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시(如是) >
경전에는 ‘여시(如是)’란 말이 수없이 등장한다.
당장 모든 경전은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된다. 그럼 여시(如是)이란 무엇인가?
‘여시(如是)’란 이와 같이, 사실 대로, 있는 그대로, 이대로, 이렇게, 그러함, 이런 뜻이 있다.
즉, 풀은 풀, 나무는 나무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고 실상(實相)으로서 있는 그대로,
제법(諸法)으로서 있는 그대로, 진리로서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그것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며,
있는 그대로의 성질이며, 여시(如是)에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① 경전 첫머리에 나오는 ‘여시아문’의 ‘여시’이다. ‘이와 같이 들었다’고 함으로써
부처님의 설법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뜻을 품고있다.
② 우주만물의 늘 변치 않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모든 사물의 실상(實相)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③ 좋다, 그렇다는 의미로 다른 사람의 말을 긍정하고 찬성할 때 사용한다.
④ 스승이 제자의 깨달은 경지를 인가(印可)하고 증명할 때 쓴다.
여시(如是)는 어느 누구도 의심하거나 속일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이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 강물은 차고 불은 뜨겁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친다,
눈은 가로로 찢어졌고 코는 세로로 서 있다. 이렇듯
실로 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변치 않는(如是如是 如如不動) 모습을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거역치 않고 그대로(如如)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여시이다.
전도된 거짓 모습은 ‘여시’, ‘여여’의 상태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를 거스를 때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무심히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여시이다.
따라서 여시라는 말에는
“그것은 진짜다, 믿을 만하다. 그건 그것의 본질이다”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여시는 있는 그대로의 본체 등 열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을 십여시(十如是)라 한다.
십여시(十如是)는 <법화경> ‘방편품’에 나오는 말이다.
‘십여시’란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에 갖추어져 있는 열 가지 성질,
우주의 모든 형상이 열 가지 범주 안에 있다는 뜻이다.
이 열 가지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해서 십여시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현상을 열 가지 측면에서 관찰한 것이다.
일체의 현상은 모두 십여시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십여시’가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顗, 538~597)가 창립한
중국 천태종(天台宗)의 세계관이자 현상론이며,
천태종의 모든 가르침은 바로 이 십여시로부터 나오고 있다.
보살이 갖추어야할 일체지(一切智), 즉 평등상(平等相)에 대한 설법이 바로 십여시(十如是)이다.
십여시란, 일체의 현상(現象)을 열 개의 카테고리(category)로 묶어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삼라만상 그 어느 것도 십여시를 벗어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즉, 사물마다의 ①모습(如是相) ②성질(如是性) ③체상(如是體)
④능력(如是力) ⑤작용(如是作) ⑥원인(如是因) ⑦보조원인(如是緣) ⑧결과(如是果)
⑨과보(如是報)가 ⑩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가
사실은 한결같이 평등한 것이다(如是本末究竟等)는 말이다.
즉, 현상계(有爲)의 모든 것은 천태만상이지만, 그 현상은 일시적인 인(因)과 연(緣)의 모임에 지나지 않을 뿐,
그 내면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의 대생명(眞理), 즉 절대(無爲)이기 때문에 평등한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십여시는 천태종의 모든 가르침이 시작되는 근원이기도 하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여시상(如是相) ― 존재 하는 모든 것의 외견상의 모습, 즉,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모습,
우주 만법의 나타나는 현상 그대로를 말한다. 천지일월(天地日月)로부터 산천초목까지
삼라만상이 각기 그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시상인 것이다.
②여시성(如是性) ― 모든 것의 나름의 성질, 내적인 성질, 특성을 말한다.
만법이 각기 그 본바탕을 지니고 있다는 말, 불(火)은 뜨거운 성질, 물은 젖는 성질,
광물은 광물성, 동물은 움직이는 성질 등을 지니고 있는데,
삼라만상이 다 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을 여시성이라고 한다.
즉, '여시성(如是性)'이란 모양 속에 있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성질을 말하는 것으로
성질이 없이는 상이 나타날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을 색심불이(色心不二)라고 한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물질과 둘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화가 나면
얼굴 모습이 일그러지고 즐거우면 웃는 모습으로 상이 변하는 것이다.
③여시체(如是體) ― 생겨난 것들의 나름의 주체(본체), 근본바탕을 말한다.
모든 만물은 모두 체(體)가 있다. 물은 액체, 불은 기체, 광물은 고체로 돼 있는데,
모두 체(體)가 있기 때문에 여시체라고 하는 것이다. 외상(外相) 내성(內性)을 합친 전체를 말한다.
즉, 상과 성질을 갖추고 있는 물건으로서 실재하고 있는 것을 체라고 한다.
사람은, 사람이란 그것이 체가 되고 사람의 체 안에 모양과 성품이 포함돼 있는 것이므로
모든 사물들은 상(相), 성(性), 체(體)가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④여시력(如是力) ― 존재 하는 모든 것은 그 나름의 쓰임새, 잠재적인 능력 등
모든 물체가 반드시 나름의 힘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불은 뜨겁고 타는 힘, 물은 젖고 불어나는 힘, 광물은 그 성질에 따르는 화학적인 힘,
생물은 생장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⑤여시작(如是作) ― 겉으로 드러나는 작용과 역할. 힘을 지닌 모든 존재는 반드시 그 작용을 가지게 된다.
불은 물건을 불사르게 하며 뜨겁게 하는 작용을 하고, 물은 물건은 적시고 윤택 나게 하는 작용을 하며,
생물은 성장발육하고, 또 노사(老死)하는 작용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기능을 말한다.
⑥여시인(如是因) ― 모든 일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 즉 장차 어떤 결과를 낳을 직접적인 원인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반드시 그 원인요소가 있어서 이룩된다. 물은 H₂O, 불은 가스와 산소가 화합해 된 것이며,
모든 만물은 원소와 요인(要因)으로 구성돼 있음을 말한다.
⑦여시연(如是緣) ― 인(因)을 돕는 간접적인 원인이나 조건, 모든 행에 따르는 간접적 원인 혹은 상황을 말한다.
모든 물질은 간접적인 주변 여건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연(緣)이란 조건관계(條件關係)ㆍ간접적 원인이라는 뜻이다.
한 알의 씨앗이 성장하는 데는 흙ㆍ물ㆍ온도라는 간접적 원인이 서로 조화됨으로써
씨앗이 성장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예이다.
⑧여시과(如是果) ― 인과 연에 의해 생긴 결과, 모든 행에 나타나는 직, 간접적인 결과를 말한다.
만상은 인(因)과 연(緣)이 화합함으로써 가져온 결과이다.
불과 기름이 합해 불이 붙어 광명을 내는 이치도 마찬가지이다.
남녀가 화합함으로써 제2의 생명을 생산하는 것도 다 인연화합의 결과인 것이다.
⑨여시보(如是報) ― 연(緣)에서 온 결과 ― 과보(果報)를 말한다. 결과가 사실이 돼 외부로 표출된 것,
인ㆍ연ㆍ과에 의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 것, 그 반드시 나타나는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보(報)이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일기(一期)’의 보(報)를 받고, 짐승은 짐승으로서의 보(報)를 받는다.
모든 사물이 이미 그 결과로서 생긴 것은 반드시 그에 대한 보(報)를 받는 것을 말한다.
⑩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 ― 제①의 상(相)에서 제⑨의 보(報)까지가
서로 관계해 일관되게 존재하는 것이다.
본(本)은 10여시 가운데 첫 번째인 여시상(如是相 : 형상, 모습)을 가리키고,
말(末)은 10여시의 아홉 번째인 여시보(如是報 : 마지막 결과)를 가리킨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양으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인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구경등(究竟等)은 구경, 곧 마지막으로 이들 모두는 차별 없이 평등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시본말구경등은 이와 같이 본과 말은 구경해 똑같다는 말이다.
즉,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말한다.
십여시 중에서 상(相)ㆍ성(性)ㆍ체(體)의 삼여시는 제법의 본체(本體)를 말하고,
역(力)ㆍ작(作)ㆍ인(因)ㆍ연(緣)ㆍ과(果)ㆍ보(報)의 육여시(六如是)는 제법의 작용(作用)을 나타내고 있다.
상(相)에서 보(報)까지의 구여시(九如是)의 일관성을 본말구경등이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여시(如是)’란 영원히 언제까지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갖추고 있는 조건을 말한다.
부처님이건 악마건 나무건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것은 이 열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열 가지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십여시는 처음과 끝을 일관한 존재의 법칙으로 다양한 사물에 구비돼
각각의 개체를 지탱하는 규범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사물 내지는 그것을 지탱하는 규범[제법(諸法)]의 구체적인 상태가 십여시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법실상이다.
천태대사는 바로 이 십여시에서 제법실상(諸法實相)인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을 유추해 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인간의 예를 들어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제법(諸法)의 하나이다.
얼굴이나 키, 외모 등은 상(相)이다. 또 밖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것,
예를 들면, 성미가 급하다든지 성미가 느긋하다든지 상냥하다든지 얌전하다든지 하는 여러 성격은 성(性)이다.
상과 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간의 심신(心身)의 전체, 이것이 인간 자신의 체(體)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은 여러 힘(力)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외부로 향해서 여러 작용(作)을 일으킨다.
또 그러한 인간 자신의 생명이 원인(因)이 돼, 내외(內外)의 환경(緣)이 더해져서,
생명에 변화가 일어나(果), 그것이 이윽고 현실의 응보(報)로서 나타난다.
더구나 이 아홉 개가 일관해서 빠짐없이 인간이라고 하는 생명과 주위의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本末究竟等).
이것이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길가에 피는 한 송이 꽃에도 아름다운 상(相)이 있고,
성질이 있고, 그 체(體)가 있다. 또한 역(力). 작(作). 인(因). 연(緣). 과(果). 보(報)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그리고 전체로서 꽃이라는 생명을 구성해 일관돼 있다(本末究竟等).
그리고 무생물도 마찬가지다. 조그만 돌멩이도, 달도, 별도, 태양도, 바다도,
우뚝 치솟은 산들도, 떠들썩한 거리를 내려다보는 도시의 빌딩 숲도 집이나 자동차나 하나 하나의 사물까지도,
모든 존재가 십여시(十如是)라는 양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어렵게 이야기 하면, ① 여시상으로부터 ⑨ 여시보에 이르기까지 본체(本體)는 공(空)이면서
인연생(因緣生)으로 가유(假有)이고, 또는 공(空)ㆍ가(假)가 상즉(相卽)하므로 중도(中道)이다.
일(一)이 곧 구(九)요, 구가 곧 일이므로 본말(本末)이 평등한 일여(一如)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다 안 한다, 있다 없다, 옳다 그르다, 이런 분별을 하는데,
이 모든 분별을 넘어서는 것, 분별없는 것이 바로 여시(如是)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분별되지 않는 것을 그냥 놔두려 하지 않는다.
반드시 어느 하나로 귀속시켜서 이를 평가하고 선택하려고, 나머지 하나는 배척하고 몰아세운다.
그리하여 재가불자 백봉 김기추(金基秋, 1908~1985) 선생은 <금강경>의 ‘법회인유분’ 첫 시작인
여시아문(如是我聞)에 대해, 이런 게송을 남겼다.
如是如是是如是 (여시여시시여시) - 이러히 이러하니 이것이 이러히네
如是外別無如是 (여시외별무여시) - 이러히 밖에 따로 이러히 없는 것이
世人不知是如是 (세인부지시여시) - 사람은 모르고야 이것이 이러 함을
右往左往覓如是 (우왕좌왕멱여시) - 이곳저곳 헤매며 이러함을 찾는고야
수행과 노력을 다하면서 진리를 찾아 나섰는데, 결국에 찾게 되는 것은 이러함(如是)이라는 것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