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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3월 20일 금요일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악인들은 의인을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하려 하지만,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당신을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그들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2,1ㄱ.12-22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22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기품이 배어 나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기품은 단순히 외적인 고상함이나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인격에서 마치 향기처럼 은은하게 흘러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기품 있으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란을 일으키시지 않고 조용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자, 성전 한가운데에서 당신께서 누구이신지 담대히 선언하십니다. 그분을 붙잡으려는 손길이 있었지만, 아무도 감히 다가서지 못합니다.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침착함과 신중함, 강한 자신감과 독립성, 그리고 하느님과 하나이신 절대적 당당함이 그 누구도 그분께 경솔히 접근할 수 없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힘 앞에서 사람의 손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그분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방향을 정하시고, 스스로 걸음을 내딛으시며, 스스로 마침을 선택하실 수 있었던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쉬운 길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도 저마다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때로는 침착함으로, 때로는 신중함과 자신감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때로는 주저하고 멈추어 서서 혼란 속에서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삶의 의미입니다. 무엇을 향하여 걷고 있는지, 무엇을 위하여 견디는지, 그 의미를 찾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미 있는 발걸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의미 있는 길을 걸어갑시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십니다.(김재형 베드로 신부)
평생 동반자로 삼아야 할 지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첫 번째 독서 지혜서를 읽고 묵상하면서, 나이든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덕목이 지혜로움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너무 욕심부리지 않는 것, 대자연의 순환 논리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 뒤로 물러설 줄도 아는 것.
생각해보니 노욕처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 무서운 줄 알고, 인생에 있어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노년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따라서 무엇이 영원불변한 것이고, 무엇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인지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느님께 삶의 최 우선권을 두는 사람입니다. 결국 지혜로운 사람은 재물이라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 재물을 하느님 위에 올려놓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서의 저자 솔로몬은 지혜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지혜는 다정한 영, 사람에게 우호적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영입니다. 결국 지혜는 하느님의 영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에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조금 더 깊이 있게 다섯 가지 측면에 걸쳐 지혜를 소개합니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입니다. 지혜는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입니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입니다. 지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입니다. 지혜는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입니다.
솔로몬은 살아생전 언제나 지혜를 추구했고 그리워했습니다. 지혜를 사랑했고 존중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지혜를 찬미했고, 지혜를 얻기 위해 간절히 하느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는 지혜를 평생의 동반자로 삼았습니다.
또한 솔로몬은 세상의 통치자들을 향해 지혜를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라고, 그래야 자신의 손에 맡겨진 백성들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고, 구원으로 이끌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서 7장에서 장엄한 어조로 지혜의 본성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솔로몬의 지혜 찬미’입니다. 그는 지혜가 지니고 있는 스무 가지 이상의 속성을 쭉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짚어보니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지혜는 명석합니다. 거룩합니다. 유일합니다. 다양합니다. 섬세합니다. 민첩합니다. 명료합니다. 청절합니다. 티 없이 맑습니다. 분명합니다. 손상될 수 없습니다. 선을 사랑합니다. 예리합니다. 자유롭습니다. 인자합니다. 항구합니다. 확고합니다. 평온합니다. 전능합니다. 모든 것을 살핍니다. 명석합니다. 깨끗합니다. 빠릅니다.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합니다.
남은 인생 여정을 좀 더 지혜로운 사람, 그래서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식별(discernment)’입니다. 통찰력, 판단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본당에서 매주 주일에 음식 나눔이 있습니다. 구역별로 음식 준비를 합니다. 매달 마지막 주는 ‘가족의 날’로 음식 나눔이 없습니다. 재료 준비와 음식 나눔은 큰 어려움이 없는데 500명이 먹는 음식의 설거지가 늘 어려움이었습니다. 형제님들이 수고해 주시는데, 다들 힘들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회용 그릇 사용이 늘었습니다. 설거지에 대한 부담은 줄었지만, 환경문제와 위생 문제가 생겼습니다. 매주 성당 청소하는 용역회사에 설거지만이라도 맡기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매주 음식 나눔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2명이 주일에 3시간씩 설거지와 뒷마무리만 해 주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설거지에 대한 부담도 줄고, 환경문제와 위생 문제도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큰 부담이 없는 비용이라면 한번 시도 하려고 합니다.
음식 나눔에 대한 설거지 문제는 식별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체가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문제는 쉽게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회사의 운명이 걸린 문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한번 내린 식별로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는 잘못된 식별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그래서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시기와 질투가 잘못된 식별로 이끌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로봇이 3원칙이 있습니다. 로봇의 3원칙은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의 기본 윤리를 설명합니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인간이 해를 입도록 방관해서도 안 됩니다. 둘째,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 명령이 인간을 해칠 때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셋째, 로봇은 자신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 보호는 인간의 안전과 명령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즉, 모든 원칙의 최우선 가치는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며, 그런 다음이 인간의 명령, 마지막이 로봇 자신의 보호라는 질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도 식별의 기준이 있습니다. 식별의 기준은, 우리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움직임은 깊은 평화와 기쁨,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더해 주며, 우리를 겸손과 봉사, 공동체적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반대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움직임은 겉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결국 불안과 혼란, 자기중심성과 고립을 낳습니다. 따라서 식별은 단순히 기분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나를 더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지, 더 큰 사랑과 선을 향하게 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영적 분별의 과정입니다.
저도 나름의 식별 기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 안에서 제 마음의 움직임을 오래 바라보려 합니다. 평화가 있는지, 겸손이 있는지, 사랑이 남는지를 살피려 합니다. 맹자가 말한 사단,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인간 안에 이미 주어진 도덕의 씨앗입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측은지심으로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도 바로 측은지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하늘나라에서는 더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수오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양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봉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시비지심입니다.
오늘 나의 식별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결코 멈추지 않으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28-29)
빛이 보내시니
빛으로 걷는
빛의 길
결코 멈추지 않으리
가로막는 어둠을 뚫고
온 누리 빛인 그날을 향하여
선이 보내시니
선으로 걷는
선의 길
결코 멈추지 않으리
가로막는 악을 뚫고
온 누리 선인 그날을 향하여
참이 보내시니
참으로 걷는
참의 길
결코 멈추지 않으리
가로막는 거짓을 뚫고
온 누리 참인 그날을 향하여
믿음이 보내시니
믿음으로 걷는
믿음의 길
결코 멈추지 않으리
가로막는 불신을 뚫고
온 누리 믿음인 그날을 향하여
희망이 보내시니
희망으로 걷는
희망의 길
결코 멈추지 않으리
가로막는 절망을 뚫고
온 누리 희망인 그날을 향하여
사랑이 보내시니
사랑으로 걷는
사랑의 길
결코 멈추지 않으리
가로막는 미움을 뚫고
온 누리 사랑인 그날을 향하여
평화가 보내시니
평화로 걷는
평화의 길
결코 멈추지 않으리
가로막는 폭력을 뚫고
온 누리 평화인 그날을 향하여
살림이 보내시니
살림으로 걷는
살림의 길
결코 멈추지 않으리
가로막는 죽임을 뚫고
온 누리 살림인 그날을 향하여
오늘의 성인
성 밥티스타 (Baptista)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만투아(Mantua)
활동연도 : +1516년
같은이름 : 밥띠스따
부친은 에스파냐계이고 모친은 이탈리아계인 밥티스타는 만투아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혈통 때문에 ‘스파뉴올로’(에스파냐 사람)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많아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더니 커서는 철학과 수사학을 배웠다.
그는 가족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페라의 카르멜회에 입회하여 험난한 완덕의 길에 도전하였다.
그는 수도원에서 문학과 성서 등을 계속 연구하였는데, 그의 라틴어 문장과 시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인본주의 작품으로 손꼽혔다.
하느님은 그에게 상담자로서의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
그는 6번이나 개혁 카르멜회의 부총장으로 뽑혔다.
그는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지녔으며, 마리아 공경을 전파하는데 지칠 줄을 몰랐다.
그는 로레토(Loreto)의 기적을 노래하였으며, 좋은 글을 통하여 이교도들의 마음을 회개에로 인도하였다.
그는 16세기 최고의 그리스도교 시인으로서 높은 공경을 받아왔다.
성녀 포시나 (Photina)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사마리아(Samaria)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포씨나 포티나 포띠나
성 세바스티아노 (Sebastian)
신분 : 장군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성 아나톨리오 (Anatoli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성 요셉 (Joseph)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성 빅토르 (Victor)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성 포시오 (Photi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성 포티스 (Photi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성 치리아카 (Cyriaca)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가실 때 시카르(Sychar)라는 지방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는데, 성녀 포티나(또는 포시나)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한다(요한 4장).
예수님을 만난 후 성녀 포티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3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카르타고(Carthago)에서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포티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성 아나톨리우스(Anatolius), 성 포티우스(Photius), 성 포티스(Photis), 성 파라스케베(Parasceve), 성녀 키리아카(Cyriaca)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성 요셉(Josephus), 성 빅토르(Victor)와 함께 모두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또한 성녀 포티나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순교하기 전에 네로 황제의 딸 돔니나(Domnina)와 백여 명에 달하는 그녀의 노예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다(요한 4,1-42)
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요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제자로 만들고 세례를 준다는
소문을 바리사이들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 2 ─ 사실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다. ─ 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4 그때에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가셔야 했다.
5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6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7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18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19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27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30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 왔다.
31 그러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시자,
33 제자들은 서로 “누가 스승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리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35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수확 때가 온다.’ 하고 말하지 않느냐?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36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37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여자가
“저분은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성 요셉 빌체프스키(Joseph Bilczewski)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대주교
활동지역 : 리비프(Lviv)
활동연도 : 1860-1923년
같은이름 : 빌체브스키,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요셉 빌체프스키(Josephus Bilczewski)는 1860년 4월 26일 당시 크라쿠프(Krakow) 교구의 일부였고, 오늘날은 비엘스코 지비에츠(Bielsko Zywiec) 교구에 속한 켄티(Kety)의 빌라모비체(Wilamowice)에서 태어났다. 빌라모비체는 우크라이나(Ukraine) 북서부에서 폴란드 남동부에 걸친 갈리치아(Galicia) 지역에 속한 곳으로, 당시에는 오스트리아(Austria)의 지배하에 있었고 오늘날에는 폴란드(Poland)의 영토에 속하는 곳이다. 그는 빌라모비체와 켄티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후 바도비체(Wadowice)에서 고등교육을 받아 1880년에 학위를 받았다. 이어 크라쿠프 인근의 신학교에 들어가 1884년 7월 6일 크라쿠프 교구의 알비노 두나제프스키(Albino Dunajewski)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그는 1886년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교(the University of Vienna)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로마(Roma)와 파리(Paris)에서 계속 수학하여 1890년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엘로니아(Jagiellonia) 대학교의 교수 자격심사를 통과하였고, 다음해에 리비프의 요한 카시미르(Joannes Casimir) 대학교의 교의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대학교의 학장이 되기에 앞서 신학대학의 학과장으로도 재임했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학생들로부터 교수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고 그들과 우정을 나누었으며 동료 교수들의 존경 또한 받았다. 그는 학문적인 연구에 전념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식한 사람이란 평판을 얻었다. 그의 지적이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비범한 능력은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f I)에게까지 알려졌다. 그래서 황제는 교황에게 공석으로 있던 리비프 대교구의 교구장 후보로 그를 추천했고,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그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1900년 12월 17일 라틴 전례 리비프 대교구의 대주교로서 40세의 요셉 빌체프스키 몬시뇰을 임명하였다.
그는 대교구장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복잡한 사회적 · 경제적 · 인종적 · 종교적 상황에 깊이 참여하며, 놀라운 도덕적 노력과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갖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에서 얻은 활기찬 신앙으로 교구민을 돌보았다. 그는 또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한없는 사랑에서 솟아난 그의 풍요로운 선의와 이해심, 겸손과 경건함, 어려운 일에 기꺼이 투신하는 사목적 열정으로도 잘 알려졌다. 그의 대교구에 대한 사목적 계획은 성교회를 위해 전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성체성사에 대한 신심을 증진시키고 잦은 영성체의 필요성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했다.
그의 사목 활동에 있어서 특별한 모습은 대교구의 사제와 신자들에게 사목서한과 강론을 통해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당대의 신앙과 윤리적 문제를 토로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절박한 문제인 사회 계층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성체성사와 예수 성심에 대한 헌신을 설명하고, 가정과 학교 안에서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종교적 · 도덕적 성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거룩한 사제성소를 육성하는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사제를 신앙을 위한 시초이자 가장 중요한 교사로서, 그리스도의 도구로서,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서 보았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자리를 만드는 사제는 성사의 집전자이고, 그런 이유로 사제는 그리스도의 성체로서 하느님의 백성이 양육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성체성사를 거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사제들에게 성체조배를 권고하고, 사목서한을 통해 사제들에게 사제적 친교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였다. 지속적인 성체조배와 가난한 가톨릭 교회에 대한 원조회에 대한 참여는 사제들이 스스로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는 또한 어린이들의 교리준비와 미사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모든 교리교사들이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성체성사에로 인도하길 소망했다. 그는 많은 성당과 경당, 학교와 주간 보호소를 건축했고, 신자들이 교육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렇듯 그는 물질적 · 영성적으로 대교구에서 행해야 할 주요 사업들을 도와 그의 삶 전체가 기도와 사목과 자선사업으로 충만했다. 또한 교구 내에 현존하는 다양한 종교와 전례와 민족들의 측면을 존중하여 그의 재임기간 중에 종교적 · 민족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일치와 조화와 평화의 옹호자였다.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그는 항상 백성들과 가난한 이들 편에 섰다. 그는 사회생활의 기초는 정의여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의해 완성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람들이 증오와 타인에 대한 존중 결핍에 휩싸였을 때 그는 모든 종류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관심을 두도록 사람들을 격려하였다. 그는 특별히 형제적 사랑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준수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으며, 가정과 젊은이들의 처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대하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기초하여 그 해결방법을 용감하게 제시하였다. 그가 교구장으로 있던 23년 동안 리비프 대교구의 모든 모습들이 변화되었다. 오로지 죽음만이 그의 원대하고 거시적인 사목 활동을 끝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평화로이 받아들였고 하느님의 의지에 순명하였다. 그는 참으로 거룩한 생각과 행동으로 일생을 살다가 1923년 3월 20일 그의 교구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편적인 거룩함을 알고 생활하도록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대로 참된 사제요 보호자로서 일생을 살았다. 그의 유해는 리비프 대교구에서 가난한 이들의 묘지로 알려진 야누프(Yaniv)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리비프 대교구에 대한 그의 헌신과 노력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그의 시복시성 청원으로 표현되었다. 기적 심사를 통과한 그는 2001년 6월 26일 사목방문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리비프 대교구에서 시복되었고, 2005년 10월 2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마르티노 (Martin)
활동년도 : +579년
신분 : 주교
지역 : 브라가(Braga)
같은 이름 :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프랑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기록에 의하면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당대의 최고 학자였고, 그리스도인 시인 포르투나투스는 그를 은혜를 수없이 입은 사람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원래 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 지방 사람인데, 팔레스티나(Palestina)를 순례한 후에는 에스파냐의 갈리시아(Galicia)까지 갔다.
그는 여기서 국왕 테오도미르를 개종시켰다. 그 결과 수많은 다른 아리우스파(Arianism) 사람들과 배교자들을 로마 교회와 화해시켰다.
그의 선교 중심지는 두미오(Dumio)였다. 그는 '왕가의 주교'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자신의 생활은 지극히 엄격하여 은수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 후 그는 포르투갈 브라가 교구의 주교로서 죽을 때까지 교구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였다. 선교사의 직무 외에도 그는 저술로도 교회에 기여하였으니, "올바른 생활양식들"이란 저서를 비롯하여 "거친 사람들의 교화에 대하여"라는 윤리 서적도 있다.ㅠ
성 쿠트베르토 (Cuthbert)
신분 : 주교, 수도승
활동지역 : 린디스판(Lindisfarne)
활동연도 : +687년
어떤 사람들은 성 쿠트베르투스(Cuthbertus, 또는 쿠트베르토)가 아일랜드계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스코틀랜드계라고 하지만, 저명한 역사가인 성 베다(Beda, 5월 25일)는 잉글랜드 출신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얼마 동안 목동으로 살았고, 머시아(Mercia) 사람들과 싸웠던 경험도 있다.
성 쿠트베르투스는 영국 스코트랜드의 멜로즈(Melrose) 수도원에서 성 보스웰(Boswell, 7월 7일) 수도원장의 지도로 수도자가 된 후 성 에아타(Eata, 10월 26일)를 수행하여 리펀(Ripon) 수도원으로 갔다.
알크프리드(Alcfrid) 국왕이 리펀 수도원의 책임을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에게 넘겨주자, 그는 다음 해에 멜로즈 수도원으로 돌아와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661년에 멜로즈에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자신도 병에 걸릴 만큼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의 성덕은 너무나 뛰어나서 놀라운 치유 능력을 보였고, 수많은 기적도 일으켰다고 한다. 그는 주로 선교사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성 콜만누스(Colmannus, 2월 18일)가 로마 전례 거행을 결정한 휘트비(Whitby) 시노드의 결정을 거부하고 린디스판섬 수도자의 대부분을 이끌고 아일랜드로 돌아갔을 때, 성 에아타가 그의 후임 주교로 임명되었고 성 쿠트베르투스는 린디스판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멜로즈에서 린디스판 수도원으로 옮긴 그는 선교 활동을 재개했는데 수많은 군중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이 일은 그가 은수자로 생활할 허가를 받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은수자로서 생활하던 성 쿠트베르투스는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새로 분할된 헥삼(Hexham) 교구의 주교로 선임되었다가 다시 헥삼 교구 대신 인연이 깊은 린디스판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2년 동안 자기 교구를 지도하다가 최후의 날이 임박한 것을 깨닫고, 성탄절을 지낸 후 판(Farne) 섬에 있는 자신의 은둔소 방으로 돌아가서 지내다가 687년 3월 20일에 선종하였다.
그리고 그날로 그의 유해는 린디스판 섬의 수도원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그러나 875년 바이킹의 침략을 우려해 수도자들이 그의 유해를 워킹턴(Workington), 휘턴(Whithorn), 체스털리스트리트(Chester-le-Street), 리펀 등으로 옮겼고, 최종적으로 더럼(Durham)으로 이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종종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왕인 성 오스왈두스(Oswaldus,8월 5일)의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메이서필드(Maserfield) 전투에서 사망한 왕의 머리를 후에 그가 다시 매장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복자 암브로시오 산세도니 (Ambrose Sansedoni)
활동년도 : 1220-1287년
신분 : 수도승, 설교가
지역 : 시에나(Siena)
같은 이름 : 암브로시우스, 앰브로스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사본 채식사(彩飾師)의 아들로 태어난 암브로시우스 산세도니(Ambrosius Sansedoni, 또는 암브로시오 산세도니)는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컸고 또 손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태어났다. 어느 날 그의 유모가 도미니코회 수도원 성당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병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였으며, 주일마다 병원을 그리고 금요일에는 감옥을 방문했다.
17세 때 그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미니코회 회원으로 입회하였으나 그를 미심쩍게 여긴 원장이 그를 프랑스 파리(Paris)로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파리와 독일 쾰른(Koln)에서 성 대 알베르투스(Albertus, 11월 15일)를 스승으로 또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를 친구로 만나게 되었다. 위대한 스승과 뛰어난 친구의 도움으로 그는 높은 학덕을 얻었고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은둔생활을 갈망하여 장상의 허락을 얻었지만 설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청중들은 설교하는 그의 머리 위에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계시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그는 교황청의 요청에 따라 성좌와 시에나의 정치적 알력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복자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 2월 16일) 교황이 서거함에 따라 자기 수도원으로 은신해 버렸다.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새벽 기도 후에는 2시간 동안 기도하였으며 나머지 시간은 공부하였다. 44년간의 수도생활에서 그는 매주 금요일에는 꼭 빵과 물로만 식사를 하였다. 그는 1287년 3월 20일 시에나에서 선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해 승인되었다.
복자 히폴리토 갈란티니(Hippolytus Galantini)
활동년도 : 1565-1619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히뽈리또, 히뽈리뚜스, 히폴리또, 히폴리뚜스, 히폴리투스
히폴리투스 갈란티니(또는 히폴리토)는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부유한 비단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부친의 장사를 배워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열두 살 때에 메디치(Medici)의 주교이며 후일 교황 레오 11세(Leo XI)가 된 알렉산데르(Alexander) 대주교의 주목을 받게 되어 사제 수업을 받았으나 중병으로 인하여 그만두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식과 편태 그리고 밤새워 기도하면서 뛰어난 영적 식별력을 얻었고, 돈도 없고 책도 없이 재속회를 세우는데 성공하여 남녀 신자들에게 주요 교리와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가르쳤다. 그의 단체는 1602년에 회칙을 만들고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의 재속회는 ‘그리스도교 교리회’였으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름은 ‘반체토니’이다.
그는 45세 때에 중병을 앓고 운명하였는데, 병중에 그는 천상 나라를 잠시 보았고, 자신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께 친구하니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듯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는 1825년 교황 레오 1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