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들의 움직임이 분주한 아침,
의령댁 아주머니가 쌀자루를 이고 가신다.
설 대목, 창고에 쌓인 쌀을 팔고 제삿장을 보러 가시나보다.
명절 대목에만 코오롱 장날을 찾아가는 내게도 역시나 마음은 분주하다.
재래 시장의 특성에 잘 어울어져가야 하는 자리싸움에 대한 불안감 마저 감돌아
두근거리기 까지 한다.
무량사를 지나 칠북가는 국도는 언제봐도 정겹다.
대지를 깨고 파 디비어 놓은 정갈한 논들, 가지 치기 해논 앙상한 감나무 가지들,
비닐 덮은 마늘 모종, 미타사 옆의 저수지까지도 한가롭다.
국도를 달릴때는 쓰레기 태워 나는 연기, 마치 꼭두새벽 어르신들이 뿜어내는 입김같은
그것마저도 정감 간다.
장춘사의 품을 안으며 턴을 하고 마산 새도로를 달린다.
백열등의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터널속은 꼭 해질무렵 시장기 감도는 초저녁같은 색이다.
좌판상을 마치고 돌아갈 즈음, 분명 느끼고 갈 포근함을 생각하면서 깊은 숨을 내쉬니
코오롱 장에 도착해 있다.
야채가게를 하는 김씨네 부부가 억산같이 쌓아놓은 과일 박스를 차에서 내리고 있다.
현지 농장 직거래를 하는 탓에 어느 마트 보다 더 싼 이곳, 매주 금요일이면 싱싱하고
값싼 야채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다.
두부차 아저씨와 고기전 아저씨가 거들고 계신다. 몇년을 함께 해온 그들만의 정이
오가는 것이다. 조개전 아줌마는 홍합을 깐다고 정신없고, 묵장사는 비닐팩에 정갈하게 포장한다고 바쁘다.
쌀전은 벌써 양동이들이 정렬되어 있고, 만두집 만두 찌는 냄새는 아침 시장기를 감돌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파트 부녀회가 주관하는 이 알뜰장터는 부녀회 임원들의 지휘속에 이루워 지는데
문제는 아파트 주위에 사는 좌판 할머니들이다.
명절 대목때만 찾아오는 내게 그들의 시선은 냉혹 그 자체다.
작년 추석에 하루 종일 무쳐준 우렁이가 얼마였건
그들에겐 오로지 자신들의 자리만 고수 하면 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아이고 우렁각시 왔네..."
"근데 그 자리 도끼 할마씨 자린데 되건나? 좀 있으마 올낀데..."
"아이고 디비질낀데..."
플랭카드를 치고, 시식행사 준비를 마친 내게 혀를 차신다.
돌아서기 무섭게 도끼 할매가 테이블을 확 밀치는 순간, 초고추장 통이 와르르 무너졌다.
매번 올때마다 이자리에 하라고 부녀회장님이 정해준 내 자리, 도끼할매한텐 통하지 않는다.
입에 거품 물며 삿대질 해대는 도끼 할매는 정말 무섭다.
리어카를 밀고온 아들이 할매를 말려도 끄떡 없다.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노랫말처럼 예쁠것도 고울 것도 없는 너무도 평범한 할머니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세월을 사신 분만이 지닌 그런 표정이라고나 할까.
조금은 못나 보이고, 조금은 기형적이기도 하고, 조금은 누추해 보일 수 있는 그런 모습에서
난 애잔함을 느끼고 말았다.
할 수 없이 평소엔 할 수 없는 자리, 인도에 서서 도끼 할매와 마주 보고 시식행사를 하기로 했다.
아침 10시,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고 언제 그랬냐는듯 손님들과의 정이 오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많으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형편이 더 나아지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거다.
물건을 사러 장에 오는 사람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한 해, 두 해, 명절만 되면 찾아오는 단골들의 넉넉한 미소가 참 고맙다.
챙겨온 된장통을 꺼내 한숟갈씩 퍼주고 나니 연한 배같이 부드러이 펴지는 내 얼굴,
도끼 할매한테 우렁 한접시 무쳐 건넸다.
손수 집에서 만들어온 손두부, 폐식용유로 만든 빨래비누, 손수 키운 시금치, 고소한 겨울추
땅속 깊이 파묻어 놓았다 가져온 무우가 도끼할매의 주 메뉴다.
한 스무 군데 좌판을 펴고 앉아 있는 할매들의 메뉴가 거의 비슷하다.
하우스에서 키운 채소보다 노지에서 키운 할매들의 채소맛은 거의 깨소금맛이다.
오후 1시가 넘어가자 저마다 싸온 갖가지 점심꺼리를 내놓기 시작했는데,
소주 한잔씩 돌리는 함안댁 할매가 어김없이 등장을 했다.
함안댁 할매는 항상 빨간 립스틱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장이 시작되기전엔 항상 술을 마셨고 종일 술에 절여 목소리가 제일 컸기 때문에
부녀회에서 그를 어찌 하진 못하는것 같았다.
소주 한잔에 우렁 한점 넣고, 또 털어 넣고 하던 도끼할매 얼굴이 갑자기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안경너머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막내아들이 다쳐서 서울까지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겼다고 했다.
하루 좌판을 하게 되면 수금반장이 수금을 해가게 되어있는데 수금을 해가면서 상조금도 받는다는
이야기...
새벽 어둠살이 채 걷히기도 전에 뜨거운 콩 국물을 한 그릇 들이키곤
마산역 새벽시장을 거쳐 장마다 찾아다니는 억척스런, 도끼 할매 였던 것이다.
파장을 하고 북면으로 돌아오는 찻속의 상념속엔, 까만 비닐봉지속에 들어있는 돈다발보다
소주냄새 펄펄나던 도끼 할매가 훔치던 빨간 콧잔등이 내내 따라오고 있었다.
도끼 할매의 주름 사이에 아침 햇살이 곱게 스며들고,
추슬러 올리는 몸빼 바지 허리춤 사이로 시린 바람이 비껴가서
다음 추석대목장에서도 카랑 카랑한 그목소리가
그대로였음 정말 좋겠다.
문선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02/22-23:30]-
안병근: 누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주 오래전 시골 장터가 터오르게 하네요. 새벽부터 장에나가 자리를 잡고 오전까지인가 물건을 팔고, 돌아오는 길에 필요한 물건을 사오던 일주일에 한번 열리던 장터...
지금은 다 떠나가시고 숙모님만 계시는 그곳... -[02/23-08:13]-
정창섭: 찔레꽃 친구야.
아침부터 뭔가 가슴이 싸한 글이네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하고, 뭔가 좀 미안하고..
저녁에 보자..
근데 코오롱 장이 어디야?? -[02/23-08:31]-
송석철: 우렁 각시도 복많이 받고 건강하길.... ^^
도끼할매 아들 수술도 잘 됐음 싶고....
장터 분위기 메이크일것 같은 함안댁 할머니도 술쫌 줄이고 건강했음...
겨울 찬바람에 살짝 언 야채는 달콤한 맛이 한결 더하잖우...
진짜 코오롱 시장이 어딘지 궁금네...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
-[02/23-10:26]-
배오기: 문여사! 설 잘 쉬었는가
어렵게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삶...심금을 울리는 군만..
운제 우렁이 안주 삼아 소주 무거러 가 바야 할 텐데.... -[02/23-10:27]-
박창섭: 칭구야 좋은글 고맙고 지금시청은 인사이동 및 직제개편으로 하는거 없이 바뿌네
저녁에 볼라 켄는데 아마 어려울듯 미안.......^^ -[02/23-14:25]-
제원모: 편안할때 천천히읽어야지..하면서 아껴두었던 글.
얄미운 도끼할매였는데..막내아들 생각하자면 어쩔수없고..ㅉㅉ
착하고 예쁜 선옥님의 마음이기에 가능하겠지요.. 허 허
중리지나서 칠원쪽으로가면 코오롱 아파트단지 있는쪽이지 시푸다. -[02/23-15:14]-
김동활: 문선옥 씨 설 잘보넸겠지요 문선옥씨의 글을보니 인간이 살아가는 냄새가
묻어나은 느낌이 드네요 올 해도 가족분들이 늘건강하시길 -[02/23-18:04]-
안진희: 언니는 누구에게나 한결 순수하게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사람이야
고귀하고 소중한 삶을-우리 사랑의 솜씨가 서툴러
늘 엇갈리고 늘 엉키고 늘 뒤섞이지만-뒤돌아보게 하는 사람이야
언니 가슴의 열정을 기쁘게 자유롭게 사랑할거야 ♡ -[03/01-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