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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金完) 자술 연보
1957.09.28.일(음력) 광주시 장동 출생. 부 경주 김씨 김천수(金天洙) 모 전주 이씨 이선임(李宣妊)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선친은 내가 태어나기 전 목포에서 선박업으로 큰 성공을 하였으나 당시에는 보험이 발달하지 않아 선주로 가지고 있던 선박이 연이어 좌초되어 사업이 기울어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내가 태어날 당시에는 장동에서 「재생약방」이라는 약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1964년 3월. 우리 4남매 모두 광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학생 수가 많은 서석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셜록 홈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과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등을 읽었다. 5학년 여름방학이 되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집 밖에서 놀기만 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집에 붙잡아 둘 요량으로 당시 한국 최초의 무협 소설인 김광주 소설 『하늘도 놀라고 땅도 흔들리고』를 읽게 하였다. 아버지의 전략이 주효했는지 그 후 많은 중국무협소설에 깊이 빠졌다. 초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인 글짓기는 대부분 두 살 위의 둘째 형이 대부분 해결해주었던 것 같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언제나 이런저런 상을 타오는 둘째 형은 글짓기에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듯했다.
1970년 3월.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대 도시에 중학교 입학시험이 없어져 추첨으로 학교를 골라 가는 일명 뺑뺑이로 광주동성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의 영향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군협지』를 비롯한 무협 소설을 간헐적으로 읽었으며 무협지 속에 나오는 중국의 몇몇 한시를 처음으로 접하고 가슴이 뻐근했던 기억이 있다. 고교입시를 위하여 3학년 때는 성적순으로 2개 반을 운영했는데 1반과 2반을 왔다 갔다 하는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다.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때 유행하는 탁구에 심취해서 보충수업도 빼먹고 탁구장에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 1973년 2월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다.
1973년 3월.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여 광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초에 각 학급을 돌며 신입생을 대상으로 동아리 부원 모집을 하는 선배들의 권유에 응하여 광고 문예부에 들어갔다. 형들을 통해 박성룡, 박봉우, 윤삼하, 장백일, 김우창, 이성부, 조태일, 문순태 등등 광고 출신 선배 시인들이 전설적인 학창 시절 기행들과 문학 활동 이야기를 듣고 자부심과 긍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1학년 때는 광고 교지 편집에도 참여하였다. 그해 발행된 교지에 꿈과 현실에 대한 내 안의 느낌을 쓴 「평행선」이란 일종의 수필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활자로 찍힌 내 최초의 작품이다. 1학년 여름방학 때는 각기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중학교 동창들과 배를 타고 홍도에 3박 4일 놀러 갔던 추억이 있다. 가출 감행으로 시작된 두 살 위 둘째 형의 사춘기 앓이로 집안에 걱정과 분란이 계속되어 나는 특별히 사춘기를 경험할 틈이 없었다. 2학년에 진급하려 할 때 진로를 고민하다가 글을 써서는 생계를 해결하기 어려우니 확실한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 이과를 택했다. 이과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국어, 한문, 영어 등 언어영역에 관심이 많았고 재미도 있었다. 3학년에 진급하자 누구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간신히 전남의대에 합격하였다. 대입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아버지가 보시는 박경리 소설 『토지』를 아버지 몰래 가져와서 틈틈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1976년 2월.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3월, 전남의대에 입학하였다. 함석헌 선생님이 지어준 <한울이>라는 의과대학 서클과 농구부에 가입했다. 한울이는 ‘크게 울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평생 나와 함께하는 영혼의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만났다. 1년 선배로 나해철 형이 있었고, 형의 친구인 박몽구, 곽재구 형도 문리대 교정에서 가끔 볼 수 있었다. 독서신문사(제360호)에 투고한 글이 채택되어 “귀한 원고로 제360호 지면을 빛내 주셔서 감사하는 뜻으로 이 책을 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백철의 『만추의 사색』이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문리대 의예과 시절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A. J. 크로닌의 장편 소설 『성채』 등 고교 시절과 비교해서는 다방면의 책을 읽고 서클 선후배들과 토론도 할 수 있었다. 부족한 용돈에도 틈틈이 민음사, 문지, 창비에서 나오는 시집 시리즈를 사서 읽었다. 당시에는 놀이 문화가 부족하여 틈나는 대로 주말마다 이 지역의 산을 찾아다녔다. 지리산이 가장 많이 갔던 산이었다. 의예과 2학년 대학 축제 동안 4박 5일로 지리산 종주 산행했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서클 행사 때 함께 낭송한 이성부 시인의 「어머니」라는 합창시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전남대학교 학보사에 투고한 시 「거리에서」, 「79 여름」이란 시가 채택되어 당시로는 큰 원고료를 받아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이 남아 있다.
1978년 3월. 본과로 진학하면서 용봉동 문리대 캠퍼스에서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있는 학동 의과대학 캠퍼스로 옮겨왔다. 집도식과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마종기 시인의 「해부학 교실」 등의 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의사도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마음과는 달리 해부학 구두시험으로 시작된 본과 생활은 열심히 따라가지 않으면 바로 뒤처져서 재시험을 봐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이며 시험의 연속이었다.
1979년 10월. 군사 쿠데타와 18년간 독재 통치를 해오던 박정희의 시대가 10·26. 사태로 막을 내렸다.
1979년 12월. 전두환 일당이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1980년 3월. 이른바 서울의 봄을 맞아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국민의 함성이 전국의 대학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타올랐다. 전남대학교에서는 나의 고교 3년 선배 박관현이 직접선거에 의한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학내시위는 거리로 진출했다. 연일 금남로 전남도청 앞 광장에 운집해 민주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우리 의과대학생들도 흰 가운을 입은 채로 부속병원이 있는 학동에서 도청광장까지 행진하곤 했다. 5월 18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선포되었다. 5·18기간 동안 공수부대의 포악한 진압과 살육으로 친구들이 흩어졌다. 친구들과 연락이 끊기었다. 많은 친구가 광주를 떠나 다른 곳에 피신한 상태였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의대 동창 박찬석(후에 정형외과 전공)만이 그대로 집에 있어서 서로 연락하여 항쟁 기간 내내 집에서 도청으로 매일 나가 시위 물결에 참여하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다. 도청에 가면 투사회보와 대형 게시판에 상황이 적혀 있었다. 당시 받았던 투사회보와 함께 꼼꼼하게 기록했던 일지도 있었는데 이사 다니면서 분실되었다. 전남의대 교지<<무등원>>에 시 「하오下午」, 「동행同行」을 발표하였다. 그해 가을에 있던 의과대학 발표회(YMCA)에 당시 <보라문학회> 회원이던 박형로, 장종대 친구의 권유로 시를 발표하려고 했으나 학생과장 교수의 예비검열에 걸려 발표하지는 못했다.
1982년 2월.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서울에 있는 한림대학 부속 강남성심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레지던트를 수료하고 내과 전문의가 되었다. 인턴 수련 중에 대학 시절부터 5년간 연애했던 해남 윤씨 윤해경(尹海鏡)과 결혼하여 아들 김지하(金芝河)를 얻었다.
1986년 2월. 전문의 취득 후 군의관으로 임관하여 3년간 육군에서 복무하였다.
1989년 5월. 광주보훈병원 내과 과장으로 부임하였다. 병원에서 만난 관리부서의 광주일고 출신 이창희 선배를 만났다. 그는 전남의대에 합격했으나 가정 형편상 진학하지 못하고 공무원이 되었으며 문학적 소양이 남아 있고 독서를 좋아하였다. 마음이 서로 통하여 만나면 법정 스님, 최인호의 글과 문학,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창희 선배의 친형인 이용희 님은 이청준, 한승원 소설가와 친구였으며 「까마귀」라는 희곡으로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였다. 젊은 내과 과장으로서 혼자 신설 병원의 내과 전체 환자 및 중환자실 환자를 돌보는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문학을 우선순위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며 환자 보는 것과 근무하는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만드는 일에 정신이 가 있었다.
1998년 2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돼지 관상동맥 스텐트 재협착에 대한 Endothelin 수용체 차단제 국소전달요법의 효과』라는 논문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1년 1월, 광고문예부 친구인 김형근이 문예부 모임이 있다고 하여 함박눈이 오는 날 전남대학교 상대 후문<진미촌>이라는 식당에서 졸업 후 처음으로 문예부 선후배들을 만났다. 전국에서 12명 정도가 모였다. 나종영, 김동하, 김형수, 김민휴 시인을 만났다. 그 후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나를 전후로 10여 년 선후배 광고문예반 동문이 다음 카페에 <늘푸른아카시아> 라는 카페를 만들어 온라인에서 교류하며 문학 활동에 정진하기로 하였다. 카페에 틈틈이 글과 시를 쓰면서 잃어버렸던 오래전의 문학적 감수성이 되살아났다.
2001년 3월. 전남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 창작 과정에 등록하고 1년 동안 다녔다. 평론가인 김동근 교수, 소설가인 박양호 교수를 만났다. 그 후 사회교육원 문학회 이름으로 2001년 동인집 1집 「해탈」, 2003년 동인집 2집 「여름, 일로 연꽃방죽에서」를 내었다. 당시 회원으로 배다인 동화작가, 서애숙, 석연경 시인, 박정숙, 김용매 소설가 등이 있었다.
2005.04.01. 광고 문예부 동문 작품집『동연同緣』을 발간하였고, 시 「구름의 미학」 외 4편과 수필 「만추유감」을 발표하였다. 이성부, 문순태 선배님이 시와 글을 보내주셨다.
2007년 3월. 후배인 김민휴 시인의 권유로 광주대학교 이은봉 교수님이 주관하는 시 독서 모임에 처음 참여했다. 이때부터 나의 본격적 시 공부가 시작된 셈이다. 모임 이름이 <진진시>에서 <하늘빛 시인들>로 바뀌고 구성원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지만 나는 2018년 8월 이은봉 교수가 정년퇴임까지 10년간 꾸준히 그 모임에 참여하였다. 이 모임은 사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매주 1회, 이후 2018년까지 8년 동안은 격주 1회로 광주대학교 교수연구실, 학과실에서 1회 3교시로 18년간 계속 이어간 시 공부 모임이다. 고전과 인문사회과학 그리고 시론 읽기 1시간, 기성작가 최근 발표작 읽기 1시간, 회원시 합평 1시간 원칙을 지켰고 전국의 서원, 문인 생가 또는 문학관 답사 등 문학기행을 하계 동계에 1회씩 빠짐없이 실시했다. 많은 책을 읽었으며 그중 기억나는 책으로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김종철의 『땅의 옹호』, 권혁웅의 『시론』, 『라캉』, 『장자』,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 등이었다.
2008년 12월 10일 진진시 동인 제2사화집 『떡갈나무의 마음이 아리기 시작하는 달』, (시와사람)에 시 「 창평국밥집 」 외 4편을 발표했다.
2008.12.18일 광주 동구청 앞 벤처빌딩 7층에서 열린 비타포엠 창립총회에서 신덕룡, 고재종, 이지담 시인 등과 <비타포엠> 창립 이사로 참여했다.
2009년 3월 시전문 계간지 『시와시학』 봄호 신춘문예에 「일어서는 강」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당시 심사위원은 이가림, 유재영 시인이었다.
2009년 이은봉 교수의 추천으로 광주전남작가회의 및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2010.4.24. 제8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자인 김지하 시인 부부를 이가림 시인의 부탁으로 광주에서 강진까지 1박 2일로 내 차로 모시고 다녀왔다.
2011년 03월 05일 : 김석환, 맹문재, 이혜원, 이은봉 교수의 시 해설서 『2011 오늘의 좋은 시』(푸른사상사)에 시 「깡다리 백반집」이 실렸다.
2011.05.30. 첫 시집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를 시학시인선 44번으로 출간했다.
2012년 6월 9일 오후 6시, 서울역 내 KTX5 회의실에서 한국의사시인회(The Korean
Physician Poets Association) 창립총회에 서면으로 참가했다.
2013~2014년. 신덕룡, 고재종 시인의 뒤를 이어 2년 동안 제3대 비타포엠 회장으로 봉사했다.
2014년. 김종철 시인이 시인협회 회장일 때 『시와시학』 발행인인 김재홍 교수의 권유로 한국시인협회에 가입했다.
2014년 06.05. 늘푸른아카시아 동인 제2집 『잠들지 못한 긴 세월』에 「일어서는 강」 외 2편을 발표하였다. 시청각 미디어 센터에서 당시 회장인 이상렬 선배가 주관, 문순태, 오덕렬 선생님을 모시고 출판기념회를 했다.
2014.09.30. 제2 시집 『너덜겅 편지』를 푸른사상 시인선 48번으로 출간했다.
2015년 03월 10일 : 이혜원·맹문재·김석환.이은봉 교수의 시 해설서 『2015 오늘의 좋은 시』(푸른사상)에 시 「한 사람」이 실렸다.
2015년 3월. (사)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 발기인 총회에 참석하고 창립 이사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6.06.29. 선배인 이상렬 시인 유고시집 간행위원회에 참여하여 『보이지 않아도 아름다운』 문학들 시선 038, 간행했다. 광주고등학교에서 이상국 시인을 모시고 출판기념회를 개회하였다.
2017년 내 전공인 순환기내과 중 영상 분야의 학회인 <한국심초음파학회>에서 한국심초음파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1년간 봉사하였다.
2018.04.20. 제3 시집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을 천년의시작 시작시인선 0257로 출간했다.
2018년 10월.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시인상을 시집『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로 수상했다.
2019.1.1.~2020.12.31. 제4대 한국의사시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의사시인회>는 매년 사화집을 발행하고 있다. 의학과 시의 통섭, 그러나 각각의 고유한 빛이 더 빛나는 통섭을 실천하고자, 창립취지문에 밝힌 대로 의학계와 시계(詩界) 모두를 위한 지혜의 경계 없는 가능성의 실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019.2.28. 30년 동안 재직한 광주보훈병원 순환기내과에서 정년퇴직했다. 광주보훈병원 교육연구실장, 제1 진료실장, 심혈관센터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2019.04.01. 광주시 남구 대남대로에 <김완 혈심내과의원>을 개원하여 개원의로서 제2 인생을 시작했다,
2019년 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고 주영국 시인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기였으나 5·18민주항쟁 40주년 기념<오월 문학제>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조직의 발전과 내실의 활성화에 힘썼다.
2020년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으로 참여했다. 조직위원장에는 소설가 한승원, 당연직으로 부위원장 이진식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대리, 고재종 시인,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김남일 소설가, 김완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김재용 원광대 국문학과 교수,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이동일 경희대 산학협력중점교수, 이화경 소설가, 임원식 광주문인협회 회장,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최창근 연출가 등 13명이 조직위원으로 선임되어 함께 활동했다.
2021년 3월. 아시아문학공부하기 모임(=채희윤 소설가 외 15인)에 참여했다. 돌아가면서 발제를 맡아서 월 1~2회, 아시아의 소설이나 시를 함께 공부하며 토론하고 있다.
2022.03.07. 제4 시집 『지상의 말들』을 천년의시작 시작시인선 0414로 출간했다.
2022년 1월~2023년 12월. 「시와시학문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시와시학』 등단 이후 매년 발행하는 사화집에 참여했다.
2022년 7월 26일, 민주 인권 평화를 지향하는 사단법인 광주평화포럼 3대 이사장으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시민과 함께 인권 생명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준태, 김수 시인의 뒤를 이어 봉사하고 있다.
2022년~2023년. 한국작가회의 선거관리위원회 위원과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23년 1월 9일(월) ~ 15일(일) 5박 7일간 제1회 길동무 아시아문학ㆍ역사 기행으로 베트남 중부 : 다낭, 훼, 호이안 등을 다녀왔다. 염무웅, 김판수, 이경자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문인, 예술가 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24년 5월. 5·18 문학상 시 부문 신인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2024년~2025년. 부산에서 배재경 시인이 발행하는 시전문 계간지『사이펀』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25.09.25. 주영국 유고시집 간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주영국 유고시집 『구름 사내』 푸른사상 시선 215를 출간하였다. 2025년 10월 17일, 주영국 시인 3주기에 맞추어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유고시집 출판기념회를 개최하였다. 전국에서 온 많은 문학의 도반들이 모여 함께 고인의 문학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이승철, 김이하, 김수 시인과 함께 국립임실호국원에 안장된 고인의 묘역(충령당제2관 2245307)에 유고시집을 올려두고 참배했다.
2026년. 현재는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 (사)광주평화포럼 이사장으로 제5 시집 및 산문집을 준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