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성회’(Assembly of God)의 종말론
종말론은 주님의 재림과 이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로 사람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2천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여러 생각이 나타났다. 우선, (1)예수님의 재림은 영적인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영적인 관점). (2)예수님의 재림은 이 세상이 점점 좋아진 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후천년설). (3)예수님은 이미 통치를 시작하셨고 이 기간이 끝나면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무천년설). 그리고 (4)세상이 점점 악해지면 대환난이 있고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천년 왕국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전천년설).
이 네 가지 생각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점에서 영적인 관점도 옳고, 주님이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다면 세상이 점점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후천년설이 옳게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볼 때는 무천년설도 일리가 있다. 무천년설을 믿는 사람들은 천년왕국론을 성경에 대한 문자적 이해 방법으로 보고 우려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점점 악하게 바뀌는 것을 보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천년설은 당연하게 생각될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고난당한 백성들에게 천년 동안 왕노릇할 수 있는 기회를 보상으로 주시는 것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될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초기교회와 교부시대에 전천년설이 흥왕한 것은 당연하다. 기독교의 공인 이후로 로마제국이 이미 기독교의 세계가 되었을 때 지금 그리스도께서 교황을 수장으로 하여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중세를 넘어 종교개혁자들에게까지 이어졌다. 무천년설이 개혁주의 종말론이 된 것이 이런 연유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과 산업혁명, 그리고 계몽주의의 발흥에 힘입어 세상에 대한 낙관론이 대두될 때 이 세상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 시절에 전도자들은 복음전도를 통해서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세계가 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일명 후천년설 지지자들이다. 미국의 부흥사 조나단 에드워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과학문명과 산업화의 부작용이 불거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풍선처럼 부풀었던 낙관론은 금세 사그라지고 다시 고난 중에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를 주었던 전천년설이 세력을 얻었다.
그러던 중 19세기에 플리머스 형제단을 중심으로 신앙갱신운동이 일어났다. 그들 중에 다비라는 사람은 신자들의 믿음을 각성하기 위하여 천년왕국이 다가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주장의 핵심은, 성경이 말하는 인류의 시대를 일곱으로 나누어 지금이 그 일곱번째 천년기이며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고 휴거와 환난, 그리고 천년왕국이 온다는 것이었다.
이런 신앙갱신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 오순절교단이 탄생했다. 그러므로 오순절 신앙인들은 성결과 전투적인 전도를 기본 신앙으로 삼고 주님의 재림과 휴거, 7년환난과 천년왕국, 그리고 심판을 바라보며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전도에 나섰다.
그 결과 오순절 신앙은 전천년설을 바탕으로 세대주의적 신앙의 특징이 가미된 종말론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오순절주의자들은 세대주의가 강조하는 주장 중에서 두 가지를 배척했다. 그것은 역사를 일곱세대로 나누는 방식의 성경이해와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하는 관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교단의 헌법에는 휴거라는 언급이 있고 천년 동안 이 땅을 통치할 것과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에 대한 표현이 있다(교단헌법 20조).
역사적으로 되돌아볼 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인류가 마주하던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그래서 다양한 모양의 종말론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기본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과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실 것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한다. 다만 이 세상의 현재 상태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신앙적 확신에 따라서 천년왕국론이 달라진다.
이 세상에 대한 가장 낙관적인 기대를 보여주는 생각은 후천년설이다. 그 반대로 암울한 관점은 전천년설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관점은 무천년설이다. 무천년설은 현천년설이라고 부를 때 그리스도의 현재적 통치를 믿는다는 점에서 후천년설의 낙관론과 유사하다. 이것은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인간의 기질적 성향처럼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므로 상호존중의 자세로 대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성회의 종말론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역시 개인들의 선택에 맡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상은 강제로 규정하고 틀에 가둘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나온 천년왕국론에 대한 여러 기대와 생각은 저마다 자기 시대에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고자 애쓴 사람들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자리에서 주님의 약속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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