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대전 정림동의 살레시오청소년수련원에 도착한 것은 16일 이른 아침이었다. 대강당은 색색의 옷을 맞춰 입은 남녀 젊은이 280명과 수도자들, 진행을 맡은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제2회 살레시오 청년대회 둘째 날 오전 프로그램의 시작이었다. 이 대회는 ‘청소년들의 스승’ 성 요한 보스코의 정신을 따르는 살레시오회, 살레시오수녀회,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가 함께 준비했으며, 요한 보스코 성인 탄생 200주년인 2015년까지 매년 열릴 예정이다.
웃음과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니 ‘기억’을 주제로 한 전날 일정을 통해 참가자들 사이가 충분히 가까워졌다는 느낌이었다. 빠른 템포의 대회 주제곡에 맞춰 율동팀이 몸을 흔들면, 강당 바닥에 앉은 청년들도 열심히 그 몸짓을 따라했다. 선창자가 “저의 주님” 하고 외치면, 다른 이들이 모두 “저의 하느님”을 외쳐 응답하는 데도 익숙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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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살레시오 청년대회가 대전 살레시오청소년수련원에서 15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열렸다. 16일 저녁, 대회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수사들의 춤을 따라하고 있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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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살레시오 청년대회의 주제인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은 예수의 몸에 난 못 자국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서야 그의 부활을 믿은 토마스 사도의 고백이다. 살레시오수녀회 한국관구장 최정희 수녀는 환영 메시지에서 “이 고백을 여러분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안에도 수많은 갈등과 혼란이 존재하고 때로는 직면하기 어려운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있기도 합니다. 그런 혼란 앞에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도 할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도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대회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깊이 만나 토마스처럼 진정한 사도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법정 상황극으로 시작된 둘째 날 일정
“더 나은 삶 살고자 ‘투쟁하는 교회’ 돼야”
오전 10시께부터 무대에서는 이성과 경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만 인정하는 ‘토마스시(市)’ 법정을 배경으로 상황극이 시작됐다. 검사 역할을 맡은 청년은 “도시의 전통을 무시하고, 증명도 경험도 할 수 없는 신앙으로 선량한 시민들을 속이고 있다”며 대회 참가자 3백여 명을 고발한다. 검사는 이어 영상, 춤과 노래 등으로 증거를 제시하며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며, 성사는 무의미하고, 가톨릭교회의 역사가 폭력과 악행으로 물들어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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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상황극에 처치(church) 씨로 출연한 유흥식 주교(가운데)가 혹세무민 혐의로 고발당한 신자들을 위해 증언하고 있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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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측 증인 처치(church) 씨 역할을 맡은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는 검사에 맞서 교회와 신앙을 옹호했다. 십자군전쟁과 마녀사냥, 아메리카에서 벌어진 학살 등 교회의 과오에 대해 유 주교는 “예수님을 옹졸한 분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매우 큰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수님께서 세우시고 성령께서 주인이신 교회는 잘못할 수 없지만, 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교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면서 “우리 모두는 매일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투쟁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피고 3백 명을 대표해 최후진술에 나선 장영천 씨는 “제가 백혈병을 앓던 때, 홀로 뒤에서 눈물 흘리며 돌보던 어머니에게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저는 세례 받은지 불과 1년 밖에 안 됐지만, 미사에서 느낀 강렬한 무엇인가가 저를 신앙의 길로 인도했고,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됐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결국 재판장은 “여러 증인들, 특별히 처치 씨의 증언은 신앙이라는 것이 경험과 무관하지 않으며,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이 자리에 모인 젊은 피고들은 허무맹랑한 소리로 세상을 어지럽게 한 일이 없으며, 오히려 온갖 역경과 의심을 물리치고 신앙을 지켜 진리를 옹호한 사람들”이라며 무죄 판결을 내렸고, 청년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외에서 1시간 오체투지 기도 행렬 “거대한 무리, 깊은 유대의 끈”
“우리는 영과 육을 지닌 존재입니다. 오전에는 재판 과정을 통해 이성적인 차원에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오후에는 하느님의 숨결이 긷든, 성령이 사시는 궁전인 내 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점심시간 후 다시 강당에 모인 청년들에게 김은경 수녀(살레시오수녀회)가 “가장 낮을 길을 통해 가장 높이 오르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가장 낮은 자세를 통해서 그분의 사랑과 일치하는 체험을 하고자 한다”면서 다섯 걸음마다 양팔, 양다리, 머리가 땅에 닿게 엎드리는 ‘오체투지 기도’를 소개하고, 두 사람이 나서 시범을 보였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놀라는 듯한 반응과 함께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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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투성이가 돼 오체투지 기도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참가자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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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행사장 인근 공원에서 대회 참가자들이 오체투지 기도를 하고 있다. ⓒ강한 기자 |
그러나 인근 공원의 한적한 지천변 자전거도로에서 시작돼 1시간 넘게 이어진 오체투지 기도행렬에는 참가자 중 4분의 3 정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고행에 가까운 기도를 자기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이들과 도중에 지쳐서 오체투지를 할 수 없게 된 이들은 허리를 깊이 굽혀 절하며 행렬을 뒤따랐다. 각 조의 선두에 서게 된 사람은 ‘가난한 이들’, ‘노숙인’, ‘환경’, ‘부활’, ‘자유’, ‘생명’ 등 조별 기도 지향이 적힌 종이를 가슴에 붙였고, 다른 참가자들은 개인적 기도 지향을 적은 노란 띠를 몸에 묶었다.
오체투지 기도가 시작된지 10분이 지나자 징 소리에 맞춰 바닥에 완전히 엎드릴 때마다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발갛게 달아오르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들도 보였다. 젊은이들 사이에 수도자들과 사제들도 섞여서 기도에 동참했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잔디밭 위에 모셔진 나무 십자가에는 기도 지향을 적은 노란 띠가 동여매졌다. 십자가를 향해 둥글게 모여 선 참가자들은 한 번 더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것으로 기도 행렬을 마치고, 자리에 모여 앉아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젊은이는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끝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나중에는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듯 했다”고 말했다. 백광현 신부(살레시오회)도 “처음에는 기도를 하며 오체투지를 했지만 나중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됐다”면서 “이 기도는 대회를 준비한 청년들이 선택한 프로그램”이라고 전했다. 이준석 신부(살레시오회)는 “대회 진행을 맡은 사람으로서 오체투지에는 동참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지만, 기도 행렬을 보며 감동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면서 “오체투지 기도를 하며 각자의 바람과 간절함으로 기도하지만, 그 안에서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깊은 유대의 끈으로 연결된 형제 · 자매들의 현존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녁부터는 대회에 참가한 단체와 밴드의 공연과 참가자들의 체험과 신앙 고백도 계속됐다. 밤 10시께부터 시작된 밤 기도 시간에는 오체투지 때 기도 지향 띠를 묶었던 십자가가 무대에 세워졌고, 성체강복(성체를 현시하고, 성체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체조배하는 신자들을 축복하는 예식)을 거행했다.
행사장 곳곳에서 고해성사를 한 젊은이들이 눈물을 훔치며 돌아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도를 이끈 수녀의 안내로 ‘통성기도’도 이어졌다.
“주님, 한해를 살아갈 힘을 얻고 싶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소중한 동생이 많이 아픕니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소서.”
누군가 이렇게 소리 내 기도하면 어둠 속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아멘” 하고 응답했다. 밤이 깊도록 기도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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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밤, 참가자들이 십자가와 성광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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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만남은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2015년까지 매년 살레시오 청년대회 개최
셋째 날인 17일 오전에 봉헌한 파견 미사에서 남상헌 신부(살레시오회 한국관구장)는 강론에서 법정 스님의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라는 글을 인용했다. 남 신부는 “참된 만남은 상대방의 영혼이 내 영혼을 건드려 내 마음 안의 울림으로 남고, 그 울림이 나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끔 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라며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만남은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을 만나셨나요? 자신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틀림없이 우리 안에 어떤 모습으로든 알맹이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억하고, 고백한 것들이 진짜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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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전, 파견 미사가 사제의 노랫가락에 맞춘 길놀이로 시작됐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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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레시오 청년대회 참가자들이 남상헌 신부 주례로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강한 기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