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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정도룡(農夫 鄭道龍)
이 기 영
1
불볕은 내리쪼인다. 뜨거운 태양열은 불비를 퍼붓는 것 같다. 그것은 마치 훈련된 병사가 적군에게 총을 겨누어 한 방에 쏘아죽이려는 것같이 땅 위 만물에게 똑바로 내리 대고 광선을 발사한다.
길바닥에 모래알은 이글이글 익는다. 나뭇잎은 시들고 풀포기는 발갛게 타들어간다. 대지는 도가니같이 끓는데 만물은 그 속에 들어앉았다. 그래 불김을 삼키고 또한 불김을 내뿜는다.
개(犬)는 긴 혀를 빼물고 쉴 새 없이 헐떡거린다. 그 불빛 같은 혀를 길게 빼물고 헐떡거리는 양은 마치 꺼지지 않는 불을 먹은 오장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고통을 자지리 느끼는 듯이 눈을 딱 감고 사족을 뻗친 채로 늘어졌다. 웅덩이에 담긴 물은 열탕같이 끓어서 털썩! 하고 뛰어드는 개구리는 두 다리를 쭉 뻗고 발랑 자빠진다. 그리고 사지를 바르르 떨다가 다시 뒤처지며
“에그메나! 이게 웬일인가?”
하는 듯이 그 툭 뼈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흥미를 강자(强者)에게 느끼게 하는 것은 논고¹에 몰린 송사리 떼일 것이다. 물은 자질자질² 미구³에 잦아붙을 지경인데, 잔인한 양염(陽炎)⁴은 저들의 생명수를 각일각(刻一刻)⁵으로 빨아간다. 그 속에서 오물오물하는 송사리 떼一아 죽음의 최후의 공포를 느끼고 서로 살려고 애씀인지? 꼬리를 맞부딪치다가는 물 밖으로 튀어진다. 그러는 놈은 보기 좋게 순간에 죽어버린다. 저 먼저 살려고―저 혼자만 살려고 조바심을 하는 자는 먼저 죽는다. 이것은 약자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그런데 잔인한 웃음의 햇살은 행복을 느끼는 듯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장엄한 죽음을 결단하여 최후의 일적(一適)에서 맹렬히 반항한다. 약자가 강자와 싸우다가 죽는 것은 그들도ㅡ조그만 미물인 그들도ㅡ장쾌한 죽음인 줄 아는 모양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반항하다가 통쾌한 최후를 마치는 것은 영원한 명예인 줄을 저들도 아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가?
한낮의 더위는 과연 심하다. 더구나 대륙적 기후이라 더욱 맹렬하다.
생물은 모두 서고(暑苦)⁶를 느끼며 가뭄에 부대끼면서 최후의 일각까지 생의 투쟁을 계속한다. 학정(虐政)에 신음하는 민중 같다 할까? 철쇄에 얽매인 죄수 같다 할까? 바람이 분대야 불을 몰아오는 것 같은 흙먼지를 날리며 더운 기운만 확확 끼얹어서 숨을 턱턱 막히게 할 뿐이다. 그러니 부채질을 하는 것은 불을 붙이는 셈이라. 천치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때에 부채질할 사람은 없겠다.
그런데 땅 위에 있는 수분을 모두 빨아다가 사람의 살 속에다 주사를 하였는지 오직 이 사람 저 사람의 몸에서만 땀이 철철 흐른다. 그래도 땀도 물이라고 사람을 행복하다 할는지? 그렇다면 이 땀물과 눈물을 그중 많이 흘리는 자는 지금 저 들에서 모를 심는 농부들일 것이다. 도회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일 것이다. 볕에 건⁷ 몸뚱이는 황인종인지? 흑인종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검다. 황금열(黃金熱)은 백인종의 마음속도 먹장같이 검게 만들어놓듯이, 이 태양열도 남의 살빛을 이렇게 변해놓는다.
희끄무레한 잠방이를 걸치고 아래위로 드러내놓은 살빛은 오동 빛같이 더욱 검게 뵈는데 어쩌다 옷 속에 들어 있는 살이 나오면 그는 도저히 한 사람의 살빛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치 딴 색이 돋는다. 이 햇빛에 탄 검붉은 등어리를 일자로 꾸부리고 늘어서서 그들은 지금 한참 바쁘게 모를 심는다. 한 포기 두 포기 꽂아놓는 대로 논빛은 청청히 새로워지고 그들의 입에서는 유장(悠長)한 상사디⁸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고통을 잊고자 하는 애달픈 느낌을 준다. 그러는 대로 등어리에서는 진땀이 송송 솟고 태양은 한결같이 그의 광선을 내리쏜다. 그들의 땀빛도 검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논임자는 나무 그늘 두터운 북창에 의지하여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귀로는 이 유한(悠閒)한 농부가의 벼 포기 사이로 흘러나오는 곡조를 듣고 있다. 그래도 그는 덥다고 부채질을 연신 하면서 까부라지려는 겻불같이 두 눈이 사르르 감겼다 다시 빠꼼이 떠 보았다 한다.
여러 날 가물던 끝이라 그런지 저녁 이 되어도 퇴서⁹는커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리라 하는 기대를 보기 좋게 실망하려는 듯이 역시 훈증한 더운 김만 확확 끼얹는다. 마치 냅지¹⁰ 않은 연기 속에 싸인 듯하여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이런 날 저녁 에는 변으로 모기가 많겠다. 원래 모기라는 벌레는 더운 때에 생기는 것이라 하면 역시 더운 날 저녁에 더욱 활동할 것은 괴상히 여기는 편이 더욱 괴상한 일이다마는 일상 제 생각만 잘하는 사람들은
“아! 오늘 저녁에는 웬 모기가 이리 많은가?”
하고 무슨 변이나 생긴 듯이 이상히 여긴다. 그야 어떻든지 과연 여름 한철에는 조그마한 모기란 놈도 꽤 사람을 시달리것다. 깔다귀¹¹한테 물리고 성을 잔뜩 내고 앉은 사람의 꼴도 우습지마는 그렇다니 말이지 사람이란 것도 그리 영물(靈物)은 못 되는 물건인 듯하다. 그래도 사람더러 물어보아라! 인생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큰소리를 하지 않나? 더구나 문명인이란 사람들이……
달은 아직 떠오르지 않고 황혼의 땅거미가 아물아물 저 건너 숲 사이로부터 휩싸 들어온다. 벌써 먼 산의 윤곽은 희미하고 모든 것이 흰빛 속에 숨기려는 것처럼 어둠의 장막 속에서 비치고 있다. 산골짜기에 드러난 바윗돌같이 점점한 덩어리가 흩어져 있는 것은 띄엄띄엄 있는 마을 집이었다. 좌우로 산이 둘러 있고 앞으로 논과 밭이 있는 것은 이런 어두운 밤이라도 이게 농촌인 줄은 짐작할 수 있다. 이따금 훅! 끼치는 바람에 거름내가 코를 콕 찌르는 것을 보아도 그것은 알 수 있지마는.
종일 더위에 부대끼고 힘든 일에 시달리던 그들은 저녁 숟갈을 놓고 나면 사지가 노곤한 게 오직 값없이 오는 것은 잠뿐이었다. 그러나 마귀는 이나마 시기함인지 모기가 덤비어서 그들의 단잠을 깨운다. 한날의 피로를 휴식하라고 생명의 신(神)은 이 밤을 마련하였건마는 그들의 운명은 그나마 허락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아! 불쌍한 농군들아!
이집 저집에는 마당에다 모깃불을 피우고 그들은 남루(襤樓)를 걸친 대로 여기저기 쓰러졌다. 어둑어둑한 속에서 반딧불같이 반짝반짝하는 것은 담뱃불이다. 이따금 환하게 타오르는 것은 모깃불이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지 미구에 툭 꺼지고는 다시 회색연기가 구름같이 피어오른다. 그 주위에 희끗희끗한 것이 옹기중기 앉고 눕고 담배를 피우며 그들은 무거운 입을 벌리어 무슨 소리인지 두런거린다. 그사이에 하품하고 기침하고 침을 탁! 뱉고 당나귀 울듯 하는 얼빠진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위에는 밤하늘이 마치 졸음이 오는 듯이 가슴츠레한 별의 눈을 깜박거리며 내려다본다. 마치 그들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듣는 것처럼……
그들은 그 느릿느릿한 말씨로 지껄이다가는 번갈아 한숨을 쉬고 그러고는 다시 허허 웃는다. 목소리는 크지마는 뒷심이 없다. 꽁보리밥 먹은 말소리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살찐 듯하지마는 실상은 영양 불량으로 푸석살이 누렇게 들뜬 것같이! 그들의 목소리도 황색으로 들뜬 것이다. 그래도 불한당(不汗黨) ―땀 안 흘리고 잘사는 사람―들은 노동자는 건강하다고…… 양반님네! 제발 그런 소리나 맙시사.
그 안마당에는 여자들이 모여 앉아서 무엇을 쫑알거리고 또 해해 웃는다. 거기에는 청춘의 생명 있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을 동경하는 열정에 타오르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벌써 결정되었다. 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또한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던 생활을―그들이 가던 길을 ―그는 다시 뒤따라갈 뿐이었다. 물 긷고 빨래하고 보리방아 벼방아 찧고 다듬이질하고 옷 짓고 밥하고 그리고 애 낳고 밭 매고 모 심는 일까지―만일 이것이 싫거든 죽어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의 명령이었다……
사방을 둘러보아야 모두 날마다 보는 싫증 나는 것들뿐이었다. 하늘도 늘 보던 하늘이요 산도 늘 보던 산! 들도 늘 보던 들이다. 그들 중에는 사십 년 혹은 오십 년 동안을 한곳에서 말뚝과 같이 박혀 산 자가 많다. 아니 몇 대째로 여기서 나서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었다. 어디 출입을 한다는 것이 기껏 장 출입이었다. 그들은 장에 가서 시체¹²로 난 물건을 보고 와서는 신기한 듯이 떠들고 야단이다.
수중다리¹³에 흘게눈을 해가지고 말을 하자면 입을 실룩실룩하는 덕삼이가 그 우스운 입을 실룩거리며
“너! 차 타보았니!”
하고 옆에 앉았는 말불이에게 물었다.
“아즉 못 타봤소. 타보면 어떻다우!” 말불이는 신기한 듯이 이렇게 되짚어 묻는다.
“어때여 호습지¹⁴ 산이 빙빙 돌고 들이 달음박질을 한단다!”
“예 여보! 차가 달어나지 그래 산이 달어나요” 하고 말불이는 곧이들리지 않는 듯이 이렇게 핀잔을 하였다.
“허허허 그것은 네가 아즉 타보지 못한 말이다. 차 안에서 보면 산이 달어난단다” 하는 말에 말불이는 다시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나는 여태 타본 것이라고는 없소!” 하고 절망한 듯이 입을 헤벌리고 웃는다. 잠자코 있던 덕삼이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또 싱글싱글 웃더니만
“그러나 네 생전에 꼭 두 가지는 타볼 게 있다” 하고 그는 다시 의미 있게 말불이를 쳐다본다.
“두 가지가 메유?”
“응! 장가들면 가마 타보고 그러면 네 아씨 배 타보고…….” 하하하 하는 그 얼빠진 당나귀 웃음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던 막동이가 방정맞게 톡 튀어 나서며.
“그러나 장가도 못 들면 어짜구?” 하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꼭 타겠지. 죽으면 들꺼치¹⁵를 타더래도 설마 송장더러 무덤으로 걸어가라지는 않을 터이니까? 허허허.”
말불이는 그게 무엇인가 하고 기쁘게 바라고 있다가 고만 실망한 듯이
“예 여보!” 하고 덕삼이의 등허리를 탁 친다. 그는 고만 골이 났다.
“허허허” 하는 웃음소리가 또 소나기 오듯 하였다. 하하하 하고 한숨 쉬는 소리도 들린다. 그는 늘 음침한 상을 하고 있는 덕보이었다. 그들은 다시 저거번에 서울 갔다는 영삼이를 둘러싸고 서울 이야기를 묻기 시작하였다.
“대체 서울이란 어떻던가?” 하고 텁석부리 정첨지가 벙글벙글하며 이렇게 화제를 돌리었다.
“그걸 어찌 한 말로 할 수 있나!” 하더니 영삼이는 다시 말을 잇대며 자기 혼자 구경한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자네들도 남대문은 들어서 알겠지?” 하고 묻는데 누가 “남대문입납¹⁶ 말이지!” 하는 소리에 또 웃음통이 터졌다.
“그래 그 남대문 말이야! 참 잘 지었데. 우리나라 사람도 예전에는 재주가 많었던 게야!”
“그런데 지금은 그 재주가 다 어디로 갔다오?” 하고 금방 골냈던 말불이는 어느 틈에 골이 삭았는지 별안간 이렇게 묻는다.
“무얼 삭었지!”
“무엇에 삭어요?”
“양반과 술과 계집에! 하하하.”
“참 그런지도 몰라!” 하고 정 첨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이 탄식한다. 영삼이는 다시 말끝을 돌리었다.
“아―니 가던 날 저녁에 협률사(연극장)를 가보지 않었겠나! 참! 꽃 같은 기생도 많데. 자네들 기생 구경하였는가?”
성칠이가 바짝 다가앉으며 도리깨침¹⁷을 꿀떡 삼키더니
“그럼! 못 봐. 읍내 오리집에 있지 않은가?”
“하하하. 게우¹⁸집은 아니고 오리집이야 참! 오리같이 모다 생겼더라! 돈 속으로 탐방탐방 빠지는 것이.”
“그게 기생인가? 갈보이지. 짜장¹⁹ 기생은 이런 시굴은 아니 나려온다데.” 덕삼이가 또 이렇게 말참례를 하였다.
“그래 하룻밤 데리고 자고 싶지 않던가?”
“무얼 저 꼴에 어떻게…… 그라다가 가위나 눌리게 허허허.”
혹 돋친 성춘이가 장구배를 내밀고 이렇게 또 조롱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감도 못 나서 그럴까 겁이 나겠데마는 그래도 이뿌기는 이뿌던 데. 하하하.”
“그래도 수컷이라고…… 헤헤헤.”
영삼이는 다시 말을 잇대었다.
“그런데 서울 사람 말소리야말로 좋데! 더구나 여자의 말소리라니 아주 반하겠던데.”
“그래 여자의 말소리가 어떻단 말이냐?”
“아! 우리 시굴 여자는 이랬수! 저랬수! 하는데 메떨어지지²¹않은가. 그런데 서울 여자들은 ‘아! 왜 이래요? 안녕하십시오! 어떱시오! 하는 게―나는 잘 입내 낼 수도 없네마는―아주 꾀꼬리 소리란 말이야. 얼골을 보면 비 온 땅에 징신²² 신고 간 자욱이라도 말소리는 봄 하늘에 종달새 울음이거든. 그런 여자는 쇠경이 장가 들면 꼭 맞춤이겄데 허허허.”
“아따 그 자식 서울 갔다 오더니 말솜씨 늘었다. 얽었단 말이지.”
“헤헤헤 .”
“자네 웃음 째는 시굴 촌놈 젤세. 나도 이번에 서울 가서 그렇게 웃다가 흉 잡혔네” 하고 영삼이는 또 성칠이의 웃음소리를 타내었다.
“그럼 어떻게 웃나?” 하고 성칠이는 무안한 듯이 되짚어 묻고 쳐다본다.
“허허허 하든지 하하하 하든지 하란 말이야.”
“무얼 하하 줄은 모다 웃어도 좋지.”
“아니 그럼 누가 햐햐햐 웃던가?”
“웃고말고. 일전에 아니 장에를 가지 않었겠나? 마침 왜갈보집 앞을 지나노라니까 무얼무얼 똥땅똥땅 하며 노래를 부르고는 햐햐햐! 하고 마치 불여우 간 뜯는 웃음을 웃데나그려.”
“참! 그렇지 나도 들었어!” 하고 정첨지가 맞장구를 치고 따라 웃는다. 누가 방귀를 뿅 하고 뀌는 바람에 또 웃음통이 터졌다.
어느덧 밤은 이슥하였다. 이제는 고요한 밤이 어둠의 장막을 드리우고 말없이 그의 침묵을 지키는데 간간이 들리는 것은 잠 없는 늙은이들의 아직도 이었다 끊겼다 하는 구성진 이야기 소리였다. 그들의 특징인 이 빠지고 힘없고 청승궂은 어조로 기운 없이 하는 느릿느릿한 말은 마치 그들의 흰 터럭과 같이 말소리에도 회색을 띤 것 같다. 허무한 과거를 추억하며 애달픈 죽음이 여일(餘日)을 재촉함을 생각할 때 그들의 입에서는 하염없이 탄식이 흘러나올 뿐이다. 야반(夜半)의 적막이 죽은 듯한 이때 그들의 그늘진 목소리는 마치 북망산에 묻힌 고총(古塚) 속 백골들이 하나씩 둘씩 벌떡벌떡 일어앉아서 음침하고 충충한 불쾌와 시취와 송장벌레가 뼈다귀를 갉아 먹는―영원한 고통인 그 무서운 총중생활(塚中生活)²³을 하소연하는 것 같이 들리었다.
그러나 동천에서 서늘한 달이 떠오르자 대지는 다시 월색에 안기어 반기는 듯! 웃는 듯! 천당과 낙원이 여기가 아닌가? 의심할 만치 삽시간에 별천지가 되었다. 더위도 어느덧 물러가고 산뜻한 청량미 (淸凉味)가 전신의 살 구멍으로 들어가서 박하 빙수를 먹는 것 같은 상쾌한 느낌을 느끼게 한다. 만물은 저 교교한 달빛에 싸이어 은근한 정을 머금고 이제 새로운 생명에 소생한 듯이 행복을 미소하며 그의 단꿈에 취한 듯이 몽롱히 비쳤다. 가끔 비단치마가 스치는 듯한 산들바람은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행복의 탄식이라고나 할까?
아까같이 반짝반짝하며 저의 광채를 자랑하는 듯하던 별들은 고만 월광에 무색하여 부끄럼을 감추려는 듯이 저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이따금 깜박깜박하고 내다보며 어디까지 희미한 그림자를 나타내려 함은 암만해도 저 달을 질투하는 것 같다. 많은 별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는 언제든지 한결같은 빛을 한결같이 가지고 있다. 낮에도 있고 밤에도 있고 달이 있을 때나 해가 있을 때나 노상 있지마는 미혹 잘하는 사람들은 해가 뜨면 우리가 없어지고 달이 솟으면 우리는 숨는 줄 안다. 그래 해도 달도 없는 밤에만 우리를 찬미한다. 그리고 우리를 저희의 눈만치 조그맣게 생각하여 우리보고 눈 깜작인다고 하지마는 실상 우리는 달보다는 크고 해보다도 크고 그리고 우리는 무수하다고……
미풍이 살짝 지나갈 때에는 마른 흙내가 폴싹! 떠오르다가도 그 속에는 이슬 섞인 초향(草香)이 물씬하고 코를 상끗하게 한다. 지금 저리로서 불어오는 일진청풍²⁴은 앞 강에서 물결을 스치고 일어남인 듯! 수분 섞인 서늘한 맛을 가슴에다 끼얹는다.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니 등허리에 친친하던²⁵ 땀이 어느 결에 거진 말랐다. 자는 사람들도 이것을 꿈속에서 의식하는지? 숨소리가 부드러이 길게 내쉬었다.
2
마실 갔다 돌아오는 정도룡(鄭道肯勖은 지금 자기 집 싸리문을 지치고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모깃불이 한 줄기 회색 연기를 되풀이하는 그 짓에 염증이 난 듯이 게을리 가는 연기를 토하고 있다. 그 가닥 그 가닥이 바람에 솔솔 불리어 공중으로 회회 돌아 올라가다가는 다시 사라지고 사라지고 한다.
뜰 위에는 밀방석을 깔고 그 위에서 홑이불을 덮고 누운 세 식구가 나란히 잠들었는데. 모깃불은 마치 고요한 이 밤의 비밀을 홀로 지키려는 듯이 호독호독 불똥을 튀며 모락모락 타오른다. 그러나 주위가 모두 꿈나라에 방황하는 이때이라 졸음은 저에게도 침노하는지? 하품하는 입김 같은 연기를 실같이 점점 가늘게 토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 비치는 달그림자는 흔들흔들하며 그 한 사지 그림자가 자는 사람의 얼굴을 은은히 가리었다. 멀리 강 언덕에 늘어선 버들 수풀은 우중충하게 한데 얼크러져 수묵을 던진 것 같은데 달빛은 그 속의 신비를 엇보려는 것처럼 와사등²⁶ 같은 푸른빛을 그 위에 던지고 있다. 그리고 이편으로 툭 터진 사이로 일면강색(―面江色)이 훤하게 보이는데 은파연월에 은근한 경색이 누구의 가슴에 한 줄기 느낌을 자아낸다. 아, 이 밤 이때에 누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어디서 컹컹 짖는 개 소리가 야반의 정적을 깨뜨리고 멀리 공기를 헤치고 사라져간 뒤에는 다시 침묵ㅡ 오직 자는 사람의 숨소리가 색색! 하고 이따금 모깃소리가 앵! 하고 귓가로 지나가는 소리가 가늘게 들릴 뿐! 그것은 멀리 지옥에서 들리는 마귀의 참회하는 울음소리와 같이!……
정도룡은 지금 무심히 앞 강을 바라보고 앉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한 무엇에 감동함인지? 한동안 등신같이 우두커니 앉아서 멍! 하니 앞 강을 바라보다가 홀연한 숨을 후 하고 내쉰다. 그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어느 틈에 담배도 다 탔는지 댓진²⁷ 끓는 소리가 꼬로록 하고 나자 그는 마지막 한 모금을 쭉 빨고는 대를 탁탁 털었다. 타고 나머지 담배는 섬돌²⁸ 아래로 떨어지며 그래도 그 불이 다 타고야 말겠다는 듯이 가는 연기가 타오른다. 그게 최후로 깜박하며 연기가 폴싹! 떠오르고 사라질 때 그는 비로소 자기의 정신을 차린 듯이 깜짝 놀라 고개를 이편으로 돌리었다.
그의 옆에는 바로 마누라가 누웠다. 그다음에는 딸이 눕고 그다음에는 아들이 차례로 누워 잔다. 이렇게 보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 하던 모든 생각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자는 이들의 귀여운 생각이 금시로 가슴을 치밀었다. 그의 입에는 어느덧 미소가 떠오르며 사랑이 가득히 괸 눈으로 아들과 딸 또는 마누라의 자는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래 그들의 뺨을 번갈아 만져주고 그러고 차례로 궁둥이를 두드렸다. 차례로 입을 맞췄다.
늙어가는 마누라이지마는 이렇게 은근한 달빛에 싸이어 전신을 자유로 펄치고 자는 양을 보니 유달리 아리따워 뵈는 것이 마치 처녀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 싶으다. 그래 자기도 청춘으로 돌아온 듯싶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의 입술을 × × × × ×. 불현듯! × × × × × × ×.
아내는 지금 서른다섯 살이다. 자기가 그와 만나기는 지금으로부터 십팔구 년 전이다. 그때에 그가 순결한 처녀이었던지 아닌지? 그것은 자세히 모른다마는 자기도 자기의 출처는 잘 모르는 터이라 그런 것을 물을 것은 없다. 자기 부친이 서울 뉘 집 청지기²⁹로 있을 때에 어떤 백정의 딸을 상관하여 자기를 낳았다기도 하고 어떤 무당이라고도 하니까 그런 아내의 신분을 가리거나 또한 정조(貞操)를 말할 여지도 없다. 자기야 개구멍으로 빠져나왔든지 다리 밑에서 주워왔든지 그야 어떻든지 자기에게도 생명이 있는 것을 가끔 행복한 줄로 느낄 때에는 그것을 감사치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자기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의지가지없는 혈혈단신이었다. 여기저기로 날품팔이를 하며 그날그날을 지나다가 어디 가서 머슴을 좀 살아볼까 하고 어찌어찌 굴러간 것이 공교히 지금 아내가 사는 동리로―더구나 그가 있는 집으로 가서 고용이 된 것은 지금 생각하여도 우연한 일 같지는 않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그와 또한 결혼할 줄이야 누가 꿈에나 생각하였으랴? 하고 그는 지금까지 신기히 여기는 터이었다.
그때 자기는 한창때이라 그렇지 않아도 그를 곁눈짙하며 흘금흘금 쳐다보았다. 혹! 저 색시하고…… 하는 헛침을 꿀떡 삼키기도 결코 한두 번은 아니었다. 한데 헛침을 자기보다 더 많이 삼키고 더 오래 있던 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놈들이 고만 자기한테 다리 들렸것다 하고 그는 지금도 이 최후의 승리를 달콤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그 집 젊은 부인의 교전비³⁰이었었다. 그 부인이 늘 말하기를
“너는 댁에서 잘 골라서 시집을 보내줄 터이니 그리 알어라” 하고 당부하였다 한다. 그런데 별안간 자기와의 관계가 소문이 났을 때 그 부인은 그를 조용히 불러 앉히고 사실을 일일이 심문할 때 그의 이실직고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는 소스라쳐 놀라면서― 마치 소금벌레나 본 것처럼
“아모리 천한 상년이기로 그렇게 함부루 몸을 갖는단 말이냐? 상년이란 참 할 수 없고나! 나는 그런 줄 몰랐더니!” 하고 혀를 툭툭 차면서 눈이 빠지도록 나무랐다 한다. 그때 아내는 분하고 무안해서 눈물을 샘솟듯 하며 이러한 대답을 당돌히 하였다 한다.
“아모리 아씨가 제 일을 잘 보아주신다 해도 제 맘에 드는 사람을 어떻게 고르실 수 있어요! 저가 가 상년의 일은 제 눈으로 똑똑이 보고 제 손으로 골러야 하지요?” 하고 다시 열렬한 목소리로
“저는 그것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저하고 살 사람을 제 손으로 고르는 게 무엇이 부끄러워요? 아마 상년이라 그런지는 모르지마는―그러나 아씨께서는 양반님의 법대로 예절을 갖추어서 이 댁으로 시집을 오셨지요? 그런데 아씨는 왜 서방님을 마땅치 못해 하십니까? 그런 혼인이 왜 금슬이 좋지 못하셔요? 아씨는 왜 눈물을 흘리시고 한숨만 쉬시나요? 서방님은 첫째 나이가 어리시지요! 아씨보다 철이 안 나셨지요? 다른 것은 고만두고라도 지금 아씨가 한참때에는 서방님은 어리시고 서방님이 한참때에는 아씨도 벌써 이우는 꽃과 같이 늙으시지 않겠습니까? 아씨는 그게 좋으신가요? 예법대로 하신 혼인이 왜 그리 불행합니까? 저는 차라리 뭇사람에게 욕은 먹을지언정 저를 평생토록 불행으로 살 수는 없어요. 그랴느니 차라리 목을 매어 죽지요! 그래서 저는……아씨! 그것은 용서하십시오! 상년이라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고 한참을 분한 말을 쏟아놓았더니 부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아무 말이 없이 묵묵히 앉았다가 나중에는 입을 비죽비죽 하더니 고만 그의 손을 붙들고 목이 메어 울었다 한다. 그래 마주 앉아서 실컷 울었다 한다. 그날 밤에 아내는 나를 불러가지고 으슥한 곳으로 가서 그 말을 죄다 하며
“아주 무안해서 퍽 울었어요!” 하기에 “울기는 왜 울었어? 남이야 메라든 우리 할 일만 잘했으면 고만이지” 하였더니 “네, 그렇지요! 남의 비방이 무서워서 저의 참맘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것은 빙충맞지요!”³¹ 하고 그는 새로운 용기를 얻은 듯이 나의 손목을 꼭 쥐었다……
그야 어떻든지 우리의 이런 관계가 주인댁 양반님 네에게까지 풍기상(風紀上) 좋지 못한 영향이 미친다고 주인영감이 콩팔칠팔³²하며 불호령하는 꼴이 우스웠다.
“너희 같은 추한 연놈은 이 당장에 냉큼 나가거라!” 하고 내모는 바람에 우리는 얼씨구나 하고 종의 멍에를 벗어놓았다. 청년남녀의 외짝은 신발 외짝과 같은 것이다. 외짝 신이 아무리 곱더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제 발에 맞는 신을 제가 골라 신을 것인데 그런데 그 부인은 큰 짚신에다 나막신을 짝 맞춘 셈과 같다. 지금 자기의 아들에게는 큰 짚신을 신기고 며느리에게는 작은 신을 신겨서 아들은 철덕철덕 끌고 며느리는 안 들어가는 것을 억지로 신으려고 애쓰지 않는가? 하고 자신은 그때 코웃음을 하고 나왔다. 그 덕분에 장가 잘 들고 종에서 속꾸³³되어서 이 민촌으로 와서 살게 된 것이다.
“그때 아내도 자기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야” 하고 정도룡은 다시 미소를 빙끗하였다.
―피차에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는 얼굴을 살짝 붉혔지마는 조용한 틈만 있으면 자기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였다. 가끔 우스운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는 고 하얀 잇속을 드러내놓고 간드러지게 웃는 양을 볼 때에는 어찌도 귀엽던지 그 모양이 볼수록 보고 싶었다. 그래 우스운 이야기를 듣는 대로 꼭꼭 기억하였다가 그에게 들려주고 하면서 그의 웃는 꼴을 재미있게 보고 놀았다.
그러나 우스운 이야기도 늘 밑천이 없으므로 나중에는 윗말 사는 우스운 소리 잘하는 텁석부리 송첨지에게 이야기를 사다가 팔았다. 그자는 근년에 난 궐련³⁴ 맛을 보고 반한 자인데 궐련 한 개에 이야기 한마디씩 교환하였다. 그러느라고 자기는 궐련을 사다놓고 한 개에 한 마디씩 무역하였다. 그다음에는 그것도 밑천이 떨어져서 하루는 우스운 이야기를 궁리하다가 암만해도 생각이 아니 나서 한번은 이렇게 그를 속였다. 처음에는 아주 이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고 우습다고 허풍을 쳐놓고는 별안간 무릎을 툭탁툭탁 치며 닭 우는 소리를 꼭! 기요―골―하였더니 그는 너무나 어이없는 짓에 어떻게 우스웠던지 “아이고 배야! 배야” 하고 들입다 웃는데 과연 웃던 중 제일 많이 웃었다. 그래 “거봐! 이번 이야기가 그중 우습지 않은가?” 하였더니 그는 얄미운 듯이 눈을 샐쭉하며 “어디 보자!”는 듯이 눈찌가 외로 돌아갔다.
“남을 그렇게 속이는 것 보아!”
이를테면 그때의 자기네는 시체 개화한 청년들이 잘한다는 연애를 하였던 모양이라고 그는 과거의 청춘을 돌아보며 그때의 단꿈을 다시 입맛 다셔 보았다.
아내는 지금 꿈에 사탕을 먹다가 입술이 근질근질한 듯한 바람에 깜짝 놀라 깨어 눈을 번쩍 떠 보았다. 그게 누구인지 안 그는 다만 해죽이 웃었다.
달은 여전히 밝아서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들어와 은근히 비추었다. 그 빛이 아내의 얼굴을 비췄다 말았다 하는 것은 산들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모양이다.
아들과 딸은 지금 코를 콜콜 골며 잔다. 부부의 도란도란하는 말소리가 이때의 적막을 깨뜨렸다. 밥은 더욱 괴괴하다……
3
죄수를 감시하는 간수가 교대하는 것같이 괴로운 밤은 다시 괴로운 낮으로 바뀌었다. 검은 밤이 가면 흰 낮이 오는 것은 검은 옷 입은 간수가 가고 흰 옷 입은 간수가 오는 것 같다. 밤에는 모기, 빈대, 벼룩에게 사정없이 뜯기고 낯에는 더위와 노역(勞役)에 알뜰히 보깨어서 그들의 애달픈 생명은 잠시도 안식할 때와 곳이 없다.
지금은 새벽녘이다. 새벽의 회색빛이 차츰차츰 얇아지며 산 고랑에 굴러 있는 바윗돌같이 여기저기 한전하는 사람들의 꼬라구니가 드러난다. 그것은 마치 건들바람에 열린 원두같이 때 아닌 생명을 시든 꼭지에 매달고 아무렇게나 굴러 있는 그것과 같다. 사람의 피 맛에 환장한 독충들은 이 밤의 마지막 배를 불리려고 열광한다. 모기는 잉잉하고 다니며 쏘고 음흉한 빈대는 자리 위에 착 붙어서 사람의 등골을 막 빨아먹는다. 그러면 벼룩은 살살 기어다니며 뜯어 먹고는 함부로 피똥을 깔긴다. 모기는 야만인같이 함성을 지르고 대들어 공격하다가 쫓겨 가지마는 빈대는 문명인같이 음흉하게 ―교묘하게 ―자기의 존재를 감추고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다. 그러면 벼룩은 누구와 같다 할는지? 고놈의 팔팔한 기운이 잠시도 한곳에 붙어 있지 않고 바늘 끝같이 따끔하게 쓴다. 그놈은 습기에서 생기는 놈이라. 개는 땅에서 많이 자는 까닭에 그놈은 개에게서 많이 생긴다. 이놈들이 사정 없이 안팎에서 물지마는 잠자는 사람들은 무의식 적으로 경련하듯이 근육을 꼼작꼼작하는 것은 꿈속에서도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새벽 무렵의 축축한 기운은 아무래도 단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물구덩이에서 빠진 꿈을 꾸다가 깜짝 놀라 깨 보면 찬 이슬이 함씬 내려서 온몸이 축축하고 끈적끈적하였다. 그래 그들은 벌떡 벌떡 일어나서 궁둥이를 툭툭 털고 머리를 긁죽긁죽하였다. 그리고 하품을 입이 찢어지게 하고 그다음에는 담배를 붙여 물고 꿈지럭꿈지럭 일거리를 붙들기 시작하였다.
정도룡도 지금 일어나서 전례대로 궁둥이를 툭툭 털고 머리를 긁죽긁죽하고 하품을 입에서 딱 소리가 나게 하였다. 막깎은³⁵ 머리는 더부룩하게 마치 밤송이같이 털이 일어섰다. 무엇보다 먼저 활동하는 눈은 본능적으로 눈앞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미구에 떠오르려는 기별을 보내는 듯이 동천이 불그스레한데 여자들은 자고 깨서 위선 부엌에다 불을 싸 놓았다. 그 연기가 아침 안개와 어우러져서 동구 앞 버들숲에 얽히었는데, 그 한 가닥이 뒷산 중턱에 넌지시 걸리었다.
앞으로는 맑은 강이 푸른 언덕을 뚫고 그윽이 흐른다. 신선한 아침 공기가 소녀의 입김과 같이 부드러이 진동하여 이슬에 젖은 나뭇잎을 하느작하느작 나부낀다. 어느 틈에 태양은 빨끈 떠올라와서 그 사이로 금실 같은 광선이 화살같이 내뻗친다. 일면으로 푸른 들에 부옇게 패 나는 보리 이삭은 굼실굼실 물결을 치고 있다. 개가 두어 마디 컹컹컹! 짖고 식전 닭이 유장한 목청으로 꼭―기요―한마디를 늘어지게 우는데 제비는 부지런히 벌레를 물어들이고 참새는 한가히 울타리에서 짹짹거린다. 하나 둘씩 사람의 목소리가 들레며³⁶ 그들은 제각기 할 일을 붙잡았다. 이것이 농촌의 유한한 여름 아침이다.
정도룡은 아들과 딸을 깨우고 위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식전 담배 맛이란 참으로 유명하였다. 덤덤한 계집보다 이때의 담배 한 대가 휠씬 낫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런데 담배도 줄여야 할 세상이다. 그는 그 담배 맛에 취한 듯이 연신 빨며 우러난 침을 탁! 뱉었다. 그는 빗자루를 들어서 위선 안팎 마당을 쓸었다. 마누라는 아침을 짓느라고 부엌에서 달각달각하며 아래윗방으로 들락날락한다. 딸은 부엌 일을 거들어주다가 지금은 샘으로 물 길으러 갔다. 미구에 딸이 물 한 동이를 찰름찰름 이고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으로 씻으며 돌아오자
“아버지! 진지 잡수셔요!” 하는 소리에 네 식구는 비로소 방으로 모여들었다. 딸은 지금 숭늉 부을 물을 새로 길으러 간 것이었다. 만주 좁쌀에 쌀이라고는 백미에 뉘같이 약간 섞인 밥을 부자는 겸상하고 모녀는 그 앞에 내려놓고 먹는다.
“아! 상 하나를 더 삽시다. 편편치 않게 땅에다 놓고 꾸부려서 먹기가 거북지 않소? 아마 당신의 허리가 구부러진 것이 그 까닭이 아닌가 몰라” 하고 그는 아내를 쳐다보며 웃었다.
“호호! 설마?…… 상 살 돈이 어디 있소? 그보다도 더 급한 것도 못 하는데.”
“무엇은 살 돈이 넉넉해서 사겠소. 억지로 살래야 되는 게지!”
아내는 다시 해죽이 웃고는 손으로 김치를 집어다 먹는다.
“어머니! 우리는 상이 없어도 괜찮지요…… 밥을 뜨러 갈 때에는 허리를 굽히지마는 입에 늘 때에는 다시 허리를 펴니까요. 오빠처럼 저렇게 젓갈질도 할 줄 모르는 것을 집으랴고 애쓰는 동안에 밥은 벌써 삼키고 짠 반찬만 나중에 먹느니보다 이렇게 손으로 집어 먹으면 젓갈내도 안 나고 더 맛있지요.”
금순이의 이 말에 그들은 모두 웃었다. 가난에는 참 잘 졸업하였구나 하고 정도룡은 허허 웃었다.
“그래도 너는 나만치도 젓갈질을 할 줄 모르지 않니? 너는 젓갈질 할 줄 몰라서 남의 집 손 노릇은 평생에 못 해볼라?” 금석이는 금순이를 또 이렇게 빈정거렸다.
동향집이라 아침 해가 빨끈 비쳐서 눈이 부시어 견딜 수 없다. 그런데 방은 뜨겁다. 요새는 서늘해야 할 방이 불같이 뜨겁고 짜장 더워야 할 겨울에는 방바닥이 얼음판같이 차다. 찰 때 차고 더울 때 더운 것이 자연에 맞을는지는 모르지마는 약한 인간 생활에는 이것보다 부적(不適)한 일은 없다. 그것은 고통인 까닭이다. 이 고통 중에서 그들은 거친 아침을 치렀다. 땀을 뻘뻘 흘리고 밥을 간신히 먹었다.
아침 후에 그는 무엇인지 아들에게 부탁하고 일터로 나갔다. 그것은 몇 마지기 안 되는 남의 논을 부치는 농사이었다. 그 뒤에는 세 식구가 금순이는 모친과 함께 바느질거리를 들고 앉았고 금석이는 그 옆에 벌떡 드러누워서 깝작깝작³⁷ 재미있게 놀리는 여동생의 바늘 쥔 손을 들여다보고 있다. 두터운 나무 그늘은 서늘하게 지면을 덮고 그 푸른 잎은 산들바람에 다시 부채질을 한다. 뜰 앞 그늘 밑에다 밀방석을 편 까닭이다. 이렇게 식후에 서늘한 맛을 느끼며 드러누웠는 것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상쾌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금석이는 이 달콤한 맛을 미소로 표시하며 지금 가만히 누워 있다.
“오빠! 왜 웃어? 내 괴불³⁸ 하나 해주까? 이걸로?”
하고 금순이는 비단 조각을 무슨 보물인 듯이 살짝 보이며 방긋 웃고 쳐다본다. 금석이는 빙그레 웃고 여전히 누이를 마주 쳐다본다. 금순이는 분홍 적삼에도 구물³⁹ 치마를 입었는데 윤이 흐르는 머리에 좀 갸름한 얼굴이 아름다웠다. 벌써 처녀 태가 나서 젖가슴이 도도록한 게 탐스러운 숫색시 꼴이 났다. 얼비치는 팔뚝은 보랏빛으로 은연히 그리고 숨어 있다. 또렷또렷한 눈매는 심상히 보지 않고 무엇을 캐려는 것 같다. 그래 금석이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너도 벌써 다 컸고나!…….’
“괴불은 이다음에 시집가서 네 아들이나 낳거든 해주랴무나! 그런 것은 고만두고 이렇게 좀! 드러누워보렴! 얼마나 유쾌한가?”
“아니! 아니! 나는 싫어! 오빠두…… 누가?…… 게으름장이!”
하고 금순이는 부끄럼에 타올라 어쩔 줄을 모르겠는 듯이 얼굴이 다홍빛이 되며 어리광하듯 우는소리를 한다. 두 팔꿈치를 내저으며.
그런데 모친은 무슨 의미인지 빙그레 웃고 잠자코 있다가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죽어서 소가 된단다. 어서 일어나 나가보아라.”
하였다. 아마 아까 부친에게 부탁받던 것을 주의시키는 모양이다.
“소나 되면 좋겠소! 소는 게으르니까 할 수 있는 대로 놀거든!”
“그래 게으른 소가 좋아?”
하고 금순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럼 좋지 않구! 나는 죽어서 소가 될란다.”
“아! 소가 무에 좋아요? 내 참! 오빠두.”
“이 숙맥아 그걸 모르니? 암만 부지런해도 장 제턱 일 바에는 할 수 있는 대로 게으른 것이 한쪽 손해는 덜지 않느냐 말이다. 부지런한 것은 고통이거든. 부지런히 고통을 사는 그런 친치가 있나.”
“호호호! 그렇다고 게으르면 더 가난하지 무옐.”
“뭐, 더 가난해! 이보담 더 가난할 게 있어야지? 아주 가난이 밑바닥이 드러났는데두? 응둥이가 찢어질 래두 방둥이가 걸리도록.”
모친과 금순이는 일시에 호호 웃는다.
“그래 나는―” 하고 금석이는 다시 말을 시작한다. 그는 순색으로 느물느물 말을 한다.
“저 소가 시냇가 잔디밭에서 푸른 풀을 뜯어 먹으며 한가히 악위를 삭이고 누운 팔자가 몹시 부러울 때가 많다. 부지런히 일하면 자꾸 부려먹거든. 그러므로 소는 할 수 있는 대로 게으름을 피우지. 아니 소가 부지런하면 사람이 안 잡어먹겠니? 부지런하면 일즉 늙어서 도수장으로 더 쉽게 들어갈 것이다.”
“참! 사람에게 그렇게 유익한 소를 왜 잡어먹는다우?”
하고 금순이는 모친을 말끄러미 쳐다보며 묻는다. 모친은 빙그레 웃으며
“사람에게 유익하니까 잡어먹는단다.”
하였다. 그는 이렇게 대답은 하였으나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말하였다.
“그와 같이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소란다.”
모친의 말 끝에 금석이는 이렇게 받고 채었다.
"너와 같이 되지 않은 일에 밤낮 애쓰는 게 무엇이 좋으냐? 그런 괴불 같은 것을 하는 틈에 낮잠을 한잠 자는 것이 얼마나 유익할지 모르겠다.”
하고 금석이는 다시 금순이를 웃으며 쳐다본다.
"아이! 오빠두…… 고만두어요! 그러지 않어도 조선 사람은 게으르다고 소문이 났다우.”
하고 그는 표정이 샐쭉해지더니 다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미구에 방그레한 웃음으로 빛난다.
"오빠는 마치 예전 이야기에 있는 게으름장이 같구려!”
뒤미처 윤나는 웃음 섞인 소리로 그는 이렇게 부르짖자
“무슨 이야기?”
하고 금석이는 그 뒤를 채었다.
“그럼 내 이야기하께!”
하더니 금순이는 이야기도 하기 전에 미리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이 호호 웃으면서
“저―기. 오빠! 호…… 예전에 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게으르던지 아마 오빠 같던 게야!”
하고 그는 또 들입다 웃는다.
“그래서? 이야기나 하고 웃어야지 !”
“그래, 그런데 이!……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그런데 하루는 쌀이 없다고 한걱정을 하는 바람에 이웃 사람이 보다 못해서 그럼 우리 집에서 벼 한 섬을 갖다 먹으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깜짝 놀래며 하는 말이 아! 그걸 누가 갖다가 누가 찧어 먹느냐고 기급을 하였다우.”
하고 금순이는 간신히 이야기를 그치고는 우스워 죽겠는 듯이 배를 움켜쥐고 쓰러진다. 무심코 금순이의 들썩들썩하는 어깨를 바라보고 있는 금석이는 여전히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무얼 그 사람의 팔자가 좀 좋으냐? 지금 부자들이 모다 그 사람 같은 줄은 너는 모르니? 얘, 볏섬을 지기는 고사하고 빗자루 한번을 안 드는 사람이 많단다. 게으를수록 부자가 되거든.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이 게으르면 게으를수록 우리 같은 노동자의 수고는 더해지는 까닭이다.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은 게으를래야 게으를 수가 없지 않으냐? 하루만 놀어도 내일은 입에 밥이 안 들어가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집도 게으를 공부를 해야겠다. 너는 나한테 배우고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배우고.”
모친과 금순이는 웃었다. 금석이는 고만 무던하던지 무거운 궁둥이를 게을리 일으킨다. 그는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갔다.
금석이는 지금 열여덟 살이요 금순이는 올해 열여섯 살이었다. 그런데 모친은 다시는 동생을 보여주지 않으려는지 도무지 소식이 감감하다. 그래 금순이는 가끔 이렇게 졸라봤다.
“어머니! 왜 애기 안 낳아요?”
그러면 모친은 할 말이 없는지 다만 빙끗 웃기만 하였다.
“똑 더도 말고 둘만 낳아요! 사내 하나 계집애 하나. 그래 나두 형 노릇 좀 하게. 오빠한테 절제만 받기 싫대두! 아니 둘 다 계집애를 낳아요! 그래 우리 삼형제한테 오빠가 찍찍하는 꼴 좀 보게!”
그 언제인가 금순이가 이런 말을 하였더니 모친은 어이없는 듯이 쳐다보며
“기 애는 어린애를 누가 수수팥떡 만들듯 하는 줄 아나베!”
하고 웃었다. 그때 금석이는 의미있는 미소를 띠며 참으로 그렇기나 한 듯이
“네까짓 것들은 셋 아니라 열이라도 덤벼보아라 나 하나를 당할 수 있나?”
하고 장담을 썼다. 그래 금순이는 다시
“어디 보까! 그런가 어머니 어서 낳아봐?”
하고 어리광을 부리어서 모친을 또 웃기고 말았다. 벌써 오랫적―예전 일이다마는
“여보 마누라! 우리는 꼭 둘만 납세다.”
하고 정도룡은 그 어느 날 밤 잠들기 전에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아들 하나 딸 하나만 납세다. 많이만 낳으면 무엇 하오. 잘 키우고 잘 가르치지 못할 바에야―도야지 새끼같이 얻어먹는 게 아닐 바에야―수효로보다는 바탕으로 찰 낳아야 하지 않겠소!”
그때 아내는 새뚝‘⁴⁰해지며
“누가 그걸 억지로 하나! 낳는 대로 낳고 되는대로 낳지!” 하였다.
“그래도 자식 욕심은 퍽 많은가베!”
“그럼 자식도 없으면 무슨 자미로 사우?”
“맘부터 그렇게 먹으니까 안 된단 말이지. 아모리 억지로 못 한다 하더래도 욕심만 부리지 말고 단 하나를 낳더래도 훌륭한― 착한 자식을 낳아보리라는 작정을 하고 정성을 들이면 그런 자식을 낳을 수도 있단 말이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예전 말도 있지 않소? 그런데 더구나 가난한 처지에 자식만 많이 낳기 피차에 고생을 하는 것은 죄악이요 적악이니까.”
“자꾸 배면 어짜구?”
하고 그때 아내는 힐끗 쳐다보며 방끗 웃었다.
“낙태시키지!”
“에구메나! 끔찍한 소리두 하네!”
아내는 눈을 동그라니 뜨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는 산고를 치르던 때 생각을 하면 미상불 고만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났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초산에 어찌도 혼이 났던지 다시 애를 낳으면 개딸년이라고 맹세를 하고도 불과 일 년에 또 애를 배어서 경을 치고 나서는 또 그 애가 귀여워서 죽겠다는 말과 같이 이렇게 금순이가 동생을 보아지라고 조르는 말을 들으면 다시 하나만 더 낳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 구석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래 벌써 단산인가? 생각할 때에는 그는 어쩐지 시원섭섭한 생각이 갈마들어서⁴¹
“당신 소원대로 잘되었소!”
하고 영감을 원망하는 듯이 이런 말을 불쑥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영감은
"응! 무슨 소원?”
하고 눈을 둥그러니 뜨고 어리둥절하는 바람에 그는 다시 제풀에 웃어버렸다. 그는 지금도 그런 생각이 나서 영감을 미운 눈치로 쳐다보다가 언뜻 생각난 듯이
“참! 용쇠네는 셋째 딸을 또 삼백 냥에 팔어먹었다우!”
하고 아까 마실 왔던 춘이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잘했군! 딴은 그게 팔어먹기로 말하면 달마다 부지런히 옥토끼 새끼 낳듯 하였으면 괜찮을걸!”
“무식한 소리도 하네!”
“무에 무식해! 그런데도 며느리가 태기가 있다니 이번에도 제발 딸을 납시사고 고사를 지내라지. 그러면 또 오백 냥쯤 받고 손녀를 팔어먹었으면 한밑천 톡톡히 잡을 터이니!”
하고 정도룡은 퉁명스럽게 부르짖었다.
“자식을 크기도 전에 장가를 들여서 도야지 암 붙이듯 해서 새끼를 낳는 대로 팔어먹는다 하면 그야말로 화수분⁴²이다. 다행히 땀만 낳는다 하면. 그러나 삼신할머니는 심술쟁이라 가끔 사내를 맨들어놓거든. 그런데 용쇠네는 복이 많어서 딸 삼형제를 한숨에 내리 낳아가지고 이백 냥 삼백 냥 사백 냥에 팔어먹었단 말이지. 하긴 그것은 용쇠네만 말할 것은 아니야. 소위 양반이라는 집에서도 그와 비슷한 짓을 하니까. 어떻다지 이 세상은 고마운 것이냐. 아모리 악한 짓을 하고라도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것을 잘 감출 수가 있으니까.”
하고 그는 코웃음을 하였다. 그는 남의 일 내 일 할 것 없이 불의한 일을 보면 이렇게 역정을 냈다.
어느 날 정도룡은 용쇠의 집 앞을 지나노라니까 용쇠는 그의 넷째 딸을 사정없이 회초리로 때려주는 판이다. 그 아해는 지금 너덧 살밖에 안 먹어 보이었다. 이 거동을 본 정도룡은 별안간 달려들어 용쇠의 따귀를 후려갈기고 그 손에 든 매를 잡아 뺏었다. 그래 용쇠는 별안간 얼을 먹고⁴³ 입을 우물우물하며 등신같어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다.
“왜 어린애는 때리니? 저 애가 늬 집의 화수분이 아니냐? 어려서는 뚜드리고 흘벗기고 배 곯리다가 열 살만 먹으면 팔어먹고. 늬 같은 놈이 도모지 사람의 자식이냐?”
하고 그의 무섭게 흘겨보는 바람에 용쇠는 입을 딱 벌리고 어쩔 줄을 모르고 섰다. 정도룡은 다시 말을 잇대었다.
“이 못난 자식아! 세상에 저보다 약한 자를 학대하는 것같이 못난 것은 없다. 나보다 강한 자에게는 소인을 개올리는⁴⁴ 주제에 누구를 깔보고 때릴 권리가 있느냐 말이다. 그것은 포학한 자를 위(肯定)하는 행위다. 양반이 상놈을 천대하기나 관리가 백성을 학대하기나 남자가 여자를 구박하기나 부모가 자식을 박대하기나 그것은 모다 일반이 아니냐?”
하고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용쇠를 흘겨보며
“사람이란 짐승은 우둔한 것으로서 제가 당해보지 못하면 남의 일은 모르는 것들이다. 무슨 공자님의 도학을 배웠다는 유식한 양반들과 같이 글로만은 착한 일을 모를 것이 없이 알지마는 그런 이들 중에서 도리어 우리 같은 무식한 자보다도 악한 짓을 하는 자를 많이 보았다. 그들은 우리네 농민의 고통을 모른다. 그것은 마치 부자가 가난한 자의 사정을 모르듯이 이웃집에서야 며칠을 굶느니 추워 죽느니 해도 그저 그런가 심상히 보고 제 배 부른 것만 다행으로 아는 자들이다. 놈들은 건망증에 걸려서 아까 한 일도 금시에 잊어버리고 지금 눈앞에 일만 생각하겠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배운 지식을 실행하게 하려면 위선 고통을 맛뵈어야 할 것이다. 할 수 있으면 어떤 놈이든지 모다 잡아다가 요새 저 논밭 두렁 속에 몰아 처넣고 괭이와 호미를 하나씩 앵겨놓고는 채찍으로 소 몰듯이 들두드려 일을 시킬 것이다. 그래 맛이 어떠냐? 고 좀 물어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교쟁이니 한우님이니 나무아미타불이니 공자니 맹자니 영웅호걸이니라는 그들의 말과 일이 모다 소용없는 것이다. 아니 그들의 힘으로 인간을 구원한 일이 언제 있다드냐?”
하고 그는 마치 용쇠가 그들인 것처럼 들이대었다. 그러나 용쇠는 역시 아무 대꾸가 없다.
“내 자식이니까 내 맘대로 한다구? 자네는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겠네마는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때릴 권리가 어디 있나? 사람에게 수족을 붙여준 것은 일하라는 것이지 남을 함부로 때리라는 것은 아니야. 부모나 자식이나 사람이기는 일반이라 하면 제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그리 등분이 없을 게다. 덮어놓고 제 뜻만 맞추랴고 남을 강제하는 것은 포학한 짓이 아닌가? 얼걱박이⁴⁵
를 밉다고 암만 뚜드려준대야 그게 별안간 빤질빤질해질 이치는 없지 ! 자네는 오늘부터 짐승을 배우게!”
“무얼? 짐승을?”
하고 용쇠는 얼굴이 빨개지며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래! 짐승을 배우란 말이야! 자네 집에 제비가 제비 새끼를 치지 않는가? 그 어미 제비를 배우란 말이야! 공자님의 말이나 누구의 말보다도.”
용쇠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다만 자기를 모욕하는 줄만 알았다. 그래 속으로는 분하였지마는 그대로 참고 들었다.
용쇠가 이렇게 혼이 난 뒤에 동리 사람들은 더욱 정도룡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를 경외하기는 그전부터 하였다. 그것은 그의 건장한 체격과 또한 그의 의리 있는 심지가 누구든지 자연히 그를 신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였다. 그것은 그를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속으로는 그의 행동을 감복하였다. 그래 그의 이름이 근사한 것을 기화로 그를 모두 계룡산 정도령 (鄭道令)이라 하였다.
그에 대한 이러한 존경은 건넛말 양반촌에서도―유명한 김주사까지도―그를 만만히 보지 못하였다. 그래 고양이 있는 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생쥐같이 지내던 이 동리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힘을 입었다. 그래 이 동리 사람들은 어른 아이 없이 그를 참으로 정도령같이 믿으며 그의 말이라면 모두 복종하게 되었다. 물론 이 동리의 크거나 적은 일은 그의 계획과 지휘로 해결되었다. 그런데 그를 그중 사랑하기는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었다. 그것은 무지한 남자와 부모의 횡포를 규탄해주는 까닭으로 그러하였다. 마치 일전에 용쇠를 혼내주듯 하므로.
4
그렇다고는 하지마는 이 동리 사람들의 생활은 참으로 가련하였다. 용쇠는 그래도 딸이나 팔아먹었지마는 늙은 부모하고 어린 자식들에 식구는 우글우글한데 양식이 떨어져서 굶주리는 집이 겅성드뭇하였다.⁴⁶ 더구나 지금은 농가에서는 제일 어려운 보릿고개를 당한 판이니까. 모는 심어야겠는데 보리는 아직 덜 익어서 채 익지도 않은 풋보리를 베어다가 뽀얀 물을 짜내서 죽물을 끓여 먹는 집도 많다. 이 세상에서는 종의 신세처럼 불쌍한 자가 없나 하지마는 의식이 없는 자유인은 종보다도 더 불쌍하다. 아니 지금 무산자들은 의식이 없는 주인 없는 종이 되었다. (이하 18행 삭제 )
이웃집 춘이 할머니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나무뿌리같이 근드렁근드렁하는 몸을 간신히 지팡이에 의지하고 서서 우두커니 보리밭을 쳐다보고 있다. 그는 마치
“보리야! 어서 익어라. 우리 집에 양식이 떨어진 줄은 너도 알겠고나! 영악한 사람들 보고 장릿벼 달라고 하소연하느니 차라리 너보고 하는 것이 낫겠다. 그래도 우리 집 식구의 목숨을 구해줄 이는 네로구나! 보리야! 어서 익어라. 나는 다시는 사람에게는 말하기 싫다.”
하는 것처럼 그는 참으로 이런 말을 하지나 않는지? 오므라진 입을 쉴 새 없이 우물거리고 있다. 또한 보리는 이 말을 알아들었는지 걱정스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잎새와 줄기가 바람에 소리쳐 우는 것은 이 불쌍한 노인의 신세를 슬퍼하는 것 같다. 정도룡은 지금 자기 집 앞에 서서 이 노인의 하고 섰는 의미를 캐보려는 듯이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 부지중 무거운 탄식
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춘이 집은 요사이 정도룡의 집에서 준 좁쌀 되로 끓여 먹는 형편이었다. 그는 어린 손자 춘이를 데리고 과부 된 고부가 논 댓 마지기를 지어서 근근이 살아가는 터이다.
*
이 나라에 많이 왔다 갔다 하는 또는 이 땅에 와서 우리는 이렇게 잘산다 하는 문명인들은 저들의 참혹한 생활을 조소한단다. 저게 사람 사는 꼴인가? 하고. 오, 문명인아! 너희의 지식은 과연 저들보다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너희는 그 지식으로 그와 같이 호강하는 줄도 안다. 그러나 너희의 행복이 어디서 나오는 줄을 아느냐?
나마(羅馬)⁴⁷는 일일의 나마가 아니라 함은 도리어 너희가 잘하는 말이다. 그의 황금 시절은 백 년 동안 노예의 피와 땀의 희생이었던 때라 하지 않는가? 그렇다! 너희의 문명은 모두 무수한 노예의 해골에서 희생한 버섯이다. 너희는 이 버섯을 따먹고 사는 유령이다. 우리의 피를 빨아먹는 입으로 붉은 웃음을 띠고 있는 야차⁴⁸와 같은 너희는 얼마나 무서운 아귀⁴⁹인가? 참으로 아귀 인간은 너희들이다! 너희들이다.
너희에게서 허위를 빼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위는 너희에게는 생명의 신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허위의 신을 승배한다. 허위의 신은 정의를 가장하고 이 세상을 정복한다. 너희의 도덕 법률 정치 예절―그것은 모두 허위투성 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봐라. 어떤 사람이 독가비却를 잘 위하였더니 독가비는 감투 하나를 주었다 한다. 그래 그자는 독가비⁵⁰감투를 쓰고 대낮에 돌아다니며 전방⁵¹에 있는 쌀과 옷감을 훔쳐 와도 그 임자들은 도무지 도적맞은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다. 그와 같이 너희는 독가비 감투를 쓰고 온 천하에 횡 행한다. ……황금으로 만든 독가비감투를 쓰고.
*
“놈들은 우리 같은 무식한 백성은 정치할 필요가 있다 한다. 군자는 소인을 다스려야 한다고 그 대신 소인은 군자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놈들이야말로 낯짝도 뻔뻔한 소리도 한다. 도적질을 하거든 정직하게나 못 하고!”
정도룡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자고로 우리에게서 중대한 일이 생긴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노동으로 우리의 목숨을 부지할 만하면 고만이다. 혹시 큰일 이래야 술주정꾼이나 내외간이 싸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불량한 놈이 남의 아내를 겁탈하랴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우리도 잘 재판할 수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풍파와 난리는 모다 저희 놈들이 꾸미고 있으면서 아! 됩다 우리네보고 우악한 백성은 다스려야 한다고?”
“법률인지 무엇인지 그런 것은 무식한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제가 벌어서 제각기 먹고사는 우리 같은 농민에게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이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우리 일을 우리가 처리하고 있다. 놈들은 대체 웬 오지랖이 그리 넓어서⁵² 아모 일도 없는 우리 동리에 와서 무엇을 이래라! 저래라! 하고 늘 간섭을 하느냐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간다. 다라운 도적
놈들 같으니.”
“대체 우리에게 돈이 어디 있느냐 말이야. 그런 것은 부자한테 가서나 달랄 것이 아닌가? 놈들은 턱없는 갖은 부역을 다 시키고 별 추렴을 다 물리고― 나종에는 내외 잠자리 자는 추렴까지 물릴 작정힌지? 일껀⁵³ 부역 나가서 신작로를 잘 닦어놓으면 자동차를 휘몰아서 흙먼지를 끼얹는다. 그게 길 닦어준 고마운 치사란 말이야!”
하고 그는 다시 코웃음을 하였다. 그 언제인가도 그는 이와 같은 코웃음을 톡톡히 한 일이 있었다. 그게 벌써 몇 해 전이다마는 금석이가 보통학교에 마지막으로 갔다 오던 날 저녁이었다. 정도룡은 식후에 담배를 붙여 물고 픽픽 피우다가 무심코
“오늘은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치시드냐?” 하고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금석이는 여러 가지 과정을 주워섬긴 뒤에
“선생님이 오늘은 훈계하시기를 사람은 위생을 잘해야 된다고요. 음식을 일정한 시간에 먹고 잠도 일정한 시간에 자고 때때로 운동을 잘하라고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고기와 계란을 많이 먹으라구 그래야 몸이 튼튼하다고요.”
이 소리에 별안간 그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담뱃대로 재떨이를 후려 때렸다.
“무엇이 어짜고 어째? 그래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니? 누가 그런 것을 먹을 줄 모른다더냐고 하지. 죽이나마 제 양대로 못 얻어먹는 우리네보고 무엇이 어짜고 어째? 운동을 하면 도리어 허기가 지는 것을 어짜랴고 좀 물어보지! 그런 것은 배지⁵⁴ 부른 놈들이나 할 노릇이라고. 굶어가며라도 힘에 과한 학교 추렴을 물고 다니니까 선생이라는 것들은 그런 고마운 소리를 하드냐? 부잣집 자식이 몇이나 되기에 그런 소리를 한다드냐? 살찐 놈 따라 ‘부’라는 수작도 분수가 있지 않은가? 아니 그게 선생질하는 놈의 말 따위라디? 숙맥의 아들놈들 같으니. 얘! 금석아! 너는 내일부터 그까짓 학교는 집어치워라! 그런 백주에 잠꼬대 같은 놈의 말은 차라리 안 듣는 편이 낫겠다. 그리고 또 일어인지 소 모는 겐지만 배우면 산다드냐?”
하고 그는 성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래 금석이는 그 이튿날부터 학교를 고만두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서다. 금순이는 그지막에 한 번 구경함직한 코보가 와서 새로 설립한 예배당에를 가보았다. 목사의 하는 말이 어찌 착한지 모르겠다고 그래 다녀보겠다 하므로 그는 허락하였는데 하루는 금순이에게도 또 금석이 쪽이 났다. 그것은 어느 날 주일에 생긴 일인데
“그래 목사가 무슨 말씀을 하시데?”
하고 정도룡은 딸에게 오늘 예배당에서 들은 말을 물었다. 그때 금순이는 총기 좋게 들은 말을 옮기었다.
“저―기요! 우리가 사는 것은 모다 한우님의 은혜라고요. 그리고 사람은 누구이나 작고 크고 간에 죄를 지은 죄인이다 그저 범사에 감사해야 구원을 얻는다고요!”:
“무어? 범사에 감사하라고?”
“네 어떤 일이든지 그저 고맙게 생각하라고요! 주는 대로 받으라고요!”
이 소리에 정도룡은 또 코웃음이 나왔다.
“흥!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것이 무엇이라디? 배고프고 헐벗고 무시로 노동하는 우리네보고 무엇을 감사하란 말이야? 옳지! 우리네의 이렇게 가난한 것은 죄라고―가난한 죄라고? 그래 주는 대로 받으라고? 어떠한 학대든지! 치욕이든지! 아니 그놈도 그놈이라고나! 고기 많이 먹고 닭알 많이 먹으라는 선생보다도 심한 놈이라고나! 아니 그의 볼치를 눈에서 불이 나도록 한번 후려주어보지! 그놈의 감사하다는 꼴을 좀 보게!”
“하긴 이 세상에서는 범사에 감사할 놈도 있겠지. 돈 많은 부자이나 세력 좋은 양반들이 무엇이든지 제 맘대로 잘되는 놈들은 ―저 건너 김주사 따위같이 돈 가지고 별 지랄을 다하는 놈들은 주는 대로 받고 감사하다 하겠지. 그러나 우리 같은 놈을 보고 무엇을 감사하라 하더냐? 놈들은 그런 소리를 하고 월급을 처먹으며 사니까 그런다 하지마는 그 소리를 듣고 가난한 사람은 무엇으로 감사할 턱이 있느냐 말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한우님은 소용없다. 이런 한우님은 우리에게는 마귀다! 그런 놈의 예배당에는 너도 다시는 가지 마라!”
하고 그는 또 금순이를 못 가게 하였다. 그는 그때도 무섭게 성이 났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불꾸러미를 해 들고 돌아다니며 예배당이고 학교고 부잣집이고 무엇이고를 모두 불을 싸지르고 싶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네와 같은 무죄하고 만만한 백성을 못살게 만드는 원부(怨府)⁵⁵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주먹이 쥐어졌다. 그리고 무섭게 눈을 흘기고 이를 악물었다.
5
그런데 이 동리에는 뜻밖에 큰일이 생기었다.
그것은 이 동리는 원래 가난한 상사람만 사는 터이므로 그들은 모두 소작농민이거나 그나마도 전장⁵⁶ 참례를 못 하고 짚신 장사나 나무 장사로 근근이 사는 집도 있다. 많이 짓는대야 논 섬지기로서 도짓소⁵⁷나 한 마리 먹이는 집이 그중 상농가이요 또한 넉넉하다는 집이었다. 이 앞 전장은 거지반 경답⁵⁸이지마는 건넛말 김주사 집 땅도 더러 있었다. 그래 그 집 논을 부치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말이 작인이지 이건 제 집 하인보다도 심하게 부려먹는다. 그것도 논이나 많이 주고 그런다면 모르지마는 잘해야 논 댓 마지기나 그렇지 않으면 두세 마지기의 박토를 주고서는 사시로 부역을 시키는 일이 여간 관청보다 심하다. 여름이면 으레 자기 집 모심고 논매는 데 한 차례씩 불러다 시키고 칠월 나무 벨 때에는 하루 삯나무를 베게 하고 그 나무를 묶어 내릴 때 또 하루 시키고 벼 벨 때 마당질할 때―어떻든지 일이 있을 때마다 부려먹는다. 그리고 구실⁵⁹은 작인더러 치르라 하고 배짐이니 마정이니 도무지 더럽게도 알뜰히 할퀴어 가는데 그래도 목숨이 포도청이라고 땅이 없는 그들은 어찔 수 없이 그 천대를 받아가며 네! 네! 하고 복종을 한다. 그나마 떨어지는 날에는 장릿벼 한 섬도 융통을 못 하는 까닭이다. 춘이네도 그 집 논 닷 마지기를 부치는데 고부가 어린 춘이를 데리고 그것을 지어서 간신히 호구를 하는 터이다. 그런데 지금 모를 심을 임시에 별안간 그 논을 뗀다는 소문이 났다.
그것은 김주사 사는 건넛말서 한편으로는 사탕 장수를 해서 어린애들의 코 묻은 돈을 뺏고 한편으로는 김주사와 합자(合資)를 하여 고리대금을 하는 일본 사람이 사는데 그 일본 사람이 그 논을 얻었다고 오늘 아침에 그자가 와서 모를 심지 말라고 이르고 갔다 한다. 그때 춘이 조모가 기겁을 하여 한달음에 김주사한테 쫓아가 물어본 결과 과연 그것이 사실이었다.
김주사는 감투를 쓰고―그는 지금 도 평의원이다마는 감투 쓸 일은 이 밖에도 많다. 전 금융조합장, 전 보통학교 학무위원, 전 군참사, 적십자사 정사원, 지주회 부회장― (이담에 죽을 때에는 명정을 쓰기가 어려울 만큼 이렇게 직함이 많았다) ―점잖은 목소리로 논 떼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다.
“여태까지 몇 해를 잘 지어 먹었으니 인제는 고만 지어 먹게. 다른 사람도 좀 지어 먹어야지.”
그때 노파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구 나으리! 지금 와서 논을 떼면 어찌합니까? 그러면 제 집 식구는 모다 굶어 죽겠습니다!”
하고 개개빌어보았으나 김주사는 그런 것은 나는 모르고, 내 땅은 내 말대로 언제든지 뗄 수 있지 않으냐―됩다 불호령을 하였다.
그래도 춘이 조모는 한나절을 애걸복걸하며 올 일 년만 더 지어먹게 해달래 보았으나 그는 도무지 막무가내이었다. 벌써 다시 변통이 없을 줄 안 춘이 조모는 그길로 나오다가 그 집 대뜰 위에서 그 아래로 물구나무를 서서 고만 그 자리에 즉사하였다. 그는 지금 여든다섯 살인데 여기까지도 간신히 지팡이를 짚고 기어왔었다.
그러나 김주사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하인을 명하여 송장을 문 밖으로 끌어내게 하였다. 그리고 송장 찾아가라고 춘이 집으로 전갈을 시키고 일변 구장을 불러서 경찰서로 보고하게 하였다. 김주사는 마침 그 일인과 술을 먹을 때이므로 그는 물론 튼튼한 증인이 되었다.
행여 무슨 도리나 있는가 하고 기다리던 춘이 모자는 천만뜻밖에 이 기별을 듣고 천지가 아득하여 전지도지⁶⁰ 쫓아갔다. 그들은 지금 시체 옆에 엎드려서 오직 섧게 통곡할 뿐이었다.
그런데 정도룡은 오늘 자기 집 모를 심다가 이 기별을 듣고는 한달음에 뛰어들어왔다. 벌써 마을 사람들은 많이 모여 서서 김주사의 포학한 행위를 욕하고 있다. 그중에 핏기 있는 원득이는 이 당장에 쫓아가서 그놈을 박살내자고 팔을 걷고 나서는데 겁쟁이들은 우물쭈물 눈치만 보고 겉으로 돈다. 더구나 김주사 집 땅을 부치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벌써부터 꽁무니를 사리려 든다.
“허―참 그거 원…… 나는 논을 갈다 왔는데 좀 가보아야겠군!”
하고 용쇠가 머리를 주죽주죽하며 돌아서는 바람에 나도 나도 하고 몇 사람이 그 뒤를 따라서려 하는데 별안간 정도룡은 벽력같이 소리뇰 질렀다.
“동리에 큰일이 났는데 제 집 일만 보러 드는 늬놈들도 김주사 같은 놈이다!”
이 바람에 개 한 마리가 자지러지게 놀라서 깨갱거리며 달아난다. 그래 그들은 머주하니 돌쳐섰다. 이때의 정도룡은 눈에서 불덩이가 왔다 갔다 하였다. 그는 아이들을 늘어놓아서 들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그들은 그의 전갈을 듣고 모두 뛰어들어왔다. 더구나 용쇠 같은 이 났단 말을 듣고.
정도룡은 그들을 일일이 지휘하여 일 치를 순서를 분배한 후 나머지 사람들은 상여를 메고 위선 김주사 사는 동리로 급히 갔다. 참혹한 노파의 송장은 동구 밖 느티나무 밑에 놓였는데 그 옆에는 춘이 모자가 엎드려서 우는지 까무러쳤는지 모르게 늘어졌다. 섬거적을 떠들고 보니 노파는 목이 부러져서 뒤로 젖혀졌다. 앙상한 뼈만 남은 얼굴에 오므라진 입으―로 혀를 뻬물었는데 거기에는 새빨간 피가 흘렀다. 웬일인지 눈은 한 눈만 흡뜬 것이 더욱 무섭게 보였다. 벌써 살은 썩어서 시취가 탁탁 퍼지며 쉬파리가 앵 하고 떼로 날다가 다시 대든다.
정도룡은 자기 손으로 먼저 시체의 머리 편을 들어서 상여 위에 얹게 하였다. 이에 상두꾼은 대들어서 상여를 메고 그는 다시 춘이 모자를 안동하여 그 뒤를 따라갔다.
그동안에 읍내로 상포 바꾸러 간 사람과 매장 허가를 맡으러 간 사람도 돌아왔다. 경찰서에서는 벌써 상여가 오기 전에 경부와 의사가 나와서 시체를 검사해보고 (무엇보다 증인의 말을 듣고) 사실 자살인저 하고 내려갔다.
상포가 들어오는 대로 동리 여자들은 일제히 모여서 수의를 급히 마른 까닭에 상여가 온 뒤에 얼마 안 있다가 다 되었다 하였다. 그동안에는 상두꾼은 술을 한 사발씩 먹고 담배를 한 대씩 피우게 하였다. 그래 정도룡은 급히 서둘러서 원득이와 같이 염을 한 후에 그날 저녁때에 바로 장사를 지내게 되었다. 동리 안에서 부조가 들어온 것은 많지마는 건넛말 양반츤에서도 돈냥 쌀말이 들어와서 상두꾼의 술밥(점심)과 조각포를 차려놓은 제수(祭需)까지도 마련할 수 있었다.
초여름 해가 너웃너웃 서천에 기울 무렵에 적막하던 산촌에는 난데없는 상엿소리가 높이 났다. 구름재일⁶¹ (양장)이 펄렁펄렁하는 상여 밑으로는 “오―호! 오―호” 하는 상두꾼의 처량한 노래가 떠나오는데 그 뒤로는 남녀노소의 회장꾼이 죽 늘어섰다. 동리 사람으로는 극노인과 새 각시를 빼놓고는 모두 회장꾼으로 행렬을 지었다. 선소리와 요령소리 사이로 춘이 모자의 곡성이 쉴 새 없이 그들의 창자를 끊고 나왔다. 상여가 동구 밖으로 나갈 때 집에 남아 있는 노인들은 시름없이 멀리 바라다보며
“어떻든지 팔자 좋게 잘 죽었다…….”
하고 그들의 속절없는 탄식을 발하였다. 올봄에 성옥이 조모의 상여가 나갈 때에도 그들은 그렇게 바라다보았다. 늙어 굶주리고 아들 손자가 가난에 허덕거리는 꼴을 보면 그들은 보리 꽁댕이와 조죽이나마 그게 잘 넘어가지를 않았다. 어서 죽어서 이 꼴을 보지 말고 싶은 생각은 이렇게 먼저 죽는 이의 팔자를 못내 부러워 하도록 하였다. 어린 각시들은 싸리문 귀틀에 붙어서서 그의 가슴츠레한 눈에 경이를 띠고 내다본다. 마치 죽는 게란 무엇인고? 하는 듯이……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어슴푸레한 초생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있다. 시간은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 산말 낭이 공동묘지에는 전에 없던 새 무덤 하나가 생기었다. 그 위에 서늘한 달빛이 그의 안식을 축복하는 듯이 키스를 주었다. 그리하여 춘이 할머니는 돈 없는 나라 세금 없는 나라 부자와 가난이 없는 나라 밥 안 먹어도 사는 나라로 영원히 영원히 안식을 얻어 갔다…… 그
러나 아귀는 그를 한 조각 남루나 한 그릇 조죽을 주기가 아까워서 그를 이 세상에서 쫓아낸 까닭으로 얼마나 기쁘고 좋아할가?
6
그 후로 정도룡의 찡그린 눈썹은 종시 펴지지 않았다. 그의 음울한 얼굴빛은 어떤 무서운 결심으로 보이었다. 과연 그 이튿날 그는 이 동리 사람들을 모두 놀랠 만한 일을 하였다. 그는 어제 심다 만 자기 집 논을 그 땅 마름에게 청하여 허락을 얻어서 춘이네에게 주기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오늘 아주 모를 심어주자고 서두는 바람에 동리 사람들은 일제히 나서서 한나절에 심어버렸다. 춘이 어머니는 그 말을 들을 때 깜짝 놀라 한사⁶²라고 만류하였으나 그는 걱정 말라고 종시 듣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그러고나서 그는 그길로 바로 김주사 집을 찾아갔다. 마침 김주사는 사랑방에 혼자 있었다.
“아! 도룡이 웬일인가?”
하고 평상 위에 누웠던 김주사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는 그다지도 그의 뜻밖의 심방⁶³을 은근히 놀라는데 그의 무섭게 빛나는 눈동자와 마주치자 그는 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났다. 그의 눈은 마치 성난 범의 눈 같아서 기하였다.
“네! 논 좀 달라러 왔소!”
도룡은 언제든지 이렇게 뭉뚝뭉뚝한 말을 아무 앞에서나 거침없이 하였다.
“논? 왜 논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인제 가서 논을 달라면 되나?”
김주사는 어이없는 듯이 빙끗 웃고 쳐다본다.
“인제 가서 땅을 떼는 이도 있을라구요!”
이 바람에 그의 웃음은 쑥 들어가고 말았다. 그는 할 말이 없어서 얼떨떨한 것처럼 공연히 한눈을 이리저리 판다.
“우리 논은 춘이네를 주었으니까 나는 논 한 마지기도 없소!”
하는 말에 김주사는 두번째 놀랐다. 그는 감히 왜 제 논은 남 주고 다시 얻으러 어리석게 다니느냐는 말은 못 하였다. 하긴 이런 경우에는 어떠한 악인이라도 그런 말이 쉽게 나서지 않을 것이다 마는.
“논이 어디 있어야지! 댁에서 짓는 것밖에……”
하고 그는 무안한 듯이 슬쩍 저편의 눈치를 보다가 시름없는 하품 한 번을 한다. 그리고 얼른 궐련을 붙여서 피운다.
“그럼 그것을 주시지요! 무슨 심사로 제 집 식구의 먹는 떡을 뺏어서 도적 놈을 줄까요?”
“도적놈을 누가?…… 그것은 댁에서 지어야지!”
하고 김주사는 딴청을 썼다마는 그의 가슴속에는 확실히 이 말이 배기었다.
“그럼 줄 수 없소?”
“올에는 어려운걸!”
말끝이 채 떨어지기 전에 정도룡은 벌떡 일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린다. 이 바람에 김주사는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의 나가는 양을 멀거니 보았다. 정도룡은 그길로 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영감의 하는 일을 감히 타내지는 못하였으나 이때에 와서 농사치를 톡 털어서 남을 주면 어린 자식들하고 어떻게 살 셈인가 하고 그 말을 들은 후로는 맥이 확 풀려서 일거리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금석이는 만사태평하다는 기색으로 언제와 같은 빙그레한 웃음을 띠고 금순이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 모친은 그게 얄미웠다.
“아버지가 어디 가신지 너 아니?”
“몰라! 김주사 집에?”
하고 금순이는 눈을 되록하며 오빠를 쳐다본다.
“정녕 논을 얻으러 가셨을 것이다. 그래 만일 논을 안 주면 아버지는 그 자식을 죽일 것이다. 참으로 제비 새끼를 잡어먹는 구령이를 그대로 두는 것은 죄이니까.”
금순이는 눈이 더욱 되록되록 빛난다.
“만일 아버지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일 터이다. 저 낫(윗목 벽 밑에 세워놓은 낫을 가리키며)으로 모가지를 후리면 그놈이 뎅겅 내려앉을 것이다. 그리고 정녕 펄떡펄떡 뛸 것이다. 거짓말인가 들어봐요! 그 언제인가 진풀을 휙휙 후린 때이다. 대가리를 꼰주 들고 있는 독사 한 놈을 낫으로 휙 갈렀고나. 그랬더니 이놈이 팔딱! 팔딱 뛰더구나. 나는 그때도 생각하였다. 이 세상에 괴악한 놈들을 모다 이렇게 짤러 죽였으면 하고. ……그래 그놈들의 피투성이 대가리들이 개구리 뛰듯 하는 꼴을 보았으면 하고. 그런데 그렇게 죽일 놈이 하나 생기지 않었니?”
이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정도룡이 돌아왔다. 그래 금석이는 이야기를 뚝 그치고 부친의 기색을 살펴봤다. 그는 과연 더욱 음울하고 침통해졌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의미있게 식구들을 가끔 곁눈질하였다.
역시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서 저녁을 치르고 나서 한참 앉았다가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그는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에 금석이는 그의 나가는 등 뒤에다 대고 이런 말을 부르짖었다.
“그까짓 식칼보다 저 낫을 가지고 가시유!”
별안간 정도룡은 고개를 휙! 돌이켰다. 그는 한참 동안 아들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그대로 다시 돌쳐서서 나간다. 조금 있다가 모친은 그의 뒤를 쫓아 나갔다. 금순의 눈에도 놀라운 빛이 떠돌았다. 그러나 금석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역시 빙그레한 웃음을 띠며
“얘! 어디 갈래? 너는 나하고 이야기나 하자!”
하고 지금 밖으로 나가려는 금순이 발을 멈추게 하였다.
“너는 죽는 것이 그렇게 무서 우냐? 너도 빈대는 잘 죽이드구나. 김주사 같은 놈은 사람의 피를 빨어먹는 빈대다. 빈대를 죽이는 것이 무서울 게 무에냐 말이야.”
금순이는 얼을 먹은 듯이 그의 놀라운 눈동자는 금석 이 얼굴에 꼭 박히었다.
“사람은 원래 천생으로 죄를 타고난 줄 안다. 무슨 턱으로 소를 실컷 부려먹다가 잡아먹느냐 말이야. 그런 죄만 해도―너는 지금 네 목숨을 바쳐라! 하면 네 하고 당장에 바쳐야 할 것이다. 만일 한우님 같은 이가 참으로 있어서 그러한 명령을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위에도 더 큰 죄를 짓는 놈은 용서치 않고 죽여야 할 것이요 또한 그런 줄을 알고 그런 놈을 죽이지 않는 자도 역시 죄인이다. 같은 죄라도 용서치 못할 죄가 따로 있거든! 마치 김주사 따위의 죄 같은 죄가.”
하고 금석이는 이렇게 느물느물 말하는데 금순이의 아까까지 놀라운 표정으로 빛나던 눈은 어느덧 어떤 강렬한 감격한 정서를 감춘 웃음으로 차차 빛나기 시작하였다.
“너는 감옥소에서 사람 죽인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지? 아까 나는 누구를 죽여보고 싶다 하였지마는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뉘게 죽어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났다. 이것은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다마는 나도 그렇게 죽고 싶드라!”
“어떻게?”
하고 금순이는 비로소 한마디 말이 그의 붉고 촉촉한 입술 사이로 굴러 나왔다. 금석이는 이 무서운 말을 아주 순색으로 이야기한다.
“여러 사람들이 죽 둘러섰는데 죽일 사람을 사형대 앞에다 내세운다는고나!”
하고 무슨 의미인지 그는 한 번 씽끗 웃는다.
“그래 중이 나와서 극락세계로 가라고 염불을 한 후에 망나니가 줄을 잡아다릴라치면 그 위에서 기계칼(기요틴)“이 뜰뚤뚤 굴러 나려오는데 칼날이 번쩍! 하자 피가 뚝! 뚝! 떴는 대가리가 눈을 끄먹끄먹하며 공중으로 달려 올라간다는구나! 그런데 이 못난이들은 대개 벌써 죽기도 전에 낯빛이 송장같이 되어가지고 벌벌 떤다는고나. 나 같으면 그때 천연히 웃고 있을 터이다. 그래 모가지가 달려 올러갈 때는 마치 저녁 해가 붉은 놀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듯이 웃음이 차차 사라져갈 때 그때 나는 이렇게 부르짖을 것이다. 통쾌하다! 통쾌……하……다! 다 자까지 못다 마치고 웃음과 목숨이 일시에 사라져서 그 뒤로는 아주 캄캄한 밤중이 되고 말게.”
별안간 금순이는 그 윤나는 목소리로 때그르 웃었다. 이 웃음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금석바! 금석아!”
하고 혈레벌떡 이며 뛰어들어오는 이는 그들의 모친이었다.
“얘! 금석아! 금순아! 늬 아버지가 어디로 가셨나 따러가보랴고 큰말로 넘어가랴니까 저기서 누가 오더니만 아는 체를 하드구나! 그래 자세히 보니 그게 순득이 아버지야! 김주사 집에 있는. ‘금석 아버지 계셔요! 댁에서 잠간 넘어오시래유!’ 이러겠지. 그래 지금 그리로 안 가더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니 못 만났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귓결에 얼핏 들으니까 이 뒤 춘이네 집에서 늬 아버지 같은 목소리가 나는 것 같더구나. 그래 쫓어가보니 과연 거기 계셔서 지금 같이 김주사 집으로 가것다…….”
그는 간신히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숨을 돌리는데 금석이는 멍하니 한참 듣고 있더니만
“다 틀렸군!”
하고 무엇을 절망하는 듯이 부르짖는다.
“인저 어머니는 걱정 안 해도 잘되었소. 그 자식이 명이 좀더 오래 살라는 게로군!”
모친은 아들의 말귀를 못 알아들었지마는 어떻든지 이 말 속에 숨을 돌릴 만한 무엇이 있는 듯하였다. 그래 그는 습을 내쉬고 다시 아들의 눈치를 보았다.
“김주사가 정녕 논을 줄라는 게유. 자식이 겁이 났던 게지. 하긴 겁도 날 만하겠지마는. 논을 줄 바에야 구태여 죽일 게 있나. 춘이네는 그 대신 더 잘되었으니까 그를 죽이기로 춘이 할머니가 다시 살어나지는 못할 터이고! 그러나 이 앞으로 또 그런 짓을 하다가는 기어이 아버지 손에 죽어볼걸! 나도 정녕 몇 놈은 죽여볼 게야! 그런데 너도 고기 값은 할 것 같다. 아모려나 잘됐군!”
하고 금석이는 여전히 빙그레 웃는 눈으로 금순이를 홀린 듯이 쳐다보는데 그런데 눈 쌓인 겨울날 갠 하늘에 빛나는 아침 햇빛 같은 눈웃음 치는 금순이는 아무 말 없이 별안간 고의춤을 훔치적하더니 날 새파랗게 선 단도를 꺼내서 금석이 앞에다 내던졌다.
“아! 너도 김주사를 죽이랴고 했었고나? 정녕 그렇다니까! 고기 값은 한다니까!”
하고 금석이는 얼결에 부르짖으며 눈을 크게 뜨는데 이 바람에 모친은 얼없이 금순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아니! 무서운 씨알머리들!”
하고 마치 넋 잃은 사람이 혼잣말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금순이가 저 칼을 꼰주 잡고 김주사의 목을 향하고 팩! 달려드는 광경이 언뜻 눈앞에 그려지자 그는 전신에 소름이 쪽 끼치었다.
모친은 와락 달려들어 금순이를 얼싸안았다. 그리고 알지 못할 눈물이 샘솟듯 하며
“금순아! 금순아!”
하고 목메어 부르짖었다. 그러나 금석이는 여전히 빙그레 웃고 있는데 거기에 정도룡이 돌아왔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식구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다시 단도를 보고 금순이를 쳐다보았다.
-끝-
2016년 6월 17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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