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차이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할 때, 나는 시간이 그리웠다.
돈이 부족하여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 나는 돈이 그리웠다.
시간과 돈만 넉넉하면 뭐든 잘 할 것같았다.
그러나 시간도 넉넉해지고 돈도 쓸 만큼은 있는데 왜 빨리 하려고 애를 쓰고
과정을 접고 결과를 빨리 얻고 싶어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래서 새벽배송 같은 것은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상자, 스티로폼 등 부산물이 너무나 많이 생겨서 죄를 짓는 것같아서 하지 못하겠다.
타인에게 요구할 것까지는 아닐 지라도 편의주의 를 배격하는게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관찰해보았다.
어느 날 남편이 내 커피를 타다가 내 책상에 놓아준다. 홀짝 마셨다.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그 빈도수가 높아지자 나는 무슨 재미 하나를 빼앗긴 듯 허전하여 다시 순서를 밟아
포트에 물을 붓고, 코드를 꽂은 다음, 내가 마실 커피를 고르고 오늘의 잔을 선택하여 느긋하게
한 잔의 커피타임을 마련한다. 그러니까 남편이 타준 것에는 과정이 생략되어 진정한 커피를
마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다.
주의깊게 살펴보니 과정이 생략된 일상은 나에게 깊게 행복감을 주지 않더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같은 열무김치를 먹으면서도 누가 주어서 그릇에 담아 먹을 때와 달리, 내가 장을 보고 다듬고
간을 하고 육수를 내고, 더 맛을 내기 위해 간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그 김치를 맛나게 하는
요소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 생신때도 집에서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무엇인가
어머니를 위해 형재자매들이 모여서 모으고 수다를 떨고 기름질을 해가며 고기를 굽는
동안 정이 깊어지고 기운이 섞이면서 뿌듯했던 것이 생각난다.
물자가 풍요롭고 좋은 것들이 천지에 널렸는데도 현대인들에게 행복감이 줄어드는 것은 과정이
생략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사이사이로 느끼고 내 감정을 끼어넣고 섞이는 즐거움을
버렸다는데 기인한다.
묘목에서부터 키운 화초에서 꽃을 보는 즐거움과 다 커서 꽃이 핀 화분을 사다가 두고 보는 꽃이
다르듯 그렇다. 그래서 가능하면 걷고, 가능하면 과정을 덜 생략하는 삶으로 전환 가능한 것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외식이 줄어들고 에어콘 피해를 덜 보려고 드니 극장에 가기보다 집에서 영화를 즐겨
찾아보게 되고, 헬스장보다는 공원을 즐기게 된다.
어제는 나의 빨강 여행 가방을 챙겨 끌고 노브랜드로 쇼핑여행을 갔다. 오는 동안 골프선수들
생각을 했다. 선수들이 허벅지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무거운 것을 끌고 산으로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가방을 끌고 언덕길을 오를 때 희열을 느꼈다. 일상이 길거리 스포츠 훈련장이 되는 것같았다.
중간에 '폴 바셋'에서 아이스크림 콘 하나를 사먹으면서 플라타너스를 바라보는 그 즐거움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결과는 같은데 과정이 생략된 것과 낱낱이 과정을 거치는 것에는 아주 묘한 차이가 있다.
다 챙기며 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살기도
한다. 보폭은 일정하게, 사고는 시공을 넘나들며 무한정 펼쳐보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