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마을이 문화예술을 만나면, 일상이 예술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 막연히 궁금할 때가 있다. 얼마 전 <UN 세계행복보고서 2016>이 발표되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는 덴마크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은 58위를 차지했다. 행복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에 대한 조사이기에 상대적 동등비교는 어렵더라도 1위를 차지하게 된 덴마크는 어떤 환경 때문에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흔히들 이야기하는 경제력, 사회보장제도 등의 물질적인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낳았을까?
그 이유에 대해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록산느 셰프레비는 “공감능력이 덴마크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들었다. 높은 수준의 공감능력은 사회적 관계를 향상시키고 이는 행복지수 상승효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덴마크인들이 공감능력이 높은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공감능력 키우기 수업 덕분이다. 덴마크에서는 6~16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공감능력 키우기(empathy-building) 수업을 매주 한 번씩 정규 수업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내 감정을 잘 표현하고 상대의 감정을 잘 읽고 배려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긍정적 사고와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학습시킨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사례는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능력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능력은 어떻게 키워질 수 있을까? 그 답을 문화예술을 통해서 찾고자 한다. 예술을 매개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성숙된 커뮤니케이션은 억눌려 있던 생각과 불만을 표현하고, 각자가 가진 차이와 다양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이러한 소통의 과정은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적 자본을 축적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얻게 한다. 마약과 범죄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던 빈민가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 교육을 통해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시킨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는 예술의 소통과 치유의 힘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우리나라도 이를 벤치마킹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꿈의 오케스트라”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소통과 치유의 힘, 마을공동체 활동에도 확산
이러한 문화예술의 소통과 치유의 힘은 이제 개인 차원이 아닌 개인을 둘러싼 마을공동체에도 퍼져나가고 있다. 인간성 회복에 대한 공감과 복지 마인드 확대, 주민자치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최근 들어 성장 위주 개발정책의 심화로 해체된 마을공동체를 ‘마을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주민이 주도해 마을공동체성을 복원하고 단절된 이웃공동체를 복원해 건강한 지역커뮤니티를 만들려는 노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문화예술은 마을만들기의 매개, 방법론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마을을 중심으로 뭔가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첫 시작이 단절되어 있던 마을 주민들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인데, 보다 쉽게 주민들과의 관계의 물꼬를 트고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게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인 것이다. 거창한 계획과 목표가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생활 속의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일상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을 시작으로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면, 주민이 원하는 마을의 모습, 더불어 삶과 일, 놀이가 어우러진 마을공동체의 삶은 어떤 것인지를 꿈꾸고 실천할 힘이 생긴다.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이하 생문공) 사업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경험했고 현재도 자발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생문공 졸업단체인 감골주민회(2013~2015)이다. 과연 이들이 어떻게 문화예술이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마을 특유의 문화가 형성하며, 이것이 개인을 넘어서 마을공동체 형성의 초석을 마련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예술이 가져온 일상의 관계 회복, 그 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마을문화_감골주민회
경기 안산의 사1동의 감골주민회는 2010년 마을에 있는 석호초등학교 도서관도움어머니회에서 출발, 현재 마을로 공동체 활동을 넓히며 활동하고 있는 주민자치회이다. 학교 도서관 자원봉사 모임을 통해 삼삼오오 모인 학부모들은 수도권 인근 도시가 고향인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수 있는 고향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런 작은 바람에서 함께 살고 있는 마을이 눈에 들어왔고, 마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자리를 고민하면서 먼저 관심을 갖게 된 곳이 마을 놀이터였다. 경로당이 위치하고 있어 어르신들의 공간이 되기도 하며, 마을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아이와 엄마, 청소년의 공간인 놀이터. 이 놀이터에 마을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는 활동이 있다면 아이들도 어른들도 참 좋겠다는 생각에서 어린이날 축제를 열었다. 처음에는 2~300명을 목표로 시작했으나 현재 매년 6~700명이 참여하는 마을의 대표 축제가 되었다.
놀이터 축제의 경험을 쌓은 주민모임은 2013년 정회원 30여명, 성인 동아리 회원과 초, 중등 동아리 회원을 합치면 100명이 넘는 조직으로 감골주민회를 창립,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생문공 사업을 통해 기존에 해왔던 놀이터 축제를 마을축제로 확장하고 더불어 그 축제의 콘텐츠를 주민이 주인공이 되어 채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동아리를 발굴하고, 청소년 교육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마을 내 문화적 활동의 확장은 외형적으로 놀이터를 바꾸지 않았지만, 놀이터를 중심으로 맺어지는 사람들의 생각과 관계를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마을의 축제는 유명하거나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보다는 일상적으로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만들고 참여하며, 일 년 동안 마을 문화예술 동아리에서 배운 실력을 뽐내는 자리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재능을 나누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마을 사람들이 새로운 얼굴을 만나고, 마을공동체 활동을 마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커다란 장이 되었다.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어 축제의 내용을 채워나가면서 함께 만들어 낸 놀이터 축제는 놀이터를 아이들의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닌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이웃에게 봉사하고 마을 문제를 의논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편, 지속적인 주민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주민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마을카페를 만들어 주민들의 모임 공간이자 감골주민회의 사업 거점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카페를 중심으로 책모임과 우쿨렐레, 생활자수, 지역사 모임 등 다양한 문화예술 동아리들이 활동하는데, 일반적으로 주민센터나 문화센터와 일부 프로그램이 중복되긴 하지만 구성원들의 관계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좀 다르다.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단순히 기능을 익히는 것보다는 구성원들 사이의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관계를 원하며 부족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들을 좀 더 의미 있게 사용하고자 하는 성향을 가진다. 그러한 성향을 가진 동아리 구성원들에게 카페는 공간을 제공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해 카페는 수익을 얻는다. 이 동아리들은 활동을 통해 배운 것들을 마을 공동체 활동에 다시 풀어낸다. 스스로 주민 강사가 되기도 하고 마을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사업과 활동을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하기도 한다. 더불어 마을의 청소년들은 마을카페에서 마을 엄마들이 강사가 되어 직접 운영하는 청소년토요문화학교에 참여하여 새로운 동네 이모들을 만나고,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또래의 누나, 언니, 형, 오빠를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성장해나감으로써 마을의 또래와 선배들과의 친밀감을 가지면서 공동체 활동을 배우고, 사회성을 기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네의 누나, 언니, 형, 오빠는 학습 품앗이 활동을 통해 마을의 동생들을 가르치고 그 과정에서 학원에서 얻지 못하는 자신감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또래 문화 속에서 배워나간다. 이러한 관계의 확장은 부모와 가족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아이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주민 중심의 활동 경험은 마을 내 문화예술 활동에 그치지 않고, 2015년 마을의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기 위한 마을계획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사1동 마을계획 주민 300인 원탁토론으로 확대, 감골주민회를 넘어 사1동 마을 주민들의 요구가 반영된 마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공동부엌과 공동 목공실을 운영하면서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을 마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민들의 협력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위와 같은 감골주민회의 활동은 문화를 통해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 속에서 마을의 독특한 문화(놀이터 문화, 학습공동체 문화, 공유경제의 문화)를 만들어 냈으며, 그 문화 속에서 마을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관계가 회복되면 소통이 활발해지고, 그 소통의 방식에 따라 일상이 달리 보이고, 다르게 보면 이야기 방식이 달라지고 경험이 달라진다고 한다. 경험이 달라지면 일상이 달라지고, 일상이 달라지면 마을의 문화도 바뀌게 된다. 2016년 현재 생문공 사업을 통해 전국 27개의 마을에서는 문화예술의 소통과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감골주민회와 같이 문화를 통해 마을공동체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마을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을공동체의 근육과 힘을 계속 키워나간다면 우리나라도 얼마 후 UN 세계행복보고서_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 상위권에 랭크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그날을 상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