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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피렌체 두오모(돔)
무사히 피렌체에 도착했어.
표에 날짜가 잘못 표기되어 있어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무사히 온 셈이당.
나는 지금 팔각돔 위에 올라와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피렌체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다. 달동네 건물들처럼 건물에 건물을 계속 덧대어 만든 도시라는 느낌이다. 도시 전체가 그렇다니 정말 놀랍지 않아? 돔에 올라갈 때 465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갔는데, 엄청 가파르고 제각각인 계단조차 프론티어적인 달동네 같았다. 나는 정말 이곳이 좋아.
그리고 오는길에 다리를 하나 지나왔는데 다리에 집들이 붙어있는 것이, 옛날 청계천변에 지어졌던 수상건물을 연상케 하는 다리였어. 이렇게 흥미로운 건물들을 볼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 안했었는데 말이야. 다음에 하루 더 날잡고 올라와서 건물 스케치를 해야겠어.
여긴 일본인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이태리 사람들이 나보고 곤니치와 곤니치와 한다.
12/4 볼 것이 너무 많은 하루
나는 오늘 우피치갤러리와 바르젤로 박물관, 아카데미아 갤러리, 산 지오반니 세례당에 갔었다. 그리고 로렌죠 성당과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다녀왔다. 정말 볼 것이 너무 많아.
그리고 이탈리아는, 특히 피렌체는 심정적인 넉넉함이 넘치는 곳이야. 나는 정말 이곳이 좋다!!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시기의 미술품을 최다 보유하고 있는 곳이래. 인상깊었던 그림은 보티첼리의 그림이었어. 관습적으로 보이는 그림들 사이에서 독특한 장식미와 화사함으로 정성껏 그린 그림은 눈에 많이 띄더라.
피렌체에 있는 이 수많은 그림들은, 그림 그린 사람의 꾸준한 성실성을 바로바로(직빵!!) 증거하고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림그리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고 성실하게 살았었는지를 그림들은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우피치 갤러리에는 렘브란트의 자화상도 있는데, 어린 시절의 자화상과 늙은 시절의 자화상이 나란히 걸려서 노화가의 성숙과 쇠락등을 보여주고 있다.
회화가 거의 600년을 뛰어넘어 보는 이에게 이토록 감동일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워.
아카데미아 갤러리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있다. 강풍에 날아온 판데기에 맞아 왼손이 박살이 난 것을 보수하고 있대. 생각보다 매우 크고, 정말 아름답다. 루브르에 있는 니케상과 더불어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두 번째 조각이다.
그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미완의 노예상, 피에타 등도 미켈란젤로의 집중력과 파워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말 인상적이야.
그 외에는 아카데미아 갤러리에는 거대한 사반나여인 강간상이 있는데, 어찌나 보기에 괴로운지.. 이런 남성중심적 시선 아주 쥐약으로 싫어.
이와 정반대 시점의 그림이 우피치갤러리에 있는, 젠틸레스키라는 작가가 그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는 그림인데, 적장의 목을 베는 유디트의 모습이 아주 능동적인 여인의 모습이야. 피튀기고 해서 좀 끔찍하긴 하지만, 클림트 따위가 그린 유디트의 퇴폐성에 비하자면 아주 통쾌하달까 하는 느낌이 있지.
바르젤로 미술관은 옛날에는 감옥, 사형장 등으로 쓰이다가 요즘에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국립미술관이야. 그런 사연 때문인지, 외곽 벽이 사각으로 폐쇄적으로 둘러쳐져 있고(3층으로) 가운데가 정원이 있는 건물의 구조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안에는 회화는 별로 없고, 도자기들과 작은 조각들이 있다. 참 죠르조상이 있더라.
우피치 복도나 아카데미아 등지에는 우리가 수도없이 그려제꼈던 조각상들이 가득해(카라카라 등등등), 아주 눈길주기 싫다.
피렌체에는 그런데 의외로 성달들 내부는 상당히 썰렁하고 소박해. 외부는 매우 화려하고 거대한 돔도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단테도 세례받았다는 산지오반니 세례당의 내부 천장 모자이크는 너무 화려하더라.
오늘 본 것만 대충 쓰려해도 칸이 모자란다. 흐흐~
단지 이눔의 이탈리아 입장료좀 싸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오늘 입장료로만 25유로 정도 쓴 듯.
12/5 피티 궁
난 오늘 여러 개의 성당들을 보고(Spirito 성당, Croche 성당 등), 피티 궁에 있는 피티 박물관, 모데나 박물관, 보볼리 광장을 보았다. 성당들 내부를 보고있자면, 피에타 상이나 그림들 등이, 우리들일 절같은데 보면 의례히 있겠거니 하는 관세음보살상이나 불상들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거 있지. 형식이 갖춰진 것이더라구..
각 성당마다 괜찮은 피에타상 하나씩은 다 있고, 예쁜 스테인드 글라스 하나씩도 다 있고, 참 새삼스러웠어.
미켈란젤로 등이 만든 명작 피에타 같은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라 사람들이 경합하는 수많은 피에타 중에서 좀 더 괜찮은 피에타상인 것이라는 점이.. 이런 두께(층)가 무척 부러웠다. 내가 심각하게 ‘대가’의 개념을 오해해 왔었다는(어린시절에) 생각도 들고..
피티궁에는 우피치말고 다음으로 르네상스시기 미술품을 다량으로 보유한 박물관이래. 라파엘의 인상적인 성모자상 그림도 있고.. 근데 무엇보다도 메디치가보다 좀 못한 가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피티가의 자본이라는게 엄청난 것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 베르사이유궁 만큼은 아니었지만, 상업자본의 힘으로 이루어낸 집들과 꽃핀 문화라는게 엄청난 규모였다는..
아, 책을 찾아보니 피티 궁은, 피티 공이 죽은 후에나 완성된 것이라나 봐. 그래서 메디치가에 넘어갔대.
피티궁 아래에는 각종 보석 따위와 옷, 그림등이 으리으리 뻔쩍하게 진열되어 있고, 위에는 그들이 살았던 상태대로 보존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아주 장난아니야.
메디치가가 약 300년간 누린 부라는게 피렌체의 모든 유적에 뿌리깊이 새겨져 있다.
그래도 메디치가 사람들은 미켈란젤로 13살 때 천재성을 발굴해서 후원하는가 하면, 필리포 리삐같은 작가들도 후원하고, 피렌체의 각종 건물들 짓는데 돈을 대는 등 공공재벌의 면모를 과시했나봐.
아직 메디치 채플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메디치 채플에는 줄리앙 상을 비롯 미켈란젤로의 수많은 작품들로 장식이 되어있지..
지금의 피렌체는 온 도시가 르네상스의 흔적들로 아직까지 먹고살고 있고, 곧 도시전체를 박물관화 해서 들어오는 차부터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지만 로마처럼 그냥 ‘상술’로 느껴지기에는 피렌체의 수많은 보석같은 그림들이 그 규모며 양이며 어마어마 해서 로마보다는 더 낫게 느껴진다.
12/6 산 마르코 박물관
나는 오늘 산 마르코 박물관에 다녀왔다.
그곳은 옛날에 수도원으로 쓰인 곳이었는지, 1층에는 정원과 예배당의 구조이고 2층에는 작고 검소한 방들이 몇십개가 들어서있는 구조였어.
이 박물관에는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가 정말 아름다운데 특히 수태고지가 아름답다.
1층에 예배당을 개조해 전시장으로 만든 곳의 작은 그림들도 물론 안젤리코의 소박하고 꼼꼼한 심성을 잘 드러내기에 충분했지만(이 사람은 미켈란 젤로 스러운 박력은 없었어도, 마찬가지로 장식을 절제하고 주제에 집중하는 것은 미켈란 젤로와 마찬가지. 근데 이 사람은 아주 차분하고 소탈한 성격인 것 같아.), 그보다도 2층의 작은 방마다 안젤리코가 조금씩 다르게 하여 그려넣은 프레스코화들이 아주 감동적이었어.
검소하고 깨끗한 수사들의 방마다 그려진 차분한 색조의 안젤리코의 벽화라니!
나는 보면서, 그 방방마다 하나씩 꼼꼼히 그려진 프레스코화에 아주 감탄해마지 않을 수 없었다.
12/8 산 지미니아노
나는 지금 피렌체의 한 빨래방에 앉아 세탁물을 지켜보며 빨래가 다 되길 기다리고 있다.
wash & dry라는 체인점인데, 이곳 빨래방은 매우 비싸. 세탁기 1회사용에 3유로, 건조기 1회사용에 3유로나 한다. 모아서 한꺼번에 세탁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나는 어제 산 지미니아노라는, 피렌체 근교의 마을에 갔었다. 중세시대 때의 성을 중심으로 한 마을인데 백포도주가 매우 유명하대. 나는 여기서 만난 친구 둘과 함께(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사람들이었는데)차를 타고 가서 와인들을 실컷 구경했지.
와인 사가지고 숙소에 돌아와 싼 것부터 비싼 것으로 순서대로 마셨는데, 와인공부를 이탈리아에서 했던 사람의 설명대로 음미하면서, 궁합이 맞는 음식과 함께 먹으니 와인 맛이 정말 다 다르고, 질에 따라 차이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았어.
오늘은 할로윈 데이라고, 명절이라서 월요일인데도 가게고 뭐고 문을 다 닫았다. 저녁때 축제같은 것을 한다고 하니 슬슬 걸어나가서 구경해야지.
어, 그리고 여기 인터넷이 안돼. 한글조차 깨져서 이상한 글씨로 보인다.
12/9 까시네 벼룩시장
어제부터 날씨가 갑지가 추워졌다. 북쪽으로 가면 더 추워진다길래 오리털파카를 벼룩시장에서 샀어. 스웨터랑.
그거 사러 오늘 새벽에 까시네라고 하는 공원에서는 벼룩시장에 다녀왔다. 매주 화요일마다 장이 선다는데, 오늘이 화요일이어서 다행히 싼 가격에 옷을 살 수 있었어. 거의 3Km정도 되는 공원 큰 길에 뚜껑있는 트럭들이 쫙 늘어서고, 옆에 가판을 세워서 장사를 하더라.
이곳은 골통품은 별로 많이 안팔고 옷이랑 구제가죽 같은 것을 많이 팔더라구.
여기 숙소는 가스랑 기름값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난방을 안틀어줘서 정말 추워.
그래서 다른 침대에 있는 이불 가져다가 두개씩 덮고 자는데, 자다보면 코가 시려워.
웃기지? 정말 뼈마디가 시린 것이, 마치 실기실에서 야작하는 느낌이다. 여기는 습기가 많아서 더 그래.
지금은 우체국에서 짐을 부치고 숙소에 일찍 돌아왔는데 도미토리인데도 너무 춥고 그래서 참 마음이 허전하다. 방엔 나밖에 없거든. 아직 비수기라 사람이 별로 없어. 앉아서 초급 이탈리아어를 좀 마스터해볼까 했는데 영 집중이 안되는군.
어제는 이틀째 옆방 사람들이 마시는 와인파티에 덩달아 껴서 7가지의 새로운 와인을 또 맛보았다. 총 13가지의 와인을 먹어본 셈이지. 먹어보니 맛이 다 다른데 역시 비싼 것이 맛있다는 결론.
12/10 노천온천
오늘은 피렌체에서 시에나 근처로 가다가 나오는 노천온천에 갔다왔다. 정말 입장료도 안받고 주변에 호텔같은 것도 없는 산속의 온천이었어. 차 렌트해서 가는 옆방사람들 따라 가다가 알게 됐는데 너무 좋더라. 이날 비가 왔는데, 더운물에 들어가서 찬 비를 맞으니 매우 좋더라. 이런 곳이 사유지로 안되고 상업화 안되어 있는게 매우 신기했어.
나는 반팔옷과 반바지 빌려 입었는데 사람들은 비키니 수영복 입고 많이 왔어. 생전 처음 본 유황온천인데, 삶은 계란 냄새가 났다.
첫댓글 우와! 산지미니아노까지 가셨네요! 피렌체를 아주 샅샅이 보고 오셨네요^^
우와~ 피렌체만 일주일을 있을 수 있다니.. 그리고 그 벼룩시장 꼭 가보고 싶네요.. 박물관에 가서 그 곳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것도 무지 중요하지만 그건 과거의 모습니니까요.. 시장엘 가면 그곳의 현재를 가장 잘 느낄 수 일을 것 같으니까.. 너무너무 글에 정보가 많아요.. 넘넘 감사드려요..
감사는요, 무슨.. 꼼꼼히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여행전에 피렌체는 오래오래 음미하리라 결심하고 떠났던터라, 오래오래 천천히 걸으면서 머물러 있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피렌체의 요모조모를 살펴볼 수 있었답니다. ^^
저도 오래 머물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정말... 부럽군요.. 님...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