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 도종환
깊고 고요한 밤입니다
고요함이 풀벌레 울음소리를
물결무늬 한가운데로 빨아들이는 밤입니다
적묵의 벌판을 만나게 하여주소서
안으로 흘러 들어와 고인
어둠을 성찰하게 하여주소서
내가 그러하듯 온전하지 못한 이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어제도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러니 도덕이 단두대가 되지 많게 하소서
예단을 넘어서는 원융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하소서
비수를 몸 곳곳에 품고 다니는 그림자들과
적개심으로 무장한 유령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관용은 조롱당하고
계율은 모두를 최고 형량으로 단죄해야 한다 외치고 있습니다
시대는 점점 사나워져갑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내면의 사나운 짐승을 꺼내어
거리로 내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면죄는 없습니다
지금은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사방이 바닷속 같은 어둠입니다
우리 안의 깊은 곳도
환한 시간이 불빛처럼 내려올 때 있고
해 뜨는 쪽과 멀어져 그늘질 때 있고
캄캄해져 사물을 분별하지 못할 때 있습니다
그 모두가 내 안의 늪으로 흘러와 고입니다
서로를 부족한 그대로 인정하게 하소서
타인이 지옥이지 않게 하소서
곳곳이 전쟁터이오니
당신 손으로 이 내전을 종식하여주소서
사람들이 고요한 밤의
깊은 흑요석 같은 시간을 만나게 하여주소서
내 안의 어두운 나를 차분히 응시하게 하여주소서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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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정치인이 아니었던 유명시인이 국회에 입성한 뒤로 보여주는 언행 변화가 놀랍습니다
신의 섭리를 갈구하는 문학정신보다 사안마다 정쟁터를 삼는 정치권언어로 무장했습니다
장관도 하고, 대통령 따라 북한에도 가고, 영부인의 외국방문 단독 수행도 하며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시를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300명 입법기관이 서로 지옥이라 탓하면서 분별의 눈은 감은 채로 레밍떼처럼 움직였습니다
아직은 제22대 국회 개원 전이니 어둠 속에서 빛이 있는 쪽으로 움직일 채비나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