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묵호 등대공원을 둘러본 후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라 논골담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개 논골담길은 언덕 아래쪽에서부터 탐방을 시작하지만 우리는 주차와 가족의 체력적인 부분을 감안해서 위쪽의 바람의 언덕만을 둘러보기로 했다. 계획을 세운 나로선 논골담길 곳곳을 걷고 싶었지만 내 욕심만 내세우는 것은 여행의 분위기를 흐릴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의 언덕은 등대공원과 가까운 편이다. 조금만 내려오면 곧장 갈 수 있어서 어르신과 동행할 경우 등대공원 앞에 주차한 후 등대공원과 바람의 언덕을 찾는 일정을 추천한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더욱 아래로 내려가면 좋겠지만.
마을 바닥의 표시판의 모습. 이정표가 곳곳에 표시되어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바람의 언덕으로 내려가는 초입부터 벽화가 눈에 띄었다. 벽화마을이라는 특징이 처음부터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보통 벽화마을이라고 하면 가장 유명한 곳이 아마도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 여수의 고소동 마을을 떠올릴 수 있지만 묵호의 논골담길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숨은 명소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덜 상업화되어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등대공원에서 마을로 향하는 초입의 벽화 모습이다. 소박한 어촌의 감성이 그림 한 장면에 표현되어 있다.
이 벽화를 지나자마자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이 등장했다. 우선, 빨간색 등대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후에는 나무로 만든 미니어쳐들이 지붕을 수놓고 있는 모습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곳은 천연비누 제작 및 판매하는 공방 & 카페였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띄는 곳이라서 한번쯤 구경하는 것을 추천한다. 단,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는 에티켓이겠죠!?
이곳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당연히 바람의 언덕이 있는 오른쪽으로 이동했고 오른편 벽면에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 아니었다. 이 마을 주민들이 본인의 경험과 생각, 추억을 표현한 매우 의미 있는 것들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 갤러리로 꾸며져 있었다. 이 그림들을 통해 논골담길 사람들의 삶이 더욱 살갑게 느껴지는 듯했다.
작품 한켠에는 이 마을 주민들의 이름 석자와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있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린 작품이겠지만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자체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실외 갤러리로서 손색이 없었다.
가족여행단의 여행 정보 [묵호와 논골담길의 유래]
- 묵호동의 묵호(墨湖)는 바닷가에 물새가 유독 많이 모여들어 ‘새도 검고 바다도 검다’는 의미로 ‘먹묵(墨)’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 논골마을은 1941년에 개항해서 무연탄과 시멘트 운송으로 묵호항이 호황이었던 시절, 논골마을 사람들의삶은 남루하지만, 활기로 넘쳤다. 비탈진 언덕에 지어진 집들 사이의 골목이 흙길이었기 때문에 논골마을이라 불렸다.
- 사람들은 언덕 꼭대기에 생선을 말리는 덕장으로 오징어, 명태를 지게나 대야로 날랐다고 하다. 오징어 더미에서 떨어지는 바닷물로 늘 질었던 골목은 ‘남편과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는 명언을 남겼다.
- 논골담길에는 유난히 장화 그림과 소품이 많이 등장한다. 담벼락 위, 아이가 신던 장화에는 들꽃을 심어놓았다.
- 논골담길은 논골 1길, 논골 2길, 논골 3길, 등대오름길 등 총 4가지가 있다.
- 모두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며 그 끝은 동일하게 묵호등대로 향한다.
- 같은 듯 같지 않은 벽화들의 모습에서 소박함과 아기자기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이야기 "동해에 숨겨둔 나의 '전망 좋은 방', 묵호동 논골담길
"바람에 언덕"이라는 단어에서 조사 하나가 다를 뿐이지만 다르게 해석될 수 있었다. 희망이 떠오르는 건 괜한 감성에 젖은 것은 아니겠지.
이정표를 지난면 왼편에는 이들의 삶이 묻어 있는 장화들이 걸려 있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채 전시되어 있는 모습에서 아웃도어 갤러리의 정겨움이 느껴졌다.
바람의 언덕으로 향하는 입구 오른쪽 담벼락에는 파란색 바탕에 넘실대는 파도와 다양한 물고기 그림이 푸른 하늘과 함께 그려져 있으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장마철이라서 푸른 하늘을 보지 못했지만 이 벽화에서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입구에는 묵호항과 논골마을의 옛 모습들이 담긴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이 함께 어울러 이 마을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끔 했다.
이 같이 전국의 벽화마을 대부분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낡아져서 발전이 더딘 곳들을 중심으로 그림을 통하여 활력을 불어넣고 그 에너지로 마을을 유지시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논골마을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바람의 언덕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옛스러운 집을 리모델링한 카페와 현대식으로 꾸민 상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현대식 건물에 살짝 당황했었지만 이곳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잡고 핸드메이드 작품들을 전시, 판매한다면 이곳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이 마을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시화 작품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바닷가 마을과 시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쌍인 듯했다.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브라운관 티비는 어릴적 tv앞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나의 모습을 떠올리기 충분한 소품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바람의 언덕.
잿빛 먹구름을 품은 동해 검은빛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펼쳐져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왼쪽에는 비구름을 어깨에 맨 산들에 폭 쌓여 있는 묵호항의 모습이 보였다.
명칭처럼 바다와 직접 맞닿아 있는 언덕이라서 바람이 제법 강했었다. 덕분에 아내는 모자를 부여잡고서 다녔지만.
논골담길을 오르기 위해서는 방파제 안쪽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천천히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이번처럼 장마철이라면 쉽지 않겠지만 연인과 함께한다면 꽤나 낭만적일 것이다.
위 사진의 오른편이 활어회센터이다. 이곳은 독특하게 생선값과 회치는 값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 신기하여 물어보니까 30년 전부터 해오던 관습이라는 말에 더욱 이 같은 시스템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역시나 싱싱한 생선들의 팔딱거림에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위 카페의 전망은 말해 뭐하겠는가. 논골담길을 오른 후 시원한 바름을 맞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지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봄에 이곳을 방문하면 위 설명문과 같이 핑크빛 진달래가 물들이는 멋진 언덕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투명 난간에는 2019년 동해시 문인협회에서 마련한 "제 3회 시민과 함께 하는 시화전"의 작품이 새겨져 있어서 "역시"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짧은 만큼 강렬했던 논골담길과 바람의 언덕을 마지막으로 장마철에 떠난 동해로의 여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