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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도리를 다해야합니다.(출4:18-26)
2025, 3/30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출4:18-26절 말씀으로“신앙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도리를 다해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이번 주가 3월 마지막 주고, 낼 모래면 4월인데,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봄 날씨는 조석으로 널뛰어서 조심해야합니다. 목련이 꽃 몽우리가 져서 곧 피겠구나 했는데 다 움츠러들었을까요? 이렇게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그러다보면 한해가 지나가고, 그러면서 지금의 나이를 먹었고, 그러다보면 또 주님 앞에 돌아갈 것입니다.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신령한 일에 열심을 내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도 잘 감당하며, 복음도 전하면서 하루하루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도리를 다해야합니다.(18절)
둘째로, 지도자는 스스로 본이 되어야합니다.(24절)
셋째로, 불신자와의 결혼은 많은 고난을 감수해야합니다.(25절)
그러면 본문말씀을 따라가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왜 도리를 다해야하는지 지도자가 왜 본이 되어야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도리를 다해야합니다.(18절)
본문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아멘.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을 구하라는 미션을 줍니다. 모세는 지체하지 않고 떠날 준비를 하는데, 모세가 사명을 받을 때는 무려 5번이나 거절했다가 받아들였지만 일단 사명을 받아들이자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돌아가서 라고 본문이 말씀했는데, 여기서‘돌아가서’의 원어적인 의미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미루거나 지체하지 않고 급하게 행동으로 옮겼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하나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호랩산에서 자신의 집으로 갔고, 다시 급하게 장인 이드로에게 가서 자신이 목동 일을 그만두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싶다고 허락을 구한 것입니다.
이걸 볼 때 모세는 진짜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낼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모세에게 네 형을 붙여서 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이고, 또 능력의 지팡이까지 주어서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모세도 결국 결심을 굳혔는데, 일단 사명을 받아들이자 신속하게 움직여서 그 일을 진행시킵니다. 이런 그의 자세는 우리가 본받아야할 것으로 우리가 주님께 부름 받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 또한 모세처럼 망설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일을 감당해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졌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세상보다는 하나님 중심으로 믿음을 굳게 세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후 곧장 장인 이드로에게 가서 애굽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모세의 이런 태도는 신앙인으로써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신앙인들이 잘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도리를 잘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에게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헌금생활도 다 잘하는데 사람들과 관계 맺기에 실패해 비난과 원망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신앙이 좋다면 형제와의 관계도 좋은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사람에게 잘못해도 된다는 사고가 팽배했는데 그래서 나온 제도가 고르반입니다.(막7:11-13) 그러나 주님은 그런 저들에게 너희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또 마5:23-24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러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형제와 다투었다면 먼저 화해를 하고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당신에게 도리를 다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람에게 도리를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모세가 장인을 찾아가 정중하게 자신이 떠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정말 잘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 신앙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신실한 신앙인의 도리를 다하고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잘하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잘하고, 사람에게 잘하면 하나님께도 잘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이 사순절 기간인데, 우리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렸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고통으로 아무 생각도 안 날 것 같은데도 주님은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며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의 도리 못지않게 사람에 대한 도리도 다해야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정 때문에 하나님이 뒤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간에 도리를 다하되 그러나 주의 일이 지체되거나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가 맨몸으로 애굽에서 미디안으로 도망왔을 때 얼마나 암담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모세를 받아주고 딸까지 아내로 주어서 가정을 이루고 안정을 찾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 바로 이드로입니다. 40년이란 세월을 함께 살았던 장인 이드로에게 미디안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많던 적든 일궈놓은 삶의 기반이 있었을 텐데 그걸 다 포기하고 떠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나로 가게하소서’라며 권유형과 불변사‘나’를 사용하여 간곡하게 장인 이드로에게 떠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우리에게는 사람의 정이나 도리에 앞서, 이익이나 계산에 앞서 하나님의 사명,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별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떠나는 게 하나님의 뜻이면 떠나야합니다. 특히 천국백성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먼저 고향 갈대아우르를 떠났고(창12:1-4) 야곱도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삼촌집으로 갔고, 다시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때도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창31:3-18)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도 주님이 부르자 그들의 생활터전인 그물과 배까지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버리고 비우고 떠나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도리를 다하고 있다면 잘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 대한 도리, 아내나 남편에 대한 도리, 자식에 대한 도리, 친구와 이웃에 대한 도리 등 우리가 이런 인간적인 도리를 다할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지도자는 스스로 본이 되어야합니다.(24절)
본문 2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아멘.
드디어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어렵게 결단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하셨는데, 그 이유는 25-26절을 볼 때 모세가 둘째 아들 엘리에셀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고, 너로 심히 번성케 해주고, 내가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돼줄 것이며,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할례를 명하셨는데, 이 할례가‘나와 네 후손사이에 지킬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17:14절에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99세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마엘을 포함해서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할례는 이스라엘백성에게 계속 이어졌고, 그래서 모세도 할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걸 잘 알고 있던 모세도 게르솜이 태어나자 그에게 할례를 행했지만, 두 번째 아들인 엘리에셀에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아마도 이방인 아내 십보라의 반대 때문이었을 겁니다. 처음 게르솜을 낳고 생후 8일 만에 아이의 표피를 예리한 칼도 아닌 돌칼로 잘라냈으니 아이가 얼마나 울었을 것이며, 또 피는 얼마나 나왔겠습니까? 또 할례의 흔적이 흉측하게 남아있어서 둘째 아들의 할례는 이방인인 아내 십보라가 결사반대했을 것이고, 처가살이를 하는 모세의 처지에서도 강행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십보라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이해가 되고, 모세가 할례를 행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할례가 무엇입니까?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영원한 징표입니다. 또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씀까지 하셨기 때문에 할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할례를 행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이 언약 백성이 되기를 포기한 모세를 죽이려고 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걸 볼 때 백성들의 지도자로 나선 모세는 누구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도자가 지키지 않는 하나님말씀을 백성들이 지킬까요? 절대 지키지 않습니다. 만약 할례를 하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백성들을 이끌면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하나님이 보낸 모세도 안 하는데 우리가 왜 할례를 하냐며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지도력은 땅에 떨어집니다.
여러분!!! 백성들은 지도자를 본받게 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지도자나 교회의 앞 선자들의 행동이 중요한데, 물론 여러분들은 분별력이 있어서 본받지 않겠지만, 신앙이 약한 사람이나 말씀이 없는 교인들은 따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장로, 권사집사 기관장들이 예배에 빠지고 헌신도 안하면 새로 온 교인도 똑같이 안 합니다. 그러니 앞선 자의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매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눅17:2)
바울은‘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당당하게 말했는데,(고전4:16; 빌3:17) 그럴 때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신앙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불신자와의 결혼은 많은 고난을 감수해야합니다.(25절)
본문 2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하니." 아멘.
여러분!!! 오늘 모세가 죽음의 위기에 몰렸던 이유가 바로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 때문이고, 할례를 못한 것은 그의 아내 십보라 때문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말씀드렸습니다.
미디안의 제사장 딸 십보라는 당연히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딸, 그것도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입니다. 물론 그녀도 모세와 함께 살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할례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큰 아들의 할례를 행했던 것인데, 신앙이 없는 십보라가 첫째 아들의 할례를 보고 둘째 아들의 할례는 막은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불신자와의 결혼이 온전한 신앙생활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성경 여러 곳에서 불신자와의 결혼을 반대하셨는데,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신앙이 신실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백성들에게 성군 소리를 듣다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나라와 정략적인 결혼으로 이방 여자들이 무분별하게 왕궁으로 들어와 우상을 섬기며 백성들의 신앙을 약화시키면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조가 비참하게 무너진 것도 불신자와의 결혼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아합왕은 바알신을 극성스럽게 섬기던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함으로 그녀가 왕궁에 바알을 끌어들이고, 온갖 우상숭배에 빠져 북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을 초토화시켜버립니다. 이로써 아합왕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데, 이처럼 불신자와의 결혼은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물론 예수 믿는 청년들이 급속하게 줄어서 교회 안에서 짝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예수 믿는 척만 해주면 결혼하겠다는데 이것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몽달귀신으로 만들 수가 없어서 함께 교회 다닌다고 약속만하면 결혼해서 인도하는 방법을 생각하는데 그러나 이 경우는 그만한 기도와 노력과 마음고생, 눈물이 따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도 불신 배우자를 따라 신앙의 끈을 놓아버리거나, 집안 갈등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같이 신앙생활하면 최상이지만, 한쪽이 불신자이면 거의 영적싸움에서 무너지기 때문에 하나님도 반대하셨습니다. 특히 배우자의 부모가 신앙인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불교 등 다른 종교를 갖고 있으면 무너지는 속도는 그만큼 빨라집니다.
오늘 모세도 불신자 십보라의 영향으로 종교적 신념이 무너진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불신자와 결혼은 피하는 게 좋지만, 그러다 몽달귀신되면 어떡합니까? 혹 불신자를 만나도 함께 교회출석의 확답을 받거나, 여의치 않으면 나의 신앙생활만이라도 보장받아야합니다. 그 과정에 아픔과 눈물이 있다는 걸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좋은 믿음의 배우자 붙여달라고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가정을 세워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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