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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1년 1월 20일 수요마음공부방
주제: 소태산이 드러낸 이순신
강연: 명산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호법명 명산 김성대)
양쪽에... 마이크가 굉장히 무겁습니다.
한 몇 년 전에 김제원 교무님께서 불러가지고 여기 한번 온 적이 있는데 그 때 뵌 분 없겠죠?
제가 이순신을 가지고 이 소태산 대종사님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비밀을 탄로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는 둘은 같은 자리에 놓고 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영웅들 중에서 딱 이 한사람만 대종경에서 소태산님이 불러냈어요. 그 다른데 뭐 김구를 만나고 그런게 안 나오지만은 딱 한단어가지고 이분을 불러낸 것은 전체를 통해서 충무공 밖에 없습니다.
그 인도품 52장 그거 한번 읽고 우리한번 시작할까 싶습니다. 어느 한분 목소리 자신 있는 분 크게 읽어주시죠
크게 읽어주시죠
청년들 중에 한분 중에.
- 인도품 52장 읽음 -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이 충무공(李忠武公)은 그 마음 쓰는 것이 도(道)가 있었도다. 그는 높은 위에 있으나 마음에 넘치는 바가 없이 모든 군졸과 생사 고락을 같이 하였고, 권세를 잃어 일개 마졸이 되었으나 또한 마음에 원망과 타락이 없이 말 먹이는 데에 전력을 다하여 말을 살찌게 하며, 때로 말에게 이르기를 "네 비록 짐승일지언정 국록(國祿)을 먹고 이만큼 자랐으니 국가 존망의 시기를 당하여 힘을 다하라"고 타일렀다 하며, 편안하고 명예스러운 일은 다른 장군에게 돌리고 어렵고 명색 없는 일은 자신이 차지하여 오직 위를 섬김에 충성을 다하였고 아래를 거느림에 사랑을 다하였으니, 과연 그는 지(智)와 덕(德)을 겸비한 성장(聖將)이라, 나라 일이나 천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거울 삼을 만한 분이니라.]
우리가 이순신 하면은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 구국의 명장이다 이렇게 합니다. 나라를 구한 장수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분을 존경하고 위대하게 받듭니다. 만약에 이순신이 없었더라면 우리조선이요, 우리가 지금 없습니다. 그 때 조선이 자주국가가 못되어가지고 명나라에 의존해서 살 때이거든요. 외적이 그 침략해가지고 부산에 도착해서 며칠 만에 서울을 점령한지 아세요? 20일만입니다. 뛰었어요. 이게 나랍니까?
한 나라에 침략해서 서울을 점령하는데 그 천리길을 달려서 20여 일만에 점령했다는 겁니다. 이 나라 지키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나라가 아니지요? 그렇게 무너진 나라를 그때 왕인 선조는 오직 명나라를 힘만 빌려가지고 부모국이라고 불렀어요. (명나라)부모 힘을 빌려서 살려고 그러고 전쟁이 빨리 안 끝나니까 명나라하고 왜가 강화협상을 합니다. 협정은 위의 4도는 명나라가 가지고 밑의 4도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그 일부는 왜가 가져가지고요
명나라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자기 동쪽만 막아주면 되니까 8도가 필요 없어요. 4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풍신수길은 밑의 4도를 가지고 제후들한테 나눠줘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두나라가 남의 나라 팔도를 가지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할 때, 조선은 그냥 눈뜨고 쳐다봤어요.
유성룡이라는 대감은 요새 드라마하죠. ‘이런일이 있냐’ 하면서 중국 그 책임자한테 달려 들었어요. 한번 그러니까 유성룡도 밖에 서있어요 . 비가오는데.. 비를 맞고. 그러니까 한나라의 정식수상인 유성룡을 한나라의 영의정을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밑에 이순신이라는 사람은 바다에서 육지에서 유성룡이라는 사람과 둘이서 이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그런대로 천운이 따른 것은 뭐냐면 싸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풍신수길이 죽어요. 그렇기에 망정이지 풍신수길이 1년만 더 살았으면 오늘날 우리는 없어요.
그랬다면 아마 여기는 중국과 가까우니 중국말 썼을 겁이에요. 그래서 이순신을 구국의 영웅이다. ‘나라를 구한장수다’ 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맞죠. 틀림없죠. 그런데 우리 소태산대종사께서는 구국의 명장이라는 소리는 한 말씀도 안하셨습니다. 이분이 구국을 해서 참 훌륭하다 그런 소리를 한 게 아닙니다. 뭐라했습니까? ‘도가 있었다.’ 이순신을 구국의 명장에서 불러 안냈습니다. 도인으로 했습니다. 대종사님은 우리들한테는 도인으로 불러내서 이순신을 역사적 인물로 제시했습니다.
저는 이순신을 40년 공부를 했습니다. 40년 공부를 해가지고 ‘아 이순신이 이런 거구나, 아 이사람이 가치가 이렇구나 이사람 가치회로가 이렇기 때문에 모든 역경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났을 때 52장 법문을 읽었습니다. 하물며 우리 대종사님은 이순신 얼마나 공부했겠습니까? 무슨 참고서적이나 공부할 방법이 있다고..
성자들이 보는 혜안은 우리가 상상을 못합니다. 그 영산에 호롱불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 무슨 물질이 개벽이 그렇게 많이 되었겠어요? 그러니까 성자들이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은 함부로 봐서는 안 됩니다. 내가 40년 동안 원불교 공부를 한사람이 아닙니까. 한 마디로 벼슬이 아무도 높아도 넘치는 바가 없었고, 벼슬이 아무리 떨어져서 마소를 먹이는 입장에서도 그마음에 원망과 타락이 없었다. 이분의 마음쓰는데는 도가 있었다. 그리고 성자를 부쳐줬습니다. 성자이니까. 그래서 우리 소태산께서는 이순신을 출가위 이상으로 놨습니다. 그런데 어떤분이 출가위 아니고 여래위. 여래위는 모르게 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잘 모르겠고 출가위는 어렴풋이 모르려니 했다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우리 소태산이 대종사님이 드러낸 이충무공은 도인의 축입니다. 마음을 닦아서 어떤 분이 됐다? 서인이 된 도인 이순신을 말합니다.
벼슬이 아무리 많아도 넘치는 바가 없었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라는 벼슬을 만들어서 초대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습니다. 전라,경상,충청을 총괄하는 임시총대장을 만들었습니다. 전쟁 중 이니 급해서, 만들었습니다. 이순신을 발령을 냈습니다. 선조에게 이순신이 글을 써서보냅니다. 머라 쓴지 아세요? 내 힘이 통제사를 감당하기에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니 나라 구하는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이런식으로요. 그러나 안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합니다. 그런데 마음쓰는법이 그랬답니다. 이순신이 3년 8개월간 통제사로서 한산도에서 왜적을 막아내다가 정유년 초에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가잖아요. 들어갈 때 그 금부도사로 따라온 사람이 원균이에요. 원균이가 그 3도 수군통제사가 됩니다. 원균이가 이순신에게 총 몇자루 전부 인수인계를 받고, 원균이가 삼도수군통제사 발령을 받고 그 서울에 자기 처쪽에 도안공이라는 큰 외척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사를 가니 그 도안공이 원균이를 ‘축하하네 자네가 하고싶은 그 통제사를 이제 하네요.’라 하니 원균이가 뭐라고 하느냐 내가 통제사가 된 것을 그리 기쁜 것은 아니다. 그다음 두 마디가 재밌습니다. ‘내가 통제사가 된 것이 기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순신을 꺾은 것이 통쾌할 뿐입니다.’ 지금 이 사람의 마음은 자기가 꽉 찼습니다. 나라가 없어요. 이순신은 나라 걱정에 정신이 없는데, 이 사람은 나라가 없어요. 자기만 있어요. 통쾌해요. 이 사람의 마음가짐때문에 한사람은 400년이 지나도 성웅인 반면에 한사람은 졸장으로 계속 욕을 들어먹습니다.
이순신과 원균의 마음에는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게 ‘공심’입니다 공심. 공심이라는 것은 어흠 이 공심이라는 것은 공동체, 사회공동체 국가공동체, 이 공동체의 이익을 내 이익보다 앞에 놓는 사람입니다 '선공후사'
그 보통의 사람들은 내 이익을 일단 공동체 이익보다 더 앞에 놉니다. 내가 살고 봐야지 우선. 국회의원들 보면 ‘자기 재선 되는 일이 더 큽니까 나라 잘되는 게 큽니까’ 물어보면 말은 ‘나라 잘되는 게 우선이지’ 하지만 지가 우선 재선되고 나서 그다음 나라가 잘되면 좋겠다는 겁니다. 지금 선거구 구성합의를 못하죠? 왜 합의를 못합니까? 그거 이동네 저동네 나누면 지가 못한다는 겁니다. 이런, 공중사를 하는 사람이 공심이 없으면 어떻게 되냐면 그 조직은 망합니다. 공심이 있는 사람이 그래도 중간 중간 있어야, 그 조직이 성공합니다. 그러니까 도인 이순신 이야기를 하나 더 할께요 대종사님이 드러내려고 했던 이 이순신이 , 대종사님은 이순신의 역사를 샅샅이 몰랐거든요. 어떻게 압니까. 먼저 정조대왕이 편찬한 이충무공전서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시가도 있고 난중일기도 있고 모든 일기도 있고, 이순신에 대한 모든 기록을 정조대왕이 왕명으로 수집해서 책을 만듭니다. 그게 이순신 자료의 99퍼센트입니다. 그것을 저는 한문을 몰라서 바로 못 읽고, 다른 책을 번역한 걸 서울대학교에서 빌려가지고 1년간 봤습니다. 거기에 모든것이 거의 다 있습니다. 그중에서 거기 제가 같이 도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그를 한번 배워 볼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합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원균이가 이순신 뒤를 이어서 2월달에 삼도수군통제사를 합니다(6월). 정유년 7월달에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가 3도수군의 전 병력을 다 잃습니다. 왜적과 싸워서, 물론 자기도 죽고. 조선의 큰 장수들이 거의 다 죽습니다. 거북선이 그때 3척이 있었는데 원래 3대 밖에 없었는데 그때 다 불탑니다. 판옥전선이 있었는데 가로 9 세로 21미터 2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큰 배를 다 잃습니다. 그 중에 12척을 가지고 ‘배설’이라는 장수가 도망을 갑니다. 이것들을 이순신이 가지고 ‘명량해전’에서 이깁니다.
선조는 8월 3일날에 다시 이순신에게 3도수군통제사 발령을 다시 냅니다. 저 같으면 이순신한테 3도수군주면 나는 안 받겠다. 자기를 죽이려는 선조, 사형선고를 선조가 하는데 그때 최고재판간은 왕입니다. 김홍기라는 사람에게 선조는 이순신은 모함죄로 사형이 마땅하니 절차를 논해라, 했습니다. 그러니 이순신에 대한 고문이 얼마나 강하게 들어갔겠어요? 보통 한번 고문당하면
니 죄를 알겠다? 하면 모른다하면 틀어서 죽이고 알겠다하면 죄를 알렸으니 죽이고, 아주 독했습니다. 아주 정길용같은 그런 장수들도요 역적으로 몰려서 고문 한번 받고 죽었어요. 이순신도 고문 받을 당시 52세인데 그 의학기술도 없었던 400년전에 뼈가 안부러진게 다행입니다. 그게 아마 국운이 있을려고 해서 안죽었나봐요.
그래서 자기를 고문했고 사형선고를 했고 그랬던 사람이, 그러면서도 원균은 졌지만은 그 사람을 두둔합니다. ‘너희들이 원균을 너무 독려해서 원균이 나가서 진 것이다.’이러면서요. 이런데 이런 사람이 내리는 발령을 받겠냐고요, 백의군중에 발령을 받는데, 어디 가서 부임하지요? 한산도는 이미 적의 손에 들어갔는데 군사가 한사람이 있겠습니까? 무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삼도수군통제사다 하고 혼자 깃발 들고 가서 통제사다 하고 죽으란 말인가요?
그때는 12척 배도 못 찾을 땝니다. 그런데 이순신은 배알도 없나봐요. 그 명을 또 받아요.
그럴 때 처음에 제가 이게 이해가 안 되어가지고 몇 년 걸렸습니다. 그런데 난중에 알고보니 아 이거는 당연히 받을 사람이구나. 생각 들었습니다. 이순신은요 아까 말했지만 공입니다. 저를 생각하면 배알이 꼴려서 못하지요. 저는 어디가서 조용히 살거에요. 백의 종군하니 재밌네요. 이따가 촌에 가서 논이나 부칠래요 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자기가 없어요. 이 마음에 자기가 없고 헐벗은 백성이 있습니다. 피폐해진 나라가 있습니다. 이거 그대론데 어쩌란 말이에요, 내가 목숨이 살아있다. 내가 아직 할 일이 있다. 내가 구해야할 백성이 있다. 그러면 받을 것 같아요. 멍청한 사람이 아니고 도가 있는 사람이지요?
이 이순신이 그래서 3도수군통제사를 받고, 열두척을 가지고 적과 싸워서 그 명량해전을 이깁니다. 여러분 영화를 보셨지요? 나중에 김한민 감독 이야기를 해보니 그 영화를 만드는데 시나리오를 자기가 썼답니다. 그 중에 이순신이 이긴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에요. 원균을 이긴 수백척의 함대가 쳐들어오고있는데, 도망간 병력을 데리고 그걸 끌어 모아가지고 일본의 승승장구하는 함대를 이긴다는게 말이 됩니까? 자기는 고문으로 몸이 망신창이가되고... 이순신이 8월 3일간 재임용이 되어가지고, 또 모진 역경을 겪습니다. 사실 벽파진까지 도망가는 거지요. 벽파진 바로 옆에서 명량인데 거기서 전쟁을 해서 이깁니다. 이긴 이유를 김한민 감독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그래서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자기가 고민을 하다가 재판관이 쓴 책을 봤더니 오 자기 의문이 풀렸다 그러더라구요. 그러니 내가 영화를 만나기 전에 내가 당신을 만나야 되겠느냐. 그랬던거죠. 그래서 제가 만났지요. 그래서 제가 만나야지요. 제가 시를 써서 책에 옮겼었는데, 그거를 감독이 자기 책상 앞에 붙여놓고 영화를 만든다 하니 제가 얼마나 귀엽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순신이야기를 2만명한테도 이야기를 못했는데. 이 사람은 한번에 1000만을 넘기니까.. 장사는 되는 장사다 싶어가지고. 명량해전과 이순신을 영화로 만든다는 발상자체가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 이후에는 저는 강연때 마다 김한민감독 영황의 ‘명량’ 선전합니다.
말이 좀 벌었겠네요. 라고 주위에서 이릅니다.
저는 ‘내가 돈을 벌은게 아니고 김한민에게 돈을 받는게 아니고 내가 업어줘야된다.’라고 합니다. 왜냐면 내가 못한 일을 김한민이 해내고 있는데 내가 업어줘야지, 돈을받아야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명량해전을 원균이 빼앗긴바다를 다시 찾습니다. 이렇게 선조임금이 이순신 벼슬을 올려줘야 됩니까? 당연히 올려줘야겠지요. 하지만 이순신은 정이품으로 한산도 때 올라간 이후에 4년간 안 올랐어요. 명량해전같은 이런 위대한 전투에서 승리한 순간 중국에 있는 사람은 수군을 보냈습니다. 골치였던 왜적을 이순신이 막아냈다고 하니까 너무 고마운 거에요. 그래서 이순신을 종1품으로 올리는 것으로 의논 되었습니다. 숭정대부 종1품, 이거는 정승급입니다. 관찰사의 급이지요. 정일품은 숭록대부라 해서 정승반열입니다. 하지만 선조는 올리지 않아요. 사실은 선조가 삐진 게 있어요. 왜 삐졌냐고 하면 이순신이 12척을 가지고 자꾸 도망을 가거든요. 그래서 선조가 ‘배를 버리고 육군으로 가서 싸우라는’라는 명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명령을 안 들어요. ‘바다를 잃고 육지에서 뭘하냐 이겁니다.’ 이순신이 그 명령을 거역하고 바다에서 이겼으니 선조가 속이 좋겠습니까?
그 수많은 고문으로 골병을 들여놔도 아직도 또 명령을 안 들으니까 선조가 화가나서 아주 벼슬이 안줍니다. 이순신은 벼슬 죽을 때까지 안올립니다. 나중에 죽고 나서 올라가요.
선조의 마음에는 뭐가 있지요? 사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사가 생겼지죠? 하지만 이순신은 사가 없습니다. 이순신은 이겼지요? 중국에는 진린이라는 사람이 절강성에서 수군을 이끌고 옵니다 원균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파견하는데, 진린이 이순신보다 급이 한참 높습니다. 선조가요, 진린을 보면 고개를 숙여요. 중국황제아래에서는 둘 다 신하인데 조선왕도 신하고 중국장수도 신하이지만, 선조가 답답하니 고개를 안 숙일수가 있나요. 진린이 딱 지휘권은 가집니다. 진린이 오고나서 이순신과 함께 첫 전투를 하는데 그게 연합함대가 가서 왜적을 깹니다. 이순신은 부하인 송여종이라는 장수와 함께 제일 열심히 싸우고, 진린의 부대는 변두리만 폼만 잡는 겁니다. 그러니 전쟁이 끝나고 나니까 ‘우리는 70몇개의 수급(적의 목)을 가지고 오는데’ 중국은 하나도 못 가집니다. 진린이 노했습니다. 왜 목을 소중이 하냐면 명나라 육법에 상수공법이라고 있는데, 머리수로 공을 계산 하는겁니다. 임진왜란때 머리 1개 가져오면 상놈면제 해주고 2개면 벼슬을 시켜줬습니다. 장수들도 머리를 베어오는게 참 큰일입니다. 머리를 베자마자 한양으로 보냈습니다. 보내는게 참 공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명나라의 진린이 이렇게 열을 내니까 이순신이 뭐라는 줄 아세요? ‘도독. 이게 이긴 건 당신이 해서 이긴 거야, 그러니까 이목은 내가 당신한테 다줄게. 그럼 당신은 이 목을 가지고 황제에게 보고하면 당신은 공이 높아지니 얼마나 좋겠나’ 그러니 진린 장수가 ‘그래도 되나?’라고 해요. 장수가 공을 양보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옆에 송 장수가 이순신에게 뭐라 부락부락하거든요. 안그렇겠어요? 그러자 이순신이 두드려 줍니다. ‘썩은 고기덩어리가 뭣이 그리 귀하냐’ 이순신 머리에는 뭐가 있습니까? 이 사람은 이미 주인이에요 나라의, 어쩌든지 이 사람을 달래가지고 이 나라 지키는 데에 써먹는 겁니다. 이 얼마나 높은 심법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이분께 성 자를 붙여줍니다 사가 없어요, ‘사가없으면 좋은게 있습니까?’ 좋은 게 있어요. 사가없으면 기적을 만듭니다. 사가 있으면요. 뭔가 액운이 따릅니다. 사가 없으면 기적을 만들고,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이긴 원인이 기적인데, 원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느 전술가도 아무도 몰라요. 명량해전 일어나기전 밤에 이순신이 꿈을 꿨는데 어느 신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하면 이기고 저렇게 하면 진다.’라고 했데요. 그런데 어ᄄᅠᇂ게 하면 구체적으로 이기는지는 안나와요. 이순신은 꿈을 꾸는 게 많이 나옵니다. 점치고 꿈꾸는데 틀린 게 별로 없어요.
그리고 전쟁 끝나고 나서는 이긴 원인에 대해서 ‘오직 천행이다 하늘이 도왔다.’ 본인은 이긴 원인을 모르죠. 단지, 지공무사한 그 마음에서 기적은 만들어졌구나.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이 선공후사, 이것과 비슷한 말이 멸사봉공 우리의 교법은 지공무사입니다. 오직 공심입니다. 원불교와 같은 이런 공적인 조직에서 성공을 하고 우리 교단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오직 공심입니다. 공심이라는 게 딴 게 아니고, 내 사리사욕을 던지는 게 공심입니다. 그런데 사리사욕이 항상 먼저 들어오거든요. 그렇잖아요. 우리 정치를 보면 너무 잘 알죠. 이 사리사욕을 짝 제압하는 힘. 이게 공으로 가는 힘입니다. 아주 쉽게 보면은 근데 이것을 제압하는 과정을 뭐라고 할까요. 이것을 수양이라합니다. 뭐 다리 꼬고 앉아서 멍청하게 있어 보던들, 나는 얻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내한테 수양법을 이렇게 합니다. 욕심을 본다. 어느 경계를 가서도 탐욕심이 고개를 못들게 하는 것이 수양이다. 첨에는 계속 깨집니다. ‘오늘도 내 욕심 때문에 뭐했다 참회 반성하는 겁니다. 아 다음에 한번 더 붙자. 이제는 제압해보겠다.’ 그 과정이 저는 수양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순신은요. 나라를 앞에 놓고 지 개인을 뒤에 놓는 그런데 이순신은 이 순서를 사심을 제압하는 순서를 갖춘 사람입니다. 이것이 도가 있다고 표현합니다. 이순신을 본 400년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뭐라 해도 공통된 표현이 있습니다. 공통되는 게 뭔 줄 아세요? 수양입니다. 이순신은 깊은 수양을 쌓아서 그렇게 이겼구나. 이 이순신이 내면에 쌓은 가치체계를 저는 4가지로 나누어 보았는데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 다음은 일에 있어서 정성입니다. 정성스러운 사람은 일이 있기 전에는 철저히 준비하고, 일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매진하고, 일이 끝나면 그 뿐입니다. 자기 공은 나몰라하는, 이것이 정성스러움입니다. 그 다음이 정의입니다. 이순신은 바른길이 아니면 안갑니다. 눈앞에 성공이 보이더라도.. 그다음에 이순신은 자력입니다. 남의 힘에 의존해서 성공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이율곡이 이조판서를 할 때 이순신이 파면을 당해서 놀고 있는데 유성룡이 이순신을 이율곡에게 보냅니다. 이율곡이 나이는 9살 많은데 인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순신은 ‘제가 가 보는건 괜찮지만,,,,’ 그때는 선비가 벼슬을 못하면 굶어요. 하지만 ‘내가 적절치 않다.’라고 해요. 제가 봤을 때 이순신은 아주 현실적응 능력이 낮은 것 같아요.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성공을 한단 말이에요. 이런, 그러니까 백의종군을 두 번하고 파면을 세 번 당하고 사형선고도 한 번 당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느 위인보다도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성공한사람이 어딨습니까? 예수님이나 석가모니 정도겠지요? 이순신도 굉장히 성공한사람은 틀림없는데, 이 성공한 사람을 보니 지가 성공할려고 욕심부린게 하나도 없더라. 욕심부리려고 성공한 게 아니더라입니다. 이 도인의 심법을 소태산 대종사깨서는 전해주려고 인도품 52장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먹이는 것은 말한테도 이래라 저래라 했다는 것지요. 사실 이건 기록에는 없는데 설마 대종사님께서 거짓말 하셨겠나 싶어서 책에 수록했습니다. 말먹이는 이야기가 총 나중일기에서 2번 나옵니다.
그 중 백의종군할 때 ‘월하말’이라고 말 종류가 있는데 이순신이 죽어가던 말을 살려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때 아마 이순신께서 말에게 ‘니가 비록 짐승이지만 나라가 국란에 처했는데 국록을 먹었으면 이제 은혜를 갚을 때 아니냐’라고 하셨을 꺼에요. 세상에 은혜를 갚으라는 말은 사람에만 해당되는지 알았는데 말한테도 하셨어요.
소태산이 드러낸 이순신은 용장 이순신도 아니고 영웅 이순신도 아닙니다. 자기의 마음을 항복받고 수양력으로써 제압하는 도인 이순신을 소태산을 드러내셨다는 겁니다. 이게 오늘 제 강의의 핵심입니다.
시간이 되었으니까 쉬시다가 질문 있으면 받겠습니다.
<질문시간>
도인 이순신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그냥 영웅 이순신에 대한 질문도 하시면 아는 데까지는 답을 하겠습니다. 질문 하시죠.
(질문1; 질문인데요 사심으로 가득한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풍토 때문에 억울한일이 많습니다. 공심을 키우고 전파하기 위한 노하우를 알고싶습니다.)
답변: 노하우 이야기 제가 안했습니까 제압하라고 했지요? 곧 ‘수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양하는 사람들이 원불교 수양하는 사람들이 아까 잠시 이야기했습니다만은.. 저는요 40때는 불교에 빠졌었습니다. 그래서 삼학공부를 아주 간단히 배웠습니다. ‘멈춰라 무엇이 옳은지 생각해라. 옳다고 생각하면 죽자고 하고 아니면 하지마라. 그게 삼학이다.’이라 하더라구요. 저는 그게 삼학 인줄알았는데, 가만보니 삼학공부 하는데 실수 없이 하라는 말은 되겠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은 어떻게 아느냐고 생각이 든거에요. 그러니까 온갖 견문도 넓혀보고 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을 분별을 하는게 알수도 없어요. 재판에서 원고는 이렇게 피고는 이렇게 하는데 누가 옳은지 알수가 있나요? 증거를 봐도 알 수 없고..
무엇이 바른게 확신이 정해져야 죽자고 하겠는데 저는 못하겠더라구요. 삼학공부하면 부처된다는데 나는 삼학해서 부처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속이 비는데 불교가 살살 들어요. 그래서 금강경이니 반야심경이니 제 40대를 보냈습니다. 10년을.... 10년 허송세월을 했어요. ‘아 또 헛 지랄했구나.’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 언제나 들은 것은 바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른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바른 사람이 되는 거에요. 이 사람이 말로서는 백번해도 이 세상 안 바뀝니다. 이순신을 해서 아무리해도 명 강연을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라고 말이죠. 무언가 나와 관련이 되어있어야합니다. 나와 관련이 있다는 이순신의 내면세계를 들어가서 오늘날과 그때나 공통되는 성공 가치를 추출해라 처럼 말이죠. 사랑 정의 정성 자력을 바탕으로 이순신은 허튼 짓을 안 했어요. 이런식으로 어떻게 정돈을 하느냐 그게 바로 수양이에요. 그게 하기 싫지요. 이순신이 전쟁을 할 때 부인이 아파가지고 내일모레 죽는다고 할 때가 있었어요. 요즘에는 만사제쳐놓고 가지요? 안 그러면 큰일 나지요. 이순신도 나라일은 급하고 마누라 목숨은 경각에 달려 굉장히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이순신은 굉장한 애처갑니다. 비록 중매결혼했지만 애처가더라구요. 그래가지고 그러나 ‘나라일이 이지경이니 내 어찌 갈수있겠느냐.’ 그러니 자기부인이 죽었다고 전제를 하고 이 어린자식들은 부인없이 어찌하고 살까 하고 일기에 적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점괘에는 안 죽는다고 나와요. 이 사람도 답답하면 가끔 치더라고요.
이 공을 이 공을 올리는게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 인생이 이생에서 끝납니까? 아니요. 우리가 기운이 매해서 전생을 기억 못해서 그렇지, 왜 사람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다 달라요? 그 지은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타고난 업을 이생에서 한번 제압해보자는 거지요. 이 업이요 사람을 얼마나 묶어줍니까? 꼼짝 못하게 합니다. 우리 좌산종사님은 법문할 때, 유행가 가사에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라는 말이 있듯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 끌려가는 겁니다. 그렇게 끌려간 업에 우리가 된통 당합니다. 저는 우리 수양을 그렇게 합니다. 당한 후에 다음에는 꺾어보자 다음에는 다짐하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보면 업도 참 귀여워요. 올 때마다 얘야 왔니 라고 하면 그게 우리 수양 아닙니까. 그것을 해서 한번 제압을 해보십시오. 그럼 뒤가 행복합니다. 반드시 행복합니다. 한번 대종사님 믿고 수양을 해보세요.
(질문 2; 사심을 너무 교묘하게 잘하는데 사심인지 알아 챌 때가 많고 알아도 공심으로 돌리기 어렵다. 재판관님의 사심과 극복하기 어려웠던 경험과 노하우을 알려주세요.)
답변: 거의 없는 거 같은데, 나는 사심이 날때마다 거의 졌어요. 사심 이겨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이제 지고 나서 크게 뭐 억울해 안했습니다. 그런데, 포기는 안합니다. 내가 중학교때 우리 법을 만난 것을 저는 참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러지요. ‘대종사님 이법만고의 대법이고 이법보다 좋은 법있으면 나와봐라.’라고 말이죠. 하지만 딴사람은 그렇게 아무도 안하지요. 우리 법 실시품인가 보면 우리 대종사님께서 그런 비유담하나 나옵니다. 좌선 안한다고 자꾸 뭐라고 그러니까, 좌선이 좋으면 니가 좀 써봐라 하셨습니다. 금광에 금이 있어 니가 먼저 캐서 쓰면 다 캐러 갈 것 아니냐. 라고 말이죠. 우리 소태산 대종사는 실천을 통한 효과 , 과학적인 효과를 가장 소중히 합니다. 원불교는 종교지만 과학을 배척하는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종교입니다. 저는 그거 하나 믿고, 어떻든지 저한테 돌아오는 욕심이 나면은, 그 틀림없이 제가 생각하면 많이 있을거 같긴하네요. 하짐나 지금보니까. 그러니까 결정적일 때 사심을 발동했다가 혼을 난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기억을 나는 게 없어서 더 못하는데, 뭐가 있었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제자신을 너무 비관하지는 않았습니다. 업을 한번 받아보려고 수용해 보려고 하는 그런 게 있었고, 그 다음에는 계속, 계속 후회했던 기억은 많습니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또 부딪혀보고 말이죠.
(질문 3; 이순신 장군의 가장 무서운 것이 정성 이다는 분들이 있는데요. 위기 속에서 알려준 신선이 승리 비법처럼 일반 사람들도 정성을 들이면 꿈에서 누군가 길이 알려주는 예지력이 생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와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지 궁금합니다.)
답변: 여러분은 과연 정성이 지극하면 신인이 나타나는지, 그런데 신인이 나타나면 정성이 지극한 거 아닙니다. 안 나타났다. 그럼 내가 부족한 거지. 말이라는 게 그렇더라구요. 백지혈인, 왜 빨갛게 변했나요?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에이 변했을 리가 있나 하지요. 그러나 종교적인 그게 감춰져있는 것을 그렇게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이순신이 거짓말했겠어요? 거짓말 했을리는 없지요. 그 일기를 우리가 후에 다 볼 거라고 생각도 안 했을텐데. 그때 솔직히 쓴 거에요. 이순신이 명량해전 할 때 전략이 뭔줄아세요? ‘이길려고 하면 죽고 죽을려고 하면 산다.’ 세상에 전쟁하기 전에 그런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 같이 이 전쟁에서 죽자. 라는 말이죠. 다시말하면 이 전쟁에서 우리가 목을 내놓자. 그런데 사람이 목을 내놓고 만큼 달려 드는거 무서운 게 없어요. 다른 장수들이 그렇게 했지마는 막상 명량해전이 일어나니 다 도망가고, 이순신 기함 혼자만갑니다. 그 곳은 물살이 하도 쌔가지고 빨리 안 저으면 뒤로 밀리거든요. 모두 사심들이 작동한 거지요. 그런데 사심들을 이순신의 공심이 또 제압을 합니다. 이순신은 ‘너가 도망간다고 살겠느냐. 야 이놈 응암아. 너는 중군으로서 대장을 보호해야 할 놈이 그러면 되겠냐’라고 초요기를 올리고 1시간동안 그렇게 외칩니다. 그러니까 그 장수들이 양심이 있으니까 옵니다. 홀로 1시간을 버티셨는데 우리는 포를 가지고 있으니까 적이 가까이 오지를 못해 버텼습니다.
그런 참담한 과정은, 저도 이해가 잘 안돼요. 하지만 제일 이해가 안 될 때 붙이기 좋은 게 귀신 아닙니까. 우리 인간을 누가 창조했냐, 귀신이 창조했다. 라고 하면 말이 되지요.. 보통 지가 믿는 신이니까. 유일신처럼 말이죠. 이게 바로 말입니다. 어찌 보면 말장난이거든요. 그래서 정성이 지극해가지고... 경산종법사님의 중용에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썼어요. ‘성즉명’ 정성스러우면 밝아진다라는 겁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왕도 조정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던 전쟁준비도 다 그만두죠.
하지만 이순신은 2년전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라좌수사로 가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전쟁을 준비합니다. 본인을 지키던 곳을 시설을 다 보수하고 요새화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순신도 모른 게 있어요. 결국 여수앞바다에 한번도 못싸웁니다. 경상도 가서 싸웁니다. 몇 백리길 떨어진 경상도가서 싸워야했죠. 아마 이순신도 그것까지는 예측을 못했나봅니다. 그런 것 까지 귀신같이 예측해서 경상도에다 성 쌓기를 했다는건 좀 지나치지요. 정성스러우면 밝아진다는 이 말은 이순신은 정성스러웠게 때문에 전쟁 나는줄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여러분이 회사일이나 무슨 일을 할 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없으면 포기하잖아요. 그건 정성스럽지 않아요. 끝까지 한번 정성을 다해보세요. ‘그래도 안 된다.’ 그런말은 없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그건 정성이 아닙니다. 이것도 말장난 같습니까? 정성은 쉼이 없어요. 그 누굽니까 정주영, 재벌, 돌아가신 분이 이런말을 했지요. ‘해봤나?’ 이 말 신문에서 봤지요? 그것이 정성의 한 방법이지요. 너 해보지도 않고 해봤나라는 말이죠. 그런데 한 두어번하다가 실패한사람한테 해봤다하면 뭐라 합니까? 이건 옳은 질문은 아닙니다. 이것보단 ‘니 죽을 때까지 해봤나?’라고 말해야지요. 이렇게 물어보면 본인은 지금까지 살아있으니까 안 해봤지요. 그겁니다. 정성이 지극하면은 지성이면 감천이다. 지성이라는 것은 정성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감천이다 하늘이 움직입니다. 물은요. 아무리 가열을 해도 99도만 되도 안 끓지요? 100도가 되야 끓습니다. 딱 1도 100도 딱 되면 끓습니다. 정성도 마찬가집니다. 대각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마지막 하나를 깨어야 내외가 명철되는 통찰력을 얻지요. 이걸 하다말면 반푼수지요.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움직인다는 말은 진리인 거 같습니다. 이를 믿읍십시오. 하늘이 감천안하면, 내 정성이 부족한 거지, 그렇게 하면 남 탓 아닙니다 전부 내탓 입니다.
(질문 4; 도올같은 분들 포함 몇몇학자들이 전쟁에서 이순신이 자살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잇는데 자살설에 대한 생각은 어찌 하십니까)
답변: 내가 할 때마다 나오는 질문이 자살설인데, 잘 물어보셨습니다. 도인에 대해서 이순신의 죽음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이순신이, 만약에 전쟁에서 왜적에 총에 안 맞고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제 생각에도 십중팔구 선조가 가만 안 놔둡니다. 자기로서는 자존심이 상해서 이순신을 놔둘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순신이 그 어려운 전투에서 다 살아났지 않아요. 그런데 마지막 전투는 왜적이 도망가는 전투거든요 뒤만 적당히 치면 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거기서 죽습니다. 자기가 만약에 살아남으면 어떻게 되느냐면요, 삼족이 멸하거든요. 그러니 차라리 내 한몸 버려서, 가족도 살리고, 내 명예도 살리고 그러자 라고 생각하고 그 쉬운 전투에서 적의 전투에서 적의 총을 맞고 죽었다고 주장하는게 자살설이에요. 자살설은 이순신이 죽고 60일 후에 처음 제기되었어요. ‘이순신이 적을 이용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도 이 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소설도 거의 전부가 자살설에 기초합니다.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서 저는 책에 두 장을 썼습니다. 이순신이 죽음을 처할 때 마음쓰는 법이 어떤가를 쓰는데 6개월 걸렸어요. 그 후 좌산종법사님께 이 것을 써서 잘썼는지 봐달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두달이 지났는데 답을 안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마음대로 만들어서 책출판을 해버리고, 나중에 좌산상사님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잘썼대?”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일관하게 이순신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순신이 음력 11월 19일 병신년 죽거든요. 12월로 아주 추울 땝니다. 이 분이 새벽 한 4시에서 5시 사이에 죽습니다. 죽기전 12시 자정쯔음 뱃머리에 나와서 기도를 합니다. 그 유명한 기도문이 지금도 있습니다.
‘이 천인공노할 왜놈들이 죄를 지은 이 왜적을 아무 죄 없는 우리 백성을 자기들 사리사욕을 위해 침략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수많은 수만의 수십만의 조선백성이 왜적의손에 못된 짓을 당하잖습니까? 정의가 살아있으면 엄벌을 처해야한다. 이런 왜적 단한척의 배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총알을 적의 총알을 이렇게 해가지고 그렇게 자살을 합니까. 그것도 심장에 어떻게 딱 맞추냐고요. 무슨 귀신입니까?
이순신이 사천해전에서 화살을 맞은 것과 같이 그 이전에도 죽을 수 있는 길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많은 생사의 길을 벗어났어요. 그런 인생관을 갖춘 사람이, 이렇게 공심으로만 산 사람이 ‘내가 죽으면 우리 집은 영화를 누릴 것이다.’라는 사심이 작동해서 자살하겠습니까? 4시간 만에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뀌겠습니까? 그럼 이순신은 죽을 때 그러면 ‘아 목표달성’이라고 말해야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가 죽었다는다는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분은 전쟁을 통해 이기는 그 공심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살설이 널리 퍼지느냐.. 그건 자기 식견으로 이순신을 보니 그거밖에 궁리가 안 나오는 겁니다. 이순신이 자살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살설에 대해서는 이순신이 54년 살다가 공심에서 살다가 마지막 4시간 남겨놓고, 공심에서 사심으로 바뀐다??? 만약 그랬으면 진작에 그랬겠습니다.
(질문 5; 충무공에 대한 결과는 말이 많은데, 성웅이고 심법이 출가위급 여래위급이라는데. 수양이 인정이 되는데, 어떻게 수양을 했는지 기록이나 말씀있으면 알려주십시오.)
답변; 저도.. 그것을 찾았는데, 결론은 유감스럽게도 못 찾았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그 말은 맞습니다. 수 많은 이순신을 본 사람들이 두입모아 ‘단아한 선비와 같았다. 깊은 수양을 쌓았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이순신이 과거시험을 볼 때 장량이라는 사람이 신선이 되어서 유방을 도와서 중국을 통일했다는데, 이 때 황서공이라는 사람이 쓴 책을 받아가지고 나라 통일되었고, 그를 따라서 신선이 되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했다니, 이순신 답이, ‘사람이 나면 죽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몇 년 언제 그랬다는 기록도 있다.’ 그 순간 시험관이 완전히 기겁을 합니다. 당시 문관이 높고 무관은 아래로 칠 텐데 ‘사람이 나면 죽는 법이다.’라고 이순신이 시험관의 질문에 대답했을때, 이미 내면세계를 갖추었다고 봅니다. 이순신이 무술도 연마했다고, 역사에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술하는 사람한테 물어봐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음 다스리는 법은 어떻게 했느냐, 역사적 사실을 모아보면 이 사람은 능히 자신을 이기는 힘을 가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적을 제압했습니다. 산지사방으로 일어나는 자기 욕심을 탐욕을 제압하는 것이죠. 이순신 자기도 왜 공을 안 세우고 싶겠습니까. 사천해전에서 이랬습니다. 사천해전에서 우리가 열세가 있을 때도 머리수를 가지고 공을 평가하니 적 죽이고 머리 베는데만 데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이순신이 본인이 대신 그 머릿수를 세서 공을 보고할테니 싸움에만 집중하라 타일렀고, 결국 그 싸움에 이순신이 어깨 죽지에 총을 맞지만 전투에서는 이깁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함께 원균이 전쟁터에가서 모두 목을 베어가지고 지 공으로 보고합니다. 이순신은 자기 공이 왜 안 좋겠습니까. 이순신은 부하 공을 드러내는 데는 자기일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뿐입니다. 이순신이 좋아할 거 다 좋아했어요. 첩도 한 사람있었고요. 재산도 꽤 많아요. 이순신 어머니가 가난해서 자식들한테 재산을 다 나눠줍니다. 이순신도 이재에 어두운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러나 공동체의 이익이 걸렸을 때는 그 정돈되는 일이 정연했는데 그 수양을 안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법을 가졌는가. 분명 삼학 했을겁니다. 틀림없이 일반적인 공부 방법 아닙니까. 신중한사람은 원불교 공부법은 경계 떠난 공부법은 아닙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에 보면 경계가 있어지지요. 그 마음을 없게 하라는 것이지요. 경계를 떠난 원불교 공부법은 없지요. 경계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경계를 떠나서 수양을 하는 것은 산에 가서 고기 잡는거랑 뭐가 다릅니까. 심력을 현실적으로 기르는 것이 원불교 공부법입니다. 이순신도 몰랐을 텐데 했다는 것은 소태산 대종사는요 정리해서 이름을 단지 붙였다는 것이지 이전에도 성인들은 삼학이라는 것은 다했습니다. 이순신은 멈춰서 생각했어요. 이렇게 하면 좋으냐 저렇게 하는 좋으냐 선택했을 것이고, 죽기로서 이 방법을 했습니다.
이 구체적인 방법은 활장에 가서 활도 쏘고 땀을 흘리고 오고 이럽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이런 것들은 추측해서 이야기하는데 이순신의 특이한 공부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런 게 아니겠느냐 추측할 뿐...
(질문 6: 얼마 전 케이블 한 예능프로에서 한 한국사 강사가 나와서 이순신의 초심에 대해서 강연을 하던 중, 이순신이 칼에 문구를 새겨가지고 매일매일 초심을 다졌다고하는데, 이 말이 사실인지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초심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위엄을 보이기 위해 칼을 오른손에 쥐는데, 그 칼에, 이순신이 한문 글귀가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이 수양하기 위해서 쓴 게 아닙니다. 아마 그 이순신이 수양을 위했다고 하기는 좀 오바한 것 같습니다. 다음은 이순신의 장쾌한내용입니다.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이게 정승의 표현인데 바다에 맹세하네 고기가 움직이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움직인다.라는 뜻인데 칼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칼귀에 적은 이 글은 호탕한 장수의 기상을 적은 것이지 수양을 적은 글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의적으로 쓴 것 입니다.
이상하게 세상사람들은 이순신에 관해서 열에 아홉 개가 잘못 알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교수는 ‘이순신은 이기지 않는 싸움을 절대 안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결과만 놓고 이순신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도인으로서 이순신의 이해가 세상 사람들은 많이 없습니다. 그 영웅으로서의 모습만 알고, 그게 이순신인 줄 아는데, 이순신은 파면 팔수록 성심으로 묻어내는 인물이며 이를 바탕으로 찾아낸 리더쉽을 발휘할 줄 아셔야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와 사고가 제대로 원불교에서 아는 이순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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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도권 교우님께서 잘 정리해주셨네요.
든든합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