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김종빈
충청남도 안면도 출생
창기초,안면중,국립 전북기계공고,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4년 시조문학으로 시조에 등단.
시조집 『꽃으로 온 절규』외 다수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전북시조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가람기념사업회 상임부회장,
전북시조시인협회 이사,
율격 동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의 말
도돌이표를
왕복하는 매일이다.
언제쯤
원심력을 얻어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25년 가을
김종빈
밀랍의 방
노동이 잦아든 지 꽤 오랜 밀랍의 방
날개를 윙윙거리며 드나들던 그 칸에
꿀처럼 다디단 순간 조금은 남았을까
곤히 잠든 아내를 넌지시 바라보는데
피곤이 묻어있는 얼굴에 번지는 미소
저렇게 잠깐이라도 단꿈을 꾸는 걸까
함께 읽은 페이지 그 진한 밑줄 따라
아내 얼굴 잔주름을 씁쓸히 짚어보면
단내가 그윽이 고인 꿀 한 통쯤 있다
포크 댄스
조금의 이탈조차 용납되지 않는 동선
몇 번째 실수하는 까다로운 부분이다
연습실 바닥을 짚고 기억이 앞장선다
엉성한 춤사위에 야문 며칠을 잇대자
손가락 맞잡아 걸고 팽팽히 버텨선다
이대로 마무리되면 걱정 따로 없겠다
어쩌다 딱딱 맞는 그런 날도 있는 법
주고받는 것이라곤 눈빛이 전부였던
어긋나 아문 한때가 빙긋이 만져진다
김밥말이
국립대 정문 앞에 자리 잡은 타코 트럭
줄을 선 입맛들이 만들어낸 저 인간 띠
맞은편 김밥집 창에 한숨 짙게 서려있다
생소한 간판들이 서로 겨누고 있는 골목
외세에 밀리는 것이 김밥뿐만은 아닐 터
또띠아 그 멍석에 앉아 만감을 싸고 있다
다시 첫발
초승달 내려다보는 몸에 밴 포구 바람
꼬맹이 적 꼬맹이가 은빛 모발 날리며
장난끼 더듬어 들고 물수제비를 뜬다
윤나는 조약돌로 한 바퀴 돌아온 꿈길
아무리 가늠해도 깊이를 알 수 없어
물 제비 징검을 딛고 다시 첫발을 뗀다
램프의 미학
어깨가 맞닿아 있는 사선들의 변곡점
자동차가 오르내릴 경사로를 만든다
최대한 자리 확보와 소통이 우선이다
원형 구간 직선구간 구배를 계산한 후
서로 다른 사선들을 꼼꼼하게 맞추다
모난 돌 정 맞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경험이 단호하게 외면하는 의견과 반박
안팎의 대칭에 맞춰 자르고 썰다, 아차
거푸집 뒤바뀐 경사, 해체해 다시 짠다
고비와 절규를 넘어
발화하는 수평(水平)의 시학
정용국(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시인을 일컬어 개별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특별한 근거와 특징이 있다. 시인이 창작하는 단 한 편의 시에도 그의 삶과 주장, 그리고 경륜과 상상력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인데 시는 그의 주관과 각별한 감정의 소산인 것이다. 한 시인이 창작물을 집필하기 까지는 출생이후 부모의 정성 어린 양육을 기본으로 사회적 통념과 계통이 있는 오랜 교육 기간이 필요하다. 또한 그가 사회적 기본 틀 안에서 국가의 이념과 사회 제도는 물론이고 종교적 흐름 등과 조화롭게 성장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헤쳐 나가야 하는 삶의 모든 과정에는 순리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어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수많은 고비와 마찰을 겪어야 한다. 가정에도 많은 변수와 조건이 존재하며 출생지와 사회는 물론이며 국가와 종교 등은 개인의 성장과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렇게 긴 시간과 변화를 거쳐 인격체로 성장한 개인이 구현해 내는 창작물은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이며 이상 세계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김종빈 시인은 베이비부머 세대에 태어나 첫 사회생활을 기능인으로 출발하였다. 그가 성장한 70년대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모든 사회 구조가 공업 입국의 기치 아래 전력 질주하던 시절이었다.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되고 국가와 모든 국민은 기계 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조선과 화학은 물론이고 자동차 생산 공장들이 마치 동화와 같이 질주하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젊은 피들은 공장에 즉각 투입되었고 전국에는 실업계 학교들이 활기를 띠며 학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김종빈은 이런 산업 역군의 구성원으로 시작하였지만 시인의 기운을 타고난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람이다. 그래서 기계를 전공했던 시마(詩魔)에 들린 청년은 다시 국어국문학과를 찾아가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었고 벅찬 발길은 듬직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자의 길에서 인문학으로 갈아탄 인생의 길은 낯설었지만 푸근하고 열정이 가득한 새롭고 신나는 여정으로 다가왔으리라. 새 시집에는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자신이 직장에서 영위하고 있는 여러 가지 기술적 측면에서 바라본 인생을 다양한 시각으로 파악하고 그려낸 작품들이 많다. 이런 특별한 시조는 그의 경륜을 업고 새로운 서정과 어울리며 재미를 더하는 실감 나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노후를 기대고 버틸 일자릴 찾는다는/ 한강의 기적을 일군 오팔육 전후세대/ 젊음을 다 바친 대가 그대들은 자투리 「그대, 안녕하십니까」" 이러한 감정들은 독자에게 각별하고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며 김종빈 시인의 숨겨진 면모와 익숙한 삶의 현장으로 이끌어 줄 것으로 보인다.
『꽃으로 온 절규』에는 아름다운 서정과 노동 현장의 이야기가 뒤섞이고 역사와 갈등으로 버무려지는 온갖 세상의 풍경과 절규들이 담겨 있다. 김종빈의 각별한 삶의 궤적은 다양하고도 이채로운 모습으로 새 시집에 투사되며 재미를 더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고 가슴을 들썩이게 만든다. 노동의 신성함을 다시 새겨보고 꽃들의 대견한 모습도 우리에게 또다른 상상을 불러온다. 시집 구석구석에는 시인의 외모처럼 까무잡잡하고 강단 있는 이야기가 두런거리고 전라도 이순 청춘의 걱정과 신산한 삶의 뒷모습도 오래도록 망막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른거리는 숙연함을 독자들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비록 '절규'라는 시어는 조금 날카롭게 다가왔지만,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신비로운 "꽃"이였기에 시집은 따듯하고 정답고 신선하였다.
엄마가 접을 놓던 호박꽃 환한 아침
이슬로 진하게 쓴 꽃들의 말 읽는다
눈으론 읽을 수 없는
뭉클한
불립문자
-「꽃들의 말」 전문
언제나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인생과 현장에서 수평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김종빈 시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의 정겹고 묵직한 불립문자 하나를 읽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