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27-31 야곱의 여러 아들들이
본문은 마침내 야곱의 여러 아들들이 세겜성에서 비겁한 방식으로 전승률을 사취한 과정과 야곱이 자기 아들들의 행위를 책망하고 자녀들이 항변한 내용들입니다.
1. 본문 27-29절은
“(27)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 누이를 더럽힌 연고라
(28)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29) 그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단순한 복수에 만족하지 않고 몰려가 약탈에 가세한 것을 기록합니다. 말대로 하면 그들은 ‘시체 있는 데로 갔다’ 고 합니다. 그들이 살육 당한 시체를 지나갔기 때문이거나 살육 외에 약탈까지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이전의 악행에 만족하지 않고 약탈까지 가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들이 분노로 눈이 어두워 유혈극을 벌이기는 했다고 하더라도 무슨 권리로 그 성을 약탈까지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확실히 분노의 소치로 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인간의 무절제에서 흔히 빚어지는 결과로서 자기 고삐를 늦추어 한가지 악을 범하는 자는 곧 다른 범죄를 자행하기 마련입니다. 야곱의 아들들도 마찬가지로 살인자가 되었다가 또 강도로 변하여 잔학의 죄에다 탐욕의 죄까지 추가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욕망에다 재갈을 물리도록 한층 힘써야 합니다.
이는 이런 여러 가지 욕망이 서로 부채질하여 행동을 통합함으로써 나중에는 가공할 만한 대 재난이 돌발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는 완력을 사용하는 데에 조심해야 합니다. 완력은 여러 가지 패악하고 야만적인 공격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세겜인들이 자기 누이를 더럽혔기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이 이런 일을 자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온 성이 그 죄를 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다만 살륙의 장본인들이 느낀 대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피해에 대한 복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또 자기들의 타락된 애정을 규제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기들의 악에 한계를 긋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들 중 어느 누구라도 보다 고차적인 의미로 즐겨 표현했다면 그 일은 하나님 심판에 회부(回附)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성(城)도 공범의 책임을 벗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성민 중 아무도 그 방백의 욕정을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손님에 대한 부당한 치욕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죄에 동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지지하는 의미는 전자입니다.
2. 본문 30-31절은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 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가로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 입니다.
1) 모세는 이 죄가 성자에게 정죄 당했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그들의 음모에 가담했다고 생각하는 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그 땅 거민들에게 그의 냄새를 내게 했다고 자식들에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야곱을 용납할 수 없으리만큼 밉살스런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웃 민족들이 함께 음모를 꾸민다면 그는 중과부적으로 그들을 저항할 수도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의 무리는 그들의 많은 수와 비교하면 너무도 소수였기 때문입니다. 또 야곱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더라도 본래부터 근성이 심히 악하여 해를 입히기 좋아하던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기서 터무니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야곱은 자기 위험만 중시하고 하나님께 대한 범죄는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째서 자식들의 잔학성에 대해 격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아마 범죄를 하고 난 자식들이 공포에 새파랗게 질린 것을 보고 그들의 심리적 상태에 맞춰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마치 세겜인 보다 자기가 살륙을 당한다고 불평하는 듯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람들이 설혹 회개한다고 해도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하지 않고는 회개하게 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자기 잘못을 엄폐할 그럴 듯한 구실이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모세가 시므온과 레위의 격분을 신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긴 훈계 중 일부만 선택한 것이 아닌지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분노는 너무나 격렬하여 그들은 짐승보다 더 몰지각했고 자기들의 파멸 뿐 만 아니라 온 가족의 몰살 조차도 안중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들 두 사람의 대답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들의 대답에는 흉악한 야만성이 풍길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람다운 감정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도 나타냅니다.
그들의 행위가 야만적이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온 백성을 멸망시키고 그들의 성을 약탈하고도 단 한사람의 피해 때문에 그랬다고 변명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그 아비에게 너무도 짤막하게 그리고 항거하는 식으로 대답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그들은 경솔하게 행한 자기들의 복수를 완강히 변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 형제 처자 등 온 가족의 죽음이 코 앞에 닥친 것 같은데도 그런 생각에 무감각한 그들이고 보면 그들의 몰지각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이 과도한 분노는 사람들에게서 지각을 빼앗는다는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상대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교훈을 여기서 얻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가는 것이 합당한지를 언제나 주목해야 합니다.
2) 다시 본문을 종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1)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의 기만 술책에 넘어가서 그들이 제안한대로 하기 위하여 세겜 사람들을 회유하여 필경은 모두 다 “할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이 장면에 와서 속이는 자가 되었고 이방 사람들이 도리어 진실한 태도로 약조를 실행하였습니다. 신자들이 시험에 빠져 범죄하는 때에는 도리어 불신자들만도 못한 일을 합니다.
(2) 야곱의 아들들 중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 받고 고통 중에 있는 세겜의 일족들(모든 남자, 하몰, 세겜)을 칼로 죽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세겜성의 “소와 나귀와 재물을 빼앗으며 그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속의 물건을 다 노략”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하의 사소한 사건에 대하여 너무 혹독하고 맹목적인 보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 인류에게 흔히 있는 망동을 반영시키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피해로 인하여 그 가해자들에게 지나친 증오심으로 보복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충돌로 인항 평생 원수를 맺으며 풀지 않는 일들도 많습니다.
(3)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의 행한 바를 꾸짖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① 그가 그들의 죄악 그것을 꾸짖는 것보다 그 죄악 대문에 임할 환난을 염려함입니다.
② 그는 환란을 염려하되 특별히 자기 자신에게 미칠 환난을 염려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나”란 말을 많이 사용한 것 “내게” “나로” “나를” “나와” “내 집”이란 말들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성격을 잘 드러냈습니다. 그는 신앙자이면서도 종종 개인주의로 나타난 적이 많습니다. 물론 그것은 그의 약점입니다. 야곱은 이와 같은 슬픈 장면에 있어서 그 아들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점에 대하여 통분한 생각을 가졌어야 할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