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택의 내 인생의 책
① 외투 / 고골리
고교시절 나를 깨우다. / 고등학교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상으로 받은 책이 붉은색 하드커버로 된 5권짜리 <러시아 문학전집>(을유문화사)이었다. 나는 그 책 속에서 내게0 영향을 끼친 한 편의 소설을 발견하게 된다.
고골리의 '외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찬탄과 경배의 언급을 남긴 러시아 리얼리즘 소설의 교본이다. 두툼한 중편 소설의 분량 대부분이 하급 말단 필경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극사실주의적인 문체로 촘촘하게 표현한다. 그러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지독한 구두쇠로 살면서 마련한 한 벌의 루비시카 외투가 곧 삶의 전부인 양 제시된다.
그러나 평생 모은 돈으로 구입한 루비시카 외투는 상관이 베푸는 파티장에 가다가 밤길 공원에서 괴한에게 어이없이 탈취당한다. 어둠 속에 불쑥 나타난 괴한은 덩치만큼 큰 주먹을 눈 앞에 대고 흔들며 말한다. "벗어!"
어이없게 외투를 빼앗긴 아카키예비치는 파티장에서 도둑맞은 자신의 외투에 대해 하소연한다. 그러나 파티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그의 외투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결국 울화통이 터져 죽어버린다. 어기까지에 두툼한 중편소설 대부분의 분량이 할애된다.
극적인 반전은 아주 짧은 에필로그처럼 표현된다. 어느 날 공원에 남자 귀신이 등장한다. 몸은 왜소하고 처량하게 생긴 남자 귀신인데 그가 내미는 주먹은 엄청나게 크다. 죽은 아카키에비치가 귀신으로 나타나 큰 주먹을 흔들며 소리친다. "벗어!" 값비싼 루빗카 외투를 입고 공원을 지나던 사람들은 혼비백산 외투를 벗어던지고 줄행랑을 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박장대소했다. 그러면서 벌떡 일어섰다. "그래, 이 세상에 큰 주먹을 들이대는 귀신이 되리라!" / 한겨레신문 2014.2.10. 월요일자 1면에서 옮겨 적음 /
② 상상력과 인간 / 김현
20대에 만난 삶의 이유 / 누군게 내게 묻는다. 당신의 상상력은 어시서 나오는가? 당신의 연출가적 리듬과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러면 나는 일단 '시적'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시를 쓰지 못하면 연극을 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하는 시적이란 의미는 시를 짓기 이전의 정서적 상태를 말한다. 일상의 공간과 다른 시적 공간은 현실 저 너머의 세계이거나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는 심연 - 의식의 깊은 연못 같은 것이다. 현실은 항상 우리에게 결핍과 불안감을 자극한다. 그러면서도 매일 단순 반복되는 지루한 타임 테이블이다.
이 삶의 지루한 단순 반복을 거부하는 힘은 어디서 분출되는 것인가? 1970년대의 젊은 비평가 김현은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상상력이다. 나는 김현의 첫 평론집 <상상력과 인간>을 밑줄 그어가며 읽으면서 인간의 결핍을 채우는 영약이 상상력이란 믿음을 갖게 됐다. 저 혼자만의 사색과 상상이 유일한 노동이었던 20대 청년 백수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해준 책이다.
김현의 두둑한 에세이 '광태연구'는 가난하고 누추한 삶에 저행했던 위대한 천재들의 광기를 기록하고 있다. 김현은 여기서 굶어 죽은 고려시대의 시인 임춘의 시와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이 고려조의 시인과 프랑스의 미조네이즘(새것기피)을 비교 분석한다. 가난과 하찮음에 대한 임춘의 탄식은 보들레르식의 표현을 빌리면, 저주받은 시인'의 실존적 모습이다.
또 19세기 프랑스 시인 라마르틴과 뮈세의 실연, 보들레르의 술과 아편과 창녀, 알프레드 드 비니의 로맨티시즘. 말라르매의 황혼에 대한 경배, 마침내는 네르발의 광태를 읽어내면서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불우한 예술인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는 이 '저주받은 시인'의 광기를 현실에 맞서는 저항의 에너지로 수혈받은 것이다. / 한겨레신문 2014.2.11. 화요일자 1면에서 옮겨 적음 /
③ 백마의 기사 / 테오도르 슈토름
진정한 리얼리즘을 배우다 / 테오도르 슈토름 / 1817~1888 / 은 장편소설 <백마의 기사>를 발표하면서 독일 문학의 새로운 경향이었던 시적 사실주의의 기수가 된 시인이자 소설가다. 이 작품을 소개하게 된 것은 사실 한국의 지성적인 작가를 대표하는 이청준의 장편 <당신들의 천국>, 중편 '쓰여지지 않은 자서전' 같은 문제작이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가를 밝히는 귀중한 단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청준이 소설기법으로 사용하였던 1인칭 부인물 시점의 액자소설 형식은 사실 드라마적 기법과 상통하면서 브레히트의 서사극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독일소설 구성법이다. 이청준은 독문학을 전공했고 슈토름에서 결정적인 소설작법을 배운듯 하다. 1인칭 부인물 시점이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현재적 시점의 1인칭 화자가 극중 주인물을 3인칭으로 설정하고 소설을 전개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18세기 독일북부해안가 마을의 제방에 얽힌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백마의 기사>에는 제방 감독관이라는 특이한 직업이 등장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한 아우케 하이엔은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인물로서 제방 감독관이 되어 파도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방 쌓기를 시도한다.
여기에는 연인의 사랑과 지지가 도움이 되지만, 지역사회에 만연한 폐쇄적이기주의와 미신 때문에 결국 연인은 파도에 떠밀려 가고 하이엔조차 연인을 찾아 백마를 타고 폭풍 속으로 사라진다. 젊은 제방 감독관과 그의 아내는 그렇게 희생되었으나 그가 쌓은 제방은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철벽 같은 굳건함을 자랑하며 파도를 막고 서 있다. 그리고 백년이 지난 지금 밤이 오고 파도가 몰아치면 해변가를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백마를 탄 하이엔의 모습을 마을 사람들은 종종 목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영혼과 제방이란 물질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맞아떨어져 진정한 리얼리즘이 무엇인가를 증거하는 감동적인 소설이다. / 21014.2.12. 수요일자 한겨레신문 1면에서 옮겨 적음 /
④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니체에게서 원효를 읽었다. /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낸 독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읽어냈다고 하더라도, 아포리즘과 드라마가 결합된 이 난삽한 저술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일단 제법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20대에 이 니체의 대표작을 읽어내지 못했다. 내가 먼저 접한 것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이었고, 장정윤의 춤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프랑스 극작가의 각색 희곡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였다. 당신 언론계에 종사하시던 기자분이 400장에 가까운 원고지에 만년필로 쓴 대본이었다. 어떻게든 이 엄청난 작품을 무대에 올려조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그때서야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시인인 니체의 원본을 읽어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마침 시인 장석주 형이 운영하던 청하출판사에서 니체 젖집이 다시 번역출판되었고, 나는 그제서야 이 엄청난 저술과 정면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은자의 하산기다. 산에서 내려오는 과정에서 늙은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니체는 기존 제도적인 종교계에 대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진리는 저 세상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세상을 가로질러 가는 짜라투스트라의 체험과 체험에서 걸러진 사유가 종합된 책이다.
여기서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라는 초인의 개념을 탄생시키는데 초인을 영어로 번역하면 슈퍼맨이다. 니체의 초인 개념은 백년 후 대중의 우상 슈퍼맨으로 재등장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나는 니체의 엄청난 사상과 미학을 감히 한국의 고승 원효와 만나게 했다. 그리하여 2000년 5월 음악극 <도솔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선보인다. 니체가 곧 원효이고 내가 꿈꾸고 추구하는 길이 곧 짜라투스트라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코 읽기를 포기해서는 안될 필독서이다. / 극작가 / 연출가 / 한겨레신문 2014년 2월 13일 목요일자 1면에서 옮겨 적음 /
⑤ 일연 / 삼국유사
내 연극적 상상력 발원지 / 나의 시적, 그리고 연극적 상상력은 <삼국유사>에서 나왔다. 내가 만일 소설가였다면, 나의 소설적 상상력은 삼국유사에서 나왔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 <삼국유사>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감히 이 책을 한국인들에게 제1의 필독서라고 말하고 싶다.
<삼국유사>가 과연 그만큼 대단한 책인가? 역사서로는 오히려 <삼국사기>가 더 역사적 신빙성이 있는 정통서가 아닌가?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삼국사기>에는 단군신화가 없다. 만일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단군왕검의 자손인 줄도 몰랐을 것이고, 호랑이와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으며 동굴 속에서 지낸 내력도 몰랐을 것이고, 단군이 곰의 자손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디서 온 자손인지 어떤 문화적 코드를 지닌 인종인지 그 원형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신화가 수록된 경전이며 시학서다. 우리 시의 원류가 '도솔가'라는 것, 월명사라는 위대한 시인이 존재했다는 것을 <삼국유사>는 증거한다. <삼국유사>는 그 자체 한국공연 예술사이기도 하다. '헌화가' '처용가' '서동요' '해가'는 그 자체 극적구조를 지닌 연행시다. 이 연행시에 악가무가 붙고 자연슥럽게 극적행위를 요구하는 스토리텔링이 곁들여진 것이다.
<삼국유사>는 제도권적 시각에서 벗어난 한국의 변방 역사서이기도 하다.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제4의 제국 가야는 실종되었을 것이고, '구지가'가 없었더라면 거북신을 섬기는 해인족이 한반도 동남쪽원주민으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삼국유사>가 존재함으로써 고대한반도에서 독자적인 건국신화와 문명사를 갖춘 한국인의 삶을 기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 극작가 / 연출가 / 한겨레신문 2014년 2월 14일자 1면에서 옮겨 적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