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독일 담배 상인의 아들로 출생.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킴벌리에서 별볼일 없는 신입 사원으로 일하다가 다이아몬드에 생을 바치기로 결심. 그는 먼저 드비어스 다이아몬드 광산 회사에 취업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드비어스라는 회사의 이름은 남아프리카의 촌구석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 니콜라스 드 비어(Nicolaas de Bee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드비어는 자신의 땅에 엄청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것도 모르고 열심히 농사만 짓다가 교활한 사기꾼에게 땅과 집을 헐값에 넘겨 버렸다. 이 드비어의 땅을 광산으로 만들어 드비어스(DeBeers) 사를 설립하고 떼 돈을 번 사람이 악명 높은 광산 식민주의자이자 금권 정치가 세실 로즈(Cecil Rhodes)였다.
그는 이후 "다이아몬드의 수도" 킴벌리에 정치적인 세를 넓힌다. 부인의 지참금을 이용, 킴벌리 참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32세의 나이에 킴벌리 시장으로 선출된다. 그는 시장의 자리를 이용 정치적 상업적 인맥을 넓혔고, 그러던 와중 독일이 1차 대전을 일으키자 독일 액센트를 쓴다는 이유로 시장 자리에서 쫓겨난다.
1916년 소동이 가라앉은 틈을 타 JP 모건으로부터 투자를 확보, 광산 회사 "앵글로 아메리카 사"를 설립한다. 그는 사업을 앙골라, 콩고, 탄자니아 등지로 확장하면서 드비어스 사의 주식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10년 만에 앵글로 아메리카의 소유주, 드비어스 사의 사장,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연방 의회 국회의원이 된다. 그는 영국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는다.
정치력과 경제력, 명예까지 한 몸에 쥔 금권 정치가 오펜하이머의 최종 목표는 다이아몬드였다. 그는 대공황기인 1930년대 세계의 모든 다이아몬드를 사들여 시장 독점을 위한 토대를 닦는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주거래자들을 매수해 다이아몬드 가격을 좌지우지 했으며, 비열한 사기 수법을 동원해 다이아몬드 광산을 소유한 경쟁사들을 몰락시킨다. 그리고 인조 다이아몬드 시장과 공업용 다이아몬드 시장마저 장악해 완전한 세계 시장 독점 체제를 갖춘다.
미국은 2차 대전 중 대량의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주문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그렇게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를 미국에 팔 경우 가격 폭락이 있을 것 같다며 거절한다. 격분한 미국 정부는 드비어스 사와의 무역을 중단하고 오펜하이머 소유의 모든 회사 직원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CIA를 동원해 오펜하이머 회사의 비리를 추적한다. 미국은 오펜하이머의 수많은 불법 행위의 단서를 발견했지만, 드비어스의 막강한 다이아몬드 헤게모니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오펜하이머의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 산업에 있어서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이자 신이었다.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diamond is forever)"라는 유명한 광고를 통해 다이아몬드의 심리적 가치를 극대화 한다. 드비어스는 유럽과 남아메리카, 심지어 적대국인 미국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소련까지 진출해 러시아의 다이아몬드 광산들을 유린했다. 드비어스 사는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을 매수하고 불법 거래를 통해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독차지 했다. 드비어스는 앙골라와 시에라리온처럼 내전으로 피투성이가 된 나라에서도 다이아몬드를 가져와 다이아몬드를 피로 물들인 기업이라는 악명도 얻었다.
그러나 실제로 드비어스가 피의 다이아몬드 생산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오펜하이머는 상호 간의 자본 참여라는 복잡한 기업 카르텔을 구성, 회사 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외부에서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조차 오펜하이머 소유의 기업이 몇 개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의 자신만의 제국을 만들었다. 그는 자체적인 정보 기관을 운영했고, 내전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국가와 소통하는 외교부도 만들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근대화와 자본주의 정착을 주도했으나, 그와 함께 흑인과 백인 간의 차별을 극도로 심화 시켰다. 그는 다이아몬드 채굴에 흑인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수준 이하의 근로자 숙소를 만들어 놓고(이마저도 정부 보조금으로 만들었다), 이곳을 광부들을 위한 유토피아라고 찬양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의 인종 차별 정책을 십분 활용해 자신의 광산에서 파업을 일으킨 노동자 6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적대적 인수, 주가 조작, 시장 독점을 통한 가격 담합 등 수많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재산 규모를 알기 어려울 정도의 부자가 된 오펜하이머는 1957년 숨을 거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앵글로 아메리카와 드비어스는 경제 제재와 불경기, 정치적 불안, 대형 파업 등을 모두 견뎌 냈고, 현재까지 다이아몬드 시장을 독점하며 막강한 시장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후 오펜하이머의 사업을 물려 받은 아들 니콜라스 프랭크 오펜하이머는 44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포브스 선정 세계 25대 부호로 기록된다. |
첫댓글 난 또 코스닥의 왕자...외국계펀드인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