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사랑 가족 여러분!
지난 일요일에는 서울 올림픽 공원에 있는 '우리 금융아트홀'에서
'뮤지컬 이육사'를 보았습니다.
어울림 연주 때면 언제나 멋진 그림을 그려주셔서 연주를 한층 빛나게 해 주시는
이무성 화백님께서 초청해주셨습니다.
일제의 폭압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지도 벌써 70년이 다가오지요.
바삐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에 올라타 있노라면 나라를 빼앗겼다는 기억도 희미해지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을 바쳤던 순국선열들도 까막득히 잊고 삽니다.
이육사~
그는 사실 평화를 노래하고 싶었던 시인이고, 매화와 난초를 사랑하면서 개결한 삶을 살고 싶었던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국주의의 말발굽과 일본도가 무참히 짓밟고 있는 삼천리 금수강산과
신음하는 동포를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호연지기를 논하고 군자연하던 선비들이 거대한 폭력 앞에 너무도 힘없이 무릎 꿇고 변절하고,
그저 일신의 안위를 위해 남루하고 비겁한 삶을 살아갈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났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과 석방되기를 무려 열일곱 차례,
모진 고문으로 몸은 부서지고, 애타게 기다리던 초인은 오지 않아 영혼도 타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그 자신이 초인이 되어 오셨습니다.
겨레의 고통을 모두 짊어지고, 동포의 눈물을 모두 닦아주는 의인,
백마타고 광야를 질주하며 광란의 제국주의 무리들을 쳐 부수는 초인으로 오셨습니다.
달디 단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청포도를 소반에 담아 놓고 기다리는 백성들 앞에
청포를 입은 지조의 선비로 나타나셨습니다
어쩌면 이육사를 더 괴롭혔던 것은 잔혹한 일본의 고등계 형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대부의 기개를 논하고, 위정척사를 외쳤던 동료들이 하나 둘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한술 더 떠 대동아 공영론을 외치는 친일 지식인으로 표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육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고통받고 다른 한편으로
그의 벗들에 의해서도 상처받았던 것이지요.
결국 오랜 수감생활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이육사는 베이징의 감옥에서
조국의 해방을 불과 1년 남겨둔 1944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육사는 살아서 못 본 조국의 해방을 하늘나라에서 보았고,
영원히 겨레의 품에 안겨 애국지사로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평화를 노래했습니다.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봄 바람보다 더 부드럽고 순결한 그의 성정과 시심은 청초하면서도 강인한 시를 잉태했습니다.
마치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이제 그가 다시 세상에 온다면 더는 조국의 운명을 온 몸에 걸머진 초인으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어슬렁 어슬렁 달구지를 타고 피리 한 자락 불면서 음풍 농월하는 시인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이 아름다운 산하를 마음껏 노래하는 시인, 못다 피운 사랑에 피멍이 맺혔을
부인과의 사랑을 달콤하게 시인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더는 핏자욱 없는 청포를 입고 논어와 맹자를 마음껏 읽는 선비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강철로 된 무지개가 아니라, 그저 비가 개면 나타나고 해가 뜨면 사라지는 일곱빛깔 아름답기만한
무지개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두시간 반 정도 계속된 공연은 대본과 무대, 배경과 음악, 춤 모두 잘 어우러졌습니다.
특히 이육사 역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과 열창이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사실상 총 지휘한 분은 어울림 공연에도 자주 와 주시고 또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재일 무용가 정명자 선생님이셨습니다.
정 선생님은 이번 공연에서 이육사 선생의 부인 역도 맡아 원숙한 춤과 노래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번 공연은 이병욱 선생님과 황경애 사모님, 그리고 어울사랑 가족 몇몇 분들도 같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육사와 같이 몸과 마음을 바쳐 조국을 지켜내려 했던 선열들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숭고하고 거룩한 영혼들을 항상 기억하고 있는가?
친일을 했던 이들의 후손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독립 투사의 후손들은 아직도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허황한 궤변들이 파고 들 틈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새삼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곰곰 생각하게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이무성 선생님, 정명자 선생님, 그리고 모든 출연진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날 공연을 보고 쓴 시를 출연자 분들과 이육사 시인 영전에 바칩니다.
- 여의도에서 goforest 合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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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음악으로 온 초인이시여
(뮤지컬 이육사)
2012.03.03
초인은 북소리로 오셨다
새벽 산사
어둠 몰아내는
법고소리로 오셨다
싸늘해진 심장에 다시 불 지피고
걸쭉해진 피 걸러내는 저 소리
초인은 춤사위로 오셨다
히말라야 고원
나부끼는 타르쵸로 오셨다
나라 빼앗긴 치욕
어느새 잃어버린 치매의 삶
후려갈기는 매운 춤사위
바다를 연모하던 산맥도
차마 범하지 못했던
순결한 땅
무례한 제국의 말발굽에
푸른 질경이와 노란 개나리
무참히 꺾이고
진달래 꽃같은 피
삼천리 물들이던 때
상투에 서리던
사대부의 위엄은
싹둑 잘려나가고
아득한 매화 향
예찬하던 선비들
돌연 눈 멀고 귀머거리 되었을 때
당신은 정한수 대신
목숨을 올려놓고
초인을 기다렸다
인의예지는
헛간에 두엄으로 썩어가고
호연지기는
쌀 뒤주의 벌레로 꾸물거릴 때
당신은
구겨진 경전 부둥켜 안은
오직 선비였다
온 발길로 선비였다
온 몸으로 선비였다
한 줌 호구 연명하려
남루한 지식도 팔고
나라도 팔아먹던
무늬만 선비들 틈에서
당신은 오직
뼛속까지 선비였다
홀로 등뼈 바로 세운 선비였다
타들어가는 목
꺼져가는 의식 놓지 않고
당신이 간절히 기다리던 초인
백마타고 오는 초인은
바로 당신이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리고
서릿발 칼날 끝에서 바라본
강철로 된 무지개는
바로 당신이었다
달디 단 청포도 소반에 담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청포 입은 손님은
바로 당신이었다
제국의 망나니 춤 멈추게 하고
절명했던 나라 소생시킨
장엄한 춤사위의 주인공
바로 당신이었다
허황된 욱일 승천기
불길에 나뒹굴고
아리랑 고개
구비구비 울려퍼지던
평화의 노래
바로 당신이었다
열일곱 차례
둔중한 옥문 열어젖히고
뚜벅뚜벅 걸어나온 초인
이 땅 사람들 무뎌딘 가슴
서걱서걱 가는
칼날로 온 초인
바로 당신이었다
둥둥둥 북소리로
펄럭이는 태극기로
구불구불 아리랑 가락으로 오신
당신
모세혈관의 피 한방울까지
생명수로 흩뿌리고
잔뼈까지 거름으로 묻어
일궈낸 이 겨레 이 나라
이제는 그냥 일곱빛깔 무지개로 오소서
이제는 핏자욱 없는 푸른 도포 입고 오소서
이제는 초인의 멍에 벗어놓고
터벅터벅 사람으로 오소서
이 땅과 하늘 산과 바다
목놓아 노래하는 시인으로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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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동하는 안동의 진정한 선비였던 이육사님을 되새겨보니 참 좋았습니다, 죄수번호가 이름이 되어버린 님의 기개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