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문의 영광] 42
#.1 씬. 응급실 앞.(밤)
이동침대에 실려 의식 없이 구급차에서 내려지는 강석,
의료진들 강석의 이동침대를 밀고 달려가는.
뛰어가면서 눈물을 흘리는 단아.
#.2 씬. 수술실.(밤)
강석에게 연결되어 있는 심박동기 불안한 상황으로.
의료진들 강석의 복부 수술하고 있는.
#.3 씬. 수술실 앞.(밤)
단아, 초조한 표정으로 서있는데, 간호사 다가와서.
간호사 : 수속하시고, 환자 분이 위험한 상황이시니까 보호자에게 연락하세요.
단아 : ......
#.4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순진, 연속극 보고 있고.
영자 : (들어오는) 나 들어왔어.
천갑 : (티브이만 보면서) 그래, 그래, 주사 잘 맞았냐?
영자 : 무슨 주사를 맞아?
천갑 : 얼굴 관리 받으러 갔다면서?
영자 : 결혼식 날 티 나면 어쩌라구 오늘 주사를 맞아? 오늘은 그냥 관리만 받고 왔어.
어때? 좀 괜찮아 보여?
천갑 : 어? 어.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 광채가.
영자 : 얼굴 좀 보고 얘기해.
순진 : 어머, 어머. 쟤들 또 싸운다.
천갑 : 정말 쟤들은 왜 저런다니? 이젠 저것도 질릴 때가 됐는데....
하는데, 울리는 전화벨.
영자 : (두 사람 노려보면서) 그렇게 질리는 걸 왜 그렇게 죽어라들 보는데? (하면서 전화 받는)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야, 전화를..... 어, 하교수?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가 왜 이래? 뭐? 뭐라구?
(벌떡 일어나며) 사고라니? 무슨 사고?
천갑 : (영자를 보는)
#.5 씬. 수술실.(밤)
급박하게 진행 되는 수술 상황.
#.6 씬. 수술실 앞.(밤)
혈액 들고 뛰어 들어가는 간호사.
단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보는. 그 순간 스치는 기억.
(11회 32씬)
단아 : 어때요, 그쪽 목숨 걸어볼래요?
단아 : (손으로 입술을 막으면서 돌아서는데, 다시 스치는 기억)
(12회 41씬)
강석 : 근데 감당 할 수 있겠어요? 내 목숨?
단아 : (눈물이 흘러내리는)
#.7 씬. 부엌.(밤)
삼월, 조만, 진아, 말순 설거지 하고, 그릇 닦아서 정리하는 등등.
영인 : (핸드폰 들고 서서) 오늘은 일찍 들어와서 마사지 좀 하자니까 왜 이렇게 늦지?
조만 : 마사지보다 데이트가 더 좋은가보죠.
영인 : 오이랑 레몬 다 준비해놨지?
진아 : 네.
영인 : 단아 들어오면 우리도 다 같이 마사지 좀 하자.
말순 : 저희두요?
영인 : 새언니들 인물 좋다는 소리 들어야 할 거 아냐?
조만 : 그럼 저는요?
삼월 : 네가 거기 왜 끼누?
영인 : 그래, 뭐 조만씨도 같이 하자.
(하면서 핸드폰 누르는) 단아야? 단아야?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단아야? 단아야?
#.8 씬. 만기의 방.(밤)
만기, 동동,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진아, 말순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는.
석호 : 다녀오겠습니다, 아버님.
만기 : 나도 같이 가자.
석호 : 아닙니다, 아버님. 가서 어떤 상황인지 전화 올릴 테니 집에 계세요.
수영 : 네, 할아버님. 연로하신데 혹여라도 쓰러지실까 염려 됩니다.
태영 : 저희만 다녀오겠습니다.
만기 : 가서 바로 전화 하거라.
석호 : 네.
#.9 씬. 마루.(밤)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진아, 말순 방에선 나오는.
석호 : 당신도 집에 있어.
태영 : 그러세요, 어머니, 홀몸도 아니신데.
영인 : 안돼, 나도 가야해.
#.10 씬. 커피숍.(밤)
현규, 혜주 테이블 정리하고 있는.
현규 : (혜주 들고 있는 행주 잡으면서) 정리는 내가 할게요.
혜주 : (보고)
현규 : 어제 과하게 한턱 쏘게 한 죄의식이에요.
혜주 : 그러지 않아도 되요. (하는데, 울리는 핸드폰) 여보세요? 순진 언니? 무슨 일이야? (굳어지고)
현규 : (의아한 눈길로 보는) 왜 그래요? 무슨 일이예요?
혜주 :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현규를 보는)
#.11 씬. 수술실 앞 복도.(밤)
단아, 괴로운 심정으로 서있는데, 달려오는 천갑, 영자.
천갑 : 어, 어떻게 된 일이냐? 교통사고라니? 얼마나 다친 거냐?
단아 : .....
영자 : (단아 팔 거칠게 잡으며) 얼마나 다쳤냐구? 우리 강석이 어떤 거냐구?
단아 : 지금 수술 중이예요.
천갑 : 무슨 수술? 어디를 수술 하는데?
단아 : 장이 심하게 파열 되서.....
영자 : (맥없이 주저앉는)
천갑 : (어깨가 내려앉으며, 비틀하는)
#.12 씬. 수술실.(밤)
강석의 심박동기 멈추고, 의료진들 급박하게 제세동기로 강석의 열어놓는 복부에 충격을 가하는.
#.13 씬. 수술실 앞.(밤)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달려오는데.
영자 :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단아의 팔을 잡고 흔들면서) 다,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라구.
천갑 : (그런 영자 잡으면서) 이러지 마라.
영자 : 우리 강석이 저렇게 된 거 다 얘 그 무서운 팔자 때문이라구.
그래서 내가 그렇게 얘는 안 된다고 했잖아?
태영 : 단아야?
단아 : (눈물 고인 눈으로 돌아보는)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다가오는.
석호 : (천갑과 영자에게 인사하는)
천갑 : (괴로운 심정으로 인사하는)
석호 : 어떤 상탠 거냐?
단아 : .....
천갑 : 장이 심하게 파열 되서 수술 중입니다.
석호 : (굳어지고)
영자 : 너하고 결혼하겠다고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 강석이 저렇게 되지 않았어.
천갑 : 그만하라니까.
영자 : 어떻게 그만 해? 우리 강석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천갑 : (톤 높여서) 우리 강석이 그렇게 쉽게 죽을 놈 아니다.
영자 : 그러니까 얘는 안 된다고 했잖아? 사람은 절대 팔자 도망은 못하는 거라구.
신혼여행 길에서 남편 잡아먹은 팔자니까 결혼 사흘 남겨 놓고 또 이런 일이 생긴 거잖아.
영인 : 너무 하시네요, 사부인.
영자 : 뭐가요? 뭐가 너무 해요? 아들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데, 이게 너무 하다는 거예요? 지금?
영인 : 두 분도 괴로우시겠지만, 우리 단아도 지금 누구보다 힘든 상황 아닌가요?
영자 : 힘들면요? 힘들면 우리만 하겠어요? 사경 헤매고 있는 자식 둔 우리 심정만 하겠냐구요?
영인 : 그건 이해하지만, 그렇게 모진 말로.....
단아 : 어머니,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영자에게)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다 하세요. 듣겠습니다.
영인 : 단아야.
단아 : 전 괜찮아요, 어머니. (영자에게) 더 하셔도 되요, 어머님.
영자 : (그런 단아를 보다가 주저앉아 오열하는) 그러니까 왜 헤어지라는데 그렇게 고집들을 부려.
헤어지랄 때 헤어졌으면 오늘 같은 일은 안 생겼을 거 아냐.
단아 :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참아내는)
그런 단아를 보면서 가슴이 아픈,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천갑.
그 모습 멀리서 지켜보는 혜주, 현규.
현규 : (멀리서 괴로운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단아를 바라보는)
가 봐요. 난 밖에 있을 테니까. (돌아서는)
혜주 : (그런 현규를 보다가 가족들이 서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단아 : ......
혜주 : (다가와서 단아의 손을 잡는)
단아 : (울먹한 심정으로 혜주를 보는)
#.14 씬. 만기의 방.(밤)
만기, 눈을 감고 앉아있지만, 꼭 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15 씬. 마루.(밤)
삼월, 조만, 진아, 말순, 동동, 전화기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주정, 병도 들어오는.
주정 : (병도에게) 늦었는데, 대충 밥 좀 사먹고 들어가지. 죽어라 따라 붙냐?
우리 손주 며느리들 네 군상 차리려면 그것도 일인데. 어? 왜들 다 여기 앉아있어?
진아, 말순 일어서서,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하는.
전화벨 울리고.
삼월 : (얼른 전화 받고) 여보세요? 어, 하사장 어떻게 됐어?
주정 : 무슨 일이야?
동동 : 고모부 교통사고 나셨대요.
주정 : 뭐?
삼월 : (낙담하는 느낌으로) 그래, 알았어, 말씀 올릴게.
만기, 방에서 문을 여는.
삼월 : (만기에게) 지금 수술 중이랍니다, 회장님.
만기 : 어떤 상태라고 하든가?
삼월 : .....많이 안 좋은 거 같습니다.
만기 : (괴롭고)
#.16 씬. 수술실 앞 복도.(낮)
영자, 앉아서 울고 있고, 그 옆에 착잡한 심정으로 서있는 천갑.
단아, 혜주, 나란히 서있고, 그 뒤로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서있는.
의사 수술실에서 나오는. 영자, 일어서고.
천갑 : 어, 어떻게 됐습니까?
의사 : 고비가 있긴 했지만, 수술은 무사히 마무리 됐습니다.
천갑 : 그럼 생명에는?
의사 : 워낙 출혈도 심했고, 수술도 쉽지 않았으니 경과를 좀 지켜보시죠.
천갑 : 죽지는 않는 거죠? 그렇죠?
(의사의 팔을 잡으며 울면서) 꼭 좀 살려주십쇼, 선생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17 씬. 중환자실.(밤)
강석, 산소 마스크 쓴 채 의식 없이 누워있는.
영자, 천갑 그 옆에 서있는. 혜주 옆에 서서 울고 있는.
영자 : (강석의 얼굴 어루만지며) 강석아? 강석아? 엄마야, 엄마.
천갑 : 이 놈아. 부모 앞서 가는 자식만큼 큰 불효가 없는 거야. 너 무조건 살아야해. 알았지? 이 놈아?
영자 : 우리 강석이 잘못 되는 거 아니겠지? 그지? 여보?
천갑 : (영자 어깨 감싸며) 이 놈 절대 그럴 놈 아니다. 암, 우리 아들놈이 어떤 놈인데.
#.18 씬. 중환자실 앞.(밤)
단아, 영인, 석호, 수영, 태영 서있는.
영인 : (단아의 손을 잡고) 이실장 아무 일 없을 거야.
태영 : 그래, 단아야. 강석이 그 자식이 얼마나 독한데 이만한 사고로 잘못 되는 일 없을 거다.
그러니까 너무 떨지 마.
단아 : .....
영자, 천갑, 혜주 힘없이 걸어 나오는.
천갑 : (단아에게) 너도 들어가 보거라.
단아 : .....
영자 : 얘가 왜 들어가? 결혼도 안했으니까 식구도 아닌데 얘를 왜 들여 보내냐구?
천갑 : 들어가서. 그 놈 손 좀 잡아 주거라.
단아 : (울먹해서 보는)
#.19 씬. 중환자실.(밤)
단아, 강석 옆에 다가와 서는.
단아 : (강석의 손을 잡는)
그 위로.
단아E : 그 쪽 목숨 걸어볼래요?
강석E : 감당 할 수 있겠어요? 내 목숨?
단아 : 나.....감당 할 수 없어요, 당신 목숨. 내가....내가.....왜 그랬을까요?
그런 말 하지 않아야 했는데, 어쩌자구, 당신한테 나 그런 말을 해서....
#.20 씬. 병원 일각.(밤)
현규, 괴로운 심정으로 앉아있으면, 혜주 다가오는.
현규 : (일어서는)
혜주 : 수술은 끝났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어요.
현규 : 어떤 거예요. 오빠? 의식은 돌아왔어요?
혜주 : 아직.
현규 : .....
#.21 씬. 중환자실 앞.(밤)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서있는데.
단아,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태영 : (단아의 어깨를 다독이는)
단아 : (둘러보며) 어머님, 아버님은?
태영 : 안사돈 어른께서 기진하셔서 병실로 올라가서 링거 맞고 계신다.
단아 : .....
수영 : 어머니, 아버지? 들어가세요. 여긴 태영이와 제가 있겠습니다.
영인 : 어떻게 우리가 들어가? 이실장 깨어나는 거나 보고 들어가야지.
석호 : 태영아?
태영 : 네.
석호 : 어머니 좀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거라.
영인 : 싫다니까 왜 그래?
단아 : (영인 손 잡으며) 그 사람 깨어날 거예요.
들어가세요, 어머니. 어머니까지 쓰러지시면 저 더 힘들어져요.
#.22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영인, 태영, 동동, 주정 앉아있는.
영인 :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안사돈께선 쓰러지셔서 입원 하셨구요.
만기 : (눈을 감고)
주정 : 정말 하늘이 원망스럽네. 우리 가여운 단아, 그냥 좀 결혼하면 뭐가 어때서. 또 이런.
만기 : 조용히 하거라.
주정 : 죄송해요, 오빠.
태영 : 전 다시 가보겠습니다, 할아버지.
만기 : 그러거라.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으면 바로 바로 연락하고.
태영 : 네.
#.23 씬. 마루.(밤)
태영, 삼월, 조만. 진아, 말순 서있는.
진아 : 단아 아가씬 쓰러지지 않으셨어요?
태영 : 그 녀석은 아직 잘 버티고 있습니다, 형수님.
삼월 : 하과장? 나도 좀 데려가.
태영 : 할머님 집에 계세요.
삼월 : 우리 단아, 나라도 옆에 있어야 속 시원히 울지.
#.24 씬. 병실.(밤)
잠들어 있는 영자, 그 옆에 천갑, 혜주 서있는,
영자 : (헛소리로, 손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강석아? 강석아? 어디 가? 강석아? (눈 번쩍 뜨고)
천갑 : 정신 드냐?
영자 : (벌떡 일어나 앉으며) 우리 강석이? 우리 강석이 어떻게 됐어?
천갑 : 아직 그대로다.
영자 :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면서) 나 우리 강석이 봐야 해. 내가 가서 붙어 있어야 한다구.
천갑 : 면회 시간 지나서 지금은 가도 못 본다, 그러니까 당신도 좀 쉬어.
영자 : 나 여기 있는 사이에 우리 강석이 잘못 되면?
천갑 : (버럭) 그런 일 없다니까, 왜 그러냐?
#.25 씬. 중환자실 앞.(밤)
석호, 수영, 단아 서있는.
수영 : 아버지. 앉기라도 좀 하세요.
석호 : 난 괜찮다. 단아야? 좀 앉거라.
단아 : 아니에요.
태영, 삼월 다가오는.
단아 : (삼월을 보자, 눈물이 흘러내리는. 입술을 깨무는)
삼월 : (그런 단아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다가와 단아의 손을 잡고 어쩔 줄 모르는)
석호 : 할머니? 단아 좀 앉게 해주세요. 저흰 사부인이 어떠신지 올라가보고 오겠습니다.
삼월 : (끄덕이고)
석호, 수영, 돌아서고.
수영 : (그대로 서있는 태영에게) 너도 가자.
태영 : 나까지 뭘?
수영 : 단아, 할머니하고 있게 해 드리자구.
태영 : (하는 수 없이 석호와 수영을 따라 걸어가는)
삼월 : (단아의 손을 잡고 의자에 앉는)
단아 :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할머니?
삼월 : (다독이며) 어쩌다 이런 일을 또 겪누. 세상에 태어나 잘못 한 일 하나 없이 산 착하디 착한 네가.
단아 : 내 운명 때문이면 어쩌지? 할머니?
삼월 : 그게 무슨 말이야?
단아 : 내 운명이 모질어서 또 이런 일이 생긴 거면?
삼월 : 왜 그렇게 몹쓸 생각을 해? 그저 좋은 일 앞에 두고 크게 액땜 했다고 생각하자.
너하고 저 사람 앞으로 결혼해서 너무 잘 살 거 같으니
못된 뭔가가 잠시 시기를 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구 생각해.
단아 : 나......나......저 사람 처음 만났을 때....
삼월 : (보면)
단아 :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어.
삼월 : 무, 무슨 말을?
단아 :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줄 알고, 그냥 날 괴롭히는 나쁜 사람인 줄로만 알고,
그쪽 목숨 걸어보겠냐구....그랬어, 내가.
삼월 : 어쩌다, 그런 심한 말을.....
단아 : (오열하면서) 내가 그랬어, 삼월씨. 원하는 걸 갖고 싶으면 그쪽 목숨을 걸라구.
저 사람 목숨을 달라고.....내가 그랬어.
삼월 : (다독이며)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건 우리 이렇게 생각하자, 단아야.
부부의 인연으로 묶이려면 목숨도 걸어야 하는 거라서 그랬던 거라구.
사람을 연모하는 마음이라는 게, 목숨까지 걸어야 할 만큼 절절한 거라서,
아무 상관없는 줄 알았던 사람이지만, 인연이 되려고 그랬던 거라구.
그걸 거야, 단아야. 그거야. 다른 생각하면 절대 안돼.
단아 : (삼월의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하는)
#.26 씬. 병원 전경.(낮)
#.27 씬. 중환자실 앞.(낮)
단아, 석호, 수영, 태영, 천갑, 영자(환자복 차림으로) 혜주 서있는.
그 앞에 의사.
천갑 : 벌써 사흘이나 지났는데 왜 저렇게 못 깨어나는 겁니까?
머리를 다친 것도 아니고, 수술도 잘 마무리가 됐다면서요?
의사 : 워낙 출혈이 심했던 터라,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천갑 :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의사 : 지금 상태로썬 의식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천갑 : 그, 그럼 계속 저 상태로 있을 수도 있다는 말씀 입니까?
의사 : 드문 경우긴 하지만, 저 상태로 몇 년이 가는 환자도 있습니다.
영자 : (쓰러지는)
천갑 : (영자를 붙잡으며) 여보?
#.28 씬. 병실.(밤)
영자, 천갑의 품에 안겨 절규하는. 그 옆에 혜주 서있고.
영자 : 우리 강석이 저대로 못 깨어나면 어떡해? 여보? 우리 강석이 어떡해?
천갑 : (서서히 더욱 불안이 가중 되는 느낌으로, 하지만 자신에게 확신을 주듯)
깨어날 거다, 우리 강석이, 꼭 깨어날 거야.
#.29 씬. 중환자실 앞.(밤)
석호, 수영, 태영, 단아 서있는.
단아 : 들어가세요. 저 혼자 있고 싶어요, 저 사람 옆에.
태영 : 너 눕지도 않고 계속 이렇게 버티다간 쓰러져.
단아 : 아니, 오빠. 나 안 쓰러져. 저 사람 깨어나기 전까진.
수영 : 너도 병원에 병실 하나 마련해 달라고 해서 링거도 좀 맞고 그러자, 단아야.
단아 : 그러고 싶지 않아요, 큰 오빠. 아버지. 오빠들이랑 들어가세요.
여기 계시면 제 마음만 무거워요. 저 편하게 저 사람 옆 지키게 해주세요.
#.30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진아, 말순, 장기 앉아있는.
말순 : 관할 교통계에 알아보니 범행 차량이 대포차라고 합니다.
석호 : 대포차라니?
장기 : CCTV에 찍힌 넘버가 등록이 돼있지 않았습니다.
말순 : 단순 대포차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구요.
태영 : 그게 무슨 말이야? 단순 대포차가 아니라니?
말순 : 돌발 사고인 경우, 스키드 마크가 생기는 게 대부분인데,
이 사고의 경우엔 브레이크를 잡지 않았거든.
영인 : 그럼 누가 작정을 하고 그랬다는 거야?
장기 : CCTV 분석 결과를 보면 처음부터 과속으로 달려와서 이강석씨를 치고
거의 같은 속도로 도주를 하거든요.
아무래도 범행에 사용된 차량이 도주 도중에 일어난 사고가 아닐까 해서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고들도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태영 : 이강석 걘 왜 그렇게 재수도 없는 거야. 하필이면 그런 사고에 왜 말려들어.
그냥 단순한 사고였으면 그렇게 심하게 다치진 않았을 텐데.
#.31 씬. 마루.(밤)
영인, 석호, 태영, 수영, 진아, 말순, 삼월, 주정 서있는.
영인 : 나도 간다니까.
진아 : 저희가 가서 아가씨 갈아입을 옷도 전해드리고 위로도 해드리고 올게요. 어머니.
매일 병원에 들르셨는데, 오늘만이라도 쉬세요.
석호 : 그래, 여보, 애들 말 들어.
영인 : 그 어머니, 우리 단아한테 심한 말하면 나라도 있어야 막아줄 거 아니야.
주정 : 내가 할게, 내가. 조카댁. 그러니까 조카댁은 오늘만이라도 집에 있어요.
#.32 씬. 병원 일각.(밤)
천갑, 진호 서있는.
진호 : 김선태를 만난 다음에 이런 사고를 당하셔서 아무래도 의심스럽습니다.
천갑 : 경찰에는 얘기 했냐?
진호 : 그게 좀.....
천갑 : (보면)
진호 : 괜한 의심일 경우에 김선태를 더 자극하는 게 아닐까 해서.....
천갑 : (답답하기만 하고)
#.33 씬. 중환자실 앞.(밤)
영자, 단아 서있고.
영자 : 가라니까. 제발 좀 가라구. 나 네 얼굴 보는 거 힘들어서 못하겠다구.
혜주 : (영자를 말리면서) 엄마, 이러지 마세요.
영자 : 이 정도면 됐잖니? 강석이 저렇게 쓰러뜨려놨으면 됐잖냐구?
나 정말 네가 강석이 옆에 있는 거 겁나 죽겠어.
네 팔자 땜하느라 우리 강석이가 저 꼴이 됐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서 못 살겠다구.
주정, 진아, 말순, 수영, 태영 다가오는.
주정 : 사돈어른?
영자 : (돌아보며) 누가 사돈이에요? 이 꼴을 당하고도 내가 그 집하고 사돈을 맺을 거 같아요?
주정 : 진정 하시고.
영자 : 진정을 어떻게 해요? 자식이 저 꼴로 누워있는데 진정을 어떻게 하냐구요?
주정 : 불안하신 마음은 알겠는데, 이러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영자 : 얘만 옆에 없으면 우리 강석이 일어날 거예요.
얘처럼 독한 팔자 가진 애가 옆에 있으니까 아직도 못 일어나는 거라구요.
태영 : 정말 말씀이 심하십니다.
단아 : 작은 오빠.
태영 : 단아, 너 가자. (팔 잡아끌며) 네가 없으면 강석이 일어날 거라구 저러시잖아?
단아 : 이러지마, 오빠.
천갑, 다가오는.
영자 : 그래요, 제발 좀 데려가요, 쟤. 나 쟤 보는 거 끔찍해서 못 살겠다구요.
천갑 : 왜 또 내려와서 이러냐? 당신이 안 그래도 하교수 힘들다.
영자 : 당신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천갑 : (가족들에게) 이 사람이 지금 정신이 정신이 아니라 이러니 이해들 해요. 혜주야? 엄마 부축해라.
혜주 : 네.
천갑 : (혜주와 같이 영자를 붙잡고 올라가는)
영자 : (끌려가면서도) 쟤 좀 내 눈에 안보이게 해달라니까.
천갑 : 그만 좀 하라니까.
천갑, 영자, 혜주 복도로 사라지고.
주정 : (단아 보고) 가뜩이나 힘들 텐데, 이런 수모까지 당하고. 어쩌니. 단아야?
단아 : 저 수모라고 생각 안 해요, 할머니.
어머니시잖아요? 저보다 더 안타깝고 괴로우실 텐데, 무슨 말씀은 못하시겠어요.
#.34 씬. 병원 복도. (밤)
여자 화장실 앞.
진아, 말순 서있으면, 단아,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단아 : (옷가방 진아에게 건네는) 고마워요.
진아 : 힘내셔야 해요. 아가씨.
단아 : 네.
말순 : 두 분 사랑이 더 단단해지게 하려구 이런 시련이 닥쳤다고 생각하세요.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잖아요. 시어머님도 그렇게 모질게 하셨는데도
아가씨 의연하게 견디신 거 나중에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그러실 거예요.
단아 : 네.
#.35 씬. 중환자실.(밤)
강석, 의식 없이 산소마스크 쓰고 누워있는. 그 옆에 단아 서있는.
단아 : (물수건으로 강석의 손을 닦아주는) 어디 가 있는 거예요?
나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왜 빨리 안 돌아와요? 아주 멀리 가 있는 건, 아니죠?
#.36 씬. 중환자실 앞.(밤)
남교수 서있는,
단아,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단아 : 뭐 하러 또 오셨어요?
남교수 : 아직도 그대론 거니?
단아 : 네.
남교수 : 좀 쉬어야 하잖아?
단아 : 틈틈이 앉아서 쉬고 있어요.
남교수 : 밖에서 현규 봤다.
단아 : .....
남교수 : 매일 밖에 와 있다가 가는 모양이야.
차마 너 볼 수도 없는지, 그냥 말만 전해달라고 하드라. 기운 잃지 말라구.
단아 : 고마운 아이예요.
남교수 : 그래, 니들 다 이뻐. 이쁜 니들한테 왜 이런 아픈 일들이 생기는지 정말 모르겠다.
#.37 씬. 병원 일각.(밤)
현규, 혜주 서있는.
현규 : 어쩌면.....
혜주 : (보는)
현규 : 내 미련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그래져요.
혜주 : .....
현규 : 이젠 다 끝났다, 하교수님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다행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 깊이에선 왜 내가 아니었을까. 왜 나는 안 되는 거였을까, 미련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마음을 다해서 축복해주지 못하고, 아쉬워하고 괴로워했던 내 마음 때문에
하교수님한테 이런 힘든 시간이 주어진 게 아닐까.
혜주 :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알아요. 그 쪽이 얼마나 두 분 사랑을 축복해줬는지.
현규 :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결혼식에도 안가겠다고 했잖아요?
혜주 : 그건.
현규 : 그건 어쩌면 다 떨치지 못한 미련 때문이었을 거예요.
혜주 : 많이 사랑했으니까 차마 볼 수 없었던 건 당연한 거잖아요.
현규 : 이젠 안할 거예요.
혜주 : (보면)
현규 : 그런 미련조차, 다 끄집어내서 던져버릴 거예요. 내 이 질긴 미련이 두 분을 괴롭히는 거라면.
혜주 : 그런 거 아니라니까 왜 그래요.
현규 : 이거라도 해주고 싶어서요. 아무 것도 해줄 게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이 미련조차 다 버릴 테니
제발 오빠, 빨리 깨어나게 해달라고 비는 심정이에요.
혜주 : (그런 현규를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38 씬. 하옹의 방.(밤)
동동, 서있는. 만기 들어오는.
만기 : 왜 안 자고 이 방에 들어와 있냐?
동동 : 고조할아버지께 소원 빌고 있었어요.
현지 다른 학교로 전학 가게 해달라고 한 소원은 나쁜 거니까 안 들어주셨지만
고모부 빨리 낫게 해달라고 하는 소원은 좋은 거니까 들어주실 거 같아서요.
만기 : (동동 머리 쓰다듬으며) 우리 동동이 마음을 보셨을 테니 고조할아버님이 소원을 들어주실 게다.
#.39 씬. 하옹의 방 앞 마루.(밤)
태영, 말순 울먹한 심정으로 서있는.
말순 : 우리 아들 참 기특하다.
태영 : (끄덕이며) 에비 보다는 열배 백배 나은 아들놈이야.
#.40 씬. 중환자실.(낮)
강석 옆에 서있는 만기, 단아.
만기 : (강석의 손을 어루만지며) 이 사람아. 동동이까지 자네가 빨리 나으라고 고조할아버님께 빌고 있다네.
단아 : ....
만기 : 우리 다 한마음으로 그렇게 빌고 있다네. 그러니까 애를 좀 써주게나.
자네도 많이 힘들어서 못 깨어나고 있는 거겠지만, 조금만 더 애를 써보게.
어서 깨어나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이 아이 잡아줘야 하지 않겠나?
단아 : (울먹한 심정으로 보고 있는)
#.41 씬. 중환자실 앞.(낮)
만기, 단아 나오는.
만기 : (단아 어깨 다독이며) 단아야?
단아 : 네, 할아버님.
만기 : 저 사람이 어떻게 되든 넌 저 사람 사람이다.
단아 : .....
만기 : 저 사람 외에 또 다른 사람이 네 인생에 있을 수 없다는 거 안다.
단아 : .....
만기 : 그래서 네게 아픈 말일 거란 거 알면서도 하마. 어제 진하 아버님께 전화 드렸다.
사정을 설명하고 노인네의 촌스러움이라 생각하시고 이해해 달라고 말씀 드렸다.
진하의 묘에서 처 하단아라는 네 이름 지워달라고 말씀 드렸다.
오래 전에 그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하시더구나.
그러면서 저 사람 완쾌되길 진심으로 빌겠다고 하시더구나.
단아 : ......
만기 : 그러니 이젠 너도 손톱만큼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진하에 대한 마음은 지우거라.
온전하게 저 사람 사람으로만 살아야 하는 거 아니겠느냐?
단아 : .....
#.42 씬. 병원 복도.(낮)
단아, 혜주 서있는.
단아 : 이따가 면회시간 되면 오빠한테 들어가서 손하고 발 좀 물수건으로 닦아줘. 난 좀 다녀올 데가 있어.
혜주 : 그러세요, 언니. 집에 가셔서 좀 쉬고 오세요. 전 언니까지 쓰러지실까봐 정말 걱정 되요.
단아 : (끄덕이며) 오빠한테 금방 돌아올 거라고 해줘. (돌아서서 걸어가는)
#.43 씬. 진하의 묘 앞.(낮)
단아, 처연한 모습으로 묘 앞에 서있는.
단아 : (앉으며, 처 하단아라고 쓰인 글에 손을 올리고) 오빠? 나 벌 받는 걸까?
오빠를 잊고 그 사람한테 가겠다고 해서?
네가 어떻게 나를 버리고 갈 수 있냐고, 오빠 화내고 있는 거야? 그런 거 아니지?
어쩌면, 내 마음 속 깊이에 남아있던 오빠에 대한 기억들이 내 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왜 그 벌을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받아야 해?
(일어서서 묘를 내려다보며) 오빠? 오빤, 이제 이 세상하고 인연 끊고 편한 데로 갔을 지도 모르는데....
오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지 모르는데..... 그래도 뭔가 할 수 있으면
그 사람.....나한테 돌아오게 해줘.
오빠. 나 이젠 정말 오빠..다 잊을 거야. 그래서 나 이젠 다시 여기 안 올거야.
그 사람 깨어나지 못하면...그래서 떠나버리면, 그 사람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니까.
오빠한테 나눠줄 마음이 없으니까. 그래서 오빠..... 나 죽어서도 오빠 곁엔 가지 못할 거야.
내가 죽어서 곁으로 가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다가 천천히 돌아서서 걸어가는)
#.44 씬. 병원 앞.(밤)
단아, 택시에서 내리는데, 울리는 핸드폰.
단아 : 어? 혜주야?
혜주E : 언니, 어디세요? 빨리 오세요, 빨리.
단아 : 오빠, 깨어났니?
혜주E : 언니, 빨리 수술실 앞으로....
단아 : (굳어지고)
#.45 씬. 수술실 앞.(밤)
단아, 급하게 걸어오면, 천갑, 영자, 혜주, 수영, 태영 서있는.
단아 : 무슨 일이니? 왜 수술실에?
태영 :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서 심장발작이 생겼어.
단아 : .....
태영 : (단아의 어깨를 잡는)
영자 : 우리 강석이 잘못되면 나 너 가만 안 둬. 사내 하나 잡아먹은 걸로 부족해서 내 아들까지.....
천갑 : (버럭) 제발 그만 좀 하라니까.
영자 : 여보.
천갑 : 그런 악담이 지금 강석이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냐? 우리 아들놈이 사랑한 애다.
그런 애한테 악담이나 하고 있는 당신 보자고 강석이 놈이 깨어나겠냐? 이 미련한 에미야?
#.46 씬. 수술실.(밤)
혼수상태인 강석, 수술이 진행 되고 있는 상황.
#.47 씬. 병원 복도 일각.(밤)
수영, 전화 중. 그 옆에 서있는 태영.
수술 앞의 천갑, 영자, 혜주, 단아 보이고.
수영 : 오늘은 오시지 않아도 되실 거 같습니다, 아버지.
태영 : (보는)
수영 : 여전히 그 상탭니다. 저흰 단아 옆에 좀 더 있다가 들어가겠습니다. 네, 아버지. (전화 끊고)
태영 : 재수술 받고 있다고 말씀 드려야 하는 거 아냐? 저러다 잘못 될 수도 있는데.
수영 : 그런 일 없을 거다. 또 무사히 넘겨줄 거다.
태영 : 제발 그렇게 됐으면. 형?
수영 : (보면)
태영 : 할 수만 있으면 내 수명에서 얼마쯤 저 녀석한테 떼 내주고 싶다.
말순이하고 동동이 자식한테는 모진 말이지만, 그래도 할 수만 있으면 그래주고 싶어.
수영 : (끄덕이는)
#.48 씬. 종가마당 일각.(밤)
장독대 앞. 삼월, 물그릇을 올려놓고 두 손을 부비며 빌고 있는.
삼월 : 애기씨? 애기씨? 이 집안을 지키시는 모든 조상님들께 애원 좀 해주세요.
귀하고 귀한, 착하디 착한 자손, 우리 단아, 우리 단아 관옥 같은 신랑
살려주십사고, 빌어주세요, 애기씨.
#.49 씬. 부엌.(밤)
조만, 진아, 말순 설거지 하고 있는.
조만 : 두 분 마음이 좀 그러시겠어요?
진아, 말순, 조만을 보는.
조만 : 왜 어른들이 그런 말씀하시잖아요? 사람이 잘못 들어오면 집안에 안 좋은 일 생긴다고.
두 분 결혼해서 들어오자마자 이런 일 생겼으니, 마음이 좀 그러시겠다구요.
영인 : (들어서면서) 조만씨?
조만 : 네?
영인 : 한 식구면서 조만씨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런 말이 내 며늘애들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몰라요?
조만 : 전 그냥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라서.....
#.50 씬. 수영의 방.(밤)
영인, 진아, 말순 서있는.
영인 : 신경 쓰지 마. 나도 결혼하자마자 회사 일 어렵게 되서
순간 조만씨가 했던 그런 말들이 떠올라서 주눅이 들고 그랬어.
진아 : 전 그런 말씀하시는 어른이 없이 자라서 그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건 사실이에요.
우린 행복하게 결혼해서 사는데 단아 아가씨한테 저런 일이 생기니까.
말순 : 저도 형님 마음하고 같았어요, 어머니. 편하게 결혼해서 살고 있는 게 괜히 바늘방석 같고.
영인 : 그런 마음 버려. 나도 주눅이 들어봐서 아는데, 그럼 괜히 눈치만 보게 되고, 아무 도움도 안 되드라구.
우리 지금 다 강해져야 할 때야.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으로 마음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순하고 고운 마음으로 잘 될거다 그렇게 믿으며 지내봐.
진아 : 네.
말순 : 네.
#.51 씬. 중환자실.(밤)
천갑, 영자, 단아, 혜주 강석 옆에 서있는.
천갑 : (강석 손 잡고) 그래, 역시 내 아들 놈이다. 그래야, 내 아들놈이지.
잘 견뎠다. 살면서 겪을 어려움 이참에 다 겪는다 생각하고 버티는 거야.
영자 : 강석아? 엄마 이러다 지레 죽겠어. 엄마 좀 살려줘, 강석아.
천갑 : 힘들게 싸우고 있는 자식놈한테 어리광 부리지 마라. 나가자.
(단아 보고) 넌 좀 더 옆에 있어 주거라.
단아 : 네.
영자 : (고깝게 보지만, 차마 뭐라고 말도 못하고, 천갑, 혜주와 같이 나가는)
단아 : (강석 얼굴 어루만지면서) 당신, 너무 힘들어서 어떡해요?
뭐든 나눠가져야 하는데, 당신 혼자만 너무 많이 힘들어서 어떡해요?
#.52 씬. 중환자실 앞.(밤)
천갑, 영자, 혜주, 수영, 태영 서있는.
천갑 : 또 한 고비 넘긴 거 같습니다. 저 녀석 곧 일어날 테니 너무 걱정들 마시고 들어들 가세요.
마음고생들 크셨습니다. (영자, 혜주와 걸어가는)
태영 : 졸부 이천갑 회장 하면서 나도 은근히 속으로 무시하는 마음 있었는데,
저 양반 우리 할아버지만큼이나 그릇이 큰 어른이신 거 같아.
수영 : 자수성가하신 어른이니 뭐가 다르셔도 다르신 거겠지.
천갑, 영자, 혜주 걸어가는 모습을 멀리 복도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는 선태.
#.53 씬. 병원 전경.(낮)
#.54 씬. 중환자실 앞.(낮)
천갑, 단아, 의사 서있는.
천갑 : 재수술 받은 지도 일주일이 넘었는데, 이러지 말자 하면서도 점점 초조한 마음이 생깁니다.
의사 : 보통의 경우 지금쯤은 의식이 돌아와야 하는데. 마음을 굳게 먹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천갑 : (보면)
의사 : 아주 긴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천갑 : 그, 그럼?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하는)
단아 : (굳어지는)
#.55 씬. 중환자실.(낮)
단아, 천갑, 강석 옆에 서있는.
중년의 여자, 옆 환자 옆에 서있는.
여자 : 우리 딸애도 똑같은 경우예요.
천갑 : (돌아보는)
여자 : 교통사고로 장 파열이 되서 수술 받고 입원했거든요.
천갑 : 아, 네. 얼마나 입원해계셨습니까?
여자 : (착잡한 표정으로) 4년이 조금 넘어요.
천갑 : (어두워지고)
단아 : .....
여자 : 식물인간, 식물인간 말로만 들어봤지, 막상 내 새끼가 이 처지가 되니
그게 얼마나 피 말리는 건지 알겠어요.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식구들 다 지쳤는데,
이렇게 숨이 붙어 있으니 포기도 못하고.
천갑 : .....
단아 : .....
#.56 씬. 중환자실 앞.(낮)
천갑, 단아 나오는.
천갑 : 우리 강석인 다를 거다.
단아 : .....
천갑 : 저 놈은 내가 알아.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저 놈의 자식, 지루한 거 못 견디는 놈이다.
지루해서라도 눈 번쩍 뜨고 말 놈이야, 저 놈. (걸어가는)
단아 : .....
#.57 씬. 중환자실.
인서트 씬들.
단아, 강석의 손, 발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강석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강석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등등의 시간 경과 씬들.
아줌마 : (격앙된 상태로) 미영아? 미영아? 간호사? 간호사?
근무하던 간호사, 일어서고. 심박동기 정지되어 있는.
아줌마 : 우리 애가 왜 이래요? 왜 이래요?
간호사 : (환자 상태 체크하고, 호출 버튼 누르는)
단아 : (굳어져서 옆 침대에 아줌마를 바라보는. 뛰어 들어오는 의료진들)
#.58 씬. 병원 복도.(낮)
이동침대에 실려, 흰 천이 덮인 채. 아줌마 울면서 따라가는.
천갑, 영자, 혜주 걸어오다가 그 모습 보고.
멍하니 서서보고 있는 단아.
아줌마 : 어떻게 이렇게 맥없이 가니? 이 못된 것아? 차라리 이럴 거면 4년은 뭐하러 버텨?
영자 : 우리 강석이 옆에 있던 여자애 엄마 아냐?
천갑 : (마음이 아프고)
아줌마 : 미영아? 미영아? 엄마 두고 가면 엄마는 어떻게 살라구? (울면서 이동침대를 따라가는)
영자 : (천갑에게 힘없이 기대면서) 우리 강석이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니지? 아닐 거야? 그지? 여보?
천갑 : (영자를 다독이는)
#.59 씬. 중환자실 앞.(밤)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단아.
#.60 씬. 중환자실.(낮)
단아, 깊은 시선으로 강석을 내려다보고 있는.
단아 : (마음의 소리) 제 운명을 주관하시는 신이 계시다면 들어주세요.
(강석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제 운명 때문에 이 사람이 이 고통을 겪고 있는 거라면.....
한 남자의 여자로 살 운명을 타고 나지 못했는데, 그 운명을 거스르려고 해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했고, 또 한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거라면...
네. 멈추겠습니다. 욕심이었다고 인정하겠습니다.
제 운명에.....(눈물을 흘리면서) 졌다고 승복하겠습니다. 그러니 맹세하죠.
이 사람만 이 세상으로 돌려놓아주신다면, 다시는.....
다시는 이 사람의 여자로 살겠다는 꿈.....꾸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보지 않아야 살려주겠다고 하신다면.....네, 그러겠습니다.
이 사람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게...... 저에겐 죽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거 아실 겁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제 목숨과 바꿔주세요.
다시는.....다시는.....이 사람 앞에 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살려만 주세요.
눈물을 흘리며, 강석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데.
눈꺼풀이 움직이는 강석. 힘겹게, 아주 힘겹게 눈꺼풀이 조금 움직이는.
단아, 입술을 떨면서 바라보는.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던 눈꺼풀이 아주 작게 열리는데.
단아, 입술을 깨물며 바라보는. 힘겹게 눈을 뜨는 강석.
단아 : (가늘게 떨리는 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강석 : (멍한 눈으로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단아 : (기쁘면서도,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공허함도 함께 밀려오는 표정으로 강석을 바라보는)
강석 : (서서히 초점을 잡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단아에게 눈길을 주는)
단아 :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강석의 손을 잡는)
강석 : (그런 단아를 바라보는)
단아 : (마음의 소리) 네. 됐습니다. 제가 졌고, 당신이 이기셨지만, 그래도.....그래도.....고맙습니다.
#.61 씬. 마루.(낮)
삼월, 전화 받고 있는.
삼월 : (푹 주저앉으며) 그래, 단아야, (눈물이 솟구치고) 그래, 그래, 할아버님께 말씀 올리마.
(수화기 내려놓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는)
진아, 조만 빨래 들고 걸어오는.
조만 : 할머니? 왜 그러세요?
삼월 :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서서, 만기의 방 앞으로 가는) 회장님?
#.62 씬. 만기의 방.(낮)
만기, 앉아있는데, 삼월 문을 여는.
삼월 : 의식이 돌아왔답니다.
만기 : (눈물이 글썽해지는)
삼월 : 돌아왔답니다.
#.63 씬. 수영의 사무실.(낮)
수영, 핸드폰 들고 일어서는.
수영 : 알았어요, 네. (태영, 서류 들고 들어오는) 네, 진아씨. 아버지,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태영 : (보면)
수영 : (핸드폰 끊고) 강석이 깨어났단다.
태영 : (울컥하면서) 형.
#.64 씬. 석호의 사무실.(낮)
석호, 어두운 표정으로 서류 보고 있는. 영인, 그 옆에 서있는.
영인 : 단아 어떻게라도 집에 데려다 좀 쉬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석호 : 그 녀석 고집을 누가 꺾겠어.
수영, 태영 들어오는.
태영 : 아버지? 어머니? 강석이 깨어났대요. 깨어났다구요.
석호 : (자리에서 일어서는)
영인 :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아, 단아야.
#.65 씬. 중환자실.(낮)
강석, 눈을 뜨고 있고, 산소 호흡기 뗀 체.
천갑, 영자, 혜주, 단아 그 옆에 서있는.
천갑 : 수고 했다, 아들.
강석 : ......죄송해요, 아버지.
천갑 : 그럼, 임마, 죄송해야지. 네 엄마랑 나 골천번도 더 심장이 내려앉았다 올라붙었다 그랬어.
영자 : 엄마, 너 죽으면 따라 죽으려고 그랬어. 너 없이 내가 뭐 하러 사나 그랬어, 강석아.
천갑 : 멀쩡하게 살아난 놈한테 죽었으면 이란 소린 뭐 하러 해. 네 엄마가 이렇게 사오정 짓을 한다.
(강석의 손 다독이며) 됐다, 됐어. 이젠 됐다.
혜주 : 오빠?
강석 : 오빠 때문에 기절하고 그런 거 아니지?
혜주 : (애써 미소 짓고) 응. 안했어, 기절.
강석 : 착하다, 우리 혜주.
천갑 : 임마, 그래도 우린 누워서 잠도 자고 먹기도 하고 그랬지만
(단아 보면서) 이 아인, 지금까지 중환자실 앞에서 꼬박 날밤 새면서 너 지켰어.
강석 : (단아를 보는)
단아 : .....
천갑 : 넌 쭉 누워있었으니까 미안하게 생각해, 임마.
강석 : (미소 짓는) 네.
천갑 : 이 자식, 자존심 세서 우리 앞에서 미안하단 소리 못할 테니까 우린 그만 나가주자.
영자 : 싫어, 싫어. 난 강석이 얼굴 더 보고 있을 거야.
천갑 : 눈치 좀 있어라, 이 사오정 여사야. (영자 끌고 나가는. 혜주 따라 나가고)
단아 : .....
강석 : (손을 약간 들면)
단아 : (강석의 손을 잡는)
강석 : 내가 입초사 심하게 떨었나 봐요. 당신 긴장 시키겠다는 말 너무 많이 했더니.
단아 : (미소 짓는)
강석 : 미안해요, 놀래 켜서.
단아 : .....
강석 : 미안해요, 당신 울리지 말아야 했는데....
단아 : (울먹해서 보는)
강석 : 그 순간에.....사고 나는 그 순간에.....딱 한 가지 생각만 했어. 저....여자 울게 하면 안 되는데.....
단아 : (고개를 숙여 강석의 얼굴을 끌어안는)
강석 : 다신....울게 하지 않을게요.
단아 : (끄덕이면서, 강석의 얼굴을 감싸는)
#.66 씬. 병실.(낮)
영자, 침대에 앉아있고, 그 옆에 서있는 천갑, 혜주.
영자 : 나 강석이 쟤하고 결혼 못시켜.
천갑 : 왜 또 이러냐?
영자 : 강석이 운이 워낙 세니까 겨우 살아난 거란 말이야.
하지만 쟤랑 결혼하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천갑 : 제발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좀 하지마라.
영자 : 결혼 사흘 앞두고 그런 사고 생긴 건 하늘에 뜻이 있는 거라구.
얘들은 절대 결혼 시키면 안 된다는 뜻이 있는 거란 말이야.
천갑 : 살아온 놈 다시 죽이고 싶냐? 당신?
영자 : 몰라, 몰라. 난 쟤들 죽어도 결혼 못시키니까 그렇게 알아.
#.67 씬. 커피숍.(낮)
현규, 핸드폰 들고 서있는.
혜주E : 깨어났어요, 우리 오빠. 말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래요.
현규 : (의자에 맥이 풀려 주저앉는)
앉아있던 친구1,2.
친구1 : 친구 왜 그러나?
현규 : 다행이에요.
혜주E : 이젠 걱정하지 말아요.
현규 : 네, 그럴게요. (전화 끊는,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친구2 : 뭐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었는가? 친구?
친구1 : 왜 그렇게 맹한 얼굴이신가?
현규 : 나, 그 지긋지긋한 첫사랑이 끝난 거 같다.
#.68 씬. 중환자실.(낮)
강석, 옆에 서있는 단아.
강석 : (의사에게) 저 언제 퇴원 할 수 있습니까?
의사 : (미소 지으며, 챠트 체크하면서)
보통 의식 돌아오고 나서 말하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데 대단하시네요.
강석 : 제가 성질이 좀 급해서요.
의사 : 상태 체크하고 안정이 됐다 싶으면 병실로 옮겨드릴 겁니다.
상처 부위 아물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거구요.
강석 : 전 지금도 퇴원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의사 : 그건 본인 생각이시구요.
강석 : 제가 퇴원해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의사 : 당분간 마음 편히 갖고 치료 받는 데만 열중하세요. 일 생각 하지 마시구요.
강석 : 저 더 심각한 병에 걸릴 수도 있거든요.
의사 : 네?
강석 : 결혼 못해서 안달 나 있는 놈이거든요, 저.
단아 : (그런 강석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69 씬. 종가 전경.(밤)
#.70 씬. 마루.(밤)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들어오는. 삼월, 조만, 주정, 진아, 말순 마중하는.
삼월 : 병원엔 가봤어?
태영 : 그럼요.
삼월 : 어때?
태영 : 애 당장이라도 펄펄 날 거 같던데요 뭐. 죽을 고비 넘긴 놈으론 절대 안 보이더라구요.
수영 : 또 놈이라구 한다.
태영 : 나 나름의 애정의 표시다.
주정 : 하여간 넌 애정 표시 격하게 하는 경향 있드라.
석호 : 아버님?
삼월 : 사당에 계셔. 동동이랑. 남자들 다 사당으로 오라셔.
#.71 씬. 사당.(밤)
만기, 의복 갖추고 서있고, 동동, 검은 양복 차림으로 서있는.
석호, 수영, 태영, 들어오는.
석호 : 다녀왔습니다.
만기 : 그래.
석호 : 이서방, 금방 의식 돌아온 사람치곤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만기 : 다행이다. 제사 때가 아니면 들어오지 않는 사당이지만.
오늘은 모두 이 집안을 지켜주시는 어른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절을 올리자꾸나.
#.72 씬. 태영의 방.(밤)
태영, 말순 이불 펴고 있는.
태영 : 우리 단아, 잠 좀 자야할 텐데.
말순 : 깨어나는 것도 봤는데, 억지로라도 데려오지 그랬어. 병원에서 누울 데도 없을 텐데.
태영 : 누가 아니래니. 아무리 가자고 하고, 강석이도 가서 쉬라고 해도 까딱도 안하는 걸 어쩌냐.
말순 : (하품 하는) 참 대단해, 우리 아가씨. 일제 시대 첩보원 같은 걸로 태어나셨으면 근사했을 텐데.
태영 : 뭐? 난데없이 일제 시대 첩보원은 뭐냐?
말순 : 고등계 형사한테 잡혀서 고문당해도 절대 동지 이름 안불 거란 거지.
잠 안 재우는 고문 같은 거엔 까딱도 안했을 거 아냐?
태영 : 참, 너도 희한한 인간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요망한 상상을 할 수 있는지.
말순 : 아, 졸려 자자.
태영 : 야, 나 말순?
말순 : 또 반성문 쓰고 싶지?
태영 : 동동이 자식 자잖냐. 넌 내가 다쳐서 사경을 헤매고 있어도 절대 단아처럼 못 그럴 거지?
말순 : 그걸 말이라구. 잘 건 자고, 먹을 건 먹고 그래야 간호도 제대로 할 거 아니야?
단아 아가씨, 지고지순한 건 알겠는데, 어째보면 좀 미련스럽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난 이강석씨 옆에 단아 아가씨 나란히 눕게 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
태영 : 말하는 거 봐라. 그 절절한 사랑을 미련스럽단다.
말순 : 여보?
태영 : 웬 콧소리.
말순 : 당신은 그래도 단아 아가씨 같은 지고지순한 스타일보단
나같이 터프하고 박력 넘치는 마누라가 좋지?
태영 : 남자들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선호하는 스타일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말순 : (태영 목 비틀면서) 자백해라. 하태영.
나 같은 마누라가 딱 네 스타일이라고 자백하지 않으면 오늘 안 재우겠다.
#.73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진아 손을 잡고 있는.
진아 :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사당에서 어른들하고 나오는 동동이 보면서 부러웠어요.
수영 : .....
진아 : 당신한테도 저런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하고....
수영 : 나중에, 아주 나중에, 우리 깨 볶는 신혼 생활 다 하고 나서
부모 없이 태어난 가여운 녀석 데려다 동동이처럼 키워요.
진아 : 저 아니었으면.....
수영 : (자르며) 내 입에서 이혼 소리 나오게 하고 싶어요?
진아 : (보면)
수영 : 애기 때문이 아니라, 저 아니었으면 하는 그런 소리 하는 여자랑 못 살겠다고
큰 소리로 이혼하자 그래서 할아버지께 불려가 야단맞는 나 보고 싶냐구요?
진아 : .....
수영 : (진아 끌어안으며) 다른 말은 다해도 좋은데, 그 말만은 하지 말아요. 저 아니었으면.
나 당신 아니었으면 평생 혼자 살다가 쓸쓸하게 죽어갔을 불쌍한 인간이거든요.
그런 말이 나한테 얼마나 아픈지 알기나 해요?
진아 : .....
#.74 씬. 병원 전경.(낮)
#.75 씬. 병실.(낮)
강석, 침대에 누워있는. 그 옆에 서있는 단아. 전화 중.
단아 : 네, 교수님. 이번 학기 강의는 강좌 폐쇄해주세요. 죄송해요.
지금 상황에서 강의를 한다는 게 도저히 불가능할 거 같아서요.
네, 네, 교수님, 부탁드릴게요. (전화 끊는)
강석 : 나 사고 때문에 횡재 했네.
단아 : (보면)
강석 : 결혼해서 당분간은 쭉 집에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점심시간에 학교로 달려가는 짓 안 해도 되고.
아, 아니구나.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오면 그게 그건가.
그래도 뭐, 나만 기다리고 있는 와이프가 어디야.
천갑, 영자, 혜주 들어오는.
강석 : (힘겹게 일어나 앉으려고 하면)
천갑 : 야, 야, 됐어.
강석 : 멀쩡해요. (일어나 앉는)
천갑 : 네, 엄마 오늘 퇴원했다. 집에 갈 거야.
강석 : 네, 그러세요. 아니, 그러지 마시고 온천에라도 다녀오세요.
영자 : 네가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온천엘 가?
난 그냥 여기 있겠다고 하는데도 네 아버지가 성화를 부려서.
천갑 : 멀쩡한 사람이 병실 차지하고 있는 것도 민폐다. (단아에게) 넌 좀 쉬었냐?
단아 : 네.
천갑 : 병실로 옮겨서 누울 소파라도 있으니 다행이다만, 그래도 여기서야 어디 편히 잠이 오겠냐?
단아 : 쉬었습니다.
천갑 : 너한테 이 놈 맡겨놓고 우린 가마.
단아 : 네.
천갑 : 간병인 붙여줄 테니까 중간 중간 집에 가서 쉬고 오고 그러거라.
단아 : 아닙니다. 이 사람 퇴원할 때까지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천갑 : 그러다 너 병난다.
단아 : 옆에 있겠습니다.
천갑 : 여보, 얘네들 천생연분이야. 고집 부리는 것도 아주 판박이잖아.
영자 : (못들은 척 하는)
천갑 : 간다, 아들. (돌아서면)
단아 : (따라 나가려 하면)
천갑 : 아냐, 아냐, 나올 거 없다.
단아 : 차 타시는 데까지 가겠습니다.
천갑 : (영자에게) 얘가 이래요. 결혼해서 이런 며느리 데리고 다니면,
당신 그 잘난 척 하는 여편네들 앞에서 콧대 좀 세울 수 있을 거다.
영자 : 콧대 같은 소리 하네.
천갑 : (흘기면서) 참 골질도 어지간히 한다.
#.76 씬. 강석의 집 거실.(낮)
천갑, 아줌마가 건네는 약그릇 받아서 영자에게 주는.
천갑 : 이런 남편이 어딨냐? 당신 많이 놀라고 기운 못 차릴까봐
김박사 한의원에다가 보약 지어 보내라고 해서 이렇게 집에 오자마자 대령 시키잖냐?
영자 : (받아 마시면서도) 아무리 이래도 소용없어. 난 걔 정말 싫으니까.
천갑 : 또 또. 순진아? 올라가서 혜주 좀 내려오라고 해라.
순진 : 혜주 조금 전에 나갔어요. 옷만 갈아입고.
천갑 : 그 녀석 보약도 지었는데.
순진 : 근데요, 이모부. 진짜 이상해요.
천갑 : 이상하면 치과 가라니까.
순진 : 이모부, 정말. 그게 아니구요. 강석 오빠 문병 가서 봤는데요, 혜주 만나는 그 남자애요.
천갑 : 혜주랑 아무 사이 아니라는 그 놈?
순진 : 네. 병원 뜰에서 혜주랑 만나드라구요. 혜주 걱정 되서 온 걸 거 아니에요.
아무 사이도 아니고, 혜주 혼자 짝사랑하는 거면 뭐하러 병원까지 찾아오고 그럴까요?
천갑 : 좀 이상하긴 한 거 같다. 그 자식들 진짜 연애 하면서 괜히 아닌 척 하는 거 아닐까? 여보?
영자 : 그게 지금 무슨 문제야.
천갑 : 그럼 뭐가 문제냐?
영자 : 우환덩어리 며느리가 들어오는 게 문제지.
천갑 : 진짜, 지겨워서 못 듣겠다.
#.77 씬. 병실(낮)
강석, 누워있고, 단아 그 옆에 앉아있으면.
강석 : 편히 누워서 자고 싶지 않아요?
단아 : (보면)
강석 : 올라와도 되는데.
단아 : (흘겨보면서 미소 짓는)
노크 소리.
단아 : (일어서며) 네.
삼월, 찬합 싼 보자기 들고 들어오는.
단아 : 할머니?
강석 : (일어나 앉으며) 오셨습니까?
삼월 : 누워있어요.
강석 : 아닙니다, 병원에서 붙들어둬서 그렇지 멀쩡합니다.
삼월 : 병원 밥 입에 안 맞을 거 같아서 반찬 몇 가지 해왔어요.
단아 : 혼자 오셨어요?
삼월 : 응. 택시 타고 왔어.
단아 : 오빠들이랑 같이 오시지 않구요?
삼월 : 퇴근하고 병원 들렀다 오는 사람들더러 다시 가자고 하기 그래서 나 혼자 왔어.
#.78 씬. 병원 복도.(낮)
삼월, 단아 걸어오는.
삼월 : 들어가. 나 다시 택시 타고 가면 돼.
단아 : .....
삼월 : (단아 표정 살피고) 왜 그래? 얼굴이? 저렇게 좋아졌는데?
단아 : .....
삼월 : 왜? 무슨 일이야?
단아 : .....
#.79 씬. 병원 일각.(낮)
벤치에 앉아있는 삼월, 단아.
단아 :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있었어.
삼월 : ......
단아 : 내 운명 때문에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거면 욕심 부리지 않겠다고, 그러니 살려만 달라고.
삼월 : (단아의 손을 잡는)
단아 : 그런데....거짓말처럼, 정말 그 순간 저 사람 눈을 뜨는 거야.
삼월 : 이 일을 또 어쩌누.
단아 : 내 맹세 때문에 저 사람 살아난 거지? 그런 거지?
삼월 : (차마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단아 : 저 사람이 눈을 뜨는 순간, 처음으로.....우리 운명을 주관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두렵고 무서웠어. 나 어떡하지? 삼월씨?
삼월 : (안타깝기만 하고)
#.80 씬. 커피숍.(밤)
혜주, 현규 앉아있는.
혜주 : 오빠 많이 좋아졌어요.
현규 : 그 말 해주러 일부러 나온 거예요? 전화로 해도 되는데.
그쪽도 계속 병원에 있어서 피곤 했을 텐데 뭐하러 나와요?
혜주 : ....
현규 : 어서 들어가서 쉬어요. (일어서며) 어서요.
혜주 : (일어서서 가방 들고 시선 피하면서) 보고 싶어서요.
현규 : .....
혜주 : 갈게요. (나가는)
현규 : .....(문 쪽으로 고개 돌리는)
#.81 씬. 상가 앞 길.(밤)
혜주, 걸어오는. 그 위로.
선태E : 이혜주씨?
혜주 : (돌아보는)
선태 : (앞으로 나서는)
혜주 : 누구세요?
선태 : (혜주 옆으로 다가서서 뭔가로 혜주 옆구리에 들이대며) 그냥 조용히 가자.
혜주 : (놀라서 보는 표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