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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한 두 번째 문제 :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목사님 코칭]
10년 동안 사역을 하고 훈련을 하면서 제가 느낀게 성경대로 안 하면 안 되는 구나 하는 것을 하면 할수록 확신이
와요. 성경은 하나님 뜻인데 우리는
그동안 성경대로 살아야 된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성경대로 살지는 않잖아요.
지금까지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사역을 하면서 성경대로 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되고 성경대로 안 하는 사람은 잘 안되는 것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영성학교 식구들은 전심으로 기도하거나 쉬지 않고 기도하는
거나 성경에 있는 얘기고 그렇게 안
하면 답없다고 하니까 인정하고 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 기도를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러면 다 성령의 사람이 금방 돼야 되는 거잖아요. 생각보다
이것도 쉽지 않은 거예요. 제가 10년 돼서 느낀 것은 기도하는 것도 내가
하려고 애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힘주셔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제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 중에서도 열심히 하는 그 강도와 수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그대로 내려주시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안하는 것 같은데도 오히려 하나님이 은혜도 많이 주시고 문제도 빨리빨리 해결해 주시고 어떤 분은 기도를 열심히 하지만 기도 하는 것 만큼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중에 알게 된 게 결국은 죄의 문제를 그동안 자기 부인하는 영역으로 죄를
많이 다뤘는데 사랑하라는 계명을 두고
보자면 적극적인 게 아니라 약간은 소극적인 방식이죠.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들은 전부 포맷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게 자기 부인이고 성령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에 당연히 기도하는 거와 죄와 싸우는 거와 자기 부인하는 이 세가지 주제를 가지고 그동안 10년 동안 계속 탐구했어요. 이걸 안 하고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는 없어요. 문제 두 문제를 푸는데 1번
문제가 이 문제고 결국은 기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 우리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로 성령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애쓰고 노력하면 성령님께서 기도하는 것도 도와주시고 좌와 싸우는 것도 도와주시고 자기부인하는 것도 도와주시는 거죠.
이제 2번 문제인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이 문제는 소극적으로 푸는 영역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거니까
결국은 내가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고 죄와 싸우고 이게 연결돼 있는 거였어요. 결국 1번 문제를 푸는 거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거는 이 기도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니까 그래야지
죄와 싸울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자기부인 할 수 있는데 이게 2번 문제에요.
2번 문제는 적극적으로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말 그대로 상대방을
내 배우자가 됐든 누가 됐든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거예요. 이게 자기부인인데
기도하는 거는 결과가 나와야지 제대로 하는지를 알 수 있지만 2번 문제는 상대방을 통해서 문제를 잘 풀고 있는지 안 풀고 있는지 알수 있어요.
여러분 가족이 됐든 영성학교 식구가
됐든지 철저하게 해야 돼요. 당연히
쉽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깨달아야
돼요.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모든 얘기도 그만큼 참고 있는지 내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지 친절하게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사람 입장에서 불쌍히 여기고 있는지인데 그게
자비에요.
상대방이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참으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이 문제를 풀어
가야 되는 거예요. 그냥 해온 대로 나도 그대로 한다면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죠. 상대방의 죄는 상대방의 문제일 뿐이지 내가 거기에 대해서 잘못한 죄는 내 죄에요.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해서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얘기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얘기 안해요. 이성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아요. 그냥 말도 안되는 예수님의 명령일 뿐이죠. 말도 안되는 그동안 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할 생각조차 없는 거죠. 그렇지만 그걸 안하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성령님께서 아담이 100가지 죄를 지어서 사망이 온게 아니라 한가지 죄를 지어서 그랬단 말이에요
하나님은 퍼펙트를 원해요. 그래서 우리가 퍼펙트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는 날마다 회개하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 내가 죄라고 느껴져야 회개하는 거고 내가 잘못했다고
느껴져야 회개가 되는 건데 결국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마음을 주셔야 돼요. 그럼 어떤 사람한테 그 마음을 주시냐 내가 하려고 애쓰는 사람한테 주는 거예요. 기도하는 거와 같아요.
남을 내가 사랑하는 거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는 거하고 사실은 마음은 똑같애요. 똑같이 해야 되는 거예요. 이 기도를 하면 이거는 30%만 해도 되는 거예요. 근데 기도가 그만큼 안 올라가 있으면 똑같이 어려운 거예요.
왜냐하면 기도가 그만큼 올라가 있다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잖아요.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면서 이걸 하면 훨씬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어요.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서 성령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것만 되면 쉽게 풀리는 거죠.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거예요. 1번 문제도 완벽하게 해나가면서 2번 문제도 같이 풀어야 되는데 상대방이 왜
그랬냐를 물어보면 이 문제를 못 풀어요항상 내가 해야 되는 것만 남아 있는
거예요. 넘어지면 즉각 회개하고 날마다 이 생각이 안나면 이 문제를 못 풀어요. 부정적인 생각들(미움, 증오, 짜증, 분노, 걱정, 염려, 두려움, 불안, 낙심, 억울함, 서러움, 자기 연민 등) 자체를 풀려면
회개를 많이 해야 되요. 평상시에 잘못하지 않았어도 이 문제에 내가 늘 취약하다 그러면 무조건 회개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떠나게 하면
안돼요. 회개를 한다는 건 늘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나한테는 이 문제를 넘어가야 된다는 걸 늘 깨닫게 되죠.
이거는 여러분이 잘 싸우느냐에 달려
있는 거죠.
완벽하게 싸울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한 만큼 회개를 해야 되는 거죠. 완벽하게 하면 회개할 게 없지만 완벽하지 못한 그 부분은 무조건 회개로 채워야 돼요. 여러분이 이 문제를 풀어야
천국에 가고 이땅에서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순적하고 행복하게 사는게 기본이에요. 행복하지 않으면 영성학교 식구가 아니에요.
[교수님 코칭]
(요한일서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스스로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나는 천국 백성이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마음속에서는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다. 어둠에 있는 자다. 여전히 지옥 자식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요한일서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사랑하지 않는 것 그걸 미워한다는 표현으로 하셨다고 봅니다. 우리 마음에
누가 너에게 악을 행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제 미워하는 반응을 보이느냐 그것에 대해서 기도해 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느냐가 천국 백성이냐 아니냐를 입증하는 실제적인 증거라고 요한일서는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미워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여전히 어둠에 있는 자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다. 영적으로 완전히
장님 상태에 들어가 있다 말씀하시는 걸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소극적으로 순종을 조금 못했다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너는 여전히 영적인 장님이고 어둠의 나라에 마귀에게 속한 자다라고 평가를 하십니다.
(요한일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우리는 이제 과거에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을 영접기도 했고, 성령님을 체험하는 경험이 있었다면 혹은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해
왔지만, 하나님께서 네가 지금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너는 살인자이고 살인하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없다. 하나님의 기준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에
매여 있는가로 천국 백성인지 아닌지를 입증한다 이게 증거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일서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사람에 대한 미움을 품은 채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전적인 거짓말이다
위선이다. 있을 수 없는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라고 선포를 하십니다. 사랑이 없으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한때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지금 내가 사랑하는 자가 아니며 내게는 구원이 없는 상태다라고 성경은 진단하고 계신 것이 우리를 경성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마음,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 하는 걸 인지하는 거하고도 관계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워하지 말라 혹은 사랑하라는 말씀이 누군가 잘못한 게 아니다
그런 취지의 말씀은 아닌 것 같아요.
성경에서는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또
정확하게 분별도 해야 되고 가르치기도 해야 되고 책망도 해야 되고 또 돌이키기도 해야 되고 그걸 해줘야 할 책임이 영성학교 식구들이랑 코치가 되면 그
역할을 해야 되는데, 분별하고 가르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같이 가버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영적인 죄인이 돼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분별하더라도 불쌍히 여기고 그다음에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런 마음 가운데 필요를 분별하는 것하고 판단하고 미워하고 정죄하고
마음속으로부터 배척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렇게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은 사실은 나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이해하는 것하고도 관계된 것 같습니다.
시편에 보면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우리가 진토, 티끌에 불과한 것을 그가 아시니라.
사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무리 뭘 잘하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진토, 티끌에 불과한 자인데 내가 뭘 잘하고 있으면 나는 얼마나 잘하고 있겠으며 내가 올바르다면 얼마나 올바르겠습니까? 사실은 다 굉장히 미흡하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나 자신인데 인간은 내가 조금만 뭘 잘하면 나는 거의 완벽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여기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만 크게 보는 성향이 우리에게 있고 그게 또 마귀가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교만하게 만들어서 망조가 들게 만드는 그 길이 교만한 마음을 품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도 진토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늘 주시고, 나의 삶의 모든 위로나 격려나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내게 임하는 것이지, 사람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오직 하나님이 저를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에서 제가 위로와 기쁨과 만족과
영광을 하나님 앞에서 얻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이나 물론 때로는 부분적으로 격려는 되겠지만 그걸 바라는 사람이 되면 결국은
교만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고, 그
기대 자체가 안 채워지면 우리 마음에는 서운함과 그다음에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하고 채워지면 스스로 높아져서
교만해지고 그래서 결국 망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 하나님 제 마음에 하나님 앞에서 오는 위로로 만족하게 하셔서
겸손한 자로 살게 해주시고, 또 저에게 죄 지은 사람을 향해서 나도 똑같은
죄인인 것을 늘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그렇게 불쌍히 여겨야만 천국 갈 수 있으니까 문제는 불쌍히 안 여기고 미워해버리면 지옥 간다고
선포하시니 이걸 어떻게 바꿀 방법이
없잖아요. 미워하는 순간 너는 지옥
자식이다. 하나님의 선포니 하나님이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을 충만히 주셔서 천국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렇게 우리가 기도하면서 기도 훈련해 나가면 영상학교 모든 식구들을 천국 백성으로 다 들려주시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첫댓글 아멘! 제 힘으론 어렵지만 두 눈 질끈 감고 순종하겠습니다 ❤️
아멘!
너무 큰 통찰력이 담겨있는 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하지만 항상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깊은 곳을 감찰하시고 진짜 원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찾고 의지하는 힘 또한 허락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은혜요, 내주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렇게 사는 삶이 크리스천이라고 불려도 아깝지 않는 삶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결국 모든 해결은 하나님을 경외함, 사랑함의 깊이에 그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싶은 나의 노력에서의 한계를 부딪쳐보면서
하나님 안에 충분함과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안정됨이
그 어렵게 느껴지던,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부분들이 너무도 순적하게 해결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해결책이 됨을 깨닫습니다♥
역으로 내가 이웃을 미워한다면
나의 상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그분 안에 있지 않아서 충분한 공급을 받고 있지 못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저의 경우 그럴 때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할때에 하나님을 찾는 기도, 주님 함께하여 주십사 하는 기도, 회개의 기도가 나옵니다.
코치님, 식사로 섬겨주셔서 이 또한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