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1)
신약 성경에서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설립으로부터 시작하여 복음이 유다,
사마리아, 안티오키아를 거쳐 제국의 수도 로마에게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보도하는 역사서이다.
이제 이어지는 로마서부터 유다서까지의 21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는 이들의
구원 원리와 믿는 이들의 현실 생활에 이 원리를 어떻게 실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교훈을 주고 있는 서간들이다.
이러한 서간들은 다시 바오로의 서간 13권과 공동 서간 8권으로 나뉘어진다. 그 가운데
로마서는 바오로의 서간 13권과 공동 서간 8권을 모두 합해 신약 서간의 가장 앞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로마서가 신약 서간들 중에 가장 앞 부분에 수록된 것은 로마서가 서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쓰여졌기 때문이 아니다.
A.D. 51년경 쓰여진 테살로니카 전서를 필두로 테살로니카 후서(A.D.51년),
코린토 전서(A.D.55년), 코린토 후서(A.D.56년), 갈라티아서(A.D.56년)가
쓰여진 다음 로마서는 A.D.57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가 서간들 중에서 가장 앞에 배치된 것은 로마서의 내용이
신약의 서간 전체를 대표할 수 있을 만큼 그 내용이 가장 포괄적이며 잘 짜여진 구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1장 1절-17절의 도입부와 1장 18절-15장 13절의 본론부, 그리고
15장 14절-16장 27절의 종결부가 매우 선명하게 구분되며 각 부분도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로마서의 도입부를 살펴보면, 서간이 갖는 보편적인 양식에 따른 인사말(1-7절)과
더불어 로마서 수신자인 로마 교회 성도들에 대한 감사와 바오로 자신의 로마 방문 계획
피력 및 로마서의 핵심 주제인 '믿음을 통한 의화' 원리에 대한 요약(8-17절)이 일종의
서론격으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장 1-7절에 나오는 인사말의 원어상의 단어 수가 다른
바오로의 서간의 인사말의 단어 수가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많은 93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로마서의 인사말이 일차적으로 로마서의 수신자인 로마 교회가 바오로 사도
자신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며, 방문한 교회도 아니기 때문에(로마1,10.11.13)
격식을 차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 부분이 단순한 인사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논술할 로마서의 핵심 사상을 서두에서부터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로마서 1장 1절에서 로마서의 발신자인 사도 바오로 자신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여기서 맨 먼저 나오는 단어인 '파올로스'(paullos)라는 이름을 소개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다' 혹은 '작은 자'라는 뜻을 가진 그의 이름이 아니라 바오로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에 해당하는 '둘로스'(dullos; a servant)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인데,
이것은 오직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 자신의 의사는 전혀 내세울 수 없는
신분이다.
하지만 바오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했으며
그러기에 이 사실을 로마서 서두에서부터 밝히고 있다.
바오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 수 있게 된 것을 이 세상의 어떤 지위나
명예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그리스인들이 '둘로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점과는 판이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노예라는 신분에 대해 오직 반감과 모욕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종이
된다는 것이 자신의 자율성 파기와 함께 다른 사람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복종시키고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이러한 '둘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두 가지 사상적 배경이 있다.
먼저 '주'라는 '퀴리오스'(kyrios)의 반대어로서 종으로서의 철저한 책무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퀴리오스'는 사람이나 물건 등에 대한 확실한 소유권자임을 의미하는 말이므로
바오로가 예수님을 '퀴리오스'라고 인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그분의 소유임을 고백하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부터 자신에 대한 소유권이 더 이상 자신에게 있지 않고
전적으로 그분께 있음을 인정하였다(로마14,7.8; 갈라2,20). 그에게 있어서
'둘로스'의 의미는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신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순수한 사랑에서
기인한 자발적 책무였다.
그 다음, 구약에서 이 말은 위대한 하느님의 사람들을 표현하는 상투어였다. 위대한
하느님의 사람 모세는 하느님의 '둘로스'였다(여호1,2). 여호수아 또한 하느님의
'둘로스'였고(여호24,9), 이것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시키는 가장
영광스러운 호칭이기도 했다(예레7,25; 아모3,7).
바오로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한 데에는 자신도 이같은 구약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일꾼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바오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 데 이어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밝힘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복음에 대한 소명 의식을 나타내었다.
복음에 대한 바오로의 소명 의식은 '사도'란 표현에서 잘 보여진다. '사도'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los)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아포'(apo)와 '보내다',
'떠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스텔로'(stello)의 합성어로서 '~로부터 보내다'
라는 뜻의 동사 '아포스텔로'(apostello)에서 파생하여 문자적으로는 '~로부터 보냄
받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이 단어는 자의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로부터 임무를 받아 파견받은
자를 가리킨다. 이때 파견받은 자는 보낸 자의 권위를 가지고 가게 된다.
그런데 바오로에게 권위를 주어 복음 선교사로 보내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바오로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 그분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게 된 것이다(사도9,1-31).
즉 예수님께서는 대사제에게 공문을 받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 길을 쫓는
사람들을 모두 결박하여 끌어오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달려가던 완악한 바오로에게
직접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직접 바오로를 부르셨는데, 이것이 바오로가 사도가 된 동기였다.
'부르심을 받고'로 번역된 '클레토스'(klletos)는 '부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칼레오'(kalleo)의 형용사형으로 '부름을 받은'(called)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오로는 이 단어를 거의 항상 하느님의 부르심과 연관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사도라는 공적 임무를 수행하도록 자신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식에 지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생동안 그분에게 충성을 다할 수가
있었다.
한편 제자들 중에는 사도 바오로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2코린11,5; 12,11.12). 왜냐하면 바오로는 다른 열 두 제자처럼 예수님께서 공생활 때
사도로 부름받은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오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부름받은 사도였다
(1코린7,10; 11.23). 따라서 바오로는 그의 서간 첫머리에서 자신의 사도됨을 밝히고
있다.
바오로가 자신의 사도권을 밝히는 것은 그것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쓴
서간이 구원의 진리를 담고 있음을 수신자들로 하여금 확신시키기 위해서이다.
로마서의 수신자인 로마 교회의 교인들 역시 자신과 직접적인 복음의 친교가 없었기
때문에 바오로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본 서간의 내용을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바오로는 본 서간 서두인 본절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앞서 바오로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규정했는데,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울텐데, 본문에서 오히려
'하느님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절대 권위를 지니신 하느님을 거론함으로써, 로마서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바로 하느님의 복음임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즉 바오로는 '테우'(theu)라는 소유격을 사용하여 복음이 바로 하느님의 소유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복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복음'에 해당하는 '유앙겔리온'(euanggellion)은 '좋다'라는 뜻이 있는
'유'(eu)와 '소식'이라는 뜻의 '앙겔리온'(anggellion)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좋은 소식', '기쁜 소식'(Good News)이란 문자적 의미를 지닌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받을 비참한 운명을 지닌 인간에게 있어서 메시야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자는 아무런 조건없이
누구든지 영원한 구원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기쁜 소식이다.
'선택받은'
'선택받은'에 해당하는 '아포리스메노스'(aphorismenos)는 '구별하다',
'분리하여 따로 두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포리조'(aphorizo)의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 '구별되어진', '분리된'(separated), '따로 놓인'(set apart)
라는 의미이다. 신약에서 '아포리조'는 언제든지 '구별'과 관련된 용례로 쓰인다.
그리고 이 개념이 바오로에게 있어서는 '결정하다', '임명하다'라는 의미와 일치한다.
특히 바오로의 생애에 있어서 이 단어가 본절 외에도 사도행전 13장 2절,
갈라티아서 1장 15절에서도 발견된다.
갈라티아서 1장 15절에서는 하느님께서 바오로를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뽑으셨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사도됨의 기원이 태어나기 전부터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도행전 13장 22절에서는 바오로가 제1차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성령께서
안티오키아 교회의 예언자들과 교사들에게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를 따로 세우고 안수하는 문맥에서
이 단어가 나온다.
이것으로 바오로는 사도로서의 본격적인 생애를 시작하게 된다. 즉 안티오키아에서의
성령의 명령은 그의 사도직의 권위를 세워주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본절에서 '아포리스메노스'(aphorismenos)는 완료시제이다.
이 시제는 바오로가 자신의 사도로서의 선택된 구별이 이미 과거로부터 이루어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일로서 하느님의 불변하는 계획에 근거되었음을 암시한다(에페1,4.5).
하느님께서 그를 구별하신 목적은 복음, 즉 '유앙겔리온'을 위해서였다. 이것을
알기에 바오로는 '좋은 소식' 즉 '유앙겔리온'을 전하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2티모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