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 스캔들'을 겨냥한 미 공화당 측의 하원 압박에 우크라이나 정치권은 숨을 죽이고 있다. 자칫 예기치 못한 타격을 우려해서다.
미 하원 감독위원회는 공화당의 주도로 차남 헌터에게 12월 13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의 증인으로 출석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공화당 측은 헌터가 우크라이나 가스회사 재직시(2014~2019년) 취한 부당 이득과 부패 연루, 또 이에 대한 검찰 조사를 막기 위해 아버지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개입한 정황 등 소위 '헌터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재점화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전략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의도다.
스캔들이 발생한 우크라이나에서는 '헌터 스캔들'의 폭로에 연루된 알렉산드르 두빈스키 최고라다(의회) 의원이 14일 국가 반역 혐의로 2개월간 구속됐다.
2개월간 구속된 두빈스키 의원/사진출처: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이날 "우크라이나 법원이 두빈스키 의원을 2개월간 구속하도록 판결했다"며 "러시아 정보 기관의 요청에 따라 페트로 포로셴코 전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간의 2014년 대화 내용을 폭로한 안드레이 데르카치 전 의원의 범죄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두빈스키 의원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안드레이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을 비판한 자신에게 보복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그는 유죄가 확정될 경우, 재산 몰수와 함께 최대 징역 15년에 처해질 수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차남 헌터와 두빈스키 의원이 엮인 그간의 정황은 이렇다.
'헌터의 스캔들'은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로 마이단'(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대규모 시위) 사건으로 쫓겨난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누코비치 정권에서 장관을 역임했던 니콜라이 즐로체프스키가 소유한 민영 가스회사 '부리스마 홀딩스'(이하 부리스마)는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의 차남 헌터를 갑자기 임원으로 모셔왔다. 당연히 언론은 즐로체프스키가 전 정권 시절의 부정 부패에 대한 수사 무마를 위해 '미국 부통령의 아들'을 특별히 데려왔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빅토르 쇼킨 당시 검찰총장도 이를 사실상 확인했다.
그러나 쇼킨 총장은 2016년 3월 전격 해임됐다. 그는 바이든 부통령의 지시에 의해 쫓겨났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헌터 바이든/사진출처:SNS
실제로 '부리스마'의 임원으로 재직(2014년~2019년) 중이던 헌터는 아버지 바이든 부통령과 부리스마 측 인사와의 만남을 주선하고(관련 이메일 2015년 4월 7일자, 언론 폭로/편집자), 아버지에게 우크라이나 검찰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요청한(관련 이메일 2014년 5월 12일자, 언론 폭로) 정황이 불거졌다. 미 타블로이드판 뉴욕 포스트는 2020년 10월 우연히 발견된 '부리스마' 관련 이메일들을 근거로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10억 달러의 대출을 미끼로 '부리스마' 수사에 나섰던 쇼킨 검찰총장의 해임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2014, 2015년 발생한 이 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8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신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부자의 의혹(헌터 스캔들)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 것을 촉구하면서 부터다. 당시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경쟁자인 바이든 후보 부자에 대한 표적 수사를 시도한 것이라며 탄핵을 추진했다. '헌터 스캔들'이 정치적으로 트럼프 전대통령의 '우크라 스캔들'로 넘어간 것이다.
지난해 9월 미국을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의 안내를 받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리고 다시 내년(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바이든 재대결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헌터 스캔들'은 공화당 측에 의해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격의 주요 타깃으로 등장했고,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두빈스키 의원이 전격 구속됐다.
두빈스키 의원의 혐의는 포로셴코 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간의 대화 내용을 폭로한 데르카치 전 의원의 범죄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포로셴코-바이든 대화 내용은 2020년 미 대선 초기에 '헌터 스캔들'의 '스모킹 건'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드빈스키 의원이 포로셴코-바이든 대화 내용을 공개하는데 진짜 관여했을까?
스트라나.ua는 2019~2020년 당시 우크라이나 정계의 흐름을 되짚었다.
2019년 5월 취임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헌터 스캔들' 수사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았다. 젤렌스키 캠프(측근)는 두 파로 갈라졌다. 젤렌스키의 '킹 메이커'로 알려진 '올리가르히' 이고리 콜로모이스키와 그와 가까운 데르카치 전 의원, 두빈스키 의원 등은 적극 수사를, 쇼킨 검찰총장의 후임인 루슬란 랴보샤프카와 알렉산드르 다닐류크 국가 안보국방위원회(국가 안보회의) 서기(장관급)는 수사에 반대했다.
'킹메이커' 콜로모이스키에 대한 우크라 보안국(SBU)의 압수수색 장면. 올리가르히 콜로모이스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텔레그램 캡처
고심 끝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립'을 지키기로 했고, 미 하원은 2019년 9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시작했다.
미 대선 열기가 뜨겁던 2020년 5월과 여름, 데르카치 전 의원은 포로셴코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 포로셴코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간의 대화를 담은 녹음 테이프를 각각 공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 두 그룹 간 권력 투쟁이 치열했지만, 우크라이나 사법 당국은 데르카치 전의원의 폭로 조치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권 여당인 '인민의 종'은 이를 계기로 포로셴코 전대통령의 과거 실정을 조사할 '조사위원회'를 만들자고 했다.
그 기류가 바뀐 것은 미국이 그해 9월 데르카치 전의원에 대해 '대선 방해 혐의'로 제재를 가하면서 부터. 프로셴코 전대통령에 대한 과거 조사위 창설안도 폐기됐다.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출국하려다 국경검문소에서 제지당하는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2020년 11월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보다 확실해졌다. 미국은 2021년 초 ('헌터 스캔들' 수사를 지지한) 콜로모이스키와 두빈스키 의원에 대해서도 제재 조치를 취했다. 급기야 두빈스키 의원은 '인민의 종'에서 쫓겨났고, 올리가르히 콜로모이스키의 영향력도 점차 시들해졌다.
그 해 8월 (포로셴코-바이든 대화를 폭로한) 데르카치 전의원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졌고,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 전쟁)이 시작되자 국가 반역죄로 형사 소송이 시작됐다. 해외로 도피한 데르카치 전의원은 국제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과 관련된 데르카치의 모든 활동은 러시아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고 이뤄진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 9월에는 콜로모이스키가 구속됐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두빈스키 의원도 영어의 몸이 됐다.
데르카치 우크라 전의원/사진출처:유튜브
스트라나.ua는 데르카치 전의원과 두빈스키 의원이 진짜 러시아 정보기관을 위해 일했느냐고 묻는다. 유일한 증거는 궐석 기소된 데르카치 전의원의 보좌관인 이고르 콜레스니코프의 증언뿐이라는 두빈스키 의원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국가 반역죄인지, 미국에 대한 괘씸죄인지 헷갈리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