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방법론으로 오시는 주님 》
시 16:1~11
〈 위기와 타개책 〉
어떤 분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진단받은 병원에는 로봇수술이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수술 로봇을 하는 병원을 몇 군데 추천했습니다.
‘그 병원 중에서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까?’ 이것부터 고민거리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가자고 하더랍니다.
서울의 대형병원도 한두 곳이 아닙니다. 가더라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그때의 번민이 보통이 아니었답니다.
속으로 ‘이건 뭐 암에 걸린 것보다 더 심각하잖아?’라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 환자는 두 가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첫째, 빨리 암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 치료할 병원을 선택해야 합니다.
결정하기까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두 가지 문제는 똑같이 심각했습니다.
살다 보면,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문제에 맞닥뜨렸는데, 거기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당면한 문제와 그에 따른 방법론 선택의 문제입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16편을 쓴 다윗이 바로 이렇게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16장에서 다윗은 죽음의 위협 앞에 있습니다. 시의 첫 행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1절)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다윗왕은 살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깁니다.
고대의 왕은 으레 그렇습니다. 전쟁을 해야 합니다. 나라 안에도 적이 많습니다.
다윗 왕은 죽음의 위협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타개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 암 진단받은 환자의 고민과 상황이 흡사합니다.
〈 방법론 이야기 〉
죽음의 위기 앞에서, 다윗왕은 ‘어느 병원으로 가지?’☺ 이것은 아닙니다.
다윗 왕은 어떤 선택지를 놓고 번민에 빠졌을까요? 단서가 4절에 있습니다.
(4절)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의 고민은 이것이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할 것이냐, 다른 신도 의지할 것이냐?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만 의지할 것이냐, 다른 신도 붙잡을 것이냐?
시편 16장의 주제가 이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것, ‘유일신 신앙’입니다.
하나님 한 분 뿐 아니라, 이 신, 저 신, 다 섬기는 것, ‘혼합주의’입니다.
혼합주의를 영어로 ‘싱크레티즘’이라 합니다.
중병 환자는 “이 병원이냐, 저 병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다윗은, “유일신 신앙이냐 싱크레티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타개하고 나오는 방법을 이르는 개념을 아는 것, 중요합니다.
흔히 ‘대책’ ‘해결책’ ‘타개책’ ‘해결 방법’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뚫고 나와야 합니다. 쉽게 “뚫고 나오는 길”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좀더 학문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방법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접근법’이라고도 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방법론, 접근법을 영어로 하면 뭐가 됩니까?
‘어프로우치 메소드 approach method’ 통상적으로 ‘어프로우치’입니다.
방법론, 어프로우치가 왜 중요합니까?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라서 중요합니다.
효과적인 방법론을 선택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방법론이 나쁘면, 점점 더 꼬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방법론을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딥니까?
대학교입니다. 대학입니다. 대학이라는 곳이 ‘방법론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 고등학교까지는 지식을 가르칩니다. 대학은 방법론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 농사를 주관하는 신 ‘바알’ 〉
대학에 가서도 지식만 배운다면 엄청난 손해입니다.
대학에 가서는 그동안 배운 지식을 통하여 방법론을 찾는 훈련을 합니다.
대학에 가면 리포트를 쓰게 합니다. 리포트 쓰는 목적이 방법론을 찾는 훈련입니다.
대학에서 잘 공부한 사람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방법론을 잘 찾아냅니다.
공부 게을리 한 사람은 늘 버벅거립니다.
‘이걸 해야 하나, 저걸 해야 하나?’ 늘 망설입니다.
다윗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방법론을 찾으면서 그 고뇌를 시로 썼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유일신 신앙이냐, 혼합주의냐?’
“그거 별 것도 아니고만, 다윗이 그 문제로 고민하면서 시까지 썼다고?”
이렇게 말할 법도 합니다마는,
오늘날의 이스라엘 땅, 가나안 땅, 팔레스타인의 특성을 살펴야합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타 민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미 살고 있는 민족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정착합니다.
가나안 땅은 목축도 했습니다마는, 농사지어 먹고 사는 땅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가나안 토착민들은 농사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 신 이름이 ‘바알’입니다.
그들은 농사를 주관하는 신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신에게 ‘바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비를 내려주는 풍요의 신 ‘바알’ 물론 그곳 사람들이 지어낸 신입니다.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내고, 수확하면 추수제를 지냈습니다.
한국 농촌에 가면 ‘향교’가 있습니다. 전주에도 있습니다.
향교가 무엇하는 곳입니까?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입니다.
가나안의 바알산당이나, 한국의 향교나 우상숭배라는 측면에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가나안 토착민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풍년을 기원한다면, 함께 바알을 섬기자!”
이게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여호와만 예배하기로 약속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바알 산당의 축제가 휘황찬란합니다.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이스라엘이 기웃기웃합니다. 그들에게 권유합니다.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는 게 뭐가 나쁘냐?”
사실은 이스라엘이 여기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혼합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 다윗도 이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길까, 이방의 우상신도 함께 섬길까?
〈 다윗의 결정 〉
유일신 신앙이냐, 혼합주의냐? 다윗은 번뇌 끝에 결단합니다.
“죽음 당할 수도 있는 위기에서, 나는 오직 하나님만 찾겠다!”
시편 16장이 그래서 빼어난 시입니다.
(10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
구약성경에서 ‘스올’은 죽은 이들이 가는 곳입니다. 한 마디로 ‘죽음’ 그 자체입니다.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혼합주의 안 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만을 섬기겠습니다.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시편 16장도 천천히 시 낭송하듯,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다윗이 어떤 죽음의 위기 앞에서 어떤 방법론을 선택하는지 말입니다.
구구절절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다윗의 신앙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위대한 신앙의 선진입니다.
(5~7)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 다윗의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8절을 유심히 보겠습니다.
(8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왜냐면, 신약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거든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바울이 이 구절을 인용하여 설교합니다.
〈 예수님도 인용하신 시편 16장 〉
행 2:25~28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이는 베드로가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 받고, 성령에 충만하여 행한, 첫 설교입니다.
베드로가 첫 설교에서 시편 16편 8절을 인용했습니다. 얼마나 은혜입니까?
행 13: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이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하면서 행한 설교입니다.
시편 16장 10절을 인용한 설교입니다.
시편 16장 11절은 예수님이 인용하십니다. 11절을 다시 읽습니다.
(11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11절에 나오는 ‘생명의 길’ 이 길이 어떤 길이냐? ~ 여러분 생각에 어떤 길일 것 같습니까?
생명의 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가는 길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어떤 길이냐? ~ 예수님이 풀어서 설명해 주십니다.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탄탄대로가 아니라서 실망하셨나요?☺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합니까?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은 길!”
“좁은 길로 가라!”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이 명령하시면서 시편을 인용합니다.
다윗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 선택한 ‘나는 여호와만 섬기겠나이다!’ 이 길이 어떤 길입니까?
☞ 예수 믿었다고 만사대통일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됩니다. 생명길은 좁은 길입니다.
〈 신앙은 방법론이다! 〉
시편을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시편 설교를 듣는 성도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섭생하고 계신 겁니다.
시편 16장은 다윗이 죽음의 위기를 만나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그 방법을 찾는 ‘어프로우치 메소드’ 접근법, 방법론의 시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에 고난을 만나는 것은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차이가 없습니다.
잘 풀릴 때도 있지만, 꼬이고 엉켜서 참으로 힘들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 안 믿는 자를 가려서 고난을 주거나 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의인 악인 가리지 않고 햇볕과 비를 주십니다.
“예수 믿고 농사지었더니, 가뭄도 없고 홍수도 없더라!”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게 내리지 않습니다.
농사 짓다보면, 가뭄도 만나고, 홍수도 만납니다.
살다보면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도 있습니다.
그때, 위기가 닥쳐왔을 때, 우리는 방법론을 찾아야 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여기서부터 하나님은 섭리하십니다. 이때부터 은혜가 내립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간섭해 주시고, 은혜가 충만할까요?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나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
혼합주의 택하지 않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고난 중에, 기쁨 중에, 함께 하시는 방법론, 어프로치, 접근법…
매우 중요합니다.
‘하아, 내가 예수 믿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이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믿으나 안 믿으나 이런 일은 발생합니다.
문제는 무엇이라고요? ~ 방법론입니다.
내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어떤 방법론을 택할 것인가?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법론으로 다가오십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이것이 아니라, 그래, 주님과 함께 해결하자!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