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대하 25:1-13절이고, 제목은 “주여! 정직하게 라도 행하게 하옵소서.”입니다. ‘아마샤’가 온전한 마음은 아니었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합니다. 나중에 부왕을 살해한 신하들을 죽었지만, 자녀들은 해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위해 은 백 달란트를 내어 10만의 북 이스라엘 군대를 용병으로 고용했지만, 손해를 본 것 보다 더 많이 주실 수 있다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순종하여 돌려보냅니다. 그가 담력을 내어 세일 사람들을 공격하는 동안, 북 이스라엘의 군대가 유다 성읍을 약탈하고 3,000명을 죽입니다.
묵상
오늘은 통치 전반부에 나타난 ‘아마샤’의 삶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아마샤’(אֲמַצְיָה-ʼĂmatsyâh) 또는 ‘아마츠야후’(אֲמַצְיָהוּ-ʼĂmatsyâhûw)라는 이름은 “강하다, 용감하다, 대담하다, 확고하다.”라는 뜻의 동사 ‘아마츠’(אָמַץ-ʼâmats)와 하나님의 고유 이름인 ‘예호바’(יְהֹוָה-Yehôvâh)의 축약형인 ‘야’(יָהּ-Yâhh) 또는 ‘야후’(יָהוּ-Yahuw)가 결합된 합성어로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신다.” 또는 “여호와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2절의 내용은 ‘아마샤’의 삶에 대한 전반부의 평가입니다. 비록, 그가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본문에 나타난 그의 행적들을 살펴보면, 그가 “정직하게 행했다.”는 칭찬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 두 가지 면에서 그러합니다.
첫째, 그가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처벌함에 있어서 율법이 정해준 한도를 넘지 않고,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초창기에는 자신의 입지를 단단하게 굳히지 못한 상황에서 감히 복수의 칼날을 휘두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적어도 수년간 불타는 복수심을 억누르면서 적당한 기회가 오기까지 참아야 했던 시간들은 길고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결행하던 순간에 실제로 되갚아 주어야 할 복수의 대상들 만을 처형하고, 나머지 가족들에 대하여 더 이상의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신 24:16)라는 율법의 지침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그가 통치 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순종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사람이 전해주는 말에도 귀기울여 듣고, 그대로 따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 선지자(왕상 13:18)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들이 사역했던 예는 성경에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영 했던 엘리 제사장 가문의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예언하여 그대로 이루어졌을 때(삼상 2:27-36)에도,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이 벧엘의 단 곁에서 분향할 때에도 그에게 심판을 예언하기도 했으며(왕상 13:1-10), 본문의 ‘아마샤’에게 찾아 와서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교훈을 전해 준 그 역시도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나 그 밖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도 무시하고, 거부했던 ‘사울’과 같은 수 많은 왕들과 달리, 그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의 말을 그대로 수긍하고 따른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자신이 삯을 낸 은 일백 달란트(3,400 Kg)라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무명한 사람의 말을 수긍하고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9절)라는 무명의 선지자의 말에 전적으로 신뢰하여 바른 결정-용병을 그대로 돌려보냄-을 내리고 순종했다는 것은, 그가 실제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직하게 행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과연, 제가 ‘아마샤’와 같은 지위에 있으면서, 그러한 상황을 맞았을 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 까? 를 자문해 본다면, 결단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불편한 말 한마디에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잠을 못 이루고, 교제를 단절할 생각을 품기도 합니다.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금전적 손해만 보아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 때론, 더 심한 무리수(?)를 두는 과감한 용기(?)를 내기를 서슴지 않는 제 자신의 모습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묵상을 통하여 주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시는 ‘레마’의 음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물론,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 나의 음성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름 모를 무명의 동료들이나, 가장 가까운 가족들을 통해서도 나의 메시지를 전해 줄 때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네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네가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열고 바른 교훈을 따르려 하는 정직함이 있다면, 그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다양한 채널로 전해주는 내 음성을 ‘아마샤’와 같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쉬지 않고, 다양한 채널로 말씀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와 가족들을 통하여 끊임 없이 교훈 하시는 당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못했던 저의 교만함을 고백 드립니다. 주여!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성령이여 도우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 전해 주는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도 당신께서 들려주시는 바른 진리의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과 열린 귀를 주시어, 당신 보시기에 정직함으로 온전을 향해 나아가는 하루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유대인 회복과 선교동원의 ‘길을 여는 사람들’(미 2:12-13)
주님의 무익한 종 Yochanan Kim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