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간 지리산에 실상사 작은학교를 다녀왔습니다.
교사 5명과 교사의 자녀 2명, 터전분과장님의 가족 4명, 도합 11명이
이번 탐방에 참여했습니다.
아..지리산이 한 복판에 있었어요.
지리산나들목, 지리산국립공원, 멀리 지리산이 보이고
재작년에 찾았던 종주능선도 보이는
아주 영험하고 맑은 땅이었지요.
많은 분들을 만났고 본 것도 여러가지여서
풀어낼게 참 많은데.. 다 올리기는 그렇고,
하여 몇 가지 인상적인 것들만 올리려고 그럽니다.
1.
원래는 두 군데를 가기로 했어요.
푸른숲학교와 실상사 작은학교를.
한데 금요일 10시 강변역으로 가는 도로가 너무 막히는 겁니다.
강변역에서 다시 하남으로, 하남에서 푸른 숲을 둘러보고
다시 지리산 쪽으로 가기에는 일정이 빠듯하고...
부랴부랴 밀리는 차안에서 연락을 주고받았지요.
대림역에서 모여 바로 지리산으로 가는 걸로.
응암동, 양재, 안산.. 사는 곳은 동서남북으로 제각각 흩어져있지만
그래도 전철이라 10시 5분에 출발을 했습니다.
두군데 다 보려고 욕심을 부렸다가는 고생만
죽도록 할 뻔 했습니다. 실상사 가는 길이
그렇게 만만치 않았거든요..
오후 3시 조금 넘어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망향휴게소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대전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함양에서 88고속도로로, 그리고 지리산 인월 나들목으로 빠져나왔지요.
아래쪽으로 가면서 뚜렷한 산세와 눈 덮인 봉우리들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인월로 나와서는 산내면 쪽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산내, 구례, 거창, 함양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데
참 좋은 동네라는게 첫눈에도 알거 같습니다.
동네가 아담하고 그리 맑은 겁니다.
햇살이 맑으니 사물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보이구요.
산내면을 조금 지나 백무동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다가
지리산휴게소에서 뒷편으로 옮겨가고,
얼마안가 학교로 올라가는 샛길로 올랐습니다.
차 한데 겨우 다닐만한 산길이 가파르게 이어졌구요,
얼마쯤 올라가니 산속마을이 드러났습니다.
태양열 판넬로 덮인 건물, 도서관, 강당, 넓은 운동장, 화장실, 생활관..
생각보다 크고 넓었습니다.
2.
우선 생태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산중턱을 깍아서 터를 다졌고, 그 위에 목조로 건물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20가구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일종의 귀농공동체이긴 한데, 꼭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고
여러 직업을 가진 분들이라고 합니다.
들어가 보니 전면을 지리산으로 방향을 잡았고
통풍이나 채광이 그냥 보기에도 기가 막히게 멋져보였습니다.
산속이긴 한데 언덕배기에 듬성듬성 지어놓은 거라
지리산을 그대로 담아놓은 듯한 조망이었지요.
날이 좀 추웠고 바람이 세찬 것이
역시 산바람이었습니다.
다들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서는 설명하는 분을 열심히 따라다녔지요.
이곳은 아랫마을과 단절된 세상이었습니다.
걸어서 30분은 걸린다고 그러네요.
학교에 들어오는 아이들과 교사들도 그렇고
마을에 입주하는 사람도
일종의 속세를 떠나는 출가의 마음이 들지 않을까..
키 작은 교사팀과 키 큰 교사로 나눠
농구를 하기로 했지요.
진 팀에서 저녁을 차리기로 하고.
그런데 마을을 돌아보다가 그만 시간이 늦어졌지 뭐예요.
키가 작아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고 벼르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무산되었지요.
지리산 중턱에 맑고 깨끗한 곳에 들어서니
한바탕 뛰고 던지고 까불고 싶은거예요.
3.
저녁은 아랫동네에서 해결했습니다.
산내면사무소가 있는..
시골이긴 하지만 잘지어진 초등학교도 있고
우체국, 경찰서, 마을금고도 있는.. 호프집도 있어
있을건 다 있는 동네였습니다.
그곳에 학교생활관으로 쓰는 집에 묵게 되었지요.
옛날식 기역자로 토방마루가 있는 방 4채를 받았습니다.
그 집 문짝은 뽕뽕 뚫린 창호지였답니다.
화장실이 걸작이었지요.
겉은 나무껍질로 막아놓고, 안에는 한뼘이나 될까말까
구멍난 판자였습니다.
조준하기가 어렵다고,
무섭다고,
춥다고,
그래서 대부분 들어가기를 꺼려했지요.
불편함이라는게,
특정한 생활에 너무 익숙하다보니
남들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을 그리 어렵게 받아들이는 건가 봅니다.
어릴 적에는 다 그랬는데 말이지요.
퍼세식에서도 여유를 부릴 정도로..
밤에는 드글드글 끓어대는 방에 모였더랬습니다.
문밖으로 사복사복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에 쓸리는 낙엽소리에 님이 오셨나 문 열어볼 일은 없으나
그저 지리산 가는 길 어드메에
따순방에 모여 이불한장 대충 덮고서 발가락으로 꼼지락거리는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4.
둘째 날은 작은학교 대표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오전 10시 약속에 맞춰 다시 학교에 올라가니
나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훨씬 긴 수염을 달고 계신 분이 맞아줍니다.
교무실에 불을 피우지 못했다고, 춥다고 연신 미안해 하는데
마음이 먼저 따뜻해져왔지요.
학교 이야기를 풀어주었습니다.
십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처음에는 컨테이너안에서 시작했다고.
지금처럼 크지도 않았고 인원도 적었다고.
그때는 야생성이 살아있었다고,
세련되고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멋있었다고.
동네와 단절된 것이 일종의 출가의 의미가 담겨있고,
어쩌면 용광로와도 같다고.
그래서 밖에서가 아닌 이 안에서 먹고 자면서, 부딪히면서
깍이고 다듬고 정리하고 세워나간다고 그럽니다.
중학생 40명 정도에 교사는 15명.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 들어온 수도승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선생님 말은 그래도 이 안에 들어와서 겪게되는 단절감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우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미리 경험이 있는 아이일수록 들어와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훨씬
빠르다고 합니다.
어떻든 내 눈에는 아이들이나 교사들은 힘들거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 희망이 보입니다.
모든 것들이 손쉽게 처리되어 버리는 세상,
꼭지 하나 누르면 내 분비물이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져버리고
카드 한 장이면 리어카한대나 되는 물건들을 사다가 차에다 싣기도 하고
클릭 한번으로 세상의 정보들을 넘나드는..
그래서 손쉽고 간편하고
빠르고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그나마 조금 천천히 내 것을 살아내는 것이
이런 곳이지 않을까.
역시나 화장실이 나는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퍼세식도 아닌, 오줌과 똥을 구분하고
큰것을 보고서는 톱밥을 깔아서 아래에 쌓이게하여
퇴비를 만드는 것이
뭐가 어떻든 맘에 듭니다.
내 것이 나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다시 유기적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직접 실현하는 거지요.
아이들이 몸소 그걸 살아내고 있으니 부러울따름입니다.
5.
올라올 길이 너무 멀어 오르는 시간을 서둘렀습니다.
학교 아랫마을에 귀농한 분이 있어
잠시 들렀고, 찻잔이 식기도 전에 일어나서는
서울을 향했습니다.
다들 잠이 들어도 누군가는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거고.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녁에 날개를 펼치듯이
어디선가는 깨어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건데..
실상사의 ‘실상’이 뭘까?
궁금해지는 겁니다.
정말 제대로 실상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고 있는 건지.
졸린 눈을 깜박거리며 화두를 잡았지요.















첫댓글 '편함'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야생성'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키워내는 곳... ^^
좋은 기운들, 생각들을 가지고 한사람 두사람 모이니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움트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어 가더라구요. 와! 그 하늘은 얼마나 맑은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맑음이였지요. 그하늘의 기운을 사람들이 모두 닮아가나 보다 했어요..... 참! 그곳 작은마을 건축을 '자담건설'이 맡아하고 있더군요. 그곳에서 우리학교 공사하시던 아저씨를 만나 또 얼마나 반가웠는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