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48/0921]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야 한다
일요일인 어제 오후는 참 기분좋은 모임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까마득한, 1982년에서 2001년까지 다닌(말하자면 내 청춘을 불살랐던) 내 인생 최초의 직장 동료들을, 그것도 네 명이나 몇 년만에 만나 회포를 푼 것이다. 그날의 호스트는 1943년생 선배. 우리 나이로 78세.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지금도 약주를 어찌 잘 드시는지. 그리고 하루가 짧을 정도로 엄청 활동적인 선배이다.
신문사 인간관계 중에 좋은 것이 ‘호칭呼稱’ 문제인 것같다. ‘한번 해병이 영원한 해병’이듯 ‘한번 선배는 언제까지나 선배’이니, 예의를 차린다며 ‘선배님’이라 안해도 되고, 한 손으로 술을 따라드려도 용납이 되는, 그러니 얼마나 프리free한 인간관계인가. 나는 그게 좋다는 것이다. 일단 ‘권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고 후배들에게 대접받을 생각을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자신이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대접’은 저절로 온다는 게 우리의 지론인 것이다. '님'자를 붙이면 어떻고 안붙이면 어떤가. 그러면서도 시쳇말로 말하는 '꼰대'의 말씀은 다 하신다. 별명을 '꼰대'라해도 눈곱만큼 개의치 않으실 분이다. 아무리 세대차이가 심하다 해도, 어른이나 선배로서 마땅히 할 충고나 조언을 하는 것을 '꼰대질'이라고 손가락질 할 일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올바른 '꼰대질'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시대에 '원로元老가 없다'는 얘기를 자주 하지만, 어쩌면 꼰대야말로 원로가 아닐까. '꼰대 부재不在'의 사회는 사실 서글픈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격의없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거의 아들뻘인 후배에게 ‘님’자도 붙이지 말고, 술도 한 손으로 따르고, 고개도 돌리지 말며 편하게, 편하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후배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홍보쟁이 15년을 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그렇게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옛날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년 위아래까지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어찌 ‘10년’이라는 숫자에 구애받을 일인가. 퇴계 선생님은 23살이나 어린 고봉(기대승)을 언제나 최대한 존중했다. 두 사람의 오간 편지를 보면, 같은 말도 얼마나 깍듯하게 하던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을 허락한’ 이른바 심우心友가 된 것이다.
이 선배가 한국전쟁때 9살. 우리 세대가 전혀 겪지 못한, 상상도 못할 갖은 신산한 삶을 헤쳐온 이야기를 ‘글’로 풀어놓고 있다. 윤문潤文이라는 미명으로 선배의 엄청난 분량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진 게 한두 곳이 아니었다. 늘 주장하지만, 글의 감동은, 글을 잘 쓰는 데서 오는 게 아니고, 진솔眞率하고 가식없는 리얼real에서부터 온다. 맞춤법 등 올바른 문장, 어색한 표현, 적재적소에 쓰이는 단어 등은 그 다음이고, 약간의 작문作文 스킬만 있으면 된다. 선배 역시 언론인 출신(40년 경력)인지라 당신의 기억과 생각을 정리하는 데 누구에게 뒤지겠는가. 그러니 나에게 윤문을 부탁한 것은 과분한 처사이고, 나로선 영광인 일이다.
아무튼, 어렵사리 그 답례答禮 자리를 만들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후배 몇 명을 거명하며 나에게 메이드made를 부탁했다. 재밌는 것은 당신이 좋아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모두 나도 좋아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후배들과 100%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불감청고소원이 아닌가. 역시 서로 통하는 게 있기에 이리 오랜 세월 관계를 유지해온 것이리라. 그래서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이 ‘만날 사람은 꼭 만나야 한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까짓 세월이 좀 흘렀으면 무슨 상관인가. 한번 좋게 맺은 인연이 세월 때문에 뭉개질 일이 없는 사이.
인사동 오수별채라는 전통 대중음식점에서 일요일 오후 2시 5명이 모였다. 모두 얼굴 본 지가 몇 년쯤 된 듯하니 더욱 반가울 수밖에. 불러준 선배에게 고맙다며 흔쾌히 술잔이 오갔다. 우리 사람 사귐의 키포인트는 첫째가 ‘인간적’이어야 한다. 멤버 모두 너무나 인간적인 품성의 소유자. 흐흐. 우리는 이런 경우에 ‘황금멤버’라 부른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선배와 같은 나이(78세)가 되어도 맘에 맞는 이런 후배들과 모임을 주선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생각이 늙지 않아야 한다. 나이 차이와 아무 상관없이 시사時事나 사회현상, 역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주고받는 ‘내공’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꼰대'가 되지 않아야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늘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건강이 으뜸이고, 다음에 약간의 재력이 받쳐주어야 할 일이다. 여든이 넘어도 50-60대 후배들과 만나기만 하면 삼겹살에 쐬주 한두 병. 이 얼마나 환상적인 우리의 미래상인가. 나는 그것을 희구希求한다.
어제의 호스트인 선배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한민국 오지랖'이시다. 달리 말하면 '마음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사랑맨'이라 해도 좋겠다. 지금도 매달 정례적인 모임이 열 개쯤 된다던가. 내가 알고 있는 우리의 전직장인 신문사 오비OB모임만도 5개이다. 그 나이에 당구와 음주 그리고 어쩌다 노래방까지 출입하는 취미를 갖고 있으니, 대체 얼마나 다이내믹한 선배인가 말이다. OB와 현역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역할하면 누구라도 이 선배를 첫째로 꼽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금 생각하면 택도 없는 소리지만, 나도 한때 이 선배처럼 OB와 현역들의 ‘징검다리’가 되리라 꿈꾼 적이 있었다.
그럴려면 위에서 얘기했듯, 인간적인 품성을 소유해야 하고, 성실해야 하며, 배려와 봉사정신이 철저하고, 무엇보다 두주불사斗酒不辭의 건강체이니 가능한 일이다. 늘 손해보듯, 지는 듯 살아야 한다. 만나뵐 때마다 ‘참 대단한 선배’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키도 난쟁이 똥자루만큼 작고 이주일처럼 못생기셨지만 말이다. 흐흐. 나는 건방지고 호기롭게 말했다. “선배, 한잔 합시다. 인생이 뭐 있습니까? 알코올이지” 모처럼 서울길, 인사동 한복판, 좋은 선후배들과의 일요일 오후 모임이 좋았다.
첫댓글 마음만있는것보다
한번이라도 만나는게
소통의 비결이라는데
우리 나이에도 친구마냥 서울로 오수로 새우방죽으로 마냥 즐겁게 살고있으니 그것도 성공일세.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일년내내 연애편지를 보냈는데 결국엔 매일 편지를 전해준 우체부와 결혼했다는것처럼
친구도 마음만 갖지말고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 만나야 할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