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

[김수영1]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

*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1967〜 . 여).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글로벌 베스트셀러 저자

1장. 지금은 외로운 세기다

「코로나 19 이전에도 우리는 이미 '사회적 불황' 상태였다. 단지 소외된 기분에 그치지 않고 개인과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는 21세기 외로움의 실태를 추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어느 때보다 외로운 시대를 겪고 있다. 하지만 '외로운 세기'는 2020년 1분기에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코로나 19가 닥칠 즈음 우리 대다수는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외롭고 고립되고 원자화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비혼이든 기혼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똑같다. 전 세계 사람들이 외롭고 단절되었고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우리는 세계적인 외로움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전통적으로 외로움은 애정, 동반자, 친밀감을 상실한 느낌으로 정의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외로움의 징후를 주변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갈망, 친구가 없다고 느껴질 때의 쓸쓸한 기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화, 도시화, 불평등의 심화, 권력 비대칭에 의해, 인구구조의 변화, 이동성 증가, 기술 발달로 인한 혼란, 긴축정책에 의해 그리고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불러일으킨 변화에 의해 외로움은 그 형태가 달라졌다. 우리 시대 외로움의 징후는 우리가 정치인과 정치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우리의 일과 일터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 사회의 소득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 스스로가 힘이 없고 무시당하는 존재라는 느낌까지 아우른다.

​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일단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특히 소셜 미디어가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는 주변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을 빼앗고 우리 내면에 자리한 최악의 것들을 부채질함으로써 분노와 종족주의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또한 우리가 '좋아요'와 '리트윗'과 '팔로'를 쫓느라 보이는 것을 중시하고 강박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효과적이고 공감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갉아먹는다.

하지만 이 둘은 수많은 퍼즐 조각 가운데 두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외로움의 원인은 수없이 다양하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차별이 여전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더해 도시로의 대규모 이주, 업무 환경의 급격한 재편성, 근본적인 생활방식의 변화 역시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새로운 중대 요소들이 되었다. 아울러 공동체 기반 시설(도서관, 공원, 놀이터, 청년센터, 커뮤니티 센터)들이 적극적으로 파괴되었다. 매우 심각한 문제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장소들은 우리가 단지 함께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할 방법을 배우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소들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시민성과 포용적 민주주의를 연습한다.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이러한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갈수록 더 흩어질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이러한 원인에 앞서 21세기 외로움 위기의 이념적 토대가 형성된 것은 가혹한 형태의 자본주의, 즉 자유가 최우선시 되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득세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로운' 선택, '자유로운' 시장, 정부나 노동조합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유'. 신자유주의 이념은 이상화된 자립, 작은 정부, 이기심이 공동체와 공동선보다 우선하는 잔인하리만치 경쟁적인 사고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신자유주의 이념이 오늘날 외로움의 위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까닭은 첫째, 전 세계에서 이 이념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로지 승자만을 위한 이 사회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은 남에게 뒤처진 패자라고, 결국에는 우리 모두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이제는 전통적으로 일과 공동체를 단단히 묶어주던 밧줄이 썩어가고 있고 사회안전망이 잠식되어 사회적 중요성이 축소되고 있다.

둘째, 신자유주의는 거대기업과 거대 금융에 그 어느 때보다 큰 권력과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주주와 금융시장이 게임의 규칙과 고용조건을 재편하도록 허용했다. 우리는 국가가 시장에 속박되어 국민을 돌보지도, 국민의 요구를 살피지도 않는다고 여긴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인간관계에도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초 경쟁과 이기심 추구 같은 자질을 앞세워서 우리가 서로를 보는 방식과 서로 간의 의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고 그로 인해 더욱 광범위한 차원에서 초래될 결과는 개의치 않았다.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닌 축적하는 사람으로, 돕는 사람이 아닌 투쟁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했다. 우리는 지나치게 바빠서 이웃과 함께할 시간이 없을뿐더러 이웃의 이름조차 모른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런 상태를 방치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에서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날 위해줄까? 시장이? 국가가? 고용주가? 이웃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기 본위'의 이기적인 사회,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나를 돌봐주지 않으리라고 느껴지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외로운 사회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이 세계를 다시 하나로 모으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공동선과 다시 연결하고 자본주의의 심장부에 돌봄과 온정의 협력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뻗어나가게 해야 한다.

2장. 죽음에 이르는 병, 외로움

「지속적인 외로움은 물론 단 2주 정도의 짧은 고립도 개인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외로움,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반대로 공동체는 외부인에게는 배타적이나 폐쇄된 집단 내에 머무르는 이들에게만큼은 확실한 건강상의 이점을 준다. 그 원천은 일단 공동체가 제공하는 실질적인 지원이기도 하고 누군가가 내 뒤를 지켜봐주고 있음을 아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은 혼자 있지 않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먹이사슬의 최상부에 오를 수 있어던 이유는 더불어 살기를 열정적으로 채택한 덕분이었다. 아주 최근까지도 세계에 혼자 남겨진 인간은 더없이 취약한 존재였고 문자 그대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 남들과 연결된 상태는 우리의 자연적 상태이며 사실 우리가 욕망하는 상태다. 우리가 이 욕망을 의식하든 하지 않든지.

우리는 혼자 있을 때 경계심이 높아지고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쾌함을 느낀다. 외로운 몸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 몸으로, 쉽게 지치고 지나친 염증반응이 일어난다. 다른 스트레스의 효과를 막대하게 증폭시켜 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병에 잘 걸리게 한다. 더 나아가, 세포와 호르몬 수준에도 영향을 미쳐 몸의 회복을 방해한다. 외로움은 심각한 정신적 외로움과 고통도 초래할 수 있다(불안증과 우울증 등)

외로움에 대한 해법은 공동체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친절한 행동과도 연관이 있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친절과 돌봄을 베풀 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남을 위해 친절과 돌봄과 작은 선행을 베푸는 것 역시 우리가 외로움을 덜 느끼고 건강상 이점을 누리게 한다.

3장. 그들은 왜 히틀러와 트럼프를 지지했는가

생쥐는 고립 기간이 길수록 새로운 생쥐에게 더 공격적이었다. 인간의 외로움은 타인을 향한 적대감과 연관성이 있다. 공감능력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뇌 부위는 측두정엽인데 외로운 사람의 뇌는 측두정엽의 활성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로운 사람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빨리 반응하지만 반응의 무게중심은 관점이 아닌 주의력에 있다. 외로운 정신은 자기 보존 차원에서 작동하며, 고통 받는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혹시 모를 위협 요소를 찾아 주변을 살핀다. 분노, 적의, 주변 환경을 위협적이고 매몰찬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 저하된 공감능력 등 외로움은 위험한 정서 조합을 낳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두 가지 유대가 강력해야 하는데 하나는 국가와 시민 간의 유대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 간의 유대다. 이러한 연결성의 유대가 무너지면, 그래서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못하고 단절감을 느낀다면, 그래서 국가가 자신을 보살피지 않는다고, 자신이 주변화 되었다거나 버림받았다고 느낀다면 사회는 분열되고 양극화되며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오늘날의 상황이 이렇다. 이 외로운 세기에는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고 우리를 국가에 연결해주던 유대가 실낱처럼 가늘어지고 있다. 동료 시민과 주류 정치인들이 자신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키고 단절시키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감염위험은 이러한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관심을 요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최근 목격했듯이 극단주의 정치인, 즉 포퓰리스트가 악용하기 좋은 토양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는 자신이 '국민'을 대표하며 오로지 자신만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외치면서 국민과 경제, 정치, 문화 '엘리트' 사이에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인이다. 포퓰리스트들이 악당으로 묘사하는 '엘리트'란 국회, 법원, 자유 언론 등 합법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제도다. 그들은 사회의 결속이 아닌 분열을 추구하고 자신의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주저 없이 인종적․종교적․민족적 긴장을 부추긴다. 외로운 사람들, 불안하고 남을 신뢰하며 어딘가 소속되길 갈망하지만 항상 '뱀을 보는' 이들은 포퓰리스트에게 이상적인 목표물이다.

외로움과 불관용 정치의 연관성에 처음으로 주목한 저자는 한나 아렌트였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즘의 핵심 구성원을 추적해 근원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발견하고자 하였고,『전체주의의 기원』(1951년)이라는 논쟁적 저작을 발표했다. 아렌트는 이 책 후반부에서 놀랍게도 외로움이라는 요소에 주목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전체주의는 "외로움을 기반으로 삼는다.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절망적인 경험에 속한다." 나치즘을 추종한 사람들의 "주요 특성은 … 야만과 퇴보가 아닌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 임을 발견한 아렌트는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개인적 자아를 투영함으로써 목적의식과 자긍심을 되찾으려 한다." 고 주장한다. 주변화 되고 무력해진 느낌, 고립되고 배제되고 자기 자리와 지원을 빼앗긴 느낌. 이러한 차원의 외로움이 21세기 지금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위험이다.

우리는 더 넓은 공동체에 얽혀있을수록,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느끼며 우파 포퓰리스트에게 덜 현혹된다. 그것은 우리가 지역 모임에 가입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공동체를 이끌거나 단순히 참여하고, 친목을 다지는 과정에서 포용적 민주주의를 연습할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우리는 단지 함께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적절히 조율하고 조화시킬 방법을 배운다. 반대로 우리는 사회적으로 덜 연결되어 있을수록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차이를 적절히 조율하고 서로를 시민답게 협력적으로 대하는 연습이 부족해지며, 동료 시민을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고, 그 결과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형태의 공동체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외로움은 사회적 고립이나 공동체적 유대의 결핍으로만 초래되지 않는다. ① 남들이 내 말을 들어주거나 이해해주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포퓰리스트 지지자들은 특히 더 간절히 그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과 그에 따른 주변화 되고 고립된 느낌을 정치 권력자들이 알아봐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극단주의적인 정당들은 그들을 바라봐주고 귀기울여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동안 기억되지 않은 미국의 남녀를 내가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라는 트럼프의 구호를 보자. 실제로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공업의 쇠퇴에다 2008년 금융위기와 경제침체와 긴축정책이 이어지면서 지난 수십 년간 실제로 많은 사람이 기억되지 못했다. 결국 비대칭적인 경제적 희생이 초래되었고 가장 크게 고통 받은 사람들은 주로 비숙련직 노동자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파 포퓰리스트의 표적이 되었다.

외로움은 그뿐만이 아니다. ② 외로움은 또한 상실감이다. 물론 상실된 것은 공동체이다. 경제적 안정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매우 중요하게는 사회적 지위의 상실이다. 외로운 사람들을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들로 규정한 한나 아렌트의 정의를 다시 보자. 사회적 지위는 동료애, 자부심, 신분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남성에게 그렇다. 단지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서와 연대의 목적이 있는 품위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나는 생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가 상식이 된 세상에서, 고용되지 않았거나 지위가 낮은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에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고 말함으로써 구세계의 질서를 복원 하겠다 약속했다. 활기찬 공동체와 새로운 사회적 지위에 대한 약속은 특별한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모든 미국인은 존엄하고 존경스러운 존재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하며 지위와 자기 존중감을 되찾고자 하는,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느끼는 수많은 노동자계층 백인 남성에게 호소했다.

포퓰리스트들이 내세우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③ 소속감이다. 일터와 노동조합에서 제공해주던 지위와 공동체를 모두 상실한 뒤 소속감은 굉장히 중요했다. 트럼프같은 포퓰리스트들은 바로 이 공동체의 공백을 비집고 들어가 그들 특유의 명료하고 활기찬 방식으로 소속감을 공략했다. 트펌프의 정치 이념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은 바로 집회다. 트럼프의 집회는 브랜드화 된 복장, 노래, '우리' 화법, 공동체주의에(반복해서 ‘국민’ 언급) 대한 줄기찬 호소를 특징으로 한다. 그는 과거 일터를 비롯한 공동체에서 느끼던 전통적인 유대감을 상실한 이들에게 소속감의 갈망을 충족시켜주며 사람들이 스스로를 중요하다고 느끼게 만들 줄 알았다.

포퓰리스트들이 내세우는 공동체의 공통적 특성은 바로 타자에(‘우리’와 ‘그들’) 대한 노골적인 배제이다. 그들은 외롭고 버려진 느낌을 받는 사람을 모아 민족이나 인종에 기반 한 공동체를 조성하면서 종족주의를 무기화하고 타자를 적으로 만든다. 그들은 추종자들이 경험하는 버려지고 주변화 된 느낌을 더욱 부채질하여 타자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배격하게 한다. 공포심을 조장해 추종자들의 불안과 걱정을 부추기고, 그들의 충성과 지지를 얻기 위해 민족적․종교적 차이를 악용한다. 분열을 조장하는 이러한 수사는 종종 전염성이 강해, 코로나 19 이후 이러한 충동들이 더욱 증폭될 수 있고, 중도 정치인이었던 사람들마저 벽을 세우고 '타자'를 비난함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외로움의 원인과 결과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정치적․사회적 질문들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최근 이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한 이들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었다. 이제는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외로움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해야 한다. 어째서 지금이 '외로운 세기'인지를 더 세밀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4장.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프랭크에게는 경제적 불안정의 삶이 있었는데 그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도시 생활 그 자체였다. 처음에 도심의 고층 건물에 자리한 좁은 원룸 아파트를 구할 때 프랭크는 몹시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저녁에 빈집에 돌아오거나 심하게는 일 때문에 온종일 집에만 처박혀 있었던 날이면 집이 아늑하다기보다 마치 관 속처럼 느껴지곤 했다. 특히 하루를 마시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긴장을 풀 만한 사람은커녕 커피 한잔할 만큼 알고 지내는 사람조차 같은 건물에 한 명도 없어서 더욱 그랬다. 프랭크는 이 건물에 2년 쨰 살고 있지만 "내 이름을 아는 이웃이 한 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다들 처음 보는 것처럼" 굴었다.

프랭크의 아파트 건물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익명성은 그의 대도시 생활의 축소판으로 보였다. "여기서는 아무도 웃지 않아요." 프랭크는 맨해튼에 대해 말한다. 휴대전화에 고정된 시선, 걸음 수를 측정하는 핏빗(fitbit), 찡그리거나 결의에 찬 표정. 프랭크에게 이 도시는 무정하고 적대적이고 냉혹하게 느껴졌다.

프랭크는 도시에서 친구를 사귀기에 얼마나 어려운지도 말했다. 모두 너무나 바쁘고 급하고 자기계발에 열중해 있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기존의 관계를 돌보기는커녕 잠시 수다 떨 시간조차 없는 것 같았다. 프랭크는 전에 살던 중서부 소도시에서 답답함을 느꼈고 지금 하는 일에서 "성공"할 기회를 만나려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뉴욕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프랭크는 지금 아주 가까이 사는 사람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매일 인도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도 그에게 전혀 알은척하지 않는 이곳 뉴욕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연 현대도시의 어떤 점이 도시를 그토록 차갑고 외로운 장소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일까? 먼저 ① 도시의 규모는 무뚝뚝함을 낳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적응기제를 일상화한다. 우리는 도시 생활에서 너무도 많은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치는 모든 사람과 충분한 인간애를 나누다가는 우리의 사회적 자원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자주 반대되는 행동을 취한다. 도시의 분주함과 부산함, 소음, 끝없이 쏟아지는 시각 자극에 압도된 도시인은 헤드폰으로 귀를 덮고 선글라스를 쓰고 휴대전화를 보며 고립 상태에 파묻히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만의 디지털 프라이버시를 치고 길을 걷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닫으면서 가상 세계에서는 화면을 두드리고 스크롤을 쓸어내리며 인스타그램 사진과 트위터 글을 훑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도시에는 '예의에 부정적인 문화', 다시 말해 지리적이거나 문화적인 차이는 있지만 타인의 물리적 또는 정서적 공간에 이유 없이 침범하는 것을 무례하게 여기는 사회규범이 발달했다.

다음으로는 ② 도시의 속도이다. 도시인은 언제나 빨리 움직였지만 외로운 세기에는 그보다도 빨리 움직인다. 도시가 부유할수록 우리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 시간이 돈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화가 덜 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장시간 일한다. 서로 빠르게 지나쳐 걷고, 이동 중에 문자를 보내고, 과로로 시간이 부족하고, 바쁜 일상을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가 주변 사람의 존재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관계조차도 외로움 같은 감정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우리가 남을 친근하게 대하거나 남이 우리를 친근하게 대할 때 그 행위가 진정성이 있든 아니면 아주 짧은 순간 연출된 것이든 우리는 우리가 공통으로 지닌 것, 즉 우리가 공유하는 인류애를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는 혼자라는 느낌이 덜 든다. 최근 우리 삶이 이토록 단절되고 고립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일상적인 미세상호작용을 경험할 기회 자체가 훨씬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줄곧 마스크를(우리의 온정, 미소를 감춘다.)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만 우리의 정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에는 구조적인 요소도 있다. 치솟는 임대료와 감당하기 어려운 주택 가격은 도시 거주자가 공동체에 뿌리내리고 정서적 자원을 투입하는 것을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지가 되게 한다. 머무는 사람과 옮기는 사람 모두 이웃을 잘 모르게 되고 고립감을 더 겪게 되는 것이다. 또한 도시인은 갈수록 혼자 산다. 혼자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외로움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도시 생활의 고립감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③ 도시인들이 갈수록 혼자 산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외로움을 많이 느낄 때는 혼밥할 때다. 혼밥에 대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먹방'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관계는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관계이다. 작가는 이런 거래 기반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매우 적기 때문에 우리가 결국 이것을 더 선호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돈을 내는 관계를 자주 경험하거나 혼자인 시간이 많아질수록, 공동체를 구축하고 포용적 민주주의를 떠받칠 기술을 연습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살거나 먹는 것은 인간이 친사회적인 민주적 소질을 연마할 수 있는 작지만 필요한 상호작용이다. 디지털이 대세가 된 우리의 삶에서 면대면 상호작용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이다. 갈수록 고립의 진원지가 되어가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사소한 상호작용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5장. 도시는 어떻게 그들을 배제하는가

기술적 진보, 편익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바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불가피성. 이 세가지로 인해 비접촉생활은 더욱 가소화되고 있다. 앞으로도 봉쇄가 계속되리라는 두려움이 상존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전히 '공식적' 권고사항인 데다가 기업들은 현재 고객과 직원 사이 상호작용을 제한하는 기술과 업무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비접촉의 제도화는 일상적인 거래에서 인간을 쫓아내 인간을 필연적으로 더 외롭게 한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었다는 의식을 강화해주는 모든 미세상호작용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자연스럽고 능숙해지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에 관해 잘 알지 못하게 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이 좀처럼 들지 않게 되고, 서로의 필요와 욕구에 무관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 19가 닥치기 훨씬 이전부터 분리와 원자화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우리의 도시는 갈수록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이들을 몰아내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곳곳에 '적대적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배제에 초점을 둔 도시설계, 공동체를 해치면서까지 누가 환영받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도시설계. 대표적인 것이 노숙자가 눕지 못하도록 하는 벤치 디자인 등이다. 이러한 건축물은 이미 주변화 된 집단(노숙자 등)이 느끼는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배제적인 건축물에 대한 대가는 우리 모두 치른다.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마을을 지킨다는, 도덕적으로 미심쩍은 과제를 떠맡은 적대적 건축물은 우리가 함께 앉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모이는 공동의 공간을 우리에게 내주길 거부한다. 배제의 방식은 이렇게 분명한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유한 주택단지 내 설치된 공공주택의 주민들은 분리정책으로 인해 노골적으로 배제받기도 한다.

배제를 막기 위해선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면대면 상호작용을 증가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충분히 재원이 마련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공장소가 있어야 한다. 바로 그 곳에서 다름을 초월한 관계는 물론, 모든 관계가 태동하고 발전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 인종, 민족, 사회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도서관 등 우리가 교류할 수 있는 물리적 장소를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 또한 마을 상점과 카페가 공동체의 허브이자 마을의 무게중심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도시가 적대가 아니 환대하는 분위기로 설계되도록 도시계획 사업을 증진시켜야 한다.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리 글로벌화 된 세계라도 마을 공동체의 뿌리가 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을 카페를 지원하고 잠시라도 짬을 내어 온라인 매장이 아닌 마을 매장에서 장을 봐야 한다. 또한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우리 마을이 생동감과 환대하는 느낌을 주길 바란다면 주변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물리적으로 더 교류해야 한다. 속도를 늦추자. 그 리듬을, 그 휴식을 내 것으로 만들자. 미소를 짓자. 담소를 나누자.

6장. 스마트폰에 봉쇄된 사람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주요 발전은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지만 사용자들에게 항상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스마트폰 사용과 예전 세기의 커뮤니케이션 기술 혁신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오늘날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의 사용이 인류사의 그 어느 사건과도 닮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항시적 연결' 상태에 있다 .이는 디지털 시대 야수 같은 거대 기업들의 치열한 연구결과로 인한 작품이다. 바로 이 항시적 연결이 21세기 외로움 위기의 독특한 본질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① 우리가 일상 속 미세한 상호작용을 빼앗기는 이유는 단지 도시 생활의 분주함과 속도만이 아니며, 심지어 현대의 사회적 규범만도 아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매 순간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으며, 우리가 더 큰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게 해줄 다양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빼앗는다. 우리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관심이 다른 곳에 팔린 상태거나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동시에 영향을 받은 적은 없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만 사실은 혼자다.

② 스마트폰은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연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공감능력을 저하시킨다. 이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주의를 잘게 파편화해 분열된 자아를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러 방향으로 주의가 잡아당겨진다면 우리 앞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과 온정을 오롯이 주기도, 상대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의견이 전달되는 매체에서 인간적인 형태와 목소리는 제거 된다. 코로나 이후로 영상통화 등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었지만 이 또한 정서적인 연결이나 공감, 이해를 돕기는커녕 대화의 질을 저해하고 관계의 질까지 해친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있을 때조차도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의사소통 능력이 나날이 저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크린 상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스크린시간 제한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부유한 부모들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더 나은 공감능력과 의사소통 기술을 기르기 위한 스크린 타임 제한에도 빈부격차로 인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아이들만(중독 증세가 가장 분명하게 나타남) 중독의 위험에 노출된 것이 아니다. 어른 또한 심하게 중독되어 있다. 스마트폰 중독은 여러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연구와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슬롯머신처럼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우리가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게시물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페이지 새로 고침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누군가 내 글을 지지하거나 공유한 흔적,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글, 서로 간의 끌림, 심지어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소셜 미디어 화면의 모든 픽셀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계속 머무르게 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다.

① 소셜 미디어는 고립된 디지털 고치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어 풍부한 직접 상호작용의 기회를 차단해버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② 소셜미디어는 세계를 더 적대적으로, 덜 공감적으로, 덜 친절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행복한 순간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학대, 괴롭힘,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동성애 혐오증 등 인간 본성에 내제된 최악의 요소들을 전염시킨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집단적 웰빙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③ 일상적인 경험도 우리를 외롭게 만들 수 있다. 소셜미디어로 인해 FOMO(포모. fear of missing out. 자신은 혼자 집에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른 어딘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봐 걱정하며 느끼는 초조한 기분) BOMP(봄프. a belief that others are more popular 자기만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느낌) 현상이 심해졌다. 우리는 SNS로 인해 오랜 학교 친구들이 술자리에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거나 가족 모임에 아무도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전 같으면 그런 사실을 알 길이 없지만 오늘날에는 우리가 따돌림 당한 사실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어 큰 타격을 준다.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따돌림 당한 사실을 실시간으로 알려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자체가 따돌림의 무기로 직접 사용되기도 한다. 단톡방에서의 배제는 엄청난 외로움과 고립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새로운 디지털 따돌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다루기 어렵다.

④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공개적으로 만들어 우리의 외로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아주 평범한 사교모임조차 곧잘 인스타에 기념되고 스토리에 게시되기 때문에 우리의 부재는 쉽게 눈에 띈다. 이보다 더한 것은 '리트윗', '좋아요', '공유하기' 등 새로운 사회적 유행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글을 게시하고도 남들에게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단지 거절당했다거나 스스로 보잘것없다는 느낌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개적으로 거절당했다는 창피함마저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젊은 층에게 인기가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SNS는 사회적인 비교의 강도, 밀도, 파급력 차원에서 이전과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⑤ 소셜미디어는 우리를 온라인에서의 사회적 인정을 맹렬히 좇는 불안한 장사꾼으로 만들 뿐더러, 온라인에서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게 한다. 우리 삶에서 자랑스럽고 빛나는 장면만으로 꾸며지고 필터링 된 우리 자신은 우리의 진정한 자아와 근본적으로 단절되어 있을 때가 많다. 우리가 SNS를 신중하게 큐레이션할수록 프로필 뒤에 가려진 '진짜' 나를 아무도 모르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낄 위험성은 그만큼 커진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필사적으로 신경 쓰고 때로는 우리의 실제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려고 일종의 연기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 우리는 자주 연기를 멈추고 사생활 속의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인생의 매 순간이 잠재적 인생샷이니 이 연기가 대체 언제 멈출지 모른다. SNS는 우리를 상품화하고 재포장된 자아를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가 BOMP를 내면화하게 함으로써 우리 대다수가 주변 사람들보다 인기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우리의 진정한 자아가 디지털로 보정한 자아보다 인기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소외감이 따른다.

변화는 가능하다. 디지털 없는 날 만들어보는 것, 결단력 있는 정부의 개입, 성인 동의 연령에 이르지 않은 아동에게는 중독성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사용 금지, 혐오 표현이나 폭력물 공유 등 극히 악질적인 행위에 관해서는 무관용 원칙 적용 등.

7장. 21세기의 노동은 외롭다

우리는 사생활에서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 일터는 오랜 옛날부터 많은 사람에게 외로움을 불러일으켜 왔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 양상이 특히 놀랍게 나타나고 있다.(전 세계 40%) 현대노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측면은 대개 우리를 더욱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생겨났지만, 이러한 측면들이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애초 의도와 반대되는 효과를 심하게 낳고 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측면들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지우고 고립감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일터에서의 외로움은 직원 개인에게만 나쁜 것이 아니라, 기업 성과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1. 오픈플랜식 사무실

많은 사무직 노동자가 서로에게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무실이 넓은 오픈플랜식 공간이기(가림막이나 칸막이가 없는 공간) 때문이다. 그 이유는 크게

1) 오픈플랜식 사무실의 구조로 인한 과도한 소음, 산만한 주변 환경, 반갑지 않은 방해

-> 사람들은 이에 압도되어 자신만의 고치 안으로 들어가려는 경향을 보임

->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듣는 동시에 무시해야 하기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과제를 마치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함, 끊임없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동료들로부터 나를 고립시켜야 함

2) 프라이버시 부족

-> 남들에게 항상 관찰당하고 있으므로(불안감)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어 인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기진맥진하게 되고 소외감이 듦

3) '핫데스킹' (hot-desking)제도라면 소외감은 더욱 심해진다.(칸막이로 나눠진 개인 좌석이 아니라 공동 테이블과 자율 좌석 또는 예약 좌석제와 같은 업무 방식)

-> 자신만의 작업공간도 자녀나 파트너의 사진을 붙여둘 자리도 없고, 우정이 싹틀 정도로 누군가와 긴 기간 나란히 앉을 수 없으며, 원하는 책상에 앉기 위한 다툼을 매일 벌여야 하는 고립감을 부추기는 생활이 발생

2. 디지털에 장악된 일터 - 이메일과 재택근무로 인해 동료와 나누는 의사소통의 깊이가 얕아짐

우리를 일터에서 외롭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동료들과 나누는 의사소통의 깊이가 훨씬 얕아졌기 때문이다. 동료와 무언가를 상의하려면 동료의 책상으로 걸어갔던 과거와 달리, 요즘 직장인들은 하루의 절반가량을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쓴다. 업무 메일은 노동자들을 매우 외롭게 만든다.

재택근무는 노동자의 외로움을 더욱 심화시킨다. 대부분의 재택근무자가 일차적인 소통수단으로 이메일 등 문자에 기반 한 의사소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없어지며 사람들은 고립감과 외로움을 더욱 심하게 겪는다. 재택근무를 현명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재택근무 일수를 제한하든지, 직원들이 직접 만나 어울릴 기회를 정기적이고 조직화된 방식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3. 다정함에 인센티브를 - 동료와 어울리는 시간의 부재

기업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날로 더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 미투 운동이 직장 문화에 남긴 변화, 노동조합의 약화와 그로 인한 어울릴 기회의 감소, 갈수록 늘어나는 통근시간 등 수많은 이유가 결합해 근무 중이든 퇴근 후든 동료와 어울리는 시간이 흔하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특히 사람들은 이제 일터에서 각자 식사를 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혼자 식사를 하면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혼자 사는 사람이 혼자 밥을 먹을 때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혼자 식사하면 동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덜 든다. 함께 준비한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고 먹는 것은 전 세계 여러 문화권의 핵심 의식이다. 사람들은 이런 시간에 가벼운 잡담을 나누어 혼자라는 기분을 덜고, 직장에서는 이런 시간이 징검다리가 되어 직장 동료들을 더욱 가깝게 묶어줄 의미 있는 대화와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함께하는 식사는 우정, 공동의 관심사, 팀워크를 촉발하는 일종의 '사회적 접착제'이다(니핀). 이러한 관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개인의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것을 넘어서 기업의 팀워크에 큰 해를 끼친다. 반드시 점심시간이 아니더라도 그저 직원들끼리 같은 시간대에 어울려 쉴 수 있는 시간만 마련해주어도 사기와 생산성 모두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대다수 직원은 친절하고 다정한 분위기의 일터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친절과 다정은 굉장히 낮은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직장 내의 외로움을 줄이고 싶다면 친절, 협력, 협동 같은 가치를 명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단지 말로만 그치지 말고 행동에 실제 보상과 인센티브를 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4. 일만 하고 놀지 않는

우리 대다수가 일터에서 외로운 이유는 일터 밖에서 외롭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토록 외로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너무 많은 시간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직장이나 집에서 일하는 모든 시간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와 그만큼 적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공동체에 연결되거나 기여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우리는 꼭 필요할 때조차도 관계를 발전시키고, 이웃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데 시간과 에너지와 능력을 충분히 쏟지 못한다.

5. 언제나 온라인

우리 대다수는 스마트폰 때문에 주말에도 저녁에도 심지어 휴가 때에도 일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디지털 중독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지 더욱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의 고용주들은 노동자가 늘 온라인 상태이기를 요구하는 지금의 기업 문화가 직원의 정신 건강, 생산성, 의사결정 능력, 창의성 측면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알아야 한다.

6. 돌봄 휴가

직장에서의 외로움과 집에서의 외로움 사이 상호작용을 이해한 고용주라면 자신의 직원이 일터 밖에서도 여러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직원의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이 일터 밖의 관계와 유대를 돌보고 유지하는 능력에 현저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훨씬 잘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직원이 노동자로서의 역할과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모두 잘 해내도록 돌봄 휴가 등으로 도와준다면, 직원도 행복해지고 사업상의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 간의 경쟁에서 친근한 분위기로 소문난 직장은 단연 주목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8장. 감시 자본주의와 조작된 경제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가장 의미심장한 노동 재편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다. 지금의 현장에서 권력은 갈수록 기술에 이양되고 있다. 권력은 채용 알고리즘에, 유명한 평가 메커니즘과 로봇, 감시 도구와 추적기기 그리고 결국 이 모두를 조종하는 자들에게로 이양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이 시대를 고립의 시대로 만든다.

1) AI 채용 알고리즘

채용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와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나라는 사람과 기계 사이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이 문제이다. 사람은 자신의 완전하고도 복잡한 인간성을 모두 발휘할 수 없는 조건에서 기계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 이 기계의 블랙박스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내린 판단은 인간과 달리 편견에 취약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한마디로 억측이다. 알고리즘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인간조차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인간이 단번에 인식할 수 있는 변수들을 알고리즘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인간은 분명하게 통보받지 않은 규칙, 불공정하고 편견에 차 있으며 거기에 대항할 법적 수단이 전혀 없는 규칙에 따라 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2) 현대 기술과 융합되어 심각하게 사생활을 침해하는 작업장 감시(감시 자본주의 시대)

작업장 감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생산은 장인정신과 동떨어진 것이 되었고, 노동자와 고용주가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되어가면서 감시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21세기에 나타난 감시는 세 가지 새로운 양상이 있다. ① 모니터링 수준이 매우 심각하고, ② 디지털 기술 때문에 사생활 침해가 우려스러운 수준에 도달했으며, ③ 의사결정 권력이 지나치게 기계에 이양되었다는 점이다. 옥스퍼드대 정치학자 이반 마노카가 썼듯 "예전에는 작업장 감시가 신중하게 이루어졌고 감독자의 시선은 제한적이었으며 그 범위도 작업장에 국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원의 성과에 대한 디지털 정보를 전자 기기와 센서가 쉬지 않고 실시간으로 수집/처리하며, 그 범위가 작업장 밖으로까지 확장된다."

상시적인 감시 아래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감시된다. 갈수록 솔직해지지 못하고 동료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남에게 불신 받는다고 느낄수록 우리 주변을 더더욱 경계하고, 자신을 검열하며, 움츠러들고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기 두려워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용주, 우리의 일, 우리의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느낌을 받게 된다.

3) 평점 제도

21세기 작업장이 그토록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감시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의사결정 때문만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가 감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점수가 매겨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람이 아니라 숫자나 점수로 본다면 남이 우리를 보지 못하는 것 같고 외로운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숫자 하나로 축소해버릴 때 그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고, 스스로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굽실거리는 와중에 진정한 자아로부터 소외된 기분을 느낄 위험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수치에는 맥락에 대한 이해가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 평가 체계의 불투명성 때문에 편견적 요소를 잡아내거나 문제삼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평가 구조는 단지 편견적인 시각을 감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증폭시킬 위험까지 품고 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누군가가 이미 매긴 평점이 있으면 사람들은 거기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4) 조작된 경제

카를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처럼 생산수단에 대해 통제력이 불충분하고 고된 노동으로부터 제한된 결실만을 거두는 노동자는 노동의 과정과 생산물로부터 그리고 동료 노동자와 일터와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단절감을 느낀다.

5) 로봇의 등장

우리는 로봇 주도의 새로운 업무 환경에서 소모품처럼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고립감과 단절감이 피할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운이 좋아 아직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자동화 기기나 인공지능 기기에 밀려 스스로가 사실상 한물간 존재가 되었음을 깨달을 때 외로움에 비할까? 그리고 일부는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고 훨씬 높은 임금과 명예를 누리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못할 떄 우리는 서로 얼마나 큰 단절감을 느낄까?

이번 세기에 자동화와 관련해 가장 가벼운 수준의 예상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계층화가 될 것이다. 로봇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없는 기술을 보유했다고 인정받은 선택된 소수, 기계를 정비․관리․유지하는 또 다른 선택된 소수, 이 기계들을 소유한 더더욱 선택된 소수, 그리고 경제적․사회적 폐품이 되어버린 나머지 사람들. 당신이 운좋게 소수에 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고용된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일터가 얼마나 잔인한 곳이 될지, 먹고 먹히는 광경이 얼마나 처절하게 펼쳐질지, 얼마나 경쟁적이고 얼마나 고립감을 불러일으킬지 생각해보라. 자동화의 흐름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변화를 현명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9장. 알렉사와 섹스 로봇만이 웃게 한다

외로운 세기에 갈수록 커지는 친구, 우정, 사람과의 접촉에 대한 요구에 시장은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알렉사, 일렉트로(키 약 210cm. 몸무게 약 120kg의 전자 기계)처럼 뚜렷하게 매력적인 기계부터 로봇에게 우리는 애정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소셜 로봇들까지 출시되고 있다. 로봇은 보통의 인간관계를 맺기 힘든 사람들에게도 귀중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된 걸까? 우리가 앞 장에서 파악한 문제점들 (고립감, 친구 부족, 내게 마음 쓰는 사람이 없는 듯한 느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데에서 오는 고통)은 알렉사, 하모니, 페퍼의 정교한 새 버전이 등장하면서 부분적으로나마 해결되는 것일까?

어떤 면에서 로봇은 돌봄, 지지, 애정을 모든 사람에게 건네기 때문에 외로움에 평등주의적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로봇이 우리가 혼자인 느낌을 덜 받게 해주고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해도 우리는 그 대가로 서로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함께 관계 맺는 방식을 잃을 수도 있다. 첫째, 우리가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해당 능력이 퇴화하기 때문이다. 둘째, 로봇은 인간에 비해 요구사항이 훨씬 적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인간보다 로봇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인간관계에서 요구되는 추가적인 노력이나 새로운 우정을 쌓기 위한 노력이 점점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가 로봇과 맺는 관계는 인간과 맺는 관계보다 덜 호혜적이고 덜 자기도취적이며 덜 도전적이어서 이 관계에 빠져들수록 공동체의 성장에 필요한 협동과 타협과 호혜의 근육을 키울 기회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넷째, 로봇 덕분에 서로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 시민에게 전만큼 정성을 쏟지 않을 위험이 있다.

21세기에 점차 확대되어가는 외로움 위기에 기술이 줄 수 있는 답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다양한 위험이 수반된다. 가상 비서, 소셜 로봇, 심지어 섹스 로봇도 개인적 차원에서의 외로움 완화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이 인간 사이 접촉, 인간의 우정과 돌봄을 희생하면서까지 도입되어서도 안 된다. 잠재적인 사회적 여파가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10장. 외로움 경제, 접촉하고 연결하라

일상생활이 갈수록 비접촉을 지향해 설계되고, 대화의 장이 점점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이때 우리는 이런 추세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를 수백만 명에 이르는 축제, 스타트업, 대면 수업의 인기 등으로 확인한다. 그것은 가상의 상호작용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점점 고조되어가는 단절감과 원자화의 느낌을 떨치고자 자신만의 디지털 고치를 적극적으로 부수고 나와 아날로그 식 면대면 공동체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일으킨 대항 운동이다.

공동체 의식을 경험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지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갈망은 여전한 이 세계에서 기업들이 빈틈을 채우려고 나섰다. '외로움 경제'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수 세기 동안에도 기업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공동체 경험을 제공해왔다. 특히 지역 사업체들은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하지만 단골들이 만나고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유대를 형성하고 생각을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꽃피는 공간을 제공했다. 이러한 공간은 사람들이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가장 포용적인 형식으로 연습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며 이러한 지역 매장은 대부분 실존의 위기에 처해졌다. 우리는 이러한 상점이 디지털 시대와 전자상거래, 대기업의 횡포 등으로 없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지역 상점에 기반 한 공동체가 단순한 마케팅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된다. 대기업도 공동체가 브랜드상품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인식했지만, 그들이 내놓는 상품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지난 몇 년 동안 공동체에 관해 이전과 뚜렷이 구분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 이 새로운 모델은 기존 공동체를 살찌우고나 사람들이 공유하는 열정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창출할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 이 모델은 공동체 그 자체를 상품으로, 그러니까 공동체를 포장해 팔 수 있는 하나의 제품으로 보고 상업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렇다면 과연 상품화된 공동체가 '진정한' 더불어 살기를 경험시켜줄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상업적 공동체는 사람들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공동체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며, 운영진이 주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시간을 들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해야만 번성할 수 있다. 따라서 공용 주거나 공용 작업 공간에서 아무리 많은 행사를 연다고 해도, 아무리 많은 무료 음식과 술을 제공한다고 해도,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활발히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결코 구현될 수 없다. 공동체의 기반은 함께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지, 단순히 함께 있거나 지나가거나 부딪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거주민들 스스로 힘을 갖고, 나들이와 행사를 직접 기획하며, 공동체 회의를 직접 운영하는 공용 주거, 그리고 관리자들이 그들을 도와 새로운 집단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끌어가는 공용 주거는 순전히 하향식으로 공동체를 강요하는 곳보다 훨씬 잘 해나간다.

또한, 기업에서 제공하는 공동체는 남들과 가까이 살고 일하는 것이 지닌 이점을 팔고자 하지만 사회적 양보, 즉 공동체가 요구하는 힘든 일을 전혀 하게 하지 않는다. 진정한 우정이 그렇듯 진정한 공동체를 세우려면 일부 불편함을 참아내야 하는 데 말이다. 공동체라는 것이 서비스로 주어지는 것이기만 하고 당신이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아무런 활동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공동체에 느끼는 의무감은 약해질 것이다. 연대와 상호 지지를 반복해서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동체 내의 관계는 언제나 결혼 생활보다는 휴일의 로맨스 비슷한 것으로 머물 것이고 신뢰는 언제나 부족할 것이다.

11장. 흩어지는 세계를 하나로 모으다

외로움은 단지 주관적 마음의 상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적 존재의 상태인 외로움은 개인과 사회 전체에도 큰 타격을 가한다. 외로움 위기를 극복하려는 체계적인 경제․정치․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우리 개인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 자기 본위로 자기 자신만 생각할 것을 부추기고 무관심을 일상화하고, 이기심을 미덕으로 만들고, 온정과 돌봄의 중요성을 축소했다. 우리의 관계를 거래로 변질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라는 배역을 맡기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갈수록 심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연대, 공동체, 더불어 살기, 친절 등의 가치를 주변부로 몰아내거나 말살했다.

우리의 작은 실천 작업 – 노동에서든 가정에서든 우정에서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하자. 동료들과 나누어먹을 비스킷 가져가기. 휴대전화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파트너나 가족과 함께 시간보내기. 이웃 초대하여 커피 마시기. 자주 고맙다고 인사하며 감사 표현하기. 디지털 거래를 줄이고 우리 마을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등. 교회의 역할은?

[송순영]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함께라는 단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