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3.12.10.) 말씀 / 계시록 2: 3-5 신앙의 본질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지난 주 수요일에 김태구 목사님이 무안에 내려와서 함께 독서모임도 참석하고, 장흥도 다녀오고 주일 예배 설교도 하시면서 4박5일을 은혜스럽게 보내고 올라가셨습니다.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의 본질 문제를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특히 사단이 시험하는 것들을 보면 상통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 본질 적인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시험 자체가 문제인 것은 하나님의 일들은 본질적인 것인데 비 본질적인 것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사단의 시험에 드는 이유는 본질적인 것을 못 붙들고 비본질적인 것들로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떡문제 필요한 것이지만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 메시아임을 증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명예 권력 피터지게 싸운지만 이런 문제로 본질의 문제가 시험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를 섬기라! 우리는 본질을 줄기차게 붙들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수, 큰 교회건축, 봉사, 섬김, 율법 본질인가요? 비본질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사회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본질을 보여주지 못하고, 비본질적인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비본질적인 것들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세상 추세를 따라 수적 외적인 교회 부흥을 목표로 한다면 소수가 모여 배우며 서로 사랑하며 나누는 우주교회를 세워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신앙의 본질은 또 무엇입니까? 오늘 좀 더 신앙의 본질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머리에 떠오릅니까? 길 가에 서 있는 큰 교회와 십자가 탑, 성탄이 오면 반짝이는 츄리. 이런 것이 떠오르나요? 본질이 아닙니다. 교회는 보이는 건물도 아니고 돈이 많거나 많은 재물도 아닙니다. 박중용 목사님 이야기로 종암동에 큰 교회가 있는데 싸우고 다투고 분열되어 장로가 목사님 멱살까지 잡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 합니다. 왜 그런 교회를 떠나지 남아서 그렇게 싸웁니까? 떠나면 되지 않나요? 그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고 돈, 재물 교회 재산, 그것이 물려있기 때문에 못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외적으로 컸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을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건물, 재물, 조직, 제도 이런 비본질 저긴 것들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이 채찍을 만들어 성전 청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은 기도 하는 집이라 너희가 상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당시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천하 각국에서 모여들어 큰 성전에서 하나님께 거대한 예물을 드리며 해마다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제물로서 양이나 비들기 짐승이 필요했고,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환전상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과 짐승들 소리로 돈바꾸는 환전상들로 성전은 그야말로 시장통 같이 되었습니다. 기도 소리, 찬송 소리, 성경 읽는 소리로 가득차야 할 성전이 비본질적인 것들로 채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채찍을 만들어 이들을 좇아내시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비본질의 성전을 무너뜨리고 본질의 성정을 다시 세우시겟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나중에 역사적으로 보면 외형적으로 화려하고 거대하게 세워진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다 무너지고 새로운 성전이 세워졌어야할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전이 되신 것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예수님이 산에 올라 많은 무리들 앞에서 산상수훈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넓은 들판에 오천명이 모였는데 말씀을 가르치시고 저녁 시간이 되자 오병이어 떡을 떼어주십니다. 바닥사에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배를 뛰우시고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길을 가다가 세리 삭개오를 만나 그 집에 들어가 죄인들과 식사를 하십니다. 건물은 없는데 예수님이 인자와 사랑으로 사라들을 품으시고 말슴을 가르치시며 떡을 떼는 모습, 그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계시고, 십자가 부활의 복음이 있꼬 기도가 있고 사랑의 교제가 교회의 본질입니다. 나중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교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주이이 되시고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사랑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이 참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게속 모이다 보니 건물이 필요하고, 조직이 필요하고 그러다보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사랑 대신 건물, 돈,물질, 사람수, 행사 등 비본질적인 것들이 중심이 되고, 교회는 정상적인 기능, 즉 본질을 상실하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보면 왜 교회들이 무너지게 되었는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교회만 책망을 받지 않고 나머지 다섯 교회는 다 책망을 받습니다. 책망받지 않은 교회는 크기와 상관 없고 오직 본질을 붙든 교회 였습니다. 그 본질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 이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재물이나 사역, 성도가 부흥하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교회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고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건물 관리, 조직이나 행사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첫번째 에베소서 교회는 주님이 칭찬하시면서도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방하셨습니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라오디아교회. 그 교회는 부자교회로 스스로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지만 네 실상은 가나나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안약으 사서 눈에 바르고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신앙을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토하여 내치리라 하셨습니다. 반면 칭찬 받은 두 교회 중 빌라디아교회는 작은 교회였지만 네가 적은 능력으로 충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적은 무리들이었지만 마음 중심에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작지만 본질을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교회에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계시록 3:7-8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서머나 교회의 경우는 네가 실상은 부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할 때 빌라델비아 교회를 롤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바로 서고, 우리 신앙이 든든하게 바로 서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본질을 붙잡으면 됩니다. 성경 말씀을 잘 지키고 따르면 됩니다. 성경 말씀 역시 지식이 아닌 본질을 잡아야 합니다. 성경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어떤 율법서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습니다. 마태 22:36-40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 계명의 본질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8ㅣ:18-23에는 어떤 관원이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관원은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그거라면 내가 여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런데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하였습니다. 그는 영생을 위해서 왔으면서도 근심하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게명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그는 계명의 비본질적인 껍데기만 지켰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명의 본질인 ‘사랑’을 테스트 해보신 것인데 어려서부터 지킨 형식적인 율법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고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지식을 얻고 바른 신앙의 길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을 안 잡으면 교회 10년 다녀도 변화가 없습니다. 성경이 1800 페이지 아무리 두꺼워도 이 모든 성경이 말하는 핵심은 사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 두 가지를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조항 조항을 지키는 사람은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살지만, 이 두 가지를 즉 한 가지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자유인이 됩니다. 여러분,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며 신앙생활을 하겠습니까? 자유한 영혼으로 살겠습니까? 사랑함현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자유하라! 자유는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역시 은혜와 자유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자유! 누가복음 4:18절을 보십시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뿐 아니라 삶 속에서도 역시 사랑을 잡아야 합니다.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33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빌게이츠를 누른 한마디’ 리처드 브랜슨이란 사람은 작은 레코드 가게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기업 영국의 '버진 아들란틱' 항공사 사장이 된 분입니다. 하루는 요미우리 홀에서 리처드 브랜슨과 빌 게이츠의 대담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빌 게이츠에게 "조직은 무엇입니까?" 빌 게이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했습니다. 빌게이츠는 이미 세계적인 기업 경영인이고 달변가로 아주 유창하게 조직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사회자가 다음 리처드 브랜슨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조직이 무엇입니까?” 그는 말을 좀 더듬기도 하고 달변가 빌 게이츠와 상대가 안 되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런 빌게이츠가 모범 답을 말 한 후에 대답하려니 좀 힘들 수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이크를 받은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사랑 입니다." 핵심을 집은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에 강연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사랑 없는 조직은 생각할 수 없으며 사랑과 신뢰로 연결된 조직이 가장 강하다는 깨달음을 더듬거리는 한 단어로 짧게 전한 것입니다. 조직의 본질도 역시 사랑 입니다. 청중들에게는 아주 강력하게 길게 어필이 되었던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조직이 무엇입니까? 역시 사랑입니다. 건강한 가정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건강한 직장도 다 사람이 어울리는 조직인데 거기에 사랑과 신뢰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주식회사 어빌리티 트레이닝 대표이사였던 기노시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이 한마디가 아직도 제 가슴을 울립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비 본질적인 것을 붙들고 살았는가! 성경의 본질, 우리들 삶의 본질, 지식의 본질, 본질이 무엇일까요? 사랑! 이걸 깨달으면 모든 것이 다 변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붙들고, 알고 행해도 변하지 않는다면 본질이 아닌 비 본질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길을 찾던 청년이 그 길을 알고도 돌아갔습니다. 그는 본질인 사랑을 놓치고 껍데기 율법의 조항만 지키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변화시키고 무엇인가 변하려고 할 때 본질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본질이 달라지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애썼지만 나중에 보면 그대로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짝퉁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저도 오랜 시간 고민하며 깨달은 것이 사랑은 이긴다. 사랑에는 절망이 없다. 사랑만이 답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 다해서 참 많이 묵상하며 칼럼도 쓰고, 책도 쓰고 시도 썼습니다. 그래도 사랑 앞에 서면 부족 합니다. 그렇지만 평생 과제로서 사랑을 붙잡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론, 세상은 비본질과 본질로 되어 있습니다. 비본질적인 것들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신앙생활도 비 본질과 본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비본질은 무너지고 본질만 끝까지 남습니다. 본질만 승리합니다. 저와 여러 분들은 본질을 붙잡는 신앙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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