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용순 | 날짜 : 12-03-29 20:30 조회 : 1246 |
| | | 에티오피아 기행
밤잠을 설치며 나섰으나 거리는 어느새 출근길이다. 공항로의 새벽안개는 바닷가 건물들의 실루엣만 보여준다. 새까만 구름을 뚫은 붉은 햇살은 검푸른 아침바다를 황금빛 비늘로 반짝이게 한다. 방콕 행 싱가폴 항공, 여승무원의 성숙한 보륨감과 친절은 나를 가볍게 설레게 만든다. 대부분 한국인 관광객들로, 들뜬 대화가 기내를 채운다. 기내방송이 방콕이 34‘c 임을 알린다. 어느새 관광객들의 차림은 여름으로 바뀌었다. 방콕 공항 긴 회랑(回廊)에는 다양한 피부색들로 넘쳐난다. 설을 쉬고 바로, 겨울 차림으로 나선, 나의 등이 금방 땀으로 젖는다. 화장실에서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영화 속 스파이처럼 다른 모습이 되어 나선다.
에티오피아 항반 대기구역에는 몇몇 동양인 외, 거의가 흑인들이다. 그네들의 민족 복장인지 화려한 천으로 걸친 듯, 두른 듯 입고 있다. 옆자리의 성장한 흑인 여인에게서 낯 선, 진한 향이 전해온다. 까만 아기의 새까만 눈동자가 보석처럼 예쁘다. 여인들의 유난히 크고 튀어나온 엉덩이는, 걸음걸이마저 불안하게 만든다. 이 나라는 6,25때, 아프리카 국가들 중 유일하게 6,000여명의 군대를 보내준 나라, 오랜 내전과 기근으로 수백 만 명이 죽은 최빈국, 올림픽에서 맨발의 마라토너가 우승 한 나라, 외는 별다른 인상이 없다. 방콕에서 9시간을 나르며, 인도양을 건너야 한다. 비행기는 잠시 날개 짓을 멈추고 칼카타 공항에 내려앉아 터반을 쓴 건장한 남성 몇몇을 태운다. 우리나라는 아침이 시작될 시간인데, 비행기는 지는 해를 따라 계속 밤 속으로 가고 있다. 야(夜)시장처럼 환하게 밝힌 아디스아바바 공항은 새벽 1시이다. 입국비자를 발행하는 흑인 여자의 느리고 어눌함은 피로한 여행객을 지치게 한다. 마중 나온 일행의 안내로 짙은 어둠에 잠겨있는 시내로 향하였다. 띄엄띄엄 불빛 속으로 도시를 엿보려 하나, 그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키 큰 열대 수와 조명등이 하늘을 비추는 정원 중앙, 유럽풍의 하이얏트는 여행객을 설레게 한다. 새벽 2시 욕조에 몸을 지진 후 누웠으나, 나의 몸은 아침 8시로 읽고 있어 초롱초롱 하기만 하다. 바깥세상이 궁금하다.
아디스아바바 (1) 커튼 틈으로 세어 들어온 빛으로 몽롱한 밤을 끝낸다. 발코니 밖으로 열대식물들의 넓은 잎이 신선한 해살을 쪼이고 있다. 활짝 핀 온갖 꽃들과 상큼한 초록 도시가 낮선 여행객을 반긴다. 이아침이 초가을같이 느껴지는, 이곳은 년 평균 20도 정도로 사철 쾌적하다. 적도에 가깝지만 해발 2500m의 고원지대로, 이곳이 정말 아프리카인가 싶다. 처음 조금 어지럽던 몽골과는 다르게, 간간히 숨이 몰리며 가쁘다. 사철 꽃피고, 푸르고, 열매 맺고, 난방과 냉방이 필요 없는 여기가 바로 에덴동산이 아닌가? 지구 어느 곳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오히려 쾌적한 기후는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도전을 필요치 않아, 문명발전에 지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누더기를 걸치고 누워있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아이들은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 사이를 곡예 하듯 누비면서, 차창을 두드리며 손바닥을 내민다. 후줄구레한 복장의 야위고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다. 띄엄띄엄 서있는 빌딩들 사이로 낮은 단층 건물들이 영자(英字) 간판을 이고 도로 양쪽에 앉아 있으며, 거리는 러시아 풍이 느껴진다. 왕조(王朝)를 무너뜨린 쿠데타 세력이 사회주의 국가를 세워, 십 수 년 동안 옛 소련의 지원과 간섭을 받았기 때문이다. 셀라시 황제시대 3,000불에 이르렀던 국민소득은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내전과 기근으로 100여 불까지 곤두박질 쳤다. 혁명으로 새로운 국가체재를 세우면서 망해가는 공산주의 파시즘 이념을 답습하였으니, 오늘의 현실은 당연하다 하겠다. 거리에 이슬람 복장이 흔하게 보였으나,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기독교 국가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많아, 8,000여만 명의 인구 중 45%이며 이슬람은 35%, 기타 토착 신앙이다. 정부 관리와 미팅을 위해 방문한 십여 층의 정부청사 건물 창밖으로, 낮은 구릉들 위로 인구 300만의 도시가 조밀하게 모여 있다. 열대 숲에 묻힌 도시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의 삶은 한없이 숨차다. 정부 관계자 모두들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왕가를 구성하였던 암하라족의 언어와 영어를 정부의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고 한다. 수도를 중심으로 가장 많은 인구와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오로모족과, 그 다음은 암하라족, 티그라이족, 그 뒤를 이어 80여개에 달하는 작은 부족 및 언어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이집트 외 유일한 고유문자라는, 아라비아 문자 비슷한(?) 이곳 문자는 짧은 여정의 여행객의 눈에는 뜨이지 않는다.
이 나라는 과거 우리도 그렇게 하였듯이, 후진국들의 경제개발 코스인 섬유산업의 확대로 고용을 늘리고 수출을 증대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 기술자 두 명을 초청하여 노동자들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높이려 하고 있었다. 정부가 제공한 그들의 숙소를 방문하였다. 아담한 단층 건물 뜰에는 커피나무들이 빨간 열매를 조롱조롱 매달고 있었다. 해발이 높아, 밥이 익지를 않는다하여 준비해간 압력밥솥을 전하였다. 그들을 따라 방문한 생산 공장에서는, 온통 까만 여인들의 작업 모습이 낯설었다. 효과적인 작업을 하지 못하여 품질과 생산성이 미치지 못한다. 나무그늘 아래, 여공(女工)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큰 쟁반 위에 올려진, 얇은 전병(煎餠?)에 반찬(?)을 싸서 손으로 먹고 있다. 그들은 낯선 동양인에게 하얀 이빨을 보이며 맑은 미소를 보낸다. 공장 문 앞에는 초라한 물건 몇 가지를 놓고 호객 하는 사람, 생사가 구별되지 않게 접혀 누워 있는 사람, 앙상하게 야위어 구걸하는 노인과 어린이들, 이방인의 마음을 무겁게 갈아 앉힌다. 인류가 처음 시작된 곳이며, 수천 년의 긴 역사를 가진 나라가 아직도 기본적인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곳에 한국식당이 있었다, 개업이 정말 경이롭다. 교민이라야 대사관 직원 몇 명, 전도사, 건설 사 직원, 의료 봉사단 의사, 등 몇 십 명 정도라 한다. 홀에는 현지인 몇 명이 한식을 먹고 있다. 재료 수송이 쉽지 않아 우리나라 같지는 않았지만, 몇 끼씩 주린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놀랍게도 무, 상치, 깻잎이, 뜰에서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씨앗이 이민을 와, 계절 없는 낯선 땅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적응하였는지? |
| 강승택 | 12-03-29 23:40 | | 김선생님, 언제 에티오피아를? 앞으로 펼쳐질 색다른 나라의 풍물이야기가 기대되는군요. 보고 느낀점을 가감없이 잘 전해주시옵기를~. | |
| | 김용순 | 12-04-01 08:59 | | 강선생님, 이전에 사업 차 갔다 왔는데, 그 때 써 놓은 것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요즈음 잘 지내시지요? 같이 막걸리 잔을 주고 받을 시간이 항상 부족하여 아쉬웠습니다. | |
| | 임재문 | 12-03-30 06:23 | | 김용순 선생님 부럽습니다. 저는 내 생애에 처음으로 작년시월말 비행기타고 한시간 정도 날아서 제주도 가면서 기내에서 짜릿한 마음을 느꼈었는데, 설날 전후 여기는 무척이나 추웠는데 피서가 아닌 피한을 다녀오셨군요. 극과 극 여름과 겨울을 한꺼번에, 암튼 추억이 알알이 스며있는 여행담 감사합니다. | |
| | 김용순 | 12-04-01 09:02 | | 임선생님, 앞으로 좋은 곳 많이 다녀 오시면 되지요. 사모님과 자주 다녀오세요. 여행은 지나고 보면 좋은 추억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 |
| | 일만성철용 | 12-03-30 12:54 | | 김 작가님, 문장이 물흐듯이 천의무봉 흘러 갑니다. ilman은 기행문을 노력으로 쓰고 있는데 그 여행기를 감작가는 재주로 쓰고 있군요. 부럽습니다. 거기 사진 한 장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게 아쉬움이구요. | |
| | 김용순 | 12-04-01 09:04 | | 일만 선생님, 무슨 말씀을요. 듣기 민망합니다. 사진이 몇 장 있는데, 이곳에 올려 보니 잘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한 번 시도를 해 보겠습니다. | |
| | 이진화 | 12-03-30 23:40 | | 에디오피아 여행기를 읽으니 북아프리카에 살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집트와는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많겠지요. 중학교 때 에디오피아 셀라시에 황제가 온다고 해서 환영하러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사랑의 열매가 성냥의 유황 머리와 비슷한 성분으로 빨갰는데 그날 하필 비가 내려서 교복이 빨갛게 물들었답니다. 에디오피아에 가게 된다면 즉석에서 볶은 신선한 커피를 마셔보는 게 꿈입니다.^^ | |
| | 김용순 | 12-04-01 09:07 | | 이선생님, 그 곳 사람들도 중요한 물건 사러 에집트 카이로나 두바이로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여행 당시 저희도 에집트에 들러 관광도 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못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무리라도 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싶습니다. | |
| | 정진철 | 12-03-31 12:07 | | 건강하게 계속 좋은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간접여행을 하게 되서... | |
| | 김용순 | 12-04-01 09:10 | | 정진철 선생님, 이제는 여행을 떠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집도, 개도 그렇고요. 감사합니다. | |
| | 최복희 | 12-04-01 00:32 | | 해외여행 다녀온지가 오래되어 선생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비행기에 오르고 싶습니다. 여행은 인간사의 손꼽히는 즐거움이라고 하지요. 에티오피아 여행을 가게되면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군요. 잘 읽었습니다. | |
| | 김용순 | 12-04-01 09:15 | | 최복희 선생님, 저도 불과 일주일 정도의 여정이어서, 잘 모름니다. 더구나 왔다 갔다 이틀은 걸렸고요. 일 때문에 주로 아디스 아바바에서만 머물렀습니다. 에티오피아에는 별별 민족이 다 있어 굉장히 재미있는 것 같은데, 사실 저는 코끼리 다리만 보고 왔지요. | |
| | 임병문 | 12-04-02 11:45 | | 옛적, 무던히도 동경했던 곳. 아프리카의 풍물이 떠오르고 나일강의 악어가 생각납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이국의 정서에 젖어듭니다. 다음 글을 기대하면서, | |
| | 김용순 | 12-04-03 19:51 | | 임선생님, 다 같이 사람사는 동네 였지요. 이제는 TV나 메스컴을 통하여 외국의 풍정을 간접 체험하다 보니 거기도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가 보았다는 의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