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인데
여긴 아직도 겨울 끝자락입니다.
금년에도
이전처럼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 뛸 듯합니다.
아레 글에 보니,
최종섭집사님께서
하나님 부르심 받았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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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께서 가족을 위로하시기 바라며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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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그리고..
마국 촌사람이다보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컴 바이러스가 들어왔는지
갑자기 늦어졌습니다.
좋은 방법 아시는 분 있으시면
급히 연락바랍니다.
건강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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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주보에 실었던 글인데, 나누고 싶어서요.
제목 / 조금만 더 가까이 와 주십시오!
‘조금만 더 가까이 와 주십시오!’ – 일전에 어느 식당 화장실에서 본 문구입니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 자리 잡고 서니, 먼저 보이던 큼지막한 글귀였습니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우스웠으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니면 준엄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한 두 발자국 가까이 갔습니다.
[가깝다]는 말은 거리 개념입니다. 그 반대는 [멀다]입니다. 어느 한 곳을 기분 삼아 다른 한 곳이 멀다 혹은 가깝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자나 보폭으로 재는 거리 개념을 넘어서서 추상적인 개념에도 적용됩니다. ‘관계’가 그것입니다. ‘사이’라고도 말하는데, 친한 정도에 따라 가깝다 혹은 멀다고 합니다.
이런 개념은 유행가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있습니다. 사랑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이 하고 싶은데, 도대체 가까이 갈 만큼 와 주지 않는 어떤 대상을 노래한 것 같습니다. 이 외에 ‘내게로 더 가까이 와 줄 수 없겠니?’ 라는 구절도 있는 것을 보면, 사람마다 모두 누구에겐가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멀리서 보는 꽃이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 아름다움 만 생각하고 가까이 갔을 때에 겪는 실망감이란 여간 큰 것이 아닙니다. 향이 지나쳐 독이 되거나, 생각보다 흉한 모습일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가까이 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과 희생, 때로는 ‘위험부담risk’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등거리 외교’를 하며 살아갑니다. 강대국에 둘러 쌓여 냉전의 희생이 되어 왔던 한국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주변국에게 더도 덜도 아닌 같은 정도의 거리를 지켜 나갔던, 그런 모양으로 살아가려는 것입니다. 이는 어느 한 쪽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뜻이며, 뒤집어 보면 어느 쪽에서나 득을 보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등거리 신앙 인생이 그 좋은 예가 될 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좀 더 가까이 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나, 하나님에게나 가까이 다가 서십시오! 입 냄새가 날 만큼, 거친 숨 소리가 귀에 들리만큼 가까이 다가 서십시오! 살아오느라 세월에 남긴 생채기마저 눈에 환하게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 서십시오! 좋아 보이는 모습 뒤에 숨기운 약한 모습마저 자연스럽게 내 비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성큼 다가서십시오! 그곳엔 ‘가까이 할수록 더 가까운 당신’이 서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와 달라고 호소하던 화장실 글귀 밑에 이런 또 다른 글귀가 있었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늘과 땅, 교회 안의 식구들 누구에게나, 가까이 가려고 애쓰며, 위험을 감수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