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며 사는 삶
곽흥렬
고뇌만큼 인간적인 것도 없으리라. 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고 싶은 대로 자는 삶, 이것이 어떤 삶의 전부라면 이러한 삶이야말로 짐승의 그것과 무에 그리 다르랴. 고뇌 없는 삶은 결코 사람다운 삶은 못된다. 고뇌는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사람만의 특권이기에.
인간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은 누구 없이 이런저런 고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 고뇌하고 있음은 그가 오늘 이 순간을 살아서 존재한다는 뚜렷한 증거인 셈이다. 그러다 그의 명줄이 끊어지는 날 비로소 고뇌도 그를 따라 영원한 잠에 들 것이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그림자가 구름 속에 가린 그의 실체와 함께 사라지는 것과 같이. 따라서 고뇌는 우리가 생일처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인간의 천형이다.
지구상의 육십 억 인류가 지닌 하루 이틀 치의 고뇌를 죄다 끌어모아 가래떡을 만든다면 그 길이가 얼마쯤이나 될까. 이 대답이 그리 수월치는 않겠지만, 아마 자그마치 지구를 세 바퀴 반은 넉넉히 돌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양이리라. 이런 뜬금없는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아니다. 이건 생각처럼 그리 엉뚱한 상상이 아닐 수도 있다. 모르긴 해도 사람의 삶에는 고뇌가 그 태반일 것 같다.
나는 개미 쳇바퀴 돌듯 되풀이되는 일상사 가운데서 잠시 잠깐씩 놓여나는 시간이면 자주 실존적 고뇌에 빠져 허우적거리곤 한다. 나란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내 이렇게 머물다 때가 되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면 다시 어떤 형상으로 남게 될 것인가. 삶에서 무엇이 정녕 본원적이며 궁극적인 가치를 지니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문득문득 나를 괴롭힌다.
나는 내게 운명 지워진 일정한 시기 동안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쉴 새 없이 뛰어야 하는 이어달리기의 주자走者 같은 존재. 이렇게 허겁지겁 달리다 어느 순간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면 그도 내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삶이란 그리 녹록지 않은 이어달리기를 다시 또 계속하리라. 나는 나를 이어 달리고 있는 그 주자의 뛰는 모습을 관중석에 앉아 바라볼 수 없을 터이니 다만 그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조국의 영광을 위해 자살 공격을 감행하라는 특명을 부여받은 가미가제 특공대의 병사들처럼. 그들은 목표물을 명중시켜야만 하는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고 난 후에 전개될 그 극적일 상황을 어찌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랴. 그저 상상 속에서나마 희미한 웃음 머금고서 사라져 갈 뿐, 그것은 다만 살아남은 자들만이 취할 몫인 것을……. 이러한 이치를 생각할 적마다 언제나 싸늘한 두려움으로 이내 가슴 한 켠이 저려 온다.
“순경은 독이 되고 역경은 약이 된다.”
채근담菜根譚의 이 귀한 말씀 한 구절을 목숨처럼 아끼며 살아가려 한다. 세상이 우러러 받드는 인간 승리의 사연, 그 가운데 팔 내지 구 할은 역경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값진 결과물이라 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은 아닐 성싶다. 고뇌 속에서 황금빛 찬란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 세상사 불변의 이치이므로.
순경은 거기에 도취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지만, 역경은 깊은 고뇌를 통해 그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연민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도 고뇌를 함께한 자의 동질감 때문이리라. 이것이 어디 병에서뿐이겠는가. 사람살이의 이치란 어차피 매한가지인 것을…….
만상 가운데 세상에 길이 남겨지는 것은 시련과 역경 앞에서도 꺾이지 아니하고 당당히 맞선 참한 고뇌의 흔적이다. 흙가마의 그 절망 같은 어둠 가운데서 극한의 열기를 이겨내고 마침내 하나의 반짝이는 생명체로 태어나는 오지그릇이 그렇고, 살을 에는 겨울 해풍을 묵묵히 받아내며 기어이 핏빛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이 그렇고, 조국이 처한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대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던진 선열들의 삶이 또한 그렇다. 그 지독히도 깊었을 그들의 고뇌가 회초리 되어 뒤통수를 친다.
삶의 흔적은 곳간에 남고 고뇌의 흔적은 가슴에 남는다. 이럴 경우 삶의 흔적은 이내 세월의 물살에 쓸려 내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 터이지만, 고뇌의 흔적은 동굴 속 벽화처럼 역사 가운데 또렷이 아로새겨져 길이길이 유전遺傳된다. 부귀며 명예며 지위며 권세……, 이 모든 것들이 세월 앞에 무상無常하다 해도, 고뇌로 가꾸어진 정신적 자산만은 유독 거기에서 예외일 것 같다.
고뇌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실존적 물음에 대한 치열한 자기 성찰이다. 이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싹트는 올곧은 정신의 작용으로부터 우러나온다. 따라서 고뇌가 없으면 자연 생의 깊이도 없다.
사람은 항용 말초적 감각에 자신을 내맡기고 부표浮漂처럼 이리저리 떠밀리며 살아가기가 십상이다. 편하고 쉬운 것에는 잘도 눈이 머는 인간 존재의 가볍고 나약한 본성 탓이라 해도 좋겠다. 말초적 감각만을 추구하는 삶은 고뇌하며 사는 삶에 비해 팔랑개비처럼 가볍고 개울물같이 얕음을 면키 어렵다. 이러한 이치를 헤아려 보건대, 바른길을 구하는 삶은 무엇보다 이 말초적 감각을 경계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빵은 육신을 살찌우지만 고뇌는 영혼을 살찌운다. 그러기에 사람은 모름지기 한 그릇의 기름진 쌀밥에 목을 매기보다는 한 종지의 맵짠 고뇌를 사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