뒤 말하기를 ‘열다섯살이 되기전에 육지의 여인이 인연이 되게하면 안되고 열다섯살 이후에 육지와 인연이 닿으면 반드시 섬으로 회귀(回歸)하리니 반드시 열다섯살 되기전엔 뭍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하여 희수가 이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희수가 아들 이름을 덕수(德洙)라 지었다. 희수는 처음 점사와 무인들이 예연해준대로 열다섯살이 되기 전까진 섬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 하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늘 말하기를 ‘네가 계집아이였다면 마땅히 신내림을 받게하여 이 섬을 지키는 무녀(巫女)일을 대를이어 맡길것이나 사내아이라 할수 없도다. 따라서 너는 지금부터 이 어미가 시키는일을 하라’ 하였다. 이후 아이에게 장담가는 일과 붉은술 담그는 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의 나이 열두살이 되었을때의 일이다.
덕수가 열두살이 되었을 때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머리에 산발을 한 이상하고 큰 거지닭이 나타나 ‘사실은 내가 너를 낳아준 친 어미다. 나는 지금 내륙의 가운데 큰 성(城)안에 살고 있으니 어서 속히 섬을 떠나 어미를 만나러 오도록 하라.’ 하였다. 덕수가 꿈을 꾼뒤 놀라 희수에게 이 말을 전하니 오히려 희수가 종아리를 치며 말하기를 ‘내가 너를 낳아준 어미가 맡거늘 한낱 꿈을 믿고 무슨 그런 망령된 소리를 하느냐. 더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그리고 묵묵하 징담그는것과 붉은술 담그는일을 가르쳤다. 하루는 다시 덕수가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서 커다란 봉황이 내려와 슬피울며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너를 낳아준 어미가 맞다. 나는 내륙의 한가운데 큰 강변 근처에 살고 있으니 어서 속히 이 어미를 찾아오도록 하라. 강변의 큰고 맑은물 있는터로 오면 이 어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다시 덕수가 놀라 날이 밝아 다시 희수에게 말을 전하니 희수가 다시 어이없어하며 미리 준비한 나무몽둥이로 때리며 말하기를 ‘내가 너를 낳아준 어미가 맞거늘 너는 또 어찌 망령되고 허황된 꿈을 믿고 이런 소리를 하느냐. 너는 사내아이라 신내림을 줄수 없으니 묵묵히 이 어미밑에서 장과 술 담그는법을 배워 후대의 생계로 삼도록 하라’ 다시금 엄히 꾸짖었다. 덕수가 침울해진 가운데서도 한동안 다시 묵묵히 어미 밑에서 일을 배웠다. 헌데 한겨울 눈 심하게 쏟아져 내리는날 덕수가 다시 꿈을꾸니 이번엔 머리에 하연 두건을 두르고 파란색 웃옷에 이상한 흰빛니 나는 치마를 두룬 여인이 저마다 손에 바늘을 들고 허공으로 휘휘저으며 말하기를 ‘네 어미가 내륙의 한가운데 끝에 살고있으니 더 이상 오판하지말고 네 어미를 찾아가도록 하라.’ 하였다. 덕수가 다시 날이 밝아 꿈 이야기를 하니 희수가 한층 더 화를내어 손수 부지깽이를 가져와 불로지져 팔,다리를 상하게 한뒤 ‘두번다시 그따위 허황된 소리를 입에 담았다건 열두귀신이 숨어있는터에 너를 파묻어 버릴 것이다’ 위협하였다.
덕수가 이후에도 몇 번을 섬을 떠날뜻을 밝혔으나 희수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섬에서 희수를 따르는 사내는 족히 오십인도 넘었는데 모두 이전 조왕(趙王)을 물리치던 시절부터 희수를 ‘누이’라 부르며 따르던자들이라 덕수에겐 이들을 삼촌이라 부르도록 했다. 덕수가 어느덧 다이 열다섯이 되었넨데 몰래 짐을 챙겨 집을 빠져나와 섬을 떠나려 했다. 헌데 희수의 측근동생중 만적(晩赤)이라는 이가 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네 어미가 열다섯이 될 때까지 절대 섬을 떠나지 말라 신신당부하였는데 어찌 또 명을 거역하느냐 ? 허나 네 고집이 정히 그렇다면 조건을 주마. 나와 달리기 시합 열 번을 해서 모두 이길시 이 섬을 떠날길을 가르쳐주겠다’ 하였다. 덕수가 만적과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열 번 모두 덕수가 이겼다. 만적이 이때 나이 사십을 넘겼는데 마침내 지쳐 말하기를 ‘아무래도 하늘이 준 운명이 어쩔수 없구나. 이 섬 북동부 부진(府進)이란 마을에 가면 그곳에 육지와 교역을 하며 사는이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 뭍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아는이가 있을터이니 찾아가보도록 하라’ 하였다.
덕수가 만적이 가르쳐준대로 부진이란 마을을 찾아가려 했다. 헌데 마을에 들어서기도 전에 홍두(洪斗)라는 사내가 막았다. 역시 이전부터 희수를 누이라 부르며 따르던자다. 홍두가 말하기를 ‘네 어미가 지금껏 너를 근심하며 눈물마를날이 없었는데 너는 어찌 오늘날 불효하기를 이와같이 하느냐. 하지만 네 뜻이 정히 그렇다면 조건을 주마. 나와 팔씨름 스무번을 하여 네가 이길시 네게 뭍으로 갈길을 가르쳐주마.’ 하였다. 이에 덕수가 홍두와 팔씨름을 하니 스무번 모두 덕수가 이겼다. 이에 홍두가 감탄하며 탄식과 함께 ‘네가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운명을 타고난 것은 분명하다. 이전 점사들이 예언한바가 있어 그대로 들어주기 난감하긴 하나 길을 알려주며. 여기서 북동부로 이십여리를 가면 그곳에 공진(孔辰)이란 이가 산다. 오래전부터 스스로 배를 저어 육지를 오가는자다. 그를 찾아가면 반드시 네게 길을 일러줄 것이다.’ 하였다.
덕수가 다시 홍두가 가르쳐준대로 공진이란 이를 찾아가려 하였는데 이번엔 부일(釜壹)이란 자가 가로막았다.. ‘옛부터 점사들이 예언하길 널 열다섯살 되기전에 섬밖으로 내보내면 안된다하여 막은것인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천도(天道)를 거스르려 하느냐. 네가 섬을 떠나면 마땅히 큰 화를 입을것이란 예언이 있어 이리조치한것인데 후일 어떤일이 닥쳐도 우리가 장담해줄수가 없다. 허나 조건이 있다. 네가 정히 원한다면 나와 배수리하는 내기를 하자. 고장난배 열척을 모두 제대로 고치면 네게 뭍으로 갈길을 일러주마’ 하였다. 이에 다시 부일과 배 수리하는 내기를 했는데 이 역시 덕수가 이겼다. 이에 부일이 만적과 홍두를 모두 다시불러 탄식하기를 ‘네게 아무래도 범상치않은 운명이 있어 인도(人道)로 천도(天道)를 막을길이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말이냐.’ 하였다. 그리고 결국 공진에게 은밀히 연락하여 뭍으로 나갈수 있는 배를 내어주니 마침내 덕수가 섬을 떠났다.
덕수가 처음 뭍으로 올라와 한참을 북동으로 나아갔다. 사흘을 밤낮을 새며 올라갔는데 어느덧 위치와 방향을 알기 쉽지 않았다. 본래 마한의 남서부가 대다수 평야지대고 큰 강을 끼고 있는데 이때는 침미의 영역도 아닐때였다. 덕수가 보아하니 더 이상 평야도 아니고 강도 끊긴 상태라 ‘내가 아무래도 내륙 너무 깊숙이 들어온것같다’ 고민하였다. 다만 갈길을 몰라 우연히 만난 인근주민에게 길을 물으니 말하기를 ‘저 앞에 보이는 산너머에는 사람을 해치는 요괴가 있으니 조심하시오’ 하였다. 이에 ‘대체 무슨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자가 그리 많은가. 요괴니 요물이니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두려움이 만든 헛것일뿐이니 곧이 들을바가 못되도다’ 하고 오히려 호기심이 나서 산을 넘으려 하였다.
산이 다행히 크고 깊지 않아 금방 넘을수가 있었다. 다만 어느덧 날이 저무는데 배가 주리고 가까이 주막 하나가 보였다. 덕수가 다행이다 싶어 주막에서 요기를 하려하니 여인이 나왔는데 젊고 미색이었다. 덕수가 처음 의아하여 ‘이곳에 주막을 여신지는 얼마나 되셨으며 혼자 하시는것입니까 ?’ 하니 여인은 처음 덕수가 주문한 밥과 술과 국을 내오며 답해주기를 ‘서방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혼자 딸 일곱을 키우는데 지금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였다. 순간 덕수가 기이하여 ‘여인들이 학교를 다닌단말인가 ?’ 이해할수 없었다. 허나 주모의 사적인 것을 너무 캐묻기도 난감해 조용히 밥과 국과 술을 들었다. 한잔 알딸딸하게 취한뒤 주모가 내어준 방에서 묵었다. 얼마후 밖에서 왁자지껄 소리가 들려 의아하게 내다보니 일곱명의 여인들이 주모를 찾아왔다. 대충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니 진짜로 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이하는 어미같은 모습이었다. 진심으로 기이하게 여겨 지켜보니 일곱명의 딸중 가장 큰 아이난 족히 17-18세는 되어보였고 막내들은 아직 열 살이 채 되지 않아보이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덕수가 거듭 기이하게 여겨 이들의 말하는 것을 지켜보다 남의 집안일을 너무 사사로이 물어보는것도 난감해 일부러 술 한병을 더 들고 잠을 청했다.
얼마후 어느덧 밤은 깊은 가운데 덕수가 잠시 눈을 떴다. 아까 술을 너무 많이 마신탓에 목이 말랐는지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에서 물 몇바가지를 퍼마셨다. 이때 주모와 아이들이 묵는듯한 방에 불이 켜져있고 아이들과 어미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듯했다. 의아해서 엿들어보니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를 ‘어머니 수컷의 목을 쨀까요 아니면 가슴과 배를 먼저 가를까요 ?’ 하니 어미가 답하기를 ‘공연히 힘써서 목을 조를 것 없이 배와 가슴부터 가르자. 수컷은 본래 살이 많고 몸집이 크니 우리가 사흘은 먹을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덕수가 크게 놀라 ‘사람을 해치는 요괴가 산다더니 분명하구나. 어미와 딸은 나를 속이려는 속임수고 나를 해치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다. 지금 해치지 않으면 내가 살길이 없다.’ 하였다. 그리고 바로 칼을 들어 방안으로 뛰쳐들어가 어미와 딸 일곱을 모두 베었다. 여인들은 모두 쓰러졌는데 방 뒤쪽에 헛간이 연결되어 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헛간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듯해 의아해 가보니 그곳에 돼지 몇 마리가 묶여있었다. 확인해보니 수컷이었다. 덕수가 크게 놀라 탄식하며 ‘아뿔싸. 큰 실수를 했구나. 주모와 아이들이 손님들을 대접할 돼지를 잡을 문제를 논하는 것을 요괴가 나를 해치는 것으로 잘못알고 모두 죽였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 하였다.
이때는 아직 정식으로 발령되는 관(官)은 없고 마을이나 지역의 대소사는 보통 지역의 족장이나 장로들이 잘,잘못을 처결하였다. 어쨌든 날이 밝아 마을을 지키는 장로들이 알면 큰일이기에 일단 달아나려 하였다.. 서둘러 짐을 싸고 날이 밝기도전에 바로 도망치듯 떠났다. 건너편 반대쪽 보이는 산을 넘어 다른 고을에 도착하니 어느덧 한낮이 되었다. 이때 보이는 주민들이 있어 묻기를 ‘정처없이 떠도는 과객이오만 어느 정착하기 좋은 마을을 찾소이다. 어디가 좋겠소이까 ?’ 하니 주민이 대답하기를 ‘동쪽에 가 나오는 마을은 보통 광산에서 광물을 캐 그것을 내다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민심은 척박하고 서쪽 마을은 농사와 장사를 주업으로 해 물산이 풍족하고 사람들 인심이 후덕하다오. 서쪽으로 가보시오.’ 하여 덕수가 일단 서쪽마을로 가보기로 하였다.
덕수기 이윽고 한 마을에 도달했는데 어느덧 해는 지고 허기가 져서 다시 잘곳을 청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런대로 집이 커 보이는곳이 하나 보여 재워줄만한 방이 있을까 싶어 들어가보니 역시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이 말하기를 ‘이곳은 누추하나 지나가는 과객 한두명 정도는 하룻밤 재우고 먹일만한 여력이 되오이다. 정히 갈곳이 없으면 뒷방을 하나 내줄터이니 주무시지요’ 하였다. 덕수가 사례한뒤 여인이 내어준 방에서 여독을 풀었고 잠시후 여인이 정갈하게 차린 음식을 내왔다. 쌀밥과 약간의 국 그리고 나물찬이 전부였으나 그런대로 정성이 들어가있는 저녁상이었다. 덕수가 다시 의아해져 여인에게 물었다.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사시오이까 ?’ 하니 여인이 답하기를 ‘남편은 오래전에 전쟁터에 나가 소식 끊긴지 오래고 혼자 딸 일곱을 키우고 있습니다.’ 하였다.
덕수가 이전에 묵었던 주막의 여인과도 사뭇 곡절이 비슷해보여 의심을 했는데 여인이 바로 딸 일곱을 덕수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역시 큰 아이는 16-17세 정도 되어보이고 가장 막내가 한 6-7세 정도 되는 첫째부터 막내까지 열 살터울이 좀 넘어보이는 그런 칠자매였다. 문득 덕수가 궁금하여 ‘대체 여인의 몸으로 혼자 어찌 딸 일곱을 키울 작정이시오이까 ?’ 하니 여인이 ‘옛부터 저마다 다 살아가는 방편이 있다 하였으니 무슨 근심을 그리 하십니까.’ 하였다. 이어 여인이 말하기를 ‘첫째는 어릴때부터 과일을 좋아하였으니 이 다음에 과일장사를 시킬컷이오 둘째는 야채를 좋아하니 채소장소를 시킬것입니다. 셋째는 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고 꽃을 따는 것을 좋아하니 역시 나물과 꽃을 재배하고 기르는 일을 시키면 될것이요 넷째는 과자와 사탕을 직접 만들어 파는일을 시킬것입니다. 다섯째는 목수를 시킬것이요 여섯째는 옷감 만드는일을 시킬것이며 일곱째는 종이와 붓,먹을 만드는 일을 시킬것이니 대인께서 공연히 이 미천한 여인 집안 생계를 걱정하실일이 아닙니다.’ 하였다. 덕수가 한편으로는 의심가는 가운데서도 감탄하여 ‘과연 현숙하신 여인이옵니다. 딸 일곱의 장래를 벌써 다 걱정하여 뒷일을 마련하셨다니 감복할 따름입니다.’ 하였다.
덕수가 여인이 주는 술 한병을 더 들고 잠이 들었다. 밤에 다시 화장실이 급헤 일어나 측간에 다녀오는다 여인이 아이들과 묵는방에 불이 켜져있고 뭔가 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덕수가 다시 의심이 들어 엿들으니 먼저 한 아이가 ‘어머니 지금 먹을것이 다 떨어졌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하였다. 이에 여인이 말하기를 ‘어제 들어온자를 취하면 된다’ 하였다. 이에 다시 다른 아이가 ‘만약 그자가 달아나면 어찌하지요 ?’ 하니 ‘그자의 어미를 붙들어 그 재물과 가진 것을 취하면 된다’ 하였다. 이에 덕수가 다시금 크게놀라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하였더니 역시 사람을 해치는 요물들이었구나. 저것들이 나는 물론이고 섬에서 혼자 고생하시는 내 어머니 목숨가지 해치고자 하는듯하니 내 어찌 보고만 있을손가.’ 하였다. 바로 칼을 들어 방안으로 쳐들어가 어미와 딸 일곱을 모두 해쳤다. 이후 피비린내 진동하는 것을 막기위해 여인과 일곱명의 딸을 뒤뜰에 묶기까지 하였는데 이윽고 날이 밝아와 ‘마을의 장로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어서 달아나야 할텐데 어찌하면 좋단말인가.’ 하였다.
날이 밝았는데 집안에 웬 사람이 찾아왔는데 한명은 나이든 여인이었고 한명은 아직 스무살이 안 되어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둘이 함께 집주인의 행방을 물어 덕수가 급한 가운데서도 둘러대듯 ‘이 집 주인이 잠시 알이 있어 출타하였는데 무슨일이오 ?’ 하였다. 하니 여인이 답하기를 ‘오래전 이 집 주인에게 빚을 지고도 갚을날이 다 되었는데 갚지 못하였소이다. 애초에 약정한대로 내 아들을 이 집의 하인으로 바치거나 제기 가진 재물을 모두 내놓아야 하는데 그 문제를 상의하러 왔소이다’ 하였다. 덕수가 기겁하여 비로소 어제 여인과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뜻을 알아챌수 있었다. 이 집에 빚진자의 문제와 재물의 문제를 논하는 것을 덕수가 오해한 것이다.
덕수가 하늘을 우러르며 ‘두번이나 고약한 운명이 되어 죄없는 살생을 하였구나. 이제 이 나변을 어찌하면 좋단말인가.’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마을의 장로들에게 붙잡히기전에 달아나야 하기에 바로 산길을 택해 달아나버렸다. 덕수가 이후 또 한참을 길을 가는데 산에서 수도하던 도사 하나가 우연히 관싱을 보고 탄식하기를 ‘저자는 이 생에서 자신에게 인연이 될 여인을 모두 내친자로구나. 반드시 그 나변이 있을터인즉 업보를 어찌하면 좋단말인가. 혹 이 생에서 운이 좋아 피하더라도 다음생에라도 그 화변을 맞을터이니 그 업보를 어찌 감내해내난말인가.’ 탄식하였다.
덕수기 이후에도 곳곳을 돌며 배회하였으나 마땅히 정착할곳을 찾지 못하였다. 한번은 한 고을에 들렀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떠돌이 나그네를 만났다. 주막에서 같이 술을 마시고 함께 잠을 자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내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진양(晉楊)이란 고을에서 감자와 고구마 농사를 하던이인데 농사말고 다른 먹고살길이 있을까 하고 열일곱에 집을 나와 삼년동안이오. 하지만 막상 정착할곳을 못찾고 배회하다 큰 죄만 짓고 돈만 날렸소. 내가 보기에 그대 또한 집으로 돌아가지 아니함만 못할것이오.’ 하였다. 또 한참을 떠돌다 한 고을에서 우연히 고을의 파수를 보는자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곳에서 마침 또 떠돌이 나그네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영주(營珠)라는 고을에서 밤과 대추와 인삼을 기르던 자인데 아비가 들인 새로운 계모와 불화하다 집을 나왔소. 이후 오년을 떠돌았지만 딱히 벌이가 마땅한곳도 없고 필부를 받아주는곳도 없어 큰 죄만 지었소. 이제라도 늦게 고향으로 돌아가 계모와 함께 살며 화해하고자하니 그대도 더 늦게전에 돌아가기 바라오’ 하였다. 또 한참을 떠돌다 그 다음엔 신영(申嶺)이란 고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한 늙은 거지를 만났다. 처지가 불쌍해 직접 술을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니 노인이 말하기를 ‘오래전 과수를 심는 집안에서 살았는데 그게 싫다고 집을나와 오랫동안 떠돌아다녔소. 평생을 떠돌아다니다 이제 빈털터리에 몸도 지쳐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갈수도 없고 죽는날만 기다리는몸이 되었고. 그대도 더 늦기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 바라오’ 역시 거듭 눈물로 덕수를 타일렀다.
이후 덕수가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 일찍이 부모슬하를 떠나 청운의 뜻을 품고 자립하길 바랬건만 이 필부의 마음 하나 이해하고 받아주는곳이 없으니 어찌하란말인가. 유유창천아 어찌 이리도 징그럽게 사람을 볶아대는가.’ 하였다. 결국 섬으로 돌아가기로 하였으니 희수의 곁을 떠난지 5년만의 일이었다.
덕수가 돌아오니 희수가 눈물로 품에 안으며 받아들인뒤 따뜻한 밥과 국과 술을 먹이며 설득하였다. ‘섬은 지금껏 무녀들이 점을치며 지역을 다스렸으나 내가 점을 치고 미래를 보니 이제 더 이상 이런식으로 작은 마을을 이끌수 없다. 이런식으로 가다보면 더 큰 화를 입을것이니 더 늦기전에 일국(一國)을 세워야한다. 내 비록 재주없는 몸으로 작은 공덕이 있다하여 마을 청년들이 오직 지도자로 삼길 원하나 계집의 몸으로 불가하다 사양하였으니 내 스스로 왕위에 오를수가 없고 네가 이곳의 중심이 되는게 어떻겠느냐 ?’ 거듭 설득하였다. 덕수가 어미의 청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고민의 시간이 더해갔다.
하루는 덕수가 집에서 꿈을 꾸었는데 십여명도 더 되는 여인이 나타나 ‘네가 우리에게 화변을 미치게 했으니 다음생에 반드시 그 빚을 갚을 것이다. 우릴 위해 정성스런 술과 닭과 밤과 대추와 인삼을 바치며 평생동안 제를 지내지 않으면 네가 다음생에 반드시 업보를 받을 것이다’ 하였다. 덕수가 꿈에서 깬뒤 놀라 다시 희수에게 말하니 ‘허황되고 망령된 꿈이니 더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또 한번은 꿈을 꾸는데 한밤중에 산발을 한 늙은 귀신이 나타나 ‘네 운복이 이와같지 않거늘 어찌 망령된 보위를 받으려 하느냐. 너에게 핏줄을 준이는 따로 있으니 어서 속히 섬을 떠나 대륙 한가운데 큰 강변에서 네 모후의 진실을 보라’ 꾸짖었다. 이에 다시 놀라 깨어나서 희수에게 이와같은 말을 하니 여전히 희수는 ‘허황되고 망령된 꿈일뿐이니 더는 마음에 두지 말라’ 하였다. 또 한번은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어떤 알 수 없는 커다란 집채에 들어갔는데 그 안의 세간이며 모든 것이 이 세상의 것들 같지 않아 모두 기이하기만 했다. 안에서 한 젊은 여인이 기이한 옷차림을 하고 덕수의 목을 끌어안으며 ‘내게 네 어미이니 이제 이곳에서 함께살자’ 하였다. 이에 다시 놀라 꿈에서 깨어나 희수에게 말하니 희수가 거듭 노하여 ‘네 아무래도 진위가 불분명한 허황된 꿈을 계속 말하는것보니 아직도 복종할 뜻이 없이 어미를 놀릴 셈이 분명하구나. 내 열달품어 너를 낳은 어미가 분명하거늘 너는 오직 여전히 섬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으니 어찌 이리도 망령될수 있단말이냐 ?’ 거듭 노하며 회초리를 가져와 종아리를 삼백대도 넘게 후려쳤다.
희수가 결국 덕수를 왕으로 세우고 나라를 세우니 나라 이름을 해산(海産)이라 지었다. 다민 이후의 일들은 고찰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훗날 해산은 결국 마한(馬韓)에 복속되었고 마한은 나중에 백잔(百殘)이 되었는데 백잔은 태수를 보내 해산땅을 다스렸다. 이전의 일은 진국과 침미가 아직 있을때의 일이니 그 사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마한이 해산을 복속한 것은 해산에 왕에 세워진지 백년이 채 되지 않는 시점이라 하였으니 해산의 첫 왕이 세워지고 길게 잡아봐야 손자나 증손자때 일이라 할 것이다. 해산은 결국 삼사대를 버티지 못하고 백년만에 복속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작은것들이 뭉쳐져 결국 큰 것이 되었다 하고 아직 기틀을 잡지 못한 지역들을 큰 기틀을 먼저 잡은이들이 삼킨것이니 그 자연의 흐름은 어찌할수 없도다 하였다. 해산은 이후 영원토록 백잔의 작은 일부가 되고 이후 화려와 금선의 일로 이어지니 오래전의 왕계를 구체적으로 고찰할 방법이 없어 다만 답답할 뿐이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