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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1991년 일본에서 열렸던 abc대회 기억하시는 분 계신가요?
우리나라와 북한의 경기도 포함, 어렴풋한 기억에 몇 경기를 중계했던 것 같은데..
혹시 당시의 북한 이명훈의 활약상을 보셨나요?
이명훈이 처음 이름을 알렸을때가 90년 북경 아시안게임때였는데, 기량 보다는 그 큰 키가
화제였죠. 당시에도 기량은 괜찮았지만요. 중계를 본 건지 자료화면을 본 건지 헛갈리는데
그 대회서는 자유투를 거의 넣지를 못했었죠.
허나 1년이 지난 일본 abc 대회서는 백발백중의 자유투와 정확한 슈팅, 생각보다 유연한 움직임과
포지셔닝으로 '잡으면 한 골'의 선수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경기서 우리가 대승을 거뒀는데, 북한은 득점의 절반 정도를 이명훈 혼자서
넣었던 기억이 나네요.(찾아 보니 혼자서 42득점이네요)
로빙볼이 이명훈의 손에 잡히는 순간 그냥 득점이었죠. 리바운드는 말 할 것도 없었고..
당시 북한 보다 한 수 위였던 홈팀 일본에게 북한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그 경기서도
이명훈 혼자서 36득점을 하며 일본의 216cm 장신센터 야마자키에 압승을 거뒀고
역시 한 수 위였던 필리핀과의 경기서도 1점 차로 북한이 아깝게 지게 되는데 흐린 기억으로
그 경기서 이명훈은 혼자서 정확하지 않지만 50점 내외의 득점을 올렸다는 기사를 본 것 같습니다.
하승진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제대회 리즈 시절이었던 2007년 존스컵과
abc대회에서의 어마어마한 존재감도 91년 abc에서의 이명훈과의 활약상을 비교해도 한다면 한 수
접고 들어가야 되지 싶습니다.
지난 세기말 남북교류전에서의 흐느적거리는 모습과 그리고 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서장훈에게 처절하게 당하는 장면
이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아, 아랫글에서 하승진이 이명훈 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의견으로 모이지 않았나 싶은데,
이명훈의 전성기 시절을 본 입장에서는 글쎄요....
이명훈은 기동력도 일본 224cm 오까야마 이런 선수들 보다 더 좋다는 느낌이었고, 의외로 머리가 좋단 느낌도 받는,..그리고 아주
정확한 슈팅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뛰는 시대가 달라 누가 더 낫다 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 역대 국내 선수중 가장 폄하 당하고 있는 선수가 하승진이라
생각합니다만) 이명훈은 절대 하승진 보다 못한 선수가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첫댓글 일본 장신 센터들은 서장훈이 부상으로 국대 참여 안했을때도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라던지 변수의 대상이었던 적이 없었기에 식물 일본센터들 상대로 잘했다고 크게 봐야 하는지 모르겠고요... 90대초면 김유택 한기범인데 둘 다 파워는 떨어지는 선수들이었죠... 김유택은 투쟁심이 남다르긴 했지만.. 골밑에 자리잡은 이명훈에게 쉽게 한골은 헌납할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되어지네요.. 하승진이 하다디도 3점슈터로 만들어 버리는 피지컬인데 페인트존안으로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을거 같네요...
기술은 뛰어나지만 197cm의 김유택, 키도 리명훈보다 30cm나 작은데 파워도 떨어지는 한기범, 키는 얼추 상대할만하지만 형편없는 실력의 일본 센터들을 상대로 잘했다고, NBA센터인 하다디를 상대한 하승진의 활약과 비교하는건 죄송합니다만 말이 안되는 비교입니다. 당시 일본의 전력이라고 해봤자 우리나라에게 13점차로 무난히 패하고 중국에겐 43점차로 박살나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도 중국에게 16점차로 대패했지만 일본과 수준차이는 명확했죠)
당시 일본같은 약팀을 상대로 한다면, 기술이 뛰어난 리명훈이 하승진보다 더 활약할 거라고 봅니다. 하승진은 골밑 마무리를 포함한 기본기가 리명훈보다 훨씬 떨어지니까요.
하지만 NBA나 이에 준하는 레벨에서라면?피지컬이 더 나은 하승진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승진이 KBL에 데뷔할 당시 그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서장훈을 압도한 이유는 다름 아닌 피지컬이었습니다. 농구에서 피지컬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제가 말년의 리명훈을 주로 봤기에 판단하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제가 본 리명훈은 기술, 농구에 대한 이해도와 센스 모두 좋은 선수였습니다. 그렇지만 스피드와 순간움직임이 다른 거인센터들의 말년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느렸고 파워가 커버 불가능할 정도로 (NBA급 피지컬과 비교했을때) 약했죠. 하승진은 모든 기술에서 리명훈보다 열세지만 피지컬의 차이가 워낙 큽니다
물론 글쓴분의 의도는 알 것 같습니다. 99년에 보인 그 허우적거리는 선수가 리명훈의 전부는 아니란 거고, 전성기 때는 이보다는 훌륭한 선수였다는 거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하승진과 비교하면 상대한 선수들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저도 리명훈의 경기를 본게 아마 본문글에서 언급하신 경기라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김유택이 국대로 뛰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근데..제가 NBA구단이 리명훈을 직접 현지로 데려가 투자했다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저역시 리명훈은 그저 키만 컸던 선수로
기억했을 겁니다. 리명훈을 현지에서 직접 관찰하며 웨이트를 보강하기 위해 모든 전담비용과 담당자를 붙여주며 투자를 했고
웨이트만 갖춰지면 235라는 높이로 최소한 백업은 할 수 있을것이란 구단측의 판단이라 생각되는데..결국 정치적 문제와
기타상황으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오게 된걸 보면 아쉬운 선수이기도 합니다.
밑의 댓글에서도 그런데 이때 상황을 반대로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98년 얘기하시는 것 맞죠? 그때는NBA구단에서 데려간게 아니라 리명훈 측에서 캐나다 오타와로 가서 워크아웃을 한 겁니다. 물론 NBA 스카우트들도 여러 명 보러 왔고요.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쇼케이스하려고 워크아웃을 여는 건 흔한 일이죠. 다만 허재의 경우처럼 실제 오퍼단계까지 가진 않았습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trade ban으로 인해서 북한 선수가 미국에서 번 자신의 연봉을 고국으로 송금할 수 없기도 했고요.
만약 실제로 구단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직접 데려간거였다면 님 말대로였겠지만, 리명훈의 경우 어디까지나 본인이 NBA진출을 시도한 겁니다
@maverick45 지금 바로 밑에 댓글을 보시면 반대로 안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죠. 98년 얘기라면 이미 선수로서 한계가 왔을
시점입니다. 언급할 필요도 없죠.
@컨피런스 아니 그러니까 98년 전에는 리명훈이 NBA구단과 어떤 형태로든 접촉한 적 자체가 없다니까요? 지금 구글과 위키피디아를 찾아봐도 그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네요.
리명훈이 NBA진출을 구체적으로 시도한 건 98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님 말처럼 NBA구단에서 데려간게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어서 캐나다에서 워크아웃한 거라고요. 다시 말해 "NBA구단이 리명훈을 직접 현지로 데려가 투자했다"는 사실 자체가 없었다는 겁니다. 리명훈 본인이 워크아웃을 열고 이걸 NBA스카우트들이 보러온 적은 있어도요
미국에서 돌아온 시점부터 열악한 북한에서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리명훈에겐 힘든 요소입니다.
지금 시대에 태어난 하승진도 체계적인 관리를 받음에도 부상으로 고전하는걸 보면 그보다 14센티 더큰 리명훈은
통일농구까지 갈것도 없이 아마도 30이 들어설 무렵 한계가 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김유택이 국대로 뛰던 시절의 모습과
통일농구 시절의 리명훈은 차이가 상당하다는걸 경기에서 뛰는 상태를 보면 대략 알 수 있으니까요.
분명한건 하승진에 비해 리명훈은 시대적으로나 북한이라는 환경적 상황에서 235라는 요소를 관리하기엔
너무 열악했고 가진 장점에 비해 아쉬웠다는 것입니다.
야오밍이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명훈처럼 그냥 묻혔을것 같네요,야오밍도 처음 국대에서 보여준 모습이 키는 크고 키에 비에 스피드가 굉장히 빨랐는데 약골이라고 몸싸움도 제대로 못하고 이리저리 치여다녔다죠,그래서인지 그당시 야오밍을 봤던 사람들은 야오밍이 이 정도로 클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자격증이 필요해~ 리명훈이 아쉬운 것은 노력파 야오밍 못지 않게 리명훈도 북한 특유의 정신력을 가진 노력파 선수로 알려져서
공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투자와 관리를 계속 받을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리명훈 nba못갔었군요 제가지금20대초반인데 교과서에서 갔었다고 나왔던걸로 기억하네요...
결국은 이명훈의 전성기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99~02년에 노출되었던 그의 모습으로 '전성기땐 이랬을 것이다'라는 추측의 댓글의 대부분이네요.
그것보다는 북한 스포츠의 특성상 전성기의 리명훈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기록과 당시 상대선수들의 전력, 전문가들의 평과 주변 반응을 보면서 추측을 하는 거죠. 알럽에서 항상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카페에서 빌 러셀, 윌트 채임벌린의 전성기를 제대로 본 분은 한 분도 안 계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얘기를 전혀 안하진 않잖아요.
북한 선수라는 특성상 리명훈의 전성기에 대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건 경기영상 몇 개 뿐입니다. 전성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그 선수에 대해 논할 수 없다면 리명훈에 대해 댓글 달 수 있는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 뿐이죠.
일본 ABC 경기를 저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포스는 분명 하승진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댓글들이 그 당시 수비가 허접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하승진의 상대선수들도 일부선수를 제외하곤 그다지 뛰어난것 같진 않네요.
상당히 공감가는 글이었습니다.
@신장대비 최고센터 저도 보긴 했는데 그럼 님 의견으로는 당시 일본에 하다디급 선수가 있었다는 건가요? 본문에서는 2007년 하승진의 활약과 당시 리명훈의 활약을 비교하고 있는데, 그러면 리명훈을 가장 괴롭혔던 일본센터들과 하승진을 가장 괴롭혔던 하다디를 비교해야죠. 리명훈은 가장 잘 한경기를 놓고, 하승진의 상대는 '일부선수를 제외하곤 뛰어나지 않았다"고 하면 이중잣대죠. 제가 보기엔 일본의 센터들은 하다디나 하승진의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 같던데요. 하승진은 NBA급 선수와 붙었고, 리명훈은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와 붙었는데 이걸 동일선상에 놓고 하는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maverick45 님의 의견에 대한 반박글도 아닌데 왜.... 저는 제 의견을 regentag님께 말씀드린것 뿐입니다
의견은 다를 수 있는거잖아요?
@신장대비 최고센터 물론 의견은 다를 수 있죠. 그리고 제 의견을 강요한게 아닌데요?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상대한 선수의 수준이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나는데 당시 리명훈의 '포스'가 하승진을 능가한다고 보시는 이유가 뭐였는지...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가서요. 리명훈이 하승진보다 더 뛰어났다고 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신데 그 이유가 뭔지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 듯 해서 말입니다. 단순히 리명훈이 활약을 더 많이 해서인가요? 이렇게 보기도 애매한게 상대가 수준이 떨어지면 활약을 더 하는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NBA에서 1~2점 넣던 하승진이 KBL에선 지배자가 됐듯이요. 정말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7.06 18:20
@신장대비 최고센터 이해가 안 가네요...제가 큰 잘못했나요? 개인적인 궁금증 갖는것도 안되나요? 여기는 이런저런 농구에 대한 잡담하는 곳이죠. 그래서 물어본건데, "왜 궁금증을 해결해 드려야 하죠" "답글 안 다셨으면 좋겠습니다"라니... 좀 당황스럽네요.
전 제 의견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다만 "이런저런 근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하는 거죠. 생각이 다른 분을 만나면 궁금해할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개인적인 의견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있으니까요. 얘기하기 싫으시면 그냥 댓글 안 다시면 그만인데...마치 제가 못할 말 한 것 같네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더 이상 얘기하기 싫으시다니 그렇게 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