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W : 믿음 BIW : 행복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행복을 회복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지옥이 존재한다면
과거 80년대에 한창 중동건설붐이 일어나던 때 이야기입니다.
중동 건설 현장에 파견된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을 하던 중 포클레인을 잘못 다루는 동료의 삽날에 하반신이 찍혀 두 다리가 그대로 절단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기절한 후에도 느껴질 정도로 고통은 강력했지만 이내 거짓말처럼 평안함이 느껴지며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안아주시는 것 같은 평안함이었습니다.
‘아...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눈을 떴는데 바로 앞에는 불지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더욱 믿을 수 없던 것은 그곳에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성도는 영혼 구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바로 복음성가 ‘불속에라도 들어가서’를 작사하신 최수동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천국이 존재한다면 지옥도 존재해야 하며 지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도록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P4
토끼풀이라는 크로바(clover)라는 잡초가 있다.
토끼풀은 세상에 너무 많이 널려 있다.
크로바의 잎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3잎 크로바, 4잎 크로바가 있다.
3잎 크로바는 행복이라는 의미이고, 4잎 크로바는 행운이라는 의미이다.
저는 행운이 없는 사람인지 몰라도 4잎 크로바를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한 번도 4잎 크로바를 찾아본 적이 없다.
저가 찾지 못했다고 해서 4잎 크로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다.
4잎 크로바가 반드시 있지만, 저의 눈에는 띄지 않는 것이다.
4잎 크로바는 찾기 힘들어도 3잎 크로바는 천지에 널려 있다.
온통 3잎 크로바 세상이다.
온통 3잎 크로바 세상이라는 말은 온 세상이 행복으로 널려 있다는 의미이다.
인생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둘러보면 온통 행복으로 가득 채워 있다는 것이다.
행복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것이 행복인지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행복 속에 살라고 3잎 크로바 천지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3잎 크로바 속에 어딘가에 4잎 크로바가 숨어 있듯이, 행복 속에 살다 보면 어떤 이들에게는 행운도 찾아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행복속에 살라고 에덴동산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행복의 동산이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행복의 동산을 빼앗기고 쫓겨난 것이다.
본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에덴동산이라는 가정, 교회, 사회, 국가, 기관은 행복 속에 살아가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런데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 홀가닥 넘어간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행복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메시야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잃어버린 행복을 다시 찾아주시려고 오셨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찾아가시는 곳이라면,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행복의 동산으로 바뀌는 것이다.
신앙인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와 기관에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행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불행한 감정 속에 살아가고 있을까?
D4
① 회당에서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후에 회당에서 나오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토라를 배우면서 하루를 보낸다.
회당 중심으로 살아가는 민족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회당에서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당으로 나오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오시는 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다른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역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배드리는 교회를 벗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삶의 현장으로 나가는 그 순간부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살았던 삶의 흔적을 따라서 삶으로 보여주는 예배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가정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의 현장이다.
직장과 생업 터전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의 현장이다.
학교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의 현장이다.
신앙인들이 가야 할 곳이 어디가 되었든, 그곳은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지, 그곳이 어떤 곳이 되었든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는 현장이라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주권과 섭리와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사역의 현장이다.
② 시몬의 집으로 심방 가시는 예수님.
가버나움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가버나움 동네에 살고 있는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찾아가신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심방 가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실 때 혼자 가셨을까? 아니면 동행하는 동료들이 있었을까?
아무래도 예수님 혼자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요한과 야고보가 시몬과 안드래의 집으로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몇몇 무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베드로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심방 가신 것일까?
이때는 예수님께서 아무도 제자로 부르시지 않았던 시기이다.
베드로는 누가복음5장에서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껏 고기잡이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했더니 엄청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면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고 말씀하면서 제자로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기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미 베드로가 누구인지를 알고 계셨던 것일까?
베드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갔을 것이고,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었을 것이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면서 쫓아내는 이적의 현장을 보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베드로를 만났을 것이고, 베드로의 집에 걱정거리가 있음을 직감하고 베드로의 집으로 심방가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베드로가 무엇이라 말하기 전에 이미 베드로 가정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근심 걱정거리, 수심거리가 생기면 무엇이라 말하지 않아도 ’나 요즘 근심 걱정이 많아요. 너무 힘들어요.‘라고 얼굴에서 나타난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보면 대번에 무슨 일이 있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가정에 있는 걱정거리, 수심거리를 이미 다 알고 계시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베드로의 집으로 향하여 찾아가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신앙인들의 여건과 처지를 헤아리고 계시는 분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이 자신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더 명확하게 알고 계신다.
신앙인들은 지나온 과거 시간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시각에 일어나는 일들도 깜빡깜빡하면서 아주 쉽게 잊어버리지만,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 먼 장래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분이다.
신앙인들의 모든 것들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이 안고 있는 온갖 문제 덩어리와 어려운 고난의 시간들, 역경의 시간들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신앙인들의 가정으로 심방 하시러 찾아오신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도, 우리 직장과 생업 터전에도, 우리 교회에도, 자유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에도 심방 하시러 찾아오신다.
성령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난감한 일들을 해결해 주시려고 찾아오신다.
③ 열병을 꾸짖는 예수님.
베드로의 집에는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베드로의 장모님이 열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으면서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회당에서 예수님과 함께 베드로의 집으로 동행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베드로 집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베드로의 장모님께서 열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것은 좀 오래된 일인 것 같다.
예수님과 함께 갔던 요한이나 야고보는 베드로의 장모님이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 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베드로 장모님이 앓고 있는 열병을 고쳐주십사 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베드로 장모님에게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장모님께서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베드로의 동료들이 구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동료들이 베드로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계신다.
베드로의 동료들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행하셨던 능력을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행하셨던 능력을 이미 보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해 주십사 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 장모님이 앓고 있는 열병을 고쳐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베드로의 장모님께서 앓고 있는 열병을 치유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이들은 베드로의 장모님께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언가를 이미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먼저 무언가 시작하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먼저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 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먼저 가족들, 이웃들, 동료들을 위하여 무언가 액션을 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먼저 앞장서서 무언가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싶어 하신다.
사람이 해야 할 도리는 먼저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먼저 해야 할 도리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능력만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이 먼저 해야 할 도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먼저 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먼저 구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신앙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액션을 취하는 것이 옳은 행동일까?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셨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먼저 간청해 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님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는 열병을 향하여 꾸짖는다.
예수님께서 열병을 향하여 꾸짖었다는 것은 장모님을 괴롭게 만들고 있는 원인이 바로 악한 영에 있음을 직감하셨다는 증거이다.
예수님께서 열병을 향하여 꾸짖었을 때, 열병은 더 이상 여인을 괴롭히지 못하고 나가고 만다.
고고고고고고대 중동지역에서는 열병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들이 악하고 더러운 영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여기던 시절이다.
각종 더럽고 악하고 추한 영들이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켜서 고통을 당하게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에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라고 꾸짖었을 때, 귀신이 떠난 것처럼 베드로의 장모님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열병을 향하여 꾸짖는 것이다.
그랬더니 언제 그랬었냐? 라고 외치는 것처럼, 열병은 떠나고 장모님은 깨끗하고 온전하고 정결하게 회복된다.
같은 사건이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여인의 손을 만지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장모의 손을 잡고 일으키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베드로 장모님을 괴롭히고 있는 열병의 원인이 악한 영에 의해서 생겨난 질병으로 인식하셔서 먼저 악한 귀신의 영을 꾸짖으시고, 여인의 손을 만지면서 여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셨을 것이다.
그러자 귀신의 영이 떠나게 되고, 열병에서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질병이 악한 영, 더럽고 추한 귀신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악한 영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병들도 분명히 있다.
예수님께서도 질병을 대상으로 치유의 사역을 수행하실 때, 꾸짖는 방법을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모든 질병을 대상으로 꾸짖는 방법으로만 사역하시지는 않으신다.
예수님께서는 그 환자의 근원적인 문제와 원인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치유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것이다.
지금 신앙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아픔, 질병에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역사하고 계실까?
오늘날에는 최첨단의 의료기술과 기계들이 만들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최첨단의 의료기술과 기계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신 하나님이시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의료기술과 기계들을 사용하여 온갖 질병들을 치료해 주신다.
그러기 때문에 얼마든지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는데도, 하나님께 기도해서 치료받겠다고 고집부리면서 병원 가기를 거절한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거절하는 행위요 하나님 앞에서 커다란 죄악이다.
의원, 병원, 의료기술, 최첨단의 각종 기계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④ 여인의 시중을 받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베드로 장모님의 손을 만지고 잡아 일으키면서 열병을 향하여 꾸짖었을 때에 열병이 떠나면서 베드로의 장모님은 몸과 영혼과 마음이 온전한 여인으로 회복된다.
이제는 모든 근심, 걱정, 아픔, 질고에서 해방받고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
베드로의 아내는 엄마의 질고로 인하여 늘 편할 날이 없다.
베드로의 자녀들은 외할머니의 질고로 인하여 웃을 날이 없다.
베드로는 장모님의 질고로 인하여 늘 애쓰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짠하고 아픈지, 편하게 온 식구들이 모여서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온 식구들의 마음이 우울하고 근심 걱정으로 온 집안 분위기가 불행한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껏 웃을 수 있고, 떠들 수 있고, 마음껏 식사할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행복으로 가득 채워진다.
여인은 한결 좋아진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예수님을 비롯하여 집에 찾아오신 모든 분들을 위하여 마실 차도 준비하고, 식사도 준비하면서 수종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여인의 시중을 받으면서 함께 모인 무리들과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은혜받은 증표는 섬김에서 나타난다.
은혜를 받았는데 전혀 섬김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어딘가 모르게 바뀌고 변화 받고 주변을 살피고 섬기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먼저는 하나님을 향하여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가정을 섬기고, 직장과 생업터전을 섬기고 기관을 섬기는 데서 은혜받은 증표가 살아나는 것이다.
L4 & B4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심방 오셔서 장모님이 앓고 있는 열병을 꾸짖으면서 쫓아냈을 때, 베드로의 집에는 근심 걱정 거리가 사라지게 된다.
가정에서 한 사람이 질고가 되었든, 사고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아픔이 있다면 그 한 사람만 아픈 것이 아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온 가족들, 온 식구들이 웃음이 사라지고 수심이 가득하다.
한마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말도 없어지고 온 식구가 예민해지고 우울해지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불행해요. 너무 힘들어요. 불행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에요”라고 항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옆에서 무언가 한마디 거들어 주기도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 예수님께서 심방 하러 찾아오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심방 하러 찾아오시자, 모든 아픔, 질고, 문제가 눈녹듯이 사라지고 없어진다.
이제는 수심거리가 사라지고 근심거리가 사라지고 우울했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불행한 감정이 사라진다.
이제는 마음껏 웃을 수 있고, 노래 부를 수 있고 춤을 출 수 있고 큰 소리로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제는 온 식구들뿐만 아니라 손님들까지도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어울릴 수 있다.
그러면서 “바로 이런 것이 행복이지 딴 것이 행복이겠어.”라고 느낄 수 있다.
예수님께서 어디를 심방 하시든 예수님께서 심방 하시는 곳에는 행복이 찾아온다.
예수님께서 심방 하여 찾아가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근심, 불행, 걱정이 변하여 행복의 장소로 바뀐다.
예수님께서 가정으로 심방 오시면 가정이 행복한 가정으로 바뀐다.
예수님께서 직장과 생업터전으로 심방 오시면 직장과 생업 터전이 행복으로 가득 채워진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아메리카노, 라테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행복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학교로 심방 오시면 학교 공부가 즐겁고 기쁘고 행복해진다.
은혜받으면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급식도 먹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 심방오고 싶어하신다.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온통 세상을 자기 세력권 안에 잡아 가두려고 하는 악한 영들을 꾸짖으면서 쫓아내시고 진정한 행복과 자유와 안식과 평강을 베풀어주시고 싶어하신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시몬 베드로의 집을 심방하심으로 슬픔과 우울의 감정에서 미소와 웃음과 행복이 찾아온 것처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정으로 찾아오셔서 심방 해 주시면 행복한 가정, 웃음꽃이 활짝 피는 가정,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길 수 있는 가정으로 바뀌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언제나 삼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심방해 주시는 가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⑥ 민수기&신명기이야기
⑦ 민수기 이야기
⑧ 신명기 이야기
⑨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⑩ 프레임 설교의 이론과 실제 1권, 2권
모두 15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주시면 고맙고 감사하겠습니다.
|
|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건강을 가져오고 행복을 안겨 줍니다.
사랑이 꽃피고 행복이 넘치는 웃음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