㉚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침묵이 최고 음악이 되는 것처럼...
◇ 침묵이 전부인 존 케이지(1912~1992)의 *출처=John Cage
미국의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는 <4분 33초>라는 곡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4분 33초>는 노래가 아닌 노래입니다. 음악의 3요소인 멜로디, 리듬, 화음 그 어느 것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4분 33초 동안 무대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게 이 노래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곡은, 때로는 침묵도 훌륭한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침묵이 최고의 음악이 되는 것처럼 때로는 침묵이 최고의 수행이 됩니다.
『유마경』에는 문수보살이 이렇게 묻는 구절이 나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이때 유마 거사만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불이법문은 시시비비를 떠난 궁극의 지혜를 일컫습니다. 그러니까 유마 거사는 궁극의 지혜를 얻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침묵으로 답한 것입니다.
유마 거사는 말[言]마저 버린 후에야 궁극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일깨워줬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등불이 꺼지고 바람이 없으면 등불이 환히 빛을 내듯, 마음속의 등불도 고요할 때 환히 빛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바타 교육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자신의 신념 체계를 새롭게 세우는 명상 프로그램인 아바타 교육은 단계별로 나뉘어 있는데, 저는 제주도와 경주에서 마스터 과정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 단계인 위저드 과정을 받으려면 미국 달러로 7,000달러를 내야 했습니다.
저를 교육한 이가 “위저드 과정을 받을 것이냐?”라고 물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받을 수 없다고 솔직히 답했는데, 교사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돈이 없느냐? 세상에 돈은 많다. 돈이 없는 이유는 그대가 돈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사의 이 말이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보물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이미 내 안에 보물이 있다.’라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원효 스님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 밤 사이 마신 해골물로 깨닮음을 얻은 신라의 승려 원효(617~686) *출처=KBS 역사스페셜 캡쳐
원효 스님은 의상 스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다가 어느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습니다. 잠을 자다가 심한 갈증이 일어 손으로 바닥을 더듬던 원효 스님은 바가지에 담긴 물을 발견하고 달게 마신 뒤 다시 잠들었습니다.
이튿날, 자신이 지난밤에 마신 것이 해골에 고인 썩은 물임을 알게 된 원효 스님은 토악질로 한바탕 고생을 한 뒤 모든 게 자기 마음가짐에 달렸음을 깨닫습니다. 이에 당나라 유학길을 중단하고 신라로 돌아와 역사에 길이 남은 큰 스승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바타 위저드 과정을 받지 않은 것은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달라지고 나니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굳이 그 교육을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는 마무리가 매우 극적입니다. 꿈에 나타난 요술 할머니 부탁으로 파랑새를 찾아 길을 떠난 어린 남매가 오랜 여정에도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자기 집 새장에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파랑새』와 유사한 이야기가 『법화경』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가난한 이가 친구의 집을 찾았다가 술에 잔뜩 취해 잠이 들었습니다.
친구는 볼일이 있어 외출하면서 가난한 이의 주머니에 보물 구슬을 넣어두었습니다. 하지만 술에 취했던 가난한 이는 자신의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친구 집을 떠났습니다.
오랜 세월 뒤 가난한 이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났습니다. 친구는 예전과 변함이 없는 가난한 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값비싼 보물 구슬을 너의 옷 속에 넣어두었는데, 너는 아직도 옷과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고생하며 살고 있구나. 그 보물 구슬로 네가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모두 보물 구슬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경전 속 가난한 이처럼 구슬을 지니고도 그 구슬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보물 구슬을 찾는 게 인생의 참된 가치를 깨닫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어치의 이익이 없다.”라는 『화엄경』의 한 구절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도 스스로 체득해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계속>
글 | 마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