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나라] 이사야 38 재앙을 예고하는 것은 피하라는 것이다
이사야 38장 강해
요절: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3)
무슨 죄인지 알 수 없지만 히스기야는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십니다. 왕이 된 후 15년 후에 히스기야는 한 번의 위기를 맞습니다. 그는 불치의 병에 걸립니다. 히스기야는 통곡하는 기도로 죽음을 극복합니다.
1. 히스기야의 죽음을 예고함
1절을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14년 bc 712년입니다. 히스기야 병은 부스럼병입니다. 욥이 걸렸던 피부병입니다.
이사야가 그에게 가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그냥 데려가시지 왜 유언하라고 하였을까요?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주님께 기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죄를 회개하기를 원하였습니다.(17) 하나님이 유언하라하니까 ‘아멘! 죽겠습니다.’ 하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곧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심판을 피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게 40일 후에 망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사십 일 후에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십 일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2. 하나님과 독대하는 히스기야의 기도
2,3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39세였습니다. 아직 죽기에는 이른 나이입니다. 더구나 지금 유다는 앗스르의 침략을 앞두고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후계자가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완전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습니다.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리면 네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부정합니다. 왜 하필 나야 다음에는 분노합니다. 둘째는 사람을 탓하고 하나님을 탓합니다. 셋째는 절망합니다. 이 단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마지막에는 살 길을 찾습니다. 믿는 사람은 네번째 단계에서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히스기야는 완전한 절망을 믿음으로 극복합니다. 그는 벽을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벽을 향하여 세상과 단절하고 하나님과 독대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그는 절망의 벽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가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다윗의 행위와 같이 여호와 앞에서 믿음으로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믿고 유다의 신앙을 개혁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깨끗하게 수리하였습니다. 대대적으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우상 숭배의 원천이 되는 산당을 제거하였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17절 말씀을 볼 때 히스기야도 죄가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병에 걸리자 여러 가지 죄가 떠올랐습니다. 히스기야는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통곡하였습니다. 자신이 의롭게 살았는데 일찍 죽는 것이 억울하여 통곡하였습니다. 6절을 볼 때 앗스르 앞에서 풍전등화에 놓인 유다를 생각하며 울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36,37장에 앗스르의 침입이 나오는데 사실은 앗스르의 침입이 병이 나은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바꾸어 기록한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세자인 므낫세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계자가 없는 것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을 보십니다. 히스기야는 치료받고 삼년 후에 아들을 낳습니다.
(눈물을 보신 하나님)
4-9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예루살렘 성에 가기도 전에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후손의 등불을 끄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가야의 수한에 15년을 더하십니다. 더불어 예루살렘 성을 앗스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다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생명과 예루살렘을 연결시킵니다.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아하스의 해 시계로 나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십니다. 지구의 자전이 뒤로 했다기 보다는 해그림자만 돌아갔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증거를 통하여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에는 기도하라는 말씀이 삼만삼천 번 나온다고 합니다. 로또 복권은 당첨되는데 당첨될 확률이 5백만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오백만이 기도해도 다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기도의 훈련이 되어야합니다. 어려울 때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병이 낫지 못하면 산자의 땅에서 여호와를 뵙지 못합니다
9-13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병이 나은 후에 간증시를 씁니다. 히스기야는 당시 39,40살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중년에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중년에 저승으로 가고 여생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이 땅에 살아서 여호와를 뵙지 못하고 사람들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살아서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야 할 만큼 사는 것이 복입니다. 사는 만큼 살았으면 죽는 것이 복입니다. 무조건 죽지 않고 살아야하는 것이 복은 아닙니다. 때가 되면 죽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때가 되기 전에 죽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목자요 직공입니다. 하나님은 목자가 장막을 걷듯이 히스기야의 생명을 걷고자 하셨습니다. 인생은 장막입니다. 사도 바울도 인생을 장막에 비유하였습니다. 천막은 임시적인 것입니다. 집은 영구적이라면 천막은 잠간입니다. 캠프를 가서 장막을 쳐도 거두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주일 정도 치다가 옯겨갑니다. 장막은 잘 될 것도, 튼튼하게 지을 것도 아닙니다. 태풍에 날아가기도 합니다. 장막은 연약합니다. 싸구려입니다.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육신을 갖고 사는 것은 천막을 치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목적이 다하면 거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목적이 다 이루기 전에 하면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머물러야할 시간이 있는데 장막이 무너지면 불행입니다. 히스기야는 나이 사십 살 뿐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는다고 하니 일찍 장막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시점이 문제고 죽음의 원인이 문제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데려가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합니다. 주님은 히스기야의 생명을 베틀에서 끊으시니 조석 간에 끝내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자이십니다. 히스기야는 아침까지 고통을 참으며 견디면 주께서 사자같이 그의 모든 뼈를 꺾어 놓으시니 조석 간에 죽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4.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14-17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눈이 쇠하도록 여호와를 앙망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병으로 인한 고통에서 풀어달라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자신의 죄값과 질병의 값을 치르시고 자유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형벌을 예고하시고 병을 친히 내리셨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영혼이 죽음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종신토록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를 회개하면서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히스기야는 죽음의 때에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사람의 사는 것이 여호와께 있음을 믿고 자신을 치료하시고 살려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자신에게 평안을 주려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말씀하십니다. “제가 그런 고통을 당한 것은 분명히 제게는 유익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을 민나고 믿음이 연단되었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영혼을 사랑하셔서 멸망의 구덩에서 건지셨고 모든 죄를 등 뒤에 던지셨습니다. 히스기야가 회개할 때 죄사함을 주시고 병을 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여주셨습니다. 유다를 앗시리아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음이 주는 불이익을 나열합니다. 스올은 무덤입니다. 무덤에서는 주께 감사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주를 찬양하지 못합니다.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합니다. 오직 산자는 주께 감사합니다. 산자는 주의 신실함을 자녀에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21 22절을 보면 이사야는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환부에 붙이면 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간단한 처방전을 주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징조를 구하였습니다. 징조를 구한 것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대로 징조를 주시고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