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일, 사랑할 시간] 16
1. # 요양원 지석방 - 낮 (15회 엔딩)
며칠 사이에 표가 나게 나빠진 지석. 미연, 지석의 약
을 종류별로 하나씩 네 개 정도를 꺼내 손바닥에 담아 지석을 안
아 일으킨다. 미연에게 안겨, 미연의 손바닥을 마뜩찮게 내려다보
며 한숨 쉬는 지석.
미연 왜?
지석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이거 먹으면 또 졸린데...
미연 아픈 것보다 낫잖아. 얼른 먹자, 아?
지석 (아! 밥을 받아먹고, 힘없는 미소) 오늘은 못나가 놀겠
다. 기운이 없어. (미연이 건네는 물 컵 받아 마신다)
미연 별 걸 다 걱정 해. 먹고 자. 난 자는 얼굴만 구경해도
되니까...
지석 (웃으며, 미연에게 기대는데...)
그 순간! 쾅! 문을 열고 정란이 들어온다. 두 사람의 모
습에 피가 거꾸로 치 솟는 정란! 갑작스런 정란의 등장에 숨이 막
힐 듯 놀라는 미연과 지석!
곧이어 들어오는 태훈! 미연이 지석을 안고 있는 모습
에 미간에 경련이 일며
뚫어질듯 노려보다가, 차마 못보고 외면하고..!!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못하고 있는 네 사
람. 차분히 분노를 가라앉히는 정란. 지석 앞으로 다가간다. 모두
의 시선, 정란에게 모이는데.. 지석 앞에 차분히 앉아, 지석의 손
을 잡고 간절히 지석을 올려다보는 정란.
미연, 그런 정란의 모습에 지석을 감싸고 있던 손을 조
금 흘러 내리는데..
정란 (지석의 눈을 보며 조용히, 간절히) 여보!
미연 ...!
지석 ...!
정란 집으로... 가요.
태훈 ...!
정란 ...여기 말고... 당신 딸하고 내가 있는 집에 가요.
지석 ...!
미연 ...!
정란 ...나도... 당신 사랑해요...!
지석 ...!!
미연 ...!!
태훈 ...!!
정란 (울먹이며, 다시 한 번 간절히) 집으로 가요...여보!
미연 ...!
지석 ...!
2. # 요양원 앞 - 낮
간단히 짐을 챙겨 들고 지석의 손을 잡고 지석을 조심
스레 부축하여 나오는 정란. 뒤로 멀찌감치 미연이 울먹이는 얼굴
로 따라오는데, 지석, 뒤의 그런 미연 느끼면서도 정란 때문에 한
번 돌아보지도 못한다. 미연 뒤를 따라오는 태훈, 지석의 뒷모습
을 쫓는 미연의 뒷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자꾸 외면하며 미연을
따라온다. 차 문을 열어주고 지석을 차에 태우는 정란. 미연, 가까
이 오지 못하고 고목나무쯤에서 숨어보듯 본다. 차창으로 그런 미
연을 보는 지석. 미연을 향해 희미하고도 슬픈... 이별의 미소를 띄
워 보낸다. 잠깐이었지만 행복했다는...! 그 미소에 미연 절망하
며 울컥! 울음이 치솟는 순간, 차가 급출발하여 떠난다!
미연 .....!!!
심장이 후드득 내려앉으며 지석이 떠난 마당으로 나오
는 미연. 땅바닥에 난 자동자 바퀴자국... 그 자국을 따라서 몇 발
자국 걸어보는 미연. 아이처럼 설움의 눈물이 난다. 태훈, 그런 미
연을 보며 다가오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한 채 참담하게 외면하며
서 있다.
3. # 달리는 정란 차 안 - 낮
운전해 가는 정란. 이제야 눈물이 쏟아진다. 지석은 기
력이 소진된 채 창밖만 보고 있다. 쏟아지는 눈물을 수습할 수가
없는지, 정란, 차를 세운다.
지석 (정란을 본다)
정란 (울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막고)
지석 (그런 정란을 초첨 없는 눈을 바라보는데) ...
정란 (순간 지석을 끌어안는다!)
지석 ...
정란 미안해요...! 사랑해서...!
지석 ...
정란 (풀고, 이를 앙 물고 정면 보며) 힘들게 해서 미안해
요...! (출발해간다)
지석, 기력이 소진되어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못한 채
그저 말간히 창밖에 시선을 둔다. 약 기운 때문인지 스르르 눈이
감기는 지석. 세상이 하얗게 덮힌다.
4. # 요양원 앞 - 낮
지석이 떠난, 정란의 차 바퀴자국이 난 곳에 주저앉아
있는 미연. 엄마 잃은 아이처럼 속상하고 분한 미연. 그런 미연의
곁으로 다가오는 태훈.
태훈 (미연을 내려다본다) 바보...!
미연 (글썽글썽...)
태훈 (분해서) 이 바보!
미연 ...
태훈 일어나!
미연 ...
태훈, 미연의 손목을 잡아 이끌고 간다.
5. # 지석 거실 - 낮
지석을 조심히 부축하여 데리고 들어오는 정란.
지석모, 놀라며 무슨 일인가 싶다.
지석모 이게 뭔 일이야? 왜 와? 응? 왜 와?
지석 (뭐라도 말하고 싶은데 까부라지는)
정란 조금 있다가요, 어머니. 지석씨 좀 쉬구요. (침실로 가
고)
지석모 그러니까 쉬어야 되는 사람을 왜 데리고 와?
6. # 지석 침실 - 낮
지석을 데리고 와 침대로 눕히는 정란. 지석모, 따라
들어와 정란을 보며 무언가 불안하다! 정란이가 미연이를 눈치 챈
게 아닌가 싶어 자기도 모르게 정란에게 날이 서는 지석모! 정란
손을 잡아 끌고 나간다. 침대에 눕자마자 맥을 놓고 눈을 감는 지
석.
지석 ...
7. # 지석 거실 - 낮
지석모, 정란을 방에서 이끌고 나온다.
지석모 왜 데리고 왔어? 거기 잘 있는 애를 왜 데리고 와?
정란 그럴 일이 있었어요.
지석모 그럴 일 뭐?
정란 (외면하며 말 못하고) ...
지석모 요양원에서 그럴 일이 뭐가 있다고 애를 끌구 와?
중병 든 애한테 병 고치는 거 말고 뭔 일이 더 있다고
차로 몇 시간씩 싣고 날러서 애를 잡냐고, 어?
정란 (잡는다는 말에 울컥해서) 어머니...
지석모 요양원에선 마음이 편해선지 한결 건강해 보이드만,
며칠새 애 얼굴이 왜 반쪽이 됐어? 응? 지 좋은 데 있겠다면 거기
놔두지 왜 끌고 다녀, 왜? 왜! (답답한!)
정란 ...(의심) 어머니, 혹시 저 모르게 요양원에 가셨어요?
그럼, 거기 그 여자 들락거린 것도 아셨겠네요?
지석모 ..여..여자라니? 여자 누구?
8. # 미연 거실 - 밤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분노를 억누르며 캔맥주를 마
시고 있는 태훈.
차분히 마시다가 점점 화가 치솟아 우르르륵 술을 입
안에 들이붓더니 캔을 구겨 TV화면을 내던진다! 남은 술이 터져
TV화면과 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지고,
9. # 미연 침실 - 밤
분함과 설움, 상실감에 이불을 턱에까지 바쳐 덮고 눈
을 감고 있는 미연.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훈. 침대에 파묻혀 있는 미
연에 더 화가 난다.
성큼성큼 미연의 앞으로 다가오는 태훈.
태훈 ...일어나.
미연 ...
태훈 일어나! (참담함에 눈물이 다 날 것 같다) 이런 꼴이나
당하라고 내가 당신 보낸 줄 알아!!
미연 (울음 가득한 얼굴)
태훈 왜 울어? 뭐가 억울해서 울어, 이 바보야?
미연 ...
태훈 이게 당신이 말하는 사랑이야? 나하고 이혼까지 각오
하고 그 자식하고 하고 싶었던 사랑이 겨우 이거야? 이런 꼴 예상
못하고 바보 처럼..미련하게..철없이..(폭발한다)..미치겠다! 미치
겠어...!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면서 한 사랑이 고작 이딴 거야?!!
미연 ...
10. # 지석 거실 - 밤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홈빠에 걸터앉아 외면하고 있
는 정란. 지석모 코너에 몰려 우두망찰 넋을 놓고 서있다.
정란 (분해 울며) 병찬씨가 지석씨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
다고 그랬어요. 그 말 곧이곧대로 믿었는데...전부 다 나를 따돌리
고 지석씨랑 그 여자 만나게 해줄려고 그런 거였어요? 병찬씨도,
덕구씨도, 어머니도, 전부 다요?
지석모 ...혜진아
정란 제가 혜진 아빠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터지고
만다) 저만 나쁜 년 만들어놓고..어머니마저 한편이 돼갖구...
지석모 (정란에게 다가와) ...혜진 에미야.
정란 저도..혜진 아빠 사랑한다구요!
지석모 (두손을 잡고) 미안하다. 미안한데..
정란 (격하게 우는)
지석모 혜진 에비..사랑한다면.. 다시 요양원으로 보내주자.
정란 ...!
지석모 마지막.. 이승에서의 마지막 소원이라는데... 들어주
자.
정란 ...?
지석모 니나 내 품보다... 미연이.. 품에서 죽고 싶다는데..
정란 ...!
지석모 걔가 속에 미연이 품고 있다고 해서 니들한테 뭐 소홀
한 거 있었냐?
그냥 지 속에 담아놓고 지 혼자 썩이면서 니나 혜진이
한테 얼마나 극진히 했냐?
정란 ...!
지석모 그런 애 마지막 소원이라는데.. 아, 평생 가슴에 품고
있다가 죽기 직전에 터져버린건데..
정란 (울분이 올라오며) 어머니..!
지석모 젊으나 젊은 나이에 볕도 못보고..(오열이 터진다) 평
생 애 몸속에 암덩이 심어놨음 됐지, 죽을 때까지 발목을 붙잡아
야 돼?
정란 ...! (눈물이 차오르고) 어머니!
지석모 (제 정신이 아니다!) 어머니고 저머니고! 식구들 다 피
해서 저 혼자 죽으러 가는 길에 한 맺힌 그 애 잠깐 좀 만나고 가겠
다는데 그걸 못 참고 끌고 와? 왜 죽는 것도 맘대로 못하게 해? 평
생 애를 잡았으면 이젠 좀 풀어줘야지, 응? 밥 먹어야 되는 앨 빵 먹
이고, 숭늉 마셔야 돼는 앨 커피 마시게하고, 뻑하면 니 집안 말아
먹었다고 죄인 취급하고..! 평생 한이 맺혀 생병얻어.. 다 죽게 생긴
앨 왜 옭아매? 응?
정란 (눈물 참으려 이를 앙 물고)
지석모 지석이 죽고 난 다음 날로 니가 딴 놈하고 결혼을 하든
가 말든가 난 일절 상관 안 할테니..제발 우리 지석이.. 미연이한
테 보내주자 응?
정란 ...(눈물 쏟아지며, 원망으오..) 어머니..!
지석모 (안달이 나 정란의 손을 흔들며) 제바알, 응? 혜진 에
미야?
정란 불륜을 저지른 건 지석씨고 그 여쟈지 제가 아니에요.
왜 다들 저한테 이러세요?
지석모 ..
정란 저도 그 사람.. 사랑해요..
지석모 너는 늦었어.
정란 ...어머니..!
지석모 시간이 없어! 당장 지석이가 미연이 품에서 죽고 싶다
잖어!
정란 ...
지석모 죽는 놈이 불쌍한 거지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어. 혜
진 에비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그만 보내주자, 응? 혜진 에미
야?
정란 (아무도 내 편이 없다. 설움의 눈물을.....!)
11. # 지석 침실 - 밤
낮에 와서 한 번도 깨지를 않고 죽음 같은 잠에 빠진
지석...
그 얼굴 위로 또 다시 피아노 선율이 들려오기 시작한
다.
<#회상 몽따쥬-1회. 피아노를 치는 미연의 손 디졸
브/13회. 풍차 있는 곳에서 가족과 헤어져 언덕을 넘어가는 지석
의 실루엣 디졸브/ 우는 지석의 눈에 입맞춤하는 미연 디졸브/ 1
회. 고등학교 시절 처음 손 잡는 지석과 미연 디졸브/마치 영혼이
얽히듯 마주잡는 두 사람의 손 디졸브>
12. # 미연 침실 - 밤
피아노 소리 미약하게 이어지고, 빈 바에 홀로 누운 미
연. 그 얼굴 클로즈업에 점점 선명해지는 피아노 선율. 그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는 미연!
미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
13. # 미연 거실 - 밤
테이블 위에 흐트러진 찌그러진 빈 캔맥주병들..태훈,
담요를 덮고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방에서 외투를 들고 후두두둑
달려 나오는 미연.
태훈 (일어나는) 어디 가게?
미연 (대답도 없이 서둘러 현관으로 가고)
태훈 (따라가 잡으며) 어디 가냐고?
미연 그 사람한테..!
태훈 (기막힌) 뭐?
미연 (불안감에 떨며) ..그 사람.. 이상해..아.. 안 될 것 같
애..
태훈 ...뭐?
미연 (막무가내로 나가는데)
태훈 (잡아 채며, 슬픈 분노) ...미연아!
미연 가야 돼. 가봐야 돼요.
태훈 그 사람 와이프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어! 가긴 어
딜 가? 그 집 안방에라도 들어갈래?
미연 태훈씨! 나 좀 데려다줘요.
태훈 (기막힌) ..!!
미연 나 좀 그 사람한테 데려다 줘요.
태훈 미연아아...!!
미연 (애절하게 태훈을 바라보며) ...무서워. 같이 가줘.
태훈 ...!!!
14. # 지석 거실 - 밤
휑한 거실에 홀로 울고 있는 정란. "끄응.. 윽! ..으
으.." 방안에서 지석의
짐승 같은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눈물을 닦고 방으로
가는 정란. 그 사이
"끄으으으으!" 선명하게, 고통스럽게 들리는 소리! 정
란, 놀라 달려가고
15. # 지석 침실 - 밤
지석, 침대 위에서 배를 잡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고
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문을 여는 정란.
정란 왜 그래요? 또 아파요?
지석, 잠결에 찾아온 통증에 정신도 제대로 못차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옆구리를 붙들고 화살 맞은 어린 짐승처럼 몸을 비튼
다!!
정란, 서둘러 사이드 테이블의 지석의 약통에서 약과
물을 가져오는데, 몸부림 치는 지석의 팔에 채여 침대에 물과 함
께 다 나동그라지고,
정란 여보..! ...지석씨!!
지석, 너무 아파 소리도 미처 못나오고, 근육이 풀려
손바닥으로 바닥을 제대로 짚지도 못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제대
로 가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끄억끄억!!' 하다 쿠웍..! 피
를 토해내고 만다. 기겁하는 정란. 어쩔 줄 몰라하며 어머니를 부
르는데,
16. # 지석 집 앞 - 밤
택시가 도착하고 넋이 나가서 내리는 미연. 태훈도 결
국 지석의 집 앞까지 미연을 따라오고 말았다. 미연, 알 수 없는 두
려움에 쭈그려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태훈, 그 옆에 서서 그런 미
연을 내려다보며 안쓰럽고 답답하다..!
태훈 그만 가자.
미연 ...(주문 처럼 중얼중얼) 괜찮어..
태훈 집 안에까지 들어 갈거야?
미연 (계속)..괜찮어..
태훈 ...그만 가자...
미연 (계속)...나 여깄어...괜찮어...괜찮어...
태훈 (그제서야)??...
미연, 끝없이 괜찮어!를 연발하고, 태훈, 미연을 내려다
보다 자기 외투 단추를 풀어 한쪽을 벌려 미연을 감싸며 그 옆에
같이 쭈그려 앉는다.
17. # 지석 침실 - 밤
뛰어들어오는 지석모. 울컥울컥 피를 토하는 지석을
끌어 안는데, 너무도 충격적인 모습에 울며 외면하는 정란. 지석
모 옷소매로 지석의 피 묻은 입가를 닦아주며 "괜찮다. 아가. 엄마
여기 있어. 괜찮다. 아가"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어 지석을 달랜
다. 엄마 품에 안겨 바들바들 몸을 떠는 지석. 고통에 눈이 뒤집히
며 식은 땀이 뚝뚝..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지석...!!
18. # 지석 집 앞 - 밤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저 먼데서부터 들려와 지석 집
앞에 서는 119구조대!
괜찮어를 연발하던 미연, 싸이렌 소리와 구조대 차에
순간 하얗게 질려버리는데, 집에서 실려 나오는 혼절한 지석! 미
연, 지석을 향해 뻗어가는데, 태훈, 정란과 지석모를 보고 미연을
끌어당겨와 품에 안고! 떠나는 구조대... 멀어지는 구조대를 절망
적으로 보며 서 있는 미연과 태훈..!!! 미연, 심장이 후드드득 내려
지며 주저 앉는다!
(F.O.)
19. # 병원 로비 - 아침
지석모와 정란, 구원의 얼굴로 병찬을 바라보고 있다.
병찬, 그런 두 사람 보며, 괴로움을 감추고 되도록 애둘러 말 한
다.
병찬 통..통증 때문에 그런거는.. 신경총 절제 수술을 하면
됩니다.
지석모 그럼 좀 안 아파?
병찬 예.
정란 신경을 절제시키면 다른 감각도 마비되는 거 아니에
요?
병찬 예 뭐.. 통증을 못 느낀다는 건.. 다른 일반 감각도 못
느낀다는 거니까..
지석모 (뭔 말인가 싶어 병찬과 정란을 번갈아보고)
정란 (조용히 무너지며) 피를 토했는데...
병찬 토혈은.. 식도 정맥류가 파열돼서 그래요.
지석모 지금도 계속 토해?
병찬 약물 치료로 일단 정지시켰어요.
정란 그럼 깨나도 밥을 못먹나요?
병찬 ..식도.. 뿐만 아니고.. 아마.. 안의 내부기관들이 지금
쯤이면 다 유착이 됐을 거에요. 식도를 넘긴다고 해도 안에서 소화
를 못시켜요.
지석모 (두 사람 번갈아보다가 정란 보며) 밥을 못 먹어? 왜?
정란 (눈물 머금고 애써 차분히) 언제 깨나나요?
지석모 그러게. 뭘 이렇게 오래 자? 어제 낮부터 잤는데..
병찬 (두 사람 시선 못 마주치고 조용히 무너지는) ...
정란 (병찬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음을 보고) 안..깨나나요?
병찬 (얼른) 아니요. 출혈로 인한 쇼크라 수혈하고 있으니
까 깨납니다.
깨나요. 깨나긴.. 깨나는데.. 깨나도.. 정상적인.. 생활
은 힘듭니다.
지석모 뭔 소리야? 어제도 지 발로 걸어 들어왔는데.. 뭔 생활
을 못햐?
병찬 (지석모에게) 예. 힘이 든다는 거지.. 못하진 않습니
다. 아직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머.. (눈치 보며 두 사
람에게서 도망치듯 얼른 뒤돌아가고)
정란 (아득해지고)
지석모 (암담해지다가 돌연 정란에게 돌아서서) 내가 델구 오
지 말라 그랬지! 몸 편히 (제 가슴 퍽퍽 치며) 맘 편히 있는 애를
왜 몇 시간씩 차를 태워 끌고 와서 명을 단축시켜! 왜애!
정란 (눈물도 없이 지석모의 폭언을 받으며) ....
코너 돌아 모서리 벤치... 미연이 투명하게 굳어서 앉
아있다.
그 옆에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외롭게 앉아 있는 태
훈...
20. # 왈숙 원룸 - 낮
왈숙의 다리가 덕구의 배에 걸쳐져 있는 자연스런 자
세로 침대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는 덕구와 왈숙.
덕구, 보던 만화책을 스르르 내려놓으며 핸드폰 너머
병찬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덕구 ...!!!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저번에 당구 칠때까지
만 해도 괜찮았잖아.
왈숙 (낌새가 이상해 덕구 보는)
덕구 언제 그랬는데?...(놀라며) 어..어젯 밤에?
친구가 쓰러진 그 시각에 왈숙과 침대에 있었던 덕구.
친구의 불행이 어젯밤 왈숙과 자신의 관계 때문인 것 같아 참을
수 없어 자신의 배에 걸쳐진 왈숙의 다리를 확 치워버린다.
왈숙 아얏...(침대 밑으로 떨어진다)
덕구 (금방 그렁그렁해지며) 그럼.. 안깨나? ..영엉? ..언제
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버럭) 그러니까 언제 깨나냐구 이 자식
아!!!
왈숙 (침대 아래에서 올라오며 화들짝!)
21. # 병실 - 낮
수혈팩, 링거, 산소 공급기 등 중환자실 환자에 버금가
는 상태의 지석.
지석모, 깨어나지 못하는 지석의 팔 다리를 연신 주무
르고 있다.
지석모 일어나..아가!..이 에미가 미연이 붙들어다 밧줄로 꽁
꽁 붙들어매주께.. 일어나..응?
지석 .....
22. # 병실 앞 복도 - 낮
정란, 죄를 지은 것 같아 차마 못들어가고 의자에 꽁
꽁 얼어서 앉아있다.
그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오는 태훈.
정란 (태훈 올려다보면)
태훈 (한 없이 지친) 잠깐.. 좀 뵐 수 있을까요?
정란 ?
23. # 병원 로비 - 낮
시간이 정지한 듯 꼼짝 않고, 까무룩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로 앉아있는 미연.
덕구가 입구에서 놀라 멍한 얼굴로 '지석아.. 지석
아..!' 부르며 달려온다.
미연, 그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앉아있다.
태훈E 난 어쩔 수 없는 건.. 포기하는 편이에요.
내 아내... 이제 제 손을 벗어났습니다.
24. # 병원 일각 - 낮
각자의 슬픔으로 따로 나란히 앉아있는 정란과 태훈.
정란 (태훈을 대신하고 싶은 심정이 아니다) ...
태훈 (자포자기한..) 근데 저렇게 놔두면... 안될 것 같아
서...
정란 ... (외면한다..!)
태훈 얘기 들어보니까.. 얼마 안남았다 그러는 거 같은데...
정란 (냉정히) 어림 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데리고 가세요.
(일어나 가고)
태훈 (별 동요 없이 땅만 보며) .....
정란 (되돌아오더니, 이해 못하겠단 얼굴로) 내 남편한테..
빠져 있는 여잘... 왜 그렇게 아끼고 위해줘요? 당신도 남잔데... 자
존심도 없어요?
태훈 제 아내한테 바져 있는 남편.. 포기 못하시긴.. 그 쪽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정란 (태훈 보는... 같은 처지...) ....
태훈 (그저 보는데) ...
정란 (그래도 이해 못하겠단 얼굴로 돌아서 간다)
태훈 ....
25. # 병원 로비 - 낮
정란, 들어오다 로비에 앉아있는 미연을 본다. 밤새 꼼
짝도 안하고 한 자리에 얼어붙어 있는 미연. 고개 돌려 정란을 본
다. 독하게 노려보다 외면하며 가는 정란. 미연, 다시 정면 보며 움
직이지 않는다. 태훈, 들어와 미연 옆에 앉는다.
태훈 (깊고 긴 한숨) ........
미연 .......
26. # 병실 - 낮
지석모, 지석의 발을 주물러주고 있고, 정란, 모두 외
면하며 창밖만 보고 있고,
덕구, 지석의 손을 악수하듯 잡아 매만지며 자는 지석
의 얼굴을 보고 있다.
덕구 (우울한 분위기의 두 사람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
요. 기절 한 게 아니고 자는 거래요. 몸이 피곤해서 좀 오래 깊게
자는 거래요. (지석 보며) 잘 자네 자식..! (서글픈 미소를 씨익..
웃어주는)
지석 ......
27. # 여의도 환승 주차장 - 밤 (판타지)
새벽 운행을 하는 버스만 드문드문 정차를 한다. 미연
이 매일 타고 다니던 버스가 도착을 하고, 문이 열리고 내리는 요
양원의 대머리 꼬마. 병색이 완전히 가셔져서 씩씩하게 내리더니
휘휘 둘러보고 방향을 정해 씩씩하게 걸어간다. 볼 일이라도 있는
듯이.
M. 미연의 피아노 소리가 약하게 울리기 시작하고...!
28. # 병원 로비 - 밤
요지부동으로 앉아있는 미연. 그 옆 태훈, 팔짱끼고 고
개를 기울이고 있다.
M. 마치 경고음처럼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움찔..! 하는 미연.
비틀거리며 일어나 두려움에 휩싸여 병실 쪽으로 간
다.
태훈, 잠깐 잠이 들었는지 미연이의 움직임을 모른다.
29. # 병실 - 밤
정란, 지석의 침대에 이마를 묻고 까무룩 잠이 들어있
다.
M. 피아노 소리 계속 되고...!
꿈틀.. 손가락이 움직이는 지석.
정란 (그 미세한 떨림에 잠이 깨어) ..여보..!
지석 (눈꺼풀이 움직이고)
정란 여보..!
지석 (눈을 조금 뜨는)
정란 ...지석씨..!
지석 (희미하게 눈을 뜨며 정란을 보며 희미하고 행복한 미
소를 보낸다)
정란 (눈물이 나며) ...여보...!
지석 (희미한) ...미..
정란 ...!
지석 ..미..연..아...!!!!
지석 (다시 스르륵 눈을 감는)
정란 ... (충격..!!!에 이어 절망적인 표정이 된다)
지석 ...
정란 ...
지석 ...
30. # 병실 앞 복도 - 밤
스르르 문을 열고 나오는 정란. 잠시 서서 충격을 흡수
하려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잠시 숨도 쉬지 않고 그렇게 서 있다
가 로비 쪽으로 돌아서는데, 복도 저만치에 서 있는 미연.
정란 ...!!
미연 (불안감에 보며) ...저..저기요...
정란 (다가간다)
미연 (파르르 떨며) ...지..지석씨..괜찮아요?
정란 (노려본다)
미연 ...
정란 (내리며) ..들어가 봐요...
미연 .....
정란 (미연을 비껴 차분히 또박또박 걸어가고)
미연 (그런 정란을 눈으로 배웅을 해준다) ...
정란, 미연의 뒤를 따라와 서 있는 태훈도 지나쳐 간
다.
태훈 (미연을 보는데)
미연 (태훈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들
어간다)
태훈 (상실감으로 조용히 무너지며) .......!!
31. # 병실 - 밤
미연, 애틋하게 지석의 손끝을 매만진다.
미연 ..나 여깄어...이제 괜찮어...괜찮어..
지석의 손, 자신의 손을 매만지고 있는 미연의 손을 더
듬어 힘없이 쥔다.
미연, 놀라며 지석을 바라보는데, 희미하게 눈을 뜨며
미소를 짓는 지석.
지석 넌 줄 알았어...
미연 (그렁그렁...)
지석 어디 가지 마...
미연 ... 안 가...
지석 가면... 혼날 줄 알어... (다시 스르르)
미연 (그렁그렁 끄덕끄덕) ...
32. # 병원 일각 - 밤
정란, 벽에 어깨를 기대고 소리 없이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짐
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있는 태훈. 그러나 굵은 눈물 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33. # 미연 거실 - 아침
옷장 문 열려 있고 옷을 고르느라 와이셔츠 몇 벌 침
대 위에 널려져 있고, 조용하고 무거운 얼굴로 와이셔츠 단추를 채
우고 있는 태훈. 다 채우고, 옷장으로 가 넥타이 서너 개를 골라 꺼
내 적당한 걸 하나 고르고 나머지는 침대 위에 던져 놓는다.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메는 태훈. 겉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태훈 답
지 않게 옷장 문 그대로 열어둔 채, 침대 위 옷, 넥타이 그냥 널브
러져 있는 채, 그대로 문을 ...쾅!! 닫고 나간다.
34. # 병실 - 아침
한결 맑아져 있는 지석. 눈을 뜬다. 바라보고 있는 미
연.
미연 깼어?
지석 (히이.. 웃는)
미연 뭐가 좋아 웃어? 사람 애간장 다 녹여놓고..
지석 (그래도 히이..)
미연 (같이 웃고...)
지석 (희미하게) 일어나고 싶어.
미연 (귀 뒤로 머리카락 넘기며) 뭐라구?
지석 (그 모습을 참을 수 없어 환하게 웃는..)
미연 왜 말을 하다 말고 웃어. 뭐라구?
지석 (함박 웃음 인채) 일어나고 싶어..
미연 (침대를 올려 지석의 상체를 세워준다) 또 뭐하고 싶
어.
지석 이리 와..
미연 (다가가면)
지석 (기운 없는 몸을 움직여 미연을 안는다) 내가 힘이 없
으니까... 니가 안아.
미연 (부서질 듯한 지석을 끌어안는다)
지석 따뜻해?
미연 (포근한) ..응..
지석 ..다행이야.. 니 품에서.. 죽을 수 있어서..
미연 또또.. (화내며 몸을 떼고 지석을 보는데)
지석 (미연의 얼굴을 바라본다)
미연 (바라보는)
지석 (손끝으로 미연의 이마, 눈썹, 콧등, 볼을.. 새기듯 어
루만지고)
미연 (그런 지석의 눈을 바라보는데)
지석 (미연의 입술에서 머뭇거리는 손 끝...)
미연 ...!
지석 ...! (입 맞추고 싶은 마음에 피식.. 웃는데)
미연 (지석의 입가에 입을 가져간다)
지석 ...! (순간 움찔..! 하는데)
미연 (지석의 콧등에 입을 맞추고!)
지석 (얼굴을 찡긋..! 하며 웃는다)
미연 ...
지석 나가자. ...하늘 보고 싶어.
미연 안돼. 밖에 추워.
지석 찬 바람도 쐬고 싶어. ..나가자.
미연 (설레설레)
지석 나갈래..
미연 (보면)
지석 (조른다) 나가고 싶어..
35. # 지석 거실 - 낮
정란, 처연하게 앉아 지석의 속옷을 싸고 있고,
지석모, 죽을 끓여 보온병에 넣고 있다.
정란 (지석모 보며) 싸지 마세요. 먹지도 못하는데..
지석모 그렇다고 밥을 안먹냐? 밥 안먹으면 뭘로 버티라고?
정란 링거로 영양분 다 맞아요. (다시 속옷을 싸고)
지석모 (그런 정란 보다가 옆으로 와 거들며) 아들 장가 보냈
다 생각해...
정란 (지석모 보면)
지석모 품 떠나는 건 똑같잖어.
정란 (조금 웃어보려 애쓰는데 잘 안된다)
지석모 지가 적덕한 거야. 그 놈.. 죽어서도 고마워 할거야...
정란 (그 말에 또 눈물이 고이는데)
지석모 (투박한 손으로 정란 눈물을 쓸어준다)
36. # 병원 앞 잔디 - 황혼
석양에 하늘이 온통 붉다.
두꺼운 외투에 담요에 둘둘 말린 지석, 미연의 품에 기
대 앉아 있다.
지석을 내려다보는 미연. 지석의 눈에 들어오는 미연
의 눈과 하늘...
미연 추워?
지석 (설레)
미연 안춥지?
지석 (끄덕)
미연 (웃는)
지석 나.. 얼마 전에 제주도 다녀왔어.
미연 ...
지석 전부 다 그대로더라.. 학교도 그대로고 자전거 타던 데
도 그대로고 풍차도 그대로고... 그리고 너하고 나도... 아직 거기
살고 있었어. 이렇게 늙거나 결혼하지도 않고.. 넌 열 일곱 살.. 난
열 아홉 살로..
미연 ...
지석 미연아.
미연 응?
지석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랑해...!
미연 ...
# 시간 경과/ 마침내 해가 떨어지는 순간이다.
미연 (지석을 보는데)
지석 (눈을 감은 채 말이 없다)
미연 ...지석아...여보란 말의 어원이 뭐라고 했지?
지석 ...
미연 (15회에서)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로 자기 감정을 표
현 할 수 없을 때 쓰는 말이래.
미연 ...(지석의 귀에다) 여보!
지석 (손이 툭 떨어진다)
(F.O.)
37. # 인서트 - 제주도
/ 해를 가리는 제주도 모양의 구름.
/ 여전히 바람에 돌아가는 풍차.
/ 기타 추억의 공간 인서트들
38. # 지석 거실 - 아침 (판타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아침의 거실. 정란이 안방에서 문
을 열고 나온다. 지치고 힘든 기색이 무던한 일상 속에 묻어있다.
정란, 주방으로 가는데, 뒤이어 또 열리는 안방문. 하품을 하며 나
오는 판타지 지석. 병색은 온 데 간 데 없이 말끔하다. 간밤에 잘
잤다는 듯 기지개를 쭉 펴는 지석.
정란, 커피 물을 올리고, 찬장에서 원두를 꺼내고 포트
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치익-- 물 끓는 소리가 나고, 컵을 꺼내는 정란. 기지
개를 한 껏 켠 지석이 식탁에 와 앉아서 아직 잠이 덜 깼다는 듯 식
탁에 팔을 얹혀 그 위에 얼굴을 기대고 비스듬히 정란을 본다. 정
란, 식탁에 컵을 올려놓고 커피를 따른다. 지석, 그 모습도 바라본
다. 혜진, 방에서 피아노 학원 갈 준비를 하고 나온다.
혜진 엄마 일어났어?
정란 (놀라) 혜진아! 벌써 피아노 갈 준비 다 했어?
혜진 아휴.. 지금 시간이 몇신데에..
정란 (시계 보더니) 미안해. 엄마 금방 세수하고 데려다줄
게.
혜진 괜찮아. 나 혼자 가두 돼. 엄마 커피 마셔. (현관으로
가고)
지석 (식탁에 비스듬히 기대 미소 지으며 귀여운 혜진의 모
습을 보는)
정란 엄마가 데려다줄게. 너 혼자 못 가.
혜진 내가 애야? 엄마나 울지 말고 집에 있어. 갔다 올게.
(가고)
정란 혜진아! (부르지만, 벌써 나갔고)
지석 (OL)혜진아!
39. # 집 앞 거리 - 아침 (판타지)
아장아장 걸어가는 혜진. 판타지 지석, 그 뒤를 따라
오며 흐뭇하고 귀여운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혜진,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가는데,
<인서트-아빠와 팔짱 끼고 뮤지컬을 봤던 혜진. 레스
토랑에서, 지배인의 아가씨란 말에 크윽.. 웃던 혜진. 아가씨의 새
침한 표정의 혜진. 와인을 마셨던 혜진>
그 기억으로 싱긋싱긋 웃으며 차박차박 걸어가고 있
는 혜진. 저쪽에 또래의 남자애가 똑같은 피아노 가방을 들고 제
엄마 손을 붙잡고 혜진을 기다리고 있다. 혜진, 그 엄마에게 '안녕
하세요' 인사하면, 그 엄마, 아이의 손을 혜진에게 넘겨주며, '그
그래, 사이좋게 잘 갔다 와. (자기 아들에게) 혜진이 손 꼭 붙들고
가!' 한다. 혜진, 친구와 가며, '아휴, 목도리를 잘 둘러야 안 춥지'
하며 목도리 둘러주곤 손 잡고 흔들흔들 하며 가며 "너 숙제 다 했
어?" 누나처럼 잔소리도 한다. 지석,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는 두
아이의 뒷모습 보며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안도와 그리움, 눈물
젖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혜진이는 걱정 없이 잘 자라고 있다.
40. # 지석 거실 - 아침
아침에 일어났던 잠옷 차림 그대로, 테이블 위에 커피
잔은 한모금도 안마시고 있는 그대로, 휑한 거실에 장식물처럼 망
연히 앉아있는 정란. 공허한 눈에서 그리움의 눈물이 흐르고, 정
란, 소파에 두 다리 올려 손으로 감싸 안아 몸을 잔뜩 웅크린다. 거
실을 울리는 정란의 울음소리... 들썩이는 어깨...
41. # 왈숙 원룸 - 아침
미연의 짐 가방이 한쪽에 놓여져 있고, 침대 아래 미연
이 자는 매트와 이불이 깔려 있고, 옷걸이 가득한 미연의 옷.. 곳곳
에 보이는 미연의 살림살이들..
왈숙의 핸드폰 울리고, 왈숙, 침대 위에서 부스스 깨
며 받는다.
왈숙 여보세요? 아, 태훈씨. 미연이요? (둘러보고, 침대 아
래 빈 매트를 보더니) 미연이 나간 거 같은데요? 글쎄.. 제가 지금
일어나서 잘 모르겠는데... (머리 박박 긁으며) 편의점 갔나? ..그
럼요,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하지 마세요. 예, 밥도 잘 먹구요, 잠
도 잘 자요. 그렇게 궁금하시면 한번 전화해보시든가요..
42. # 태훈 회사 앞 - 아침
태훈 (회사로 출근하며 핸드폰) 아니에요. 잘 지내고 있다니
까 됐어요. ..무슨 일 있으면 왈숙씨가 저한테 전화해주세요. 또 전
화 드릴께요. 예... 죄송하고.. 고마워요, 왈숙씨. (끊고, 무거운 걸
음을 옮겨 회사로 들어간다)
43. # 달리는 버스 안 - 낮 (판타지)
한 없이 우울하여 가고 있는 미연. 창밖으로 요양원으
로 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미연이 앉아있는 대각선의 저쪽, 판타
지 지석이 하품을 하며 같이 가고 있다.
44. # 읍내 거리 - 낮 (판타지)
지석이와 함께 생필품을 사던 장거리를 걸어가는 미
연. 그때 샀던 손거울과 머리빗, 손톱 깎기가 여전히 진열
되어 있고, 미연, 애잔한 슬픔으로 바라보는데,
미연의 뒤를 따라오던 지석, 미연이 그러고 있는 동안
아줌마 스카프를 파는 가게 앞에서 스카프 하나를 머리에 두르고
거울에 비춰보고 있다. 미연이 가자, 얼른 스카프 놓고 따라가는
지석.
45. # 읍내 분식점 - 낮 (판타지)
미연, 들어온다. 지석이와 앉았던 자리에 앉는데 뒤따
라 들어오는 판타지 지석. 아줌마를 향해 '아줌마 떡만이 하나요!'
외치고는 미연의 앞자리에 바짝 앉는다. 아줌마, 다시 남편을 향
해 여전한 목청으로 "여보! 3번에 떡만이 하나!" 외치고, 그 소리
에 풋.. 웃는 미연.
지석 (미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어? 웃었다.
떡만이가 담긴 접시가 나오고, 접시와 물을 미연 앞으
로 밀어주는 지석.
지석 이거 먹고 그만 집으로 가. 그만 돌아다니고.
미연 (포크로 떡볶이 하나를 집어 물에 헹구고)
지석 (받아 먹으려고 입을 벌리며 아... 하는데)
미연 (제가 먹는...)
지석 (쩝.. 입맛 다시며 미연을 보는데)
미연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떡볶이 때문에 우는 자신이 우
스워 픽.. 웃다가 이내 눈물이 날 것 같아 포크를 놓고 일어난다)
지석 (미연이가 반 떼먹은 포크에 아직 남아있는 떡볶이 반
토막을 냉큼 집어먹고 일어난다)
46. # 당구장 - 낮 (판타지)
백수들이 몇 팀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고, 당구 공 때리
는 소리와 부산스러운 소음 속에 예전에 당구를 쳤던 그 테이블 앞
에 앉아있는 미연.
<15회-지석과 당구를 치며 왁자하게 놀던 미연>
미연 (외로움에 몸이 젖어들고) ....
그 앞에서 판타지 지석, 혼자 재미없게 당고공을 띵..
띵.. 몇 번 때리다가, 당구대에 턱 걸터 앉아 큐대를 바닥에 탁 꽂
고,
지석 (불만스레 미연을 보며) 왜 자꾸 돌아다니는 건데?
미연 (눈물이 솟는..)
지석 당구 칠 줄도 모르면서.. 세상에 혼자 당구 치러 오는
사람이 어딨냐?
미연 (일어난다)
47. # 당구장 앞 거리 - 낮 (판타지)
당구장에서 나와 걸어오는 미연. 뒤따라 나오는 판타
지 지석,
지석 또 어디 가는데? (뒤 돌아보며) 버스 정류장 저쪽이란
말이야. 집에 안갈거야?
미연 (서둘러 걸어가고)
지석 (걸어가는 미연 보다 버럭 화 낸다) 내 생각 그만 해!!
미연 (멀어지고) ...
지석 (속상하게 바라 보다가 휙 뒤돌아간다) ...
48. # 읍내 사진관 - 낮
미연, 지석이와 앉았던 자리에 혼자 앉아 있다. 영정사
진이라도 찍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앉아 옷매무새를 단
정히 하는 미연. 할아버지, 장막을 뒤집어쓴다. 한없이 우울한 미
연의 얼굴이 푸르스름한 포커스 안에 맞춰진다.
할아버지 자.. 웃어보지요.
미연 (웃지 않고)
할아버지 웃지 않는 사진은 영정 사진이래요. 자.. 웃어보지요.
미연 (여전히 웃지 않고)
할아버지 (어쩔 수 없이 셔터를 누른다. 플래시 파박!)
49. # LP빠 - 밤.
맥주를 채운 컵을 나란히 세워놓고 사이사이에 세워놓
은 양주잔에 양주를 붓고, 그 끝을 툭 쳐 도미노 폭탄주를 만드는
태훈. 한 잔을 집어들고 단숨에 들이 마신다.
50. # 여의도 환승 주차장 - 새벽 (판타지)
미연, 사람도 차도 아무도 없는 새벽 빛만 도는 텅 빈
주차장에 앉아있다. 넋을 이리히은 듯. 시선을 둔 곳도 없이, 얼굴은 하
얀데 춥지도 않은 지 떨지도 않고 있다. 그 옆으로 떨어진 벤치에
다리 길게 뻗고 앉아있는 지석. 미연을 돌아보며 속상하다. 언제
들어가려고... 저러고 앉아있는 지...
지석 (중얼) 집에 안가고 뭐하는 거야...
막차인 듯 한 버스가 텅 빈 도로를 질주해 달려오고,
미연, 그 버스를 타려는지, 벤치에서 일어나 난간으로 다가가는
데...
지석 (속상하고 짜증나) 어딜 또 가려구...!
하는 순간, 도로로 뛰어드는 미연! 그대로 버스에 치
여 너무도 가볍게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연! 아무 말도 못하
고 그 자리에 하얗게 질려버리는 지석!!!
51. # 병원 응급실 앞 - 새벽 (판타지)
이동 침대에 실려서 의사가 간호사들이 와르르르 밀
고 들어가는 미연.
쫓아 달려가는 지석. 긴 복도를 달려가 수술실로 들어
가는 미연.
지석, 마구마구 달려가 닫힌 수술실 문을 쾅쾅 두드린
다.
지석 미연아!! 미연아..! ..미연아아..!!
안된다는 것 알고 돌아서는 지석.
우왕좌왕.. 너무 놀라 차마 울음도 쏟아지지 않고..!
지석 누가 너더러 같이 가달래? 그럼 내가 반가워할 줄 알았
어? 괜찮다고 그랬잖아! 괜찮다고! 니 사랑 듬뿍듬뿍 받고 가서 괜
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죽는 거 억울하지도 않다고!! 나 이
제 행복하다고!!! 니 사랑 듬뿍듬뿍 받고 가서 하나도 외롭지도 않
고 행복하다고!! ...너 죽으면 죽을 줄 알어! 죽지 마, 미연아! 오지
마!!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아!!!
지석, 가슴 찢기는 고통에 방방 뛰고 절규를 한다.
주저앉아 철철 눈물을 흘리는 지석.
지석 오지 마... 죽지 마 미연아.. 죽지 마....
52. # 미연 침실 - 새벽
옷도 제대로 못 벗고 만취해서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태훈,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으로 빙글..... 돌아가다
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53. # 병원 공중전화 - 새벽 (판타지)
지석 (수화기 붙들고, 울음이 아직 남아 불같이 화를 내는)
지금 잠이 와?!! 너 이딴 식으로 하다간 내가 미연이 확 데려가 버
릴 줄 알어!!
54. # 미연 침실 - 새벽
태훈 (자다 깨 핸드폰을 들고 도저히 믿기지 않은 얘기
에) ...!!!! 뭐라,구요?
55. # 병원 데스크 - 새벽
간호사 (미연의 수첩을 보며 전화를 하고 있다) 여기 oo병원이
에요.
고미연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실려 왔습니다. 지금 수
술 받고 있어요.
56. # 수술실 앞 - 새벽
정신없이 내달려오는 태훈. 수술실 문이 열리며 미연
이 나온다. 태훈, 반쯤 넋이 나가서 '미연아! 미연아!!' 부르며 침대
에 누운 미연에게 달겨 들고, 의사, 그런 태훈을 제지하며,
의사 출혈이 심해서 걱정했는데 별다른 이상 없습니다. 걱
정 마십시오.
태훈 (그래도 넋을 잃고 미연을 따라가며) ..미연아...!! (철
렁! 심장이 내려앉았다!)
미연 ...
57. # 병실 - 새벽 (판타지)
푸르스름한 달빛이 새어드는 병실. 미연, 희미하게 눈
을 뜬다. 미연의 시야에 들어오는, 바지 주머니에 손 넣고 창문에
기대 속상하고 화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는 지석. 미연, 너무도
그리웠던 지석의 모습에 흐읍.. 숨이 멎어지며 지석을 향해 손을
뻗는다. 미연을 돌아보는 지석. 화난 얼굴. 다가와 미연의 손을 잡
는다. 지석의 네 손가락을 콱 움켜쥐는 미연! 그리움의 눈물이 그
렁그렁... 그런 미연을 내려다보는 지석 화는 났지만 역시 그렁그
렁...
지석 왜 그랬어?
미연 ..보고.. 싶어서...
지석 (미연의 손을 다잡아 쥐어주는...) 다신 그러지 마..
미연 (그렁그렁..)
지석 얼마나 놀랬는 줄 알아?
미연 ...
지석 (앉아 미연 얼굴 가까이 가 미연 얼굴 어루만지며) 나
하고 헤어지고도 니가 너무너무 잘 살고 있어서, 너무너무 착한 남
자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나 갈 수 있었던 거야.
미연 ...
지석 너를 두 번이나 버린 주제에.. 너한테서 사랑한말을 듣
고.. 죽지 말란 얘기듣고.. 또 나하고 있으면서 잠깐이었지만.. 행
복해하는 너를 볼 수 있어서.. 그래서 갈 수 있었던 거야.
미연 ...
지석 근데 이렇게 쫓아오면 어떡해. ...심장 멎는 줄 알았잖
아.
미연 ...
지석 아쉽지만... 너무너무 아쉬워서 미치겠지만... 미연
아... 우리... 그만 이별하자.
미연 (눈가로 눈물 한줄기 흐르는)
지석 대신... 나 다음엔 나 아기로 태어나서 니 손에서 한순
간도 떨어지지 않을게.
평생동안 니 사랑 듬뿍듬뿍 받으면서 살게. (웃고)
미연 (눈물로 웃는)
지석 아프지 말고... 나 보고 싶은 거 잘 참고... 한 그 사
라마한테 상처주지 말고...
잘 살아 줘, 미연아...
미연 ...
지석 응?
미연 (눈물)
지석 알았지?
미연 (겨우 끄덕...)
지석 (미연의 입술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미연 (눈을 감고....)
지석 (깊고 애절한 첫 키스.........!)
미연 (잠이 드는.....)
판타지 지석이 사라진 공간. 잠이 들어있는 미연. 감
은 눈가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미연의 손을 꼭 잡고 침대
맡에 이마를 대고 잠이 들어 있던 태훈, 푸득 잠이 깬다. 미연의 눈
물을 보는 태훈. 가슴이 아려오며... 그 눈물을 닦아준다.
(F.O.)
58. # 지석 거실 - 밤
불면증에, 지독히도 밀려오는 지석에 대한 그리움에
잠을 들지 못하는 정란.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
다. 머리도 마음도 텅 비어 기운이 없다. 방에서 하품하며 나오는
혜진. 그런 엄마를 본다.
혜진 엄마!
정란 (혜진을 보는 퀭한 눈, 힘 없는 목소리) 혜진아.. 왜 깼
어?
혜진 (정란에게 다가가 목을 끌어안아 안아준다) 또 아빠 때
문에 그래? 아빠 보고 싶어서?
정란 ... (혜진을 끌어안고, 대답할 기운도 없다)
혜진 (정란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며, 안쓰러운 한숨을 어
른처럼) 에휴... 안되겠다. 잠깐 기다려봐. 내가 아빠 데리고 올게.
(정란 품에서 벗어나더니 서재로 가고)
정란 ... (다시 이마를 짚고)
59. # 지석 거실 - 낮 (회상)
초점이 맞지 않아 뿌연 안개의 캠코더 화면이 흔들리
고, 이내 선명해지고 고정되면서 빈 소파가 들어온다. 카메라를 들
고 있는 지석, 혜진이 아빠 옆에 붙어서 신기한 듯 캠코더 화면을
보고 있다. 지석, 녹화버튼을 누르고 카메라를 혜진에게 쥐어준다.
지석 잘 찍을 수 있지?
혜진 가서 앉기나 하셔.
지석 (소파에 가 앉는다)
혜진 (화면 안에 들어오는 지석 보며, 신기하고 뿌듯해서 히
이익 웃는다)
근데 이거 왜 찍는 거야, 아빠?
지석 나중에... 아빠 가고 나서 열밤 지났는데두.. 엄마 울
면.. 혜진이가 이 테이프 틀어줘.
혜진 아빠 어디 가는데?
지석 (웃는...)
혜진의 작은 팔 안에서 카메라 화면 고정되지 않고 이
리저리 흔들린다.
그래도 혜진 제법 잘 찍는다.
혜진 시작해.
60. # 지석 서재 - 밤 (판타지)
혜진, 문을 열고 들어온다. 책상에 앉아 저녁독서를 하
듯 편안하게 책을 보고 있는 판타지 지석. 혜진, 책상을 돌아와 맨
윗서랍을 연다. 그때 찍은 테잎이 들어있다. 테잎을 빤히 들여다보
는 혜진. 판타지 지석, 테잎과 그런 혜진을 보는데, 혜진, 이내 테
잎을 들고 나간다.
61. # 지석 거실 - 밤 (판타지)
소파에 여전히 앉아있는 정란.
혜진 엄마!
정란, 돌아보면, 혜진, 판타지 지석의 손가락 두 개를
잡고 데리고 나오고 있다.
정란 (무덤덤한 표정) ...
이내 비디오 앞으로 온 혜진, 손에 들고 있는 테잎을
비디오에 넣는다.
정란 비디오 보면 잠 안와 혜진아...
혜진 엄마 꺼야.. (뒤돌아 정란에게 가 리모콘을 주며 하품
하는) 나는 할 일 다했으니까 잔다? (방으로 가면)
정란 (뭔가 싶어 의아해하면서 리모콘을 누른다)
바람 불 듯 흔들리는 화면 안에 까륵까륵 웃는 혜진의
웃음소리와 환하게 웃는 지석이가 나온다. 병색이 물들지 않았을
때의 지석. 깔끔하고, 다정했던 때의 모습이다.
정란 .......! (작은 탄성이....!)
혜진E 왜 아무 말도 안해. 빨리 말해.
지석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어, 혜진아.
혜진E 에유, 참. 멀리 간다며? 그럼 일단 보고 싶단 말부터
해.
지석 (기특한 딸에 미소가..)
정란 (그 미소에 눈물이 지워지고)
지석 (화면 보며) ....보고 싶다... 정란아...
정란 (손으로 입을 막아 터지는 울음을 막는다)
지석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나를 그리워하
는 만큼 혜진이가 외로워질거야.. 당신 옆에 혜진이가 있어서.. 혜
진이 옆에 당신이 있어서.. 나 이렇게 내멋대로 살다가.. 내 멋대
로 가버리는 건데.. 당신이 울면.. (울음 차 오르는지 잠시 호흡을
했다가) 미안해...
정란, 가슴이 터질 듯하다. 입을 손을 막고 있어도 울
음이 새어나온다.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지석의 모습을, 미안하다
말하는 남편의 모습을 하염엾이 바라보며 철철 눈물을 흘리는 정
란. 그 얼굴 위로 계속,
지석E (육성) 당신한테.. 많이 못해주고 가서.. 미안해... 이대
로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어느 새 정란 앞에 다가와 앉아있는 판타지 지석. 정
란, TV화면이 아닌 바로 앞에 앉아있는 지석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지석, 그런 정란의 얼굴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석 그래도 당신은 이해해주겠지... 혜진이 엄마고... 9년
동안 나랑 살아준 내 아내니까...
정란 (바로 앞에 두고 만지지를 못하는) ...
지석 울지 마...
정란 (우는)
지석 자꾸 울면... 내가 자꾸.. 미안해지잖아.
정란 (울음 다스려 간신히 입을 연다) 혜진이 말고... 나
도... 사랑했어요?
지석 (대답대신 당연하다는 눈물 진 미소를 함박) .....
정란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알았어요?
지석 (역시) ...
정란 그거 알고... 갔어요?
지석 (끄덕...) 그럼...
정란 한 번도... 제대로 말을 못해서...
지석 말 안해도 알아.
정란 ...편안해요? 지금은?
지석 (끄덕)
정란 안아파요?
지석 (끄덕...)
정란 마지막.. 숨 거둘 때.. 안무서웠어요?
지석 (끄덕...)
정란 안아팠어요?
지석 (끄덕...)
정란 (바라보는)
지석 (바라보는)
정란 ...(간절히) 여보...!
지석 ...응?
정란 보고 싶어요...!!
하며, 정란, 순간, 지석의 품으로 스러지며 지석을 끌
어안는다...!!
지석, 품에 다가온 정란을 꼬옥 껴안아준다...!!
정란,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 지석을 가슴 터지도록
끌어안고 울음에 섞이어 다시 한 번 간절히 "보고 싶어
요............!!"
62. # 지석 침실 - 밤
정란의 울음 소리에 뒤척이며 잠이 깨는 혜진. 또 우는
구나 싶어 어른처럼 '아이고..' 한숨 쉬며 밖으로 나간다.
63. # 지석 거실 - 밤
귀를 후비적거리며 방에서 나오는 혜진. 거울을 바라
보는데,
정란, 비디오가 끝나 치직거리는 TV 앞에 무너져서 혼
자 울고 있다.
64. # 지석 집 앞 - 새벽 (판타지)
새벽 푸르른 빛이 감도는 거리. 지석 집을 나선다.
쓸쓸한 걸음걸이를 어딘가로 옮기는 지석...
65. # 병실 - 새벽
한결 나아져서 태훈이 시중을 드는 죽을 뜨고 있는 미
연.
태훈이 내미는 물컵을 받아 물을 마신다.
태훈 그만 먹을래?
미연 (끄덕끄덕)
태훈 배 불러?
미연 (끄덕끄덕)
태훈 (식탁을 치우고...) 잘래?
미연 (설레설레) 계속 잤잖아... 그만 집에 가. 출근해야 되
잖아.
태훈 휴가 받았어.
미연 ..태훈씨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인가봐.. 나 때문에
그렇게 문제 많이 일으켰는데도 짤리지 않고 휴가도 척척 받고..
태훈 좀 살 것 같나보네.. 농담도 하고..
미연 (조금 웃는)
태훈 꿈꿨어?
미연 응?
태훈 왜 자다가 울었어?
지석, 문 열고 들어오다, 심각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
고
창틀에 걸터앉아 딴청을 부린다.
미연 (지석 생각에) ...
태훈 미연아.
미연 (보면)
태훈 연민이라고 해도 좋고.. 동정이라고 해도 좋고.. 미련
이라고 해도 좋고.. 바보 등신이라고 해도 좋아..
지석, 슬며시 창밖으로 고개를 외면해준다.
미연 ...?
태훈 나는 당신하고 살면서.. 행복이란 게 뭔지 알았어. 같
이 밥 먹고 같이 TV보고.. 회사 끝나면.. 학교 끝나고 집으로 달려
가는 애들처럼.. 집으로 달려왔어.
당신이 있는... 우리 집. 내가 행복한 곳..
지석, 고개 숙이며 미소...
미연 ...
태훈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당신이.. 기댈 수 있는 사
람, 지구상에 나 하날 거야.
지석, 끄덕끄덕...
미연 ...
태훈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난.. 아직 당신 사랑해.
지석, 조금은 쓸쓸한 미소...
미연 (미안해져.. 시선 떨구는..)
태훈 다시... 돌아오지 않을래?
미연 (한없이 미안해져) ..태훈씨... 사랑하나다고 했던 거...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한 걸지도 몰라..
태훈 상관 없어.
미연 (태훈 보며) 돌아간다고 해도.. 나.. 그 사람 못잊을거
야.
태훈 ...잊고 싶지 않으면 잊지마.
미연 ...
태훈 그 사람 기억 흔적 억지로 지우라고 안할게.
미연 ...
태훈 나는... 살면서 천천히.. 조금씩..당신 사랑 받을게.
지석, 두 사람 보며 미소...
미연 (한 없이 고마운 이 사람. 미안해져 눈물이 그렁그렁..)
태훈 그 사람 끌어안고 있는 당신.. 내가 끌어안을게.
미연 (눈물이 흐르고)
태훈 (그 눈물 닦아준다..) ...그렇게.. 살자, 응?
미연 (울고)
태훈 (조심히 끌어당겨 품에 꼭안는....!)
지석, 두 사람을 보며 미소와 함께 눈물이 그렁그렁해
진다...
66. # 환승 주차장 - 밤 (판타지)
지석, 바지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땅을 발로 툭툭 차
며... 서 있다.
미연이 늘 타고 다니던 버스가 도착을 하고..
버스 문이 열리면, 지석, 타기 전에 한 번 더 뒤를 돌아
본다.
그 눈에 찬 그리움과 아쉬움의 눈물...
지석, 버스에 오르고 떠나는 버스.
버스 꽁무니가 안보일 정도로 멀어지면...
/시간 경과. 아침이 밝아오는 버스 정류장.
지석이 떠난 흔적은 온 데 간 데 없이 일상적으로 하루
가 시작되는 세상...!
<자막><11회의 눈 속의 견인 장면은 이병률 시인의 시 '견인'
의 이미지를 차용하였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