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하심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신은 선하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은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마디는 2천4백여 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두 마디는 기독교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신은 선하다” 했을 때, 그 신은 악에 맞서서 악을 물리치는 신이라는 개념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안에 하나님을 악에 맞서는 분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악에 맞서 싸워 최후 승리를 쟁취하는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되면 성경의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심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 선하심이라는 속성이 없다면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만물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선하심과 사랑이 함께 베어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기독교 사상과 배치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님을 모든 원인의 첫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원인없는 결과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부모라는 원인이 있습니다. 부모는 또 부모라는 원인이 있습니다. 이렇게 원인의 사슬을 끝까지 거슬러 가다보면 최초의 원인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최초의 원인이라면 원인의 사슬이 끝나는 지점이기에 이를 제1원인이라 합니다.
제1원인은 더 이상의 원인없이 존재하므로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라 칭하기도 합니다. 거기서 또 움직임이나 변화가 있다면 그는 시작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랑’도 움직임이고 변화입니다. 누군가가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행위가 파생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일리가 전혀없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선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사랑 그 자체이기도 하신데 하나님이 가만히 계신다면 하나님의 속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도 무의미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인정하며 누가 하나님의 속성을 칭송하며 누가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선함과 사랑을 드러내심으로써 전능자로서 예배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에게 자기를 계시하며 선함과 사랑을 표현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선함과 사랑을 노래하고, 감사하며 예배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