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는 적토마를 타지 않았다
삼국지 최고의 명마라고 하면은 아마도 모든사람이 '적토마'를 뽑을 것이다. 이 말은 동탁이 여포를 자기 수하로 넣기 위해 이숙을 통해 '적토마'를 준 것으로 되어 있다. 조조가 여포를 멸하고 이 말은 수중에 넣었는데 훗날 관우가 조조에게 잠시 의탁할 때 이 말은 줬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말의 수명은 보통 25년 정도이다 동탁이 여포에게 적토마를 주었을 때 '적토마'의 나이가 한 살이라고 해도 30년이 넘게 살았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말은 15년이 넘으면 늙어서 승마용으로도 쓸모가 없게 된다.그런데 적토마는 3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승마용도 아닌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니 실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도원결의는 실제 이야기일까?
유비, 관우, 장비는 삼국시대 촉나라의 중요한 인물이다. 이 세사람이 공적으로는 군주와 신하, 사적으로는 형제의 관계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송, 원대 이후로 민간 문학 분야에서 세 사람의 관계 및 이들의 천하평정 과정이 문학화되기 시작했다. 즉, '삼국지평화',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 '관서고사' 등의 작품 속에서 미화와 과장이 첨가되었고, 이로 인하여 서서히 도원결의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삼국지연의'의 작자 나관중은 원대에서 명대에 걸친 동란의 시대를 산 사람이다. 당시 농민 봉기의 대부분은 결의의 형식으로 조직되었다. 나관중 자신도 왕이 되려는 뜻을 품었었고 농민 봉기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도 반원기의(원나라에 반대하여 의거를 일으키는 것)에 참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이유로 그가 도원결의의 이야기를 쓸 때에도 송, 원대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도원결의의 이야기에 총괄적인 결론을 덧붙였고, 동시에 현실 사회에서 보여지는 결의의 형식을 전형화해서 이 이야기를 완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역사를 합리적으로 연장, 발전시켜 만들어졌으며, 인물 성격상의 모습과 독자 심리가 일치한 것에서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 결과 수백년 동안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고, 다른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도원결의와 관계있는 역사 자료의 기술은 아주 간략하다. 이들 세사람의 형제, 군신 관계에 대해서는 정사에 약간 있을 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장비는 관우를 형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또한 유비는 두 사람을 특히 신뢰하여 세 사람은 '은혜는 형제와 같다', '은혜는 더욱이 부자지간과 같다', '의리에 있어서는 임금과 신하였다' 등의 일반적인 서술이 있을 뿐이다. 세 사람이 정식으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연의에 나오는 도원결의의 이야기는 나관중이 꾸며낸 허구라는 견해도 있다.
반면에 반드시 허구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정사에 나오는 유,관,장의 '은혜는 형제와 같다'라는 기록과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의 이들의 관계, 그리고 역사적, 문학적 사실성의 측면, 이 세가지를 본다면 도원결의의 이야기는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민간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간주되고 있다. 하북성 탁현에는 유,관,장 세사람이 의형제를 맺는 구체적인 지점인 도장(복숭아나무가 있는 장원), 별칭으로 충의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연의에서 말하는 장비의 집 뒤뜰에 있는 도원이라는 것이다. 수백년 동안 이러한 견해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이 견해와는 달리, 오늘날 탁현에는 또 하나의 주장이 있다. 유,관,장 세사람이 의형제를 맺은 곳은 도장이 아니라 탁현의 남쪽에 위치한 수문구의 옆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여기에는 삼의묘가 있었는데, 건물은 삼의(세 명의 의로운 사람, 곧 유,관,장 삼인을 지칭함)를 비유하여 길이, 넓이, 높이가 모두 삼척이었다고 한다.
유비, 관우, 장비는 연의에서 중요한 주인공들이다. 제1회에서 세사람이 의형제를 맺으며, 힘을 합쳐 재난에 대처하고, 위로는 나라에 보은하며, 아래로는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하고자 맹세한 이야기, 또 동년,동월,동일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동년, 동월, 동일에 죽고자 맹세한 이야기, 그리고 제83회에서 유비가 관우, 장비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토벌하는 이야기까지, 작자는 전체의 삼분의 이에 가까운 지면을 할애하여 세 사람의 충의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 사람은 도원결의로 형성된 의협심을 위해서는 목숨이나 사업을 희생하는 것도 아쉬워하지 않았으며, 도한 그 결의는 죽을 때까지 변치 않았다. 바로 이런 까닭에, 도원결의에 관한 이야기가 비록 허구일지라도, 작품상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행해졌다고 사람들이 믿게 되는 것이다.
적벽대전은 없었다
'연의'에서는 주유가 장간을 역이용한 반간계부터 방통의 연환계, 주유와 황개의 고육지계 그리고 황개의 사항계 등 그야말로 숨막히는 계략과 지모가 총동원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적벽대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면? 아마도'연의'를 읽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실제 아는 것과 같은 적벽대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사'에는 조조가 적벽에서 군사를 물린 일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어디에도 대군이 참패를 당했다는 기록이 없다. 단지 <오서> 주유전에 '황개가 사항계로 조조에게 거짓 투항하겠다는 뜻을 알린 후 화공을 하여 성공했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주유가 황개를 매질해 조조를 속이려 했던 고육지계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화공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몰살했다는 기록도 없다. 조조의 총병력이 20만인데 비해 100만대군이라는 것은 나관중의 창작일 뿐이다. 더구나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 게 했다는 기록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 적벽 대전의 진실은 무엇일까?
'정사 위서'의 기록을 보면 장희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조조가 그를 보내 합비를 구원하게 하자 손권이 군사를 물려 퇴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조조군이 주유의 화공에 의해 전멸한 것이 아니라, 전염병(역질)이 돌아 승산이 없다고 여겨 조조 스스로 퇴각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적벽전투에서 조조가 동원한 병력은 아무리 많아도 15~20만을 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요약하면 조조의 병력은 15~20만 이었고 싸우다가 전염병이 돌아 승산이 없어 퇴각한 것 뿐이다.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사용하지 않았다
촉의 명장 관우하면 연상되는 것은 두 자가 넘는 긴 수염에, 적토마 위에 올라 반달모양을 한 82근짜리(17.8kg)청룡언월도를 들고 전쟁터를 누비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연의'를 제외한 다른 어떤 기록에서도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을 찾아볼수가 없다.
'촉지'는 '장비는 긴 모를 사용했는데 길이가 8척이었다'고 하여 장비가 실제로 장팔사모와 같은 형태의 무기를 사용했음을 말해준다.
한나라 때 긴 창의 종류로 극과 모가 주종을 이루었다면 관우 역시 쳥룡도가 아니라 극이나 모와 같은 무기를 사용했던 것은 아닐까? 반달모양의 무기는 송나라 때 와서야 등장했다고 한다.그러니 삼국지시대에는 청룡언월도라는 것이 등장하지 않았다. 단지 '나관중'의 창작이었다.
화타는 의사가 아니었다
'정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화타의 의술은 신기에 가깝다. 단 몇 번의 뜸질만으로도 병을 낫게 하고, 침을 놓으면 침을 빼자마자 병의 차도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외과술도 시행했는데, 마취제를 써서 환자를 죽은 듯 만들어 놓고 환부를 절개했다. 창자에 병이 있으면 창자를 잘라 씻은 다음 다시 꿰맨 후에 고약을 발라두었는데, 4일이나 5일이 지나면 통증이 사라지고, 한달이 지나면 완쾌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외과술에 비해 전혀 뒤질 바 없는 의술인 것 같다.
이렇듯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진 화타였지만 사실 그의 본업은 '의원'이 아니었다. '정사' 화타전을 기록을 보면 화타의 절묘한 의술은 무릇 이러했다. 그러나 그는 본래 선비였으므로 의원이 직업인 것처럼 보이자 늘 후회하는 마음이 있었다.
고대 중국의학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그가 의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서주땅을 떠돌며 학문을 했던 선비였다. 여러 경전을 통달하여 박식한 까닭에, 패국상 진규의 천거를 효렴에 뽑히기도 할 정도였다.
조운이 80만 대군을 뚫고 유선을 구했다?
조운이 촉에 있을 때 가장 큰 활약을 뽑으라고 하면 아마도 조조의 80만 대군을 뚫고 유선을 구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80만 대군은 너무 과장되었다. 위의 총 병력은 대충 20만명 정도인데 80만명은 말도 안된다. 그리고 조조가 장판파에 데리고 온 병력은 기병 5천명이었다. 조운은 이 5천명속에서 유선을 구출한 것이다. 그리고 조운은 연의의 묘사와는 달리 실제로는 촉의 오호장군중에 무예가 제일 약하고 공적도 위연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운은 침착하며 담력이 강하여 유비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관우를 수술한 의원은 화타가 아니다
'연의'의 기록에는 관우는 살을 가르고 뼈를 긁어 내는 수술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치러냈다고 한다. 이렇게 의연한 자세 때문에 오늘날에도 신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다. '정사'의 기록에서도 연의와 비슷한데 틀린점은 팔의 위치(연의-오른쪽, 정사-왼쪽)와 '정사'에서는 마량과 바둑두는 장면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것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중요한 것은 화타가 정말 관우를 수술했냐는 점이다.
이당시 화타는 '마비산'이라는 마취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화타는 절개를 할 때에는 반드시 마취제를 사용했다고 '정사'에 나오는데 유독 관우에게만 쓰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사에 화타란 이름이 없고 그냥 의원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또한가지, '정사'에는 관우가 수술을 받은 것이 그가 수공으로 우금을 사로잡고 조인이 지키던 번성을 공격하기 이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번성을 공격할 때 입은 상처가 아니었던 것이다
유비에게도 돈줄이?
원소나 조조같은 경우, 원래 가문이 부유했기 때문에 자금을 모으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비는 달랐다. 전한 경제의 자손이라는 가문적 배경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유비는 몰락한 가문의 후손이었을 뿐이다. 그런 그가 고비마다 군사를 일으켜 다시 일어서곤 했는데, 그때마다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모았던 것일까? 그 해답은 '미축'이라는 인물에게 있었다. 미축의 집안은 대대로 부유했는데, 부리는 하인만 1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재산은 억대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독우를 때린 사람은 장비가 아니라 유비
"연의"에서는 장비가 독우를 패 죽이려다가 유비가 말리는 걸로 되어있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유비가 독우에게 면회를 신청했는데 독우가 만나주지 않자 유비는 이것에 앙심을 품고 독우를 200대를 팼다 유비는 독우를 죽이려 했지만 독우가 살려달라고 빌자 유비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연의에서는 유비의 선한면을 강조하는 작가의 가공된 허구일 뿐이다.
17로 제후군은 없었다
조조의 격문에 응해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모였는데 여기에 참여한 제후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제1진 후장군 남양태수 원술
제2진 기주자사 한복
제3진 예주자사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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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진 서량태수 마등
제14진 북평태수 공손찬
제15진 상당태수 장양
제16진 오정후 장수태수 손견
제17진 기향후 발해태수 원소
각지의 제후들은 1~2만 또는 3만의 군세로 모여드니 그 진영은 무려 300여 리까지 펼쳤다고 한다."연의"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는 이와 다르다. "정사" 무제(조조)기에 의하면 북해태수 공융 광릉태수 장초 서주자사 도겸 서량태수 마등 북평태수 공손찬 상당태수 장양등은 여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들의 이름은 나관중이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다.
또한 제후들은 한데 모인 적이 없이 각 지역에서 제각기 군사를 움직였다. 원소는 하내에 공주는 영천에 한복은 업에 주둔해 있었지만 누가하나 동탁이 두려워 군사를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동탁의 군대와 싸운 것은 왕광과 장양 그리고 조조와 손견뿐이었다. 그리고 왕광과 장양 그리고 조조는 모두 패하고 오직 손견만이 동탁군을 대파하고 적장화웅의 목을 베었다. 손견은 동탁이 불태우고 떠난 낙양으로 진격했는데 동탁에게 위협적이었던 것은 오직 손견뿐이었다.그리고 제단을 만들어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면 맹세한 것은 원소가 아니라 장훙이었다.
첫댓글 삼국지를 사실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통속연의, 한마디로 소설이라는 얘기겠지요?
헐... 정말 읽으면서 많이 놀랬습니다-_-.. 다시 읽어봐야겠다.ㅠㅠ
이거 삼국지사이트에서는 진자많던데
와 정말 역시 세상은 넓군요. 정말 놀랬구요. 다음에도 다른 좋은 자료 많이 올려주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L
넵
삼국지최강좌님. 삽질하지 마세요-_-
삼국지최강자님, 님의 꼬리말은 대략 이해하기 힘들군요.
귀여운 녀석...ㅎㅎㅎ
삼국지최강좌 .......너 초딩이지? 즐~
삼국지 최강자님, 그런 식의 글은 강짜밖에 안되요. 근거를 대고 좋은 언사로 하세요. 저도 가끔 흥분해서 글을 쓰기도 하지만 이렇게 쓰면 인터넷이 난지도가 됩니다.
삼국지 최강자님..자기가 믿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아량은 있어야 될 것 같네요..그리고 인터넷도 엄연히 매너가 존재하는 곳입니다..익명성으로 남에 말에 그렇게 들쑤실수는 없는 거죠~~
죄송한데요, 이거 확실한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죠..만화 '창천항로' 추천..이 글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네요..
소설의 본질은 그 허구성을 즐기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내요들이군요.
별 소리들 다나오는군.. 말이되? 할말이 없다..글고 뭐? 세상은 넓고 뭐..다시봐..어이가 없군
뭐가 어이없다는건지요 ?
맞아요. 삼국지연의는 정사(진짜 역사)가 아니라 야사(사실인지 모를 역사)예요. 그걸 나과중이 모아서 쓴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