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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중심을 찾아 하반하로
나는 내가 누군지 몰랐다.
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끄집어내자면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조차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니다.
난 그림을 매일 1시간조차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난 내 중심, 자기중심이 없었다.
그래서 난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거나 맨 날 졸졸 따라다니며 “ㅇㅇ야, 혹시 시간 있어?” 라며 남만 바라보기 바빴다.
난 집에 있을 때, 하루 종일 만화책만 읽거나,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하루를 엉망진창으로 살았다.
게다가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게으름 때문에 라면만 먹다가 저녁에 부모님께서 오시면 왕창 먹어버리는 바람에 살이 많이 쪘었다.
내 하루는 완전히 망가졌었다.
어떻게 되었었냐하면 낮잠도 잤다가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게으름도 많아서 결국 참다못해 부모님께서 혼을 내신 적도 많았다.
그 때 느낀 게 “내가 목표가 있었으면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였다.
하지만 난 목표가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성공하는 목표가 없었기에 성공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학교에 있을 땐 큰 싸움하나가 터졌는데 그 때문에 난 친구들을 다 잃었다.
하지만 내가 자기주장이 없었기에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난 이런 일들로 내가 중심이 없어서 남을 따라가고 있고 계속 의지하면서 지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계속 힘들어 했었다.
중심은 안 잡혀있었고 친구들은 날 떠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계셨던 우리 부모님께선 3학년 겨울 시즌에 가 보았던 하반하 세계 여행 학교를 추천해 주셨다.
내가 힘들어 하기도 했고 내 체력이나 공부도 있었지만 내가 제일 가지지 않고 있던 자신감을 키워주려고 꿈을 찾아보라고 보내주려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절대 반대였다.
왜냐하면 난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아무인연도 없었던 남남인 사람들과 있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감 없는 날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할 줄 아는 걸 만들고 싶었다.
그림 말고도 내 시야를 넓혀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친구들 말고 하반하를 선택했다.
나에겐 하반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추천은 부모님께선 해주셨지만 난 날 알고 싶었다.
내 시야를 넓히고 싶다.
<CHAPTER1>
긴장을 뽝!
하반하에는 정산제도라는 것이 있다 정산제도를 통해서 다들 처음엔 0달러에서 시작하지만 누군 부자가 되고 누군 거지가 된다.
이렇게 되어버리는 이유는 자기관리능력에서 시작된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돈을 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빚이 생기게 된다.
자기관리를 하여 돈을 벌 수 있는 과목을 잠시 설명해보자면 필수과목은 일기, 단어, 독해, 리딩이 있고, 선택과목은 디베이트, 스피킹, 오카리나, 독서록 등이 있다.
일단 난 단어에서 마이너스가 많이 났었다.
난 단어를 10개 외울 암기력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엔 열심히 하려고 하였지만 NO PASS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어차피 NO PASS 받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부터가 슬펐다.
슬로바키아 때는 내가 NO PASS를 너무 많이 해서 써니쌤께서 단어 외우기를 5개로 줄여주셨는데 그것마저 힘들었다.
그 정도로 끝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다.
우리가 개인 정산이 아닌 팀 정산을 하였기 때문이다.
팀 정산이란 선택 과목과 필수 과목의 리워드 패널티를 서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이 팀 정산이라는 것을 하면 좋은 점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패널티르 나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포인트인데 난 NO PASS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팀에게 짐만 되었다.
도움은 눈곱만큼도 주지않고 피해만 주는 아이로 처음 이미지MAKING이 되었다.(난 그렇게 느꼈다.)
난 단어를 NO PASS를 했을 때 팀원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모님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든 너그러이 봐주셨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계속 NO PASS를 받는다면 난 폭탄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나의 생활방식이 잘못됨을 느껴서 하반하에 왔는데 여기서도 여전히 그런 것이 반복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학교수준도 따라가지 못할뿐더러 공부하는 법조차 몰랐던 아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게 하반하에 와서 1학기중반까지의 나의 고민들과 모습들이었다.
난 저 맨 밑에서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던 때였지만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나에게 서서히 자신감이 생기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이고 있었다.
조깅이란
우린 평일에는 6시 반에 일기를 제출한 후 곧바로 나와서 조깅을 준비한다.
그리고 대장님께서 선두를 하여 조깅을 시작한다.
난 내가 형님들보다 느려서 뒤쳐질 것을 알고 있기에 대장님 뒤에 착 붙어 시작한다.
이제 그 자리는 내 고정석이 되어있을 만큼 나는 이제 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잘 뛴다.
처음부터 그랬을 거라는 상상은 NO!!천만의 말씀!! 초반에 난 20분도 채 되지 않아 뒤로 밀려났다.
다른 형님들에겐 흔한 일이 되어버려서 다들 늘 나를 앞질러 달려갔다.
그리고 난 점점 멀어져서 100미터 이상 차이가 나곤 했다.
다른 형님들이 한 바퀴를 빙 돌고 올 때, 난 언제나 그들과 마주치곤 했다.
나 체력이 엄청나게 부족했기 때문에 조깅은 이미 끝났는데 사람 수를 세보면 항상 내가 없어서 다른 형님이 나를 마중 나올 때도 종종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힘들었던 때는 터키, 페티예였다.
그 땐 우리가 곧 케나다에서 11,8km마라톤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마라톤준비를 위해 매일 대략 5~6km를 뛰었었다.
이게 얼마나 긴 거리인지는 처음에 나는 잘 몰랐었다.
하지만 뛰어보니 몸으로 알 수 있었다.
그 길고도 길게 느껴지는 5~6km를 1시간 동안 뛰었었기 때문에 속도도 꽤나 빨랐던 편이었다.
매일 밤이 되면 내일 아침이 두려워서 잠에 들지 못하고 결국, 아침이 되어 일기를 제출한 뒤엔 신발 끈을 묶는데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어나보니 몸이 갑자기 확! 가벼워진 걸 느꼈다.
일기를 제출한 후 조깅을 뛰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원래는 조깅을 하기 전에 겁을 잔뜩 먹고 기다려야 했지만 그 날은 자신감도 넘쳐났고 힘도 불끈불끈 솟았다.
곧 조깅이 시작됐다.
평소처럼 대장님께서 선두를 스셨고 나 그 뒤를 따랐다.
어느 순간 시계를 보니 어머나! 세상에나! 내가 40분을 넘게 달리고 있었다.
혹시 신께서 내게 ‘체력1일 무제한권’을 주신 걸까?
아니면 오늘 유독 대장님께서 천천히 달리시는 걸까?
난 내가 성공했다는 것에 너무나도 기뻤다.
이제 다른 형님들의 등이 멀어지는 것을 보지 않으리라는 걸 다짐하며 열심히 달렸다.
이젠 옆의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약 2주간 매일 같이 조깅을 뛰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본다는 것에 눈에 문물이 고일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자랑을 하고 싶었다.
대장님께 알리고 써니쌤께 알리고 아마 하반하 전체에 공지를 하듯이 알렸었을 것이 분명했다.
왠지 내 생각엔 신께서 내게 승리의 맛을 보게 하여 나의 자신감을 올리게 하려는 작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로인해 11.8km마라톤도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집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조깅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CHAPTER2>
‘의식주’의 ‘의’
써니쌤께선 매년 여자 형님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치신다.
아마 그 이유는 써니쌤께선 사람이 손재주가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아마도오...?)
그리고 손재주가 있으면 옷도 만들어 입을 수 있고 돈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나만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써니쌤께선 나, 수경 형님, 지윤 형님, 율이 형님에게 터키, 셀축에서 실과 코바늘을 사다 주셨다.
이 때부터 내가 죽을 때까지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하나 발견된 것이다.
사실 난 지금까지 뜨개질을 해본 적은 없지만 뜨개질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왜냐하면 길고도 기다란 실로 손을 몇 번 움직이면 옷 한 벌이 뿅! 양말 한 켤래가 뿅! 하고 완성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 수 있을뿐더러 디자인을 마음대로 정하고 고를 수 있으니, 나는 말 그대로 그런 사람들이 천재처럼 보였다.
자신이 만든 옷으로 거리를 걷는 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 큰 이모도 뜨개질을 하시는데 우리 큰 이모는 인형을 만드신다.
난 그걸 보고 처음으로 뜨개질을 알게 되었고, 큰 이모가 엄청! 대단해보였다.
그 때 나도 큰 이모께 뜨개질을 배우려 하였다.
하지만 나의 게으름과 집중력의 한계가 합쳐지는 바람에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 하반하에 와서 써니쌤께서 뜨개질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였을 때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굳은 의지를 되새겼다.
처음에 난 사슬뜨기(기초)를 연습한 다음, 머리띠를 하나 만들었다.
물론 어떻게 시간을 내야할지 몰라서 터키, 페티예에서 겨우겨우 완성하게 되었다.
난 FREE WEEK를 이용해서 머리띠를 완성한 뒤, 킨들 주머니를 만들었다.
킨들 주머니는 게으른 나 때문에 에콰도르, 과란다에서 완성하게 되었다.
그 2개의 작품을 완성한 뒤, 다음 작품을 구성하다보니 이미 1학기는 훌쩍 지나가 시즌이 왔다가고 방학이었다.
나 지금까지 내 독해한 것을 열심히 검사해주시고 나의 하반하 생활을 많이 도와주셨던 해인쌤께 덧버신을 선물해 드리기로 결정했다.
난 써니쌤께 가서 덧버신 만드는 법을 배웠고 대략 7시간을 걸려서 덧버신을 완성했다.
파란색을 주로 사용했고 위에 꽃까지 올려서 더더욱 깜찍하게 보이는 덧버신이 탄생했다.
해인쌤께서 학부모 단톡방에 나의 이름과 함께 덧버신 사진을 올려주셨다.
덕분에 난 날 잘 모르고 계시는 학부모님들께 뜨개질 잘하는 아이로 이미지MAKING이 되었다.
‘곧 써니쌤의 수제자가 될 것 같다.’, ‘막내인데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등 엄청난 칭찬 세례를 받으면서 잠시 학부모 단톡방에서 스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 덕분에 동기부여가 되어서 망토를 뜰 수 있었던 것 같다.
아!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는 해인썜을 위한 덧버신을 완성한 뒤에 난 율이 형님을 위한 망토를 뜨기로 결정했다.
율이 형님을 위한 이 망토는 사실 엄청난 대 작업이었다.
난 써니쌤께서 쓰시는 방법인 목 부위부터 떠내려가는 방식을 사용했다.(빙글빙글 돌리면서 떠내려가는 것임)
처음에 한 바퀴를 돌릴 때는 1미터도 되지 않았는데 30~40바퀴를 돌리고 나니 한 바퀴가 4미터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바퀴가 한 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완성하여 율이 형님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식주의 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자 형님들 모두 뜨개질을 하지 않지만 나 그걸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 자신을 위해 조끼를 뜨고 있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문집과 함께 서핑을 타게 되어서 매일 기절을 하게 되어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점점 시간을 잘 활용하여 뜨개질에 다시 손을 대고있다!
그리고 지금 난 한국에 도착해서 하반하 9기에서 끝마치질 못할 듯한 나의 모든 친적들을 위한 선물들을 제작할 생각이다.
난 하반하에서 선물을 만들어주며 형님들과 쌤들의 웃음을 보아서 선물하는 맛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웃음과 기뻐하는 것, 단 그 두 가지 덕분에 선물을 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가 선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선물을 해본 사람은 이 웃음과 기쁨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렇게 난 뜨개질을 배워서 선물의 기쁨과 내 특별함 등을 얻게 되었다!
시야를 넓혀가는
나는 하반하에 와서 많은 언어를 배웠다.
뭐,,,, 인사말만 배운 언어를 빼면 고작 2개 국어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고작 2개의 언어가 나에게 수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2개의 언어는 영어와 스페인어이다.
영어는 하반하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필수언어이다.
심지어 스텝이 되려면 아무리 심성이 좋고, 센스가 있고, 아이디어 좋고, 일을 잘하고, 학생과 선생의 신뢰를 받아도 영어를 못하면 다~~~ 소용없다.
하반하는 세계여행학교이다 보니 세계를 돌아다니며 숙소 주인이든 가게사람이든 누구든 언젠가 한번은 꼭 대화를 해보게 된다.
물론 그 외적인 이유들도 있기는 하지만 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영어의 필요성을 느꼈던 때는 우리 하반하에서 진행되는 잉글리쉬 위크 때이다.
잉글리쉬 위크는 매주 월요일 아침 7시부터 화요일 저녁 7시까지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내가 잉글리쉬 위크를 처음 경험했을 때가 슬로바키아 야스나에서인데 그때 나는 문장의 형태는 당연히 몰랐고, 주어가 어디에 있는지, 동사가 어디에 있는지, 목적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랐다.
다른 형님이 영어를 사용할 때, 내 머릿속에는 대혼란이 왔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내게 말을 걸었던 형님은 결국 한국어 말을 해주거나, ‘nothing'말하고 휙 가버리곤 했다.
그럴 때 마다 난 창피했다.
내가 왜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매번 이렇게 생각 하고 예전에 공부를 싫어했던 나를 후회했다.
그러면서 난 english week가 오면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영어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때,난 시야가 너무나도 좁았다.
외국에 와서 외국인과의 대화를 두려워했고 대화를 하면 매번 다른 형님들이 해석해주셨다.
그럴 때마다 나와 대화를 하던 외국인은 자연스레 해석해주던 그 형님과의 대화가 되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 넓어졌다.
하반하 초반에서와 지금의 영어실력 사이에는 많은 노력들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난 단어량이 엄청나게 부족했을 뿐더러 독해력도 꽝이었다.
내가 영어가 너무 안 되어서 써니쌤께선 날 영어기초반이 아닌 영어기초기초반인 해인쌤께 보내셨다.
난 리딩이 아닌 문장암기를 했었고, 단어도 5개만 외웠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공부하는 양이 너무 적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난 단어는 10개로 문장암기는 7줄로 바뀌었다.
1학기까지 효과가 딱히 들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2학기가 들어서고 난 리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단어도 20개로 마지막엔 30개까지 올렸다.
그리고 리딩을 하면서 난 7문장에서 2쪽으로 확! 올라갔다.
그러면서 1학기 내내 하고 있었던 ‘행복한 왕자’를 끝내고, ‘플랜더스의 개’를 순식간에
끝내고, ‘피터 팬’을 끝내고, 그레이드 2인 ‘하이디’를 끝내고, ‘걸리버 여행기’까지...... 엄청난 발전이었다.
중간중간 TA수정이 많아서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은 날도 있었고, 힘들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나의 최대에 도전 해보기위해서 단어30개를 도전하였고, 리딩을 선택했다.
그리고나서 누구한테나 말을 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시야가 넓어지니 점점 자신감이 상승했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편해졌다.
예를 들면 영어를 너무 잘해서 어려운 단어를 사용할 것 같은 사람일 것 같으면 미리 영어를 잘 못한다고 말한다거나 말이다.
난 아직 영어를 잘 못하지만 이젠 영어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영어에 자신감도 없었을 뿐더러 영어에 ‘ㅇ’자도 몰랐던 나에게 써니쌤과 해인쌤의 노력도 감사하고, 그 덕에 일어서게 된 나 또한 고맙다.
무튼 난 이렇게 영어에 자신감이 생겼고, 이런 날 가르쳐주었던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럼 이제 스페인어에 대해 말을 해보려 한다.
우리가 1학기가 거의 끝이 났을 때, 우린 에콰도르 과란다로 시작해서 남미 4개월 여행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남미에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딱히 많지 않다.
그래서 남미에선 잠시 영어가 소용없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종하쌤이 등장하셨다.
종하쌤게선 써니쌤의 둘째 딸로 코이카 활동을 하신다.
시즌이 올 때까지 우리와 함께 지내시며 스페인어를 가르쳐주게되었다.
코이카는 에콰도르에서 학교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무튼 종하쌤께선 우리의 남미 첫 번째 도착지인 에콰도르 과란다에서 한 달간 스페인어를 가르쳐주셨다.
난 매번 스페인어 시험에서 no pass 하여 매일 0.5달러 페널티를 받기는 하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시즌이 왔고, 시즌과 함께 하는 1차 정산에서 번 돈으로 쇼핑을 하면서 9기만 조금 할 수 있는 가격 묻기, 흥정하기 등을 해보면서 스페인어를 배운 보람을 느끼면서, 그와 동시에 시즌 형님들 앞에서 뿌듯함, 자랑을 하며 얻은 기분 좋음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남미가 아니라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남미 4개월 동안 엄청난(?) 도움을 준 언어였다.
이렇게 난 두 개의 언어를 배워서 자신감뿐만 아니라 카멜레온의 시야처럼 넓은 시야를 얻게 되었다.
외계인에서 사람으로
2학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 하반하는 66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말하길 습관이 생길 수 있는 최소의 날짜 수는 66일이라고 한다.
써니쌤께선 우리에게 각자 스스로가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주려고 우리에게 66일 프로젝트를 제안하셨다.
난 그림그리기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이건 나의 꿈이고 재가 제일 잘 하는 것이었기는 했지만 또한 그만큼 귀찮아하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림그리기를 귀찮아하는 마음가짐을 고치기 위해 난 66일 프로젝트로 결정했다.
그와 함께 써니쌤께선 내가 매일 그림을 30분씩 그려서 완성한 그림을 대장님께 보여드려서 대장님 그림수업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대장님께선 미술을 전공하셔서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실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난 2학기부터 대장님 그림수업을 듣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66일 프로젝트를 일주일 즈음 진행을 하여 추석 기념 그림 한 장을 가지고 갔는데 대장님께서 하신 말씀, “자, 사랑아, 사람은 눈 밑에 코가 있는데 넌 눈 가운데 코가 있잖아. 그리고 왜 얼굴 뒤에 목이 있는 거니? 사랑아, 잘 보면 ~~~”
그 말씀을 들으면서 살짝 멘붕이 왔다.
왜냐하면 사실 난 지금까지 내 그림에 자부심이 있었는데 대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그 자부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이 그림은 지금 외계인인거야.”
두둥! 외계인이라니! 너무 심하지 않는가!
하지만 대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다 맞아떨어져서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무튼 난 대장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그림을 수정했다.
그림을 수정하면서 느낀 것이 내가 그림을 수정하면 수정할수록 그림이 그럴듯해 보인다는 것이다!
조금 더 수정을 하니 전에 그렸던 내 그림들이 다~ 괴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조금 더 수정을 하니 전에 그렸던 내 그림들이 다~ 괴상해 보였다.
눈은 엄~청 크고 코와 이 사이가 크게 벌어져 있어서 바보 같이 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나는 나의 전 그림체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대장님의 숨겨졌던, 보이지 않았던 엄청난 능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몇 가지 그림을 그렸고 대장님의 그림 수업을 들었다.
원근법 수업도 들었고 인체 수업도 잠시 듣게 되었다.
2학기에서부터 시작한 그림수업이라 아직 효과는 나타나진 않았지만 내년의 나를 기대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으로 하고픈 나의 내년 목표는 일주일 보고서를 만화로 그리고 대장님 그림수업을 꾸준히 들어서 아주 사소한 듯 해보이지만 나의 꿈인 웹툰작가를 위해 만화를 그리는 연습과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올리는 연습을 할 것이다. ^^
그리고 난 나에게 그림그리기를 가르쳐주신 대장님께 감사하다!
하마터면 외계인만 그리며 살 뻔했으니까 말이다.
<CHAPTER 3>
정산 1등을 해보다!
2학기가 되어 전교 1등을 해보게 되었다.
여기까지 오기에는 많은 노력과 결심이 있었다.
난 대장님 그림수업도 들었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여 PASS도 계속 받았다.
그리고 전교 1등에는 관계가 없어보이지만 나의 특별한 취미가 되어서 공부가 하기 싫을 때 도와준 뜨개질이나, 자신감을 높여준 조깅도 열심히 했다.
내가 전교 1등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일단 영어 공부를 한 것이었다.
영어공부는 페티예에서 갑작스럽게, 나도 모르게 잘 하게 되어 계속 PASS를 받았고 계속해서 PASS가 되어 ALL PASS가 되면 플러스 15달러나 된다.
단어만 ALL PASS해도 말이다.
거기에 리딩, 독해, 일기를 포함한다면 플러스 4.5달러가 되는 것이다!
영어 공부가 왠지 나에게 제일 도움을 많이 준 과목이 아니었나 싶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대장님 그림수업은 1석 2조였다.
나의 꿈에 많이 도움이 됐고 또한 돈도 벌 수 있었다.
이건 1~2달러씩 벌었는데 나에겐 꽤 큰돈이었다.
돈이 아니더라도 다시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기뻤다.^^
1학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그림은 손도 대지 못하였는데 이젠 그림에 돈까지 벌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게다가 전교 1등에 큰 도음이 됐다는 것, 그게 제일 기뻤다.
그리고 뜨개질은 정산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사실상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다.
영어는 계속 PASS를 받아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귀찮고, 하기 싫었다.
그럴 때 마다 ‘아.. 뜨개질을 하고 싶다.’ 하고 나의 심심함을 없애는 이 특별한 취미는 날 매번 기쁘게 해주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뜨개질이 없었더라면 공부는 그냥 필수이기에 하는 아무 이유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깅도 정산과는 관계가 없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다 이어져있다.
조깅은 내가 원래 조깅을 못했을 때에는 ‘역시 난 아무 것도 못하나봐.’가 내 생각이었는데..
조싱을 점차 잘하게 되면서 ‘오, 드디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겼어!’로 생각이 바뀌었다.
조깅을 잘하게 되면서 ‘혹시 공부도 잘할 수 있을까?’라면서 공부를 눈여겨보다가 점점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이기에 나한테는 조깅도 정산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뜨개질도 말이다!
이렇게 날 도와주는 과목들, 취미, 자신감이 있었기에 정산 1등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전교 1등 다음엔 전교 3등을 해보았다!
난 특별한 걸 많이 얻게 된 것 같다.
마무리
이제 하반하 9기가 거의 끝이 난다.
하반하 9기가 끝나면 난 10기에 간다.
써니쌤께서 말씀하시길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 갖고는 택도 없다고 한다. 지금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난 하반하에서 중요시하며 다루고 있는 영어와 일, 그 두 가지 모두 완벽하지 않다.
영어실력이 확연히 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못함’에서 ‘보통’으로 올라왔을 뿐, 아직 ‘잘함’이 아니다.
난 아직 내 또래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따라잡지 못한데다가 나 자신도 내가 영어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일은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반하 초반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내게 내가 무얼 원했고 원하고 있는지, 내가 왜 하반하에 왔는지도 잠시 잊어버렸던 1학기다.
시간이 점차 흐르고 2학기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기 때문에 당연히 일을 잘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난 하반하 10기를 결정했다.
난 1년이 더 필요했고 왠지 부모님도 그걸 원하셨을 것 같다. ^^
그리고 난 9기와 10기 사이의 약 3개월이란 시간을 활용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마침, 아빠가 그 3개월 동안 나를 위해 1대 1 영어교사를 신청해주신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날 끊임없이 도와주시니 하반하에서 했던 것처럼 매일 단어를 30개씩 외우고 독해도 계속 두 쪽씩 할 예정이다.
방학이라 학교도 안 가는 이 엄청난 시간들을 1초도 빼먹지 않고 사용할 것이다.
나의 선생님이 되어주실 분은 영어, 일본, 중국어, 러시아어까지 총 4개 국어를 하셨고 유학까지 다녀오신 대단한 분이라고 하니 나에게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참에 나의 내년 목표를 말해보자면 10기에는 나에게 동생이 두 명이나 생긴다.
일단 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해리포터를 즉석독해하는 천재 같은 아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아무리 영어도 못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2년차 답게 인정받는 것이다.
누구한테도 바라지 않고 딱 그 두 명에게만 말이다.
내년이면 난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고 멀뚱멀뚱 서 있는 1년차가 아닌 어엿한 2년차다.
이젠 2년차란 큰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나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그렇지만 원래 아랫사람한테 인정받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난 그 두 명에게만 인정받기를 내년 목표로 결정했다.
그리고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만족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만족’이란 “이 정도면 올해 참 잘 살았네.” 라는 생각이 든 다음, 조금 더 열심히 사는 것이다.
만족하기가 쉽지 않은 걸 안다.
하지만 난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만족하는 것을 또 다른 목표로 정했다.
무튼 내년에도 잘 다녀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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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이의 1년 여행이 파노라마처럼 쫘악~ 그려지네.
초반에 많이 힘들어하던 사랑이가 조금씩 단단하게 자기 자신을 세워가는 과정이 아름답기까지 하네.
사랑이는 무엇보다 조언을 해주시는 선생님께 처음엔 속상하더라도 이내 마음을 내어 경청하는 점이 돋보이는구나.
너를 아끼는 분들이 너에게 소중한 걸 많이 많이 주고싶어할 것 같아.
10기에서도 쭈욱 잘해보자꾸나. ^^
넵! 내년에도 열심히 노력하며 지내겠습니다. 감사해요!!! --사랑올림--
사랑아 나의 사랑아♡
엄마는 우리 사랑이가 엄마 뱃속에 찾아온 것 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어
그런데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걸 보면 너무너무 행복하구나
1년동안 엄마 떨어져 지낼 수 있는 너가 참 대견하고 멋있어
며칠 후면 볼 수 있음에 설레인다
우리 가족은 너가 오면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려고 해~잘 할 수 있겠지?
사랑아 여행 잘 마무리 하고 밝은 얼굴로 보자
엄청나게 사랑한다!!!♡
저도 빨리 보고 싶어요!!!비록 3개월밖에 같이 지내지 못하지만 그 동안 열심히 효도할께요.
저도 사랑해요!!! --사랑올림--
똑똑한사랑이!글속의 똑똑소리가나는구나~내년에 동생들에게 인정받는 사랑이가될거라 생각이 마구마구든다^^사랑이 뜨개질솜씨에 너무 놀랍고 부럽기까지했었단다!내년엔 사랑이 그림 꼭 보여죠!기대할께~
넵!!! 열심히 할께요!열심히 지켜봐주십쇼!!!!--사랑올림--
사랑이가 글솜씨도 아주 많이 늘었구나. 영어실력도 많이 늘었고, 전교 1등을 하게 된 원이에 뜨게질과 조깅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삶이란 다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특정한 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감성, 환경, 심리, 생각 등이 작동한다는거지. 그걸 깨달았다는 것이 핵심인데. 잘 한 것 같다. 너가 집에 와서 게을러지는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 삶이 유지되기 위해 엄마 아빠도 같이 노력하기로 결심했단다. 우리 가족 모두 아침 6시에 일어나기로 결정했거든. 너 덕분에 우리 가족도 일찍 일어나서 같이 운동하고, 너의 삶도 하반하처럼 계속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아빠,계속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열심히 하겠습니다!!!!!!!!--사랑올림--
막내같지 않은 막내 사랑이. 형님들도 네 성실함에 엄지척이었지. 방학을 1초도 허투르게 쓰지 않고 성장을 위해 매진하겠다니 놀랍다. 2명의 동생들에게 가장 믿음직한 형님이 될거라 믿어
감사해요. 열심히 응원해주셔서요!!!!!^^--사랑올림--
민수형님에게 동생의 10기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사랑이 얘기를 하며 적극 찬성 의견을 주더구나. 막내인데도 너무 너무 잘하고 있는 사랑이에 대한 존경을 가득~~ 담아서. 민수형님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사랑이 보고서 곳곳에서, 사랑이의 그림이며, 뜨개질 같은 성과물들을 보면서 사랑이가 참 사랑스럽고 알찬 친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의 ‘만족’에 대한 생각을 보며 ‘마음가짐도 사고도 참 알차고 다부지구나‘ 싶어. 너무 너무 기특했고!! 진짜 멋지다 사랑이. ^^ 내년에 민수 동생 규림이 잘 부탁해~. 만화, 그림그리기, 만들기 다~ 좋아하는 아이라 사랑이랑 잘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넵! 10기에서 정말 친한 형님 아우로 지낼께요!!!!--사랑올림--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반하9기를 살아내고 내년도 준비하는 모습 감동이네요
감사해요!!!!!!열심히 할꼐요!!!!--사랑올림--
사랑아♡♡
우리 사랑이의 귀한 문집에 이모가 등장하다니!!!!! 영광이야*^^*
이모의 첫조카여서 더욱더 이쁜. 그래서 우리 예쁜 사랑이 우리 예쁜 사랑이~~ 했었는데 이제는 멋있기까지한 정말 멋진 사랑이가 된거 같아 이모는 정말 자랑스럽다
조깅할때 대장님 뒤에 착 붙어 달린다고 했는데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조깅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열심히 잘 배워야지! 하는 모습일꺼 같아 흐뭇하고 대견해서 사랑이의 그 글이 계속 생각이나네^^
얼른 사랑이 만나서 사랑이의 여행이야기도 듣고 싶다
사랑이를 만날 그날을 기대하며~ 사랑아 사랑해♡
헉!!!!이모,안녕하세요!!!!감사해요!!!제가 꼭 souvenirem들고 가겠슴다!!!
저도 사랑해요!!^^--사랑올림--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막내 사랑이는 글을 읽어보니 어른처럼 느껴지기도 하네~.
자신을 돌아보고 노력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에서 더욱 단단해질 사랑이 모습이 그려진다. 내년에도 화이팅~~!!
감사합니다!!!내년엔 곡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사랑올림--
9기 하반하의 가장 막내였던 사랑이의 문집을 읽어 보니, 키와 나이만 막내였지 생활은 그 어느 형님들 못지 않게 열심히 그리고 성취 했구나! 특히, 끈기와 집중력이 필요한 뜨개질을 막내인 사랑이가 끝까지 완수하고 평생 함께할 값진 재능을 얻은 것 축하한다~
내년 10기의 2명의 동생을 둔 의젓한 사랑이의 모습을 응원하며 ........
사랑아~올해 정말 잘 산거 인정~~^^
내년은 더더욱 발전할거라 기대한다~♡
하반하에 처음 여행을 시작하며 울보 막둥이 사랑이가 엊그제 같은데... 전교1등 사랑이로 거듭나다니...하반하의 에너지를 가장 잘 받아서 키운것 같구나
지혜롭게 자신감을 갖는법을 터득하고 노력해 나가는 모습,너무도 사랑스럽게 성장해가는 모습 우리들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단다
앞으로 10기에서도 눈부신 사랑이의 활약 기대할께~
사랑이의 그림과 뜨게질 실력에 여러번 감탄했는데 전교1등까지 하고 정말 기특하구나..사랑이가 10기에도 지금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동생 두명뿐아니라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랑이가될거같구나~
사랑아
너무 잘 하고 돌아와서
감사하고 예쁘다 ㅎㅎ
모든면에서도 잘하고
잘 살고 있으니
또 감사하고‥
10기에도 더욱 잘 살고
만족스런 모습으로
행복할 것 같구나^^
아이에게 동기 부여가 될것같군요.보여주어야지.....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