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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 마무리 보고서
프롤로그
나는 15살 때 만 해도 5년후의 스무살은 내게 오지 않을것만같은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은 흘러 나는 스무살 되기 직전의 코 앞 까지 와있었고 , 그때서야 나는 “스무살 금방이야~” 라는 말을 실감 할수있었다.
나는 18살이 될 때 까지도 스무살을 준비하기는커녕 철없이 놀기만 했다. 엄마는 그런 내게 하반하 세계여행 학교를 소개 시켜주었고, 그 뒤로 나는 8기에 오게 되었다.
하반하에선 매일 아침이 밝기도 전에 일찍이 새벽 기상을 해야 했고,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 써 본적도 없던 일기를 쓰고, 영어 독해, 영어 단어를 외우며 정산 프로그램을 해야했다. 나는 중학교 때 부터 놀기 바빠 공부와 담 쌓은지 오래여서 초반엔 좀 어려워 했다. 하지만 또 하면 잘 하는 나이기에 금방 적응하고 나중엔 그리 어려워하지 않고 잘 해냈다.
그렇게 1년 여행이 거의 다 끝나가 한국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그 이유는 내 또래 아이들은 학교 다니며 공부하고, 지금 뭐라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고3나이에 한국에 가서 뭘 할지 특별히 계획도 없었고, 정작 하고 있는 것 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 하반하 1년을 더 가기로 결정을 했고 올해 비밀병기에 오게 되었다. 올해는 여행에 적극적인 마음으로 임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내 10대 마지막 1년을 여기서 보냈다.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서 몇몇 감정이 들었고 내 10대를 마무리하며 그 내용을 깊이있고, 진지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10대를 정리하며
<감 사>
엄마 기억나? 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거 좋아해서 유니콘 따라 그리고, 스케치북 표지에 있는 로봇 그림도 따라 그리고 했었던거. 그리고 또 손으로 뭘 만드는걸 좋아해서 레고로 이것저것 만들고, 박스잘라서 로봇 팔 만들어 보겠다고 새벽까지 붙잡고 있던거. 나 초등학생때 엄마 따라 눈 펑펑 내리던 겨울날에 일찍 일어나서 매일 새벽미사도 나가고 성당 다니면서 복사도 꽤 오랫동안 서고 그때 수녀님이 나 복사 잘한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었는데. 그리고 내가 나중에 막 신부님 되겠다고 그랬었잖아. 지금의 날 보면 신부님 되겠다는건 전혀 상상이 안가지만.. 나도 저땐 그 모습으로 쭉 클거라고 생각했는데 참 다르게 컸지. 복사 그만두고 중학교 올라가선 귀찮다고 성당도 안갔지, 또 새로운 친구들 만나면서 내환경도 확 바뀌고 그때부터 엄마말은 더 안듣기 시작했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학교에서든 밖에서든 자꾸 문제삼는일만 했었네..
학교에서 사고 쳐서 엄마를 수 도 없이 학교로 불렀고, 엄마는 갑자기 바뀐 나 때문에 울기만했고 나는 우는 엄마보고 “진짜 하지말자, 하면 안된다..”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그 뒤로도 계속 놀기만 하고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계속 방황만 하다 1학년을 다 끝마치지도 않고 자퇴하겠다고 그러고, 내가 갑자기 자퇴한다고 했을 때, 많이 힘들었지? 나도 그때 뭐 다른수가 업었나봐. 그렇게 자최하고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생활했었는데 그러다 엄마가 하반하를 나한테 소개 시켜주었고 나는 또 학교는 뭔 학교냐며 안간다고 하다가 나중엔 집 까지 나갔었는데, 나갔다가 열이 막 나서 돌아왔잖아.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그때 나 하반하 안가겠다고 했을 때 성모상 앞에서 기도 열심히 했었잖아. 그 엄마 기도 떄문에 내가 아파서 집돌아오고, 8기에 가게 된거 같아. 8기 갔다와선 나는 전이랑 달리 되게 많이 좋아지고 바뀌어서 집 분위기도 많이 좋아졌고 엄마도 되게 좋아했잖아. 근데 이게다 엄마 덕분인거 같아. 집 분위기가 좋아져서 일부러 늦게까지 밖에 안있어도 됐고, 집에선 한 식탁에서 다 같이 밥도 먹고 정말 감사하더라. 그리고 올해 비밀병기에 와서도 여행하면서 감사함을 진짜 많이 느꼈어. 특히 인도 여행할 때 많이 느꼈던건데 인도에는 길거리에 고아들이 꽤 있었어. 근데 그 애들 보면서 이렇게 미운아들 정말 많이 사랑해주는 엄마가 있다는것에 되게 감사했고 마테란에서 뱅갈로르로 갈 때 기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그 안에서 시각장애인, 팔이나 다리가 하나 없는사람 이렇게 몸이 불편한 사람들 보면서 날 건강하게 낳아주신 엄마,아빠 한테 되게 고마웠고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더라. 또 내가 세계여행 하면서 이런것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감사했어. 그 때문에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내 10대를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 할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내가 엄마 아들인것에 너무 감사하고, 지금껏 엄마한테 한마디도 못했던 말을 하고싶어.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후 회>
내가 올해 10대를 마무리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열해서 문집에 썼는데 이 ‘후회’하는 감정을 누나한테 써 보려해. 여기 애들중에 나처럼 누나있는 애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 호그이라는 애가 자기 누나랑 엄청 친하다는거야. 그래서 나는 좀 놀랐어. 나는 누나랑 별로 안친해서 다른 남매들도 우리처럼 안 친한게 정상인줄 알았는데 호근이 뿐 만 아니라 다른 애들 얘기 들어보면 자기 누나랑 친하게 지내는 애들이 많더라. 호근이는 도리어 날 보고 “누나랑 안친하다고요?” 하면서 놀라더라. 애들은 누나랑 놀았던거, 같이 했던거 얘기 하는데 나는 뭐 같이 해본게 없어서.. 근데 생각해보면 어릴 때 썰매장가고 스키장가고 같이 놀긴 놀았네. 참 스키장 하니까 생각난건데 올해 슬로바키아 가서 설산에서 보드타는데, 누난 어렸을 때 스키 잘탔잖아. 그래서 여기 코스도 다양한데 같이 와서 즐겼으면 좋을거 같더라. 그리고 누나가 나 세계여행 하는거 부럽다 그러는걸 들었는데, 그거 듣고 사실 좀 미안하더라. 나는 뭐 한것도 없는데 누나보가 내가 훨씬 더 좋은걸 누리고있으니까 누나가 조금 서러운면도 없지않아 있을거 같아서.. 이것 말고도 누나한테 좀 미안한게 있어. 나는 누나 생일 때 뭐 하나 해준게 없는데 누난 내생일떄 마다 항사아 뭐 하나씩 챙겨주더라. 나는 내 생일 때 누나가 선물을 주리란 기대도 안하고 그 생각 조차도 안했는데 엄마가 “야 누나가 주는 선물이래” 하면서 주는 선물 받으면 조금 놀랍기도 하고, 고맙고, 미안해서 다음번엔 꼭 누나생일 eo 작은거라도 하나 해줘야 겠다 하는데 자꾸 까먹어.. 누나가 날 생각해 주는 것 만큼 나도 누나를 생각해줘야하는데 그러질 못해가지고 미안하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까 여태껏 내가 누나한테 해주지못한게 많아서 “해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도 해. 그래서 나중에 더 많은 후회 하지 않게 그 간 못해줬던 것들도 하고, 잘 하려고 해. 생일도 항상 잘 챙겨주고, 뭐 필요할 때 심부름같은것도 하고^^ 누나한테 든든한 동생도 되어주고,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동생이 될게. 나중에 동생하나 잘 뒀다는 소리 들을수 있게~.
<의 지>
올해 여행 하면서 여러 감정들을 느꼈는데, 그 중 ‘의지’를 아빠한테 써보려해. 내가 이 10대를 마무리하는 문집을 쓰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나더라. 내가 벌써 스무살 이라는게 되게 좀 신기하고 뭔가 오래갈거 같았던 내 청소년기는 언제 이렇게 지나온건지 싶고, 내가 중학교 올라와서부터 아빠랑 잘 못 지낸거 같네. 고등학교 자퇴하고 나서 뭐 검정고시 보겠다고 학원 등록해놓고 몇일 다니다 나중엔 가지도 않아서 돈만 몇 백 날렸고, 그 뒤로 아무것도 안 하고 알바만 했었고 또 집에선 밥도 같이 안먹고 방문닫고 방 안에만 있었고.. 그때 “쟤는 진짜 무슨생각 가지고 저러고 있나” 하면서 답답했지? 나는 그때 뭐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냥 알아서 되겠지~ 했었어. 근데 정말 그 시기에 하반하에 온게 정말 잘한거 같아. 환경이 싹 바뀌면서 나도 많이 바뀌었고 또 무엇보다 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 내가 올해 이집트에서 세훈이 머리를 한번 밀어주고 나서 그뒤로 몇 명 애들 머리를 잘라주고 했었는데 애들도 만족해 하고 써니쌤께서도 잘 자른다고 칭찬을 해 주셨어. 그래서 그때 기분좋은 마음에 “아 미용사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이집트 여행 마무리하고 인도 마테란으로 갈떄 두바이 공항에서 장 시간동안 경유를 했었느데 그때 써니쌤 께서 나한테 영상을 하나 보여주셨어. 한 미용사가 어떤 꽤재재한 노숙자 한 분을 머리도 잘라주고, 옷도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 입히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 코디를 해서 정말 노숙자에서 양복집 사장님으로 바꿔놓는 그런 영상이었는데 내가 전에 이 영상을 한번 본 기억이 있거든. 근데 그때랑 이번이랑 영상을 보고나서의 느낌이 되게 달랐어. 저번에 봤을때는 그 노숙자의 바뀐 모습만 보고“ 오~” 이랬다면, 이번엔 그 미용사가 되게 멋져 보였어. 영상속 노숙자가 그렇게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술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하는데 나는 그 미용사가 되게 멋져 보이면서 나도 저런일을 하는 미용사가 되면 좋을거 같다고 생각을 했어. 그냥 남의 머리를 잘라주는 평범한 미용사가 아니라, 꿈을 갖게 해주는 그런 미용사. 어떤 일을 할떄 의미를 가지고 한다면 같은 직업이여도 다르게 보이는거 같아. 내가 지금 껏 아빠한테 믿음을 주는 행동을 많이 못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많이 변화했고, 이렇게 뭘 하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게 됐어. 이젠 아빠가 전에 알던 그 아들이 아니야. 아빠의 그신임이 내게 정말 큰 힘이 돼. 그래서 전 보다 나를 좀 믿어줬으면 하고 내게 서포터가 되어줬음 해. 이렇게 아빠가 내게 힘이 되어 주는 것처럼 아빠 아들로서 아빠에게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멋진 아들이 될게. 겉으로 표현을 잘 못했지만, 항상 감사합니다.
20대를 준비하며
<자 신 감>
올해 10대를 마무리하면서 너 한테 할말이 좀 많아서 써 보려해. 사실 내가 10대를 이렇게 마무리 하게 될 줄 몰랐는데 되게 놀랍고 신기해. 하반하 8기를 오기전까지만 해도 난 뭘 해야할지도 몰랐고, 계속 아무것도 안하면서 불안해 하기만 했었어. 그렇게 지내다 내게 동앗줄이 내려온 것처럼 나는 8기에 가게 되었고, 내가 처음에 5개월만 하고 가겠다고 해서 이 여행 잘 끝낼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그 안에서 또 적응을 잘 하고, 밖에서 들어본 적 없던 칭찬도 들어가면서 선생님들께 인정도 받고, 결국엔 10개월 여행을 잘 마쳐서 다행이었어. 8기가 끝나기 전에 내년에 1년을 더 오란 얘기 듣고 처음엔 안가겠다고 고집부리다, 나중엔 또 가겠다고 마음을 돌려서 올해 비밀병기에 오게 됐는데 난 정말 올해 1년을 더 선택한 것이 현명했던거 같아. 나는 8기를 마치고 전 과는 정말 많이 좋아지고 바뀌어서 왔지만 그때도 하고싶어 하는게 없었었어. 그래서 난 내가 금방 또 예전 생활처럼 뭘 해야할지, 하고 싶은게 뭔지 모르는 아이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을 했어. 근데 올해 이렇게 1년 더 와서 남들이 쉽게 배울수 없는 다양한 스포츠들을 배운것에 있어서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하반하에 와서 여러운동, 스포츠를 하면서 많은 자신감이 생긴거 같아. 난 들어본 적도 없던 발야구라는 게임도 작년에 처음 알았고 피구 게임의 룰도 적확히 알았고 농구, 배구 같은 스포츠도 처음 해보고 스키, 윈드서핑, 스쿠버 다이빙, 승마, 서핑 다양한 스포츠를 해보면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도 많이 느꼈고, “나도 할 수 있다”는걸 알게된거같아. 나는 전보다 할수 있는게 많아졌고, 그 만큼 또 즐길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릴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는 힘이 생긴거 같아. 무엇보다 이 자신감이 생겨서 더 많은 시도를 해볼수 있고, 그 시도로 인해 많이 배울수 있다고 생각을 해. 그래서 나는 뭘 할때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임 할거야.
<도 전>
올해 비밀병기, 첫 스포츠의 시작인 슬로바키아 ‘야스나’ 로 가서 스키를 탔는데 애들은 다들 스키 탄다고 신나 하고 있을 때 난 걱정이 하나 있었어. 난 어렸을 때 아빠랑 스키장 한번 간 것 말고는 이번이 두 번쨰 여서 눈위에서 노는데엔 전혀 감각이 없었거든. 근데 이 참에 배워보자 해서, 보드가 또 멋있다고 보드를 차고 올라갔는데 타고 내려오는게 문제 였었지... 나머지 왼쪽 발을 보드에 채우기도 전에 미끄러져 주져 앉아 버렸고, 또 내려갈땐 일어서질 못해서 쭈구러 앉은 자세로 가고, 일어서려 그러면 엉덩바아 만 수십번 찍고, 정말 그 날은 하루종일 엉덩방아만 찍어대서 앉을 때 편히 앉지도 못했었어. 그래서 그냥 관두고 스키를 배울까 했는데, 내가 이런 감정들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보드를 타기 시작했던거 같아.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옆으로 지나가는 애들을 보면서 “왜 나는 안되지? 나도 할수있을거 같은데” 했거든. 그 뒤로 호준이한테 물어가면서 배우고, 처음엔 브레이크 잡는 것부터 연습해서 그대로 서서 내려오다가 브레이크 잡고, 내려오다 브레이크 잡고, 이걸 몇 번 반복한 끝에 나중엔 ‘낙엽타기’ 단계까지 갈수 있었어. 그때 나는 이제 보드 다배웠다~고 생각했는데 타고 내려오면서 이게 뭔가 폼이 나질 않는거야. 근데 애들이 S자를 그리면서 타고 내려가는걸 보고 “아, 저래서 다들 보드가 멋있다고 하는구나” 하고 난 또 새로운 도전을 했어. 그 뒤로 계속 그 자세를 생각하거, 머릿속으로 자꾸 그림을 그려서 연습하고 연습한 끝에 S자로 타고 내려올수있었어. S자를 성공하고 나서 나도 할수있다는 자신감과, 여러번 시도한 끝에 해냈다는 그 성취감에 되게 기뻤어. 그 후론 이제 코스도 바꿔가며 실컷 탔지. 근데 나는 “처음부터 보드를 잘 탔으면 더 많은걸 즐길수 있었을텐데” 하며 한가지 아쉬워 했지만 내 도전으로 새롭게 배울수 있었고, 그 배움이 이렇게 경험으로 남을수 있었던거 같아. 그래서 나는 자꾸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하다보면 그 만큼 또 깨닫는것도 있을 것 이고, 좋은 경험이 될 수있다고 생각을 해. 항상 그 어떤걸 하기도 전에 못할거 같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
<극 복>
작년 아프리카 여행할떄 였어.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 south앞바다에서 썰물일 때 발이 땅에 닿는다고 수영도 못하는데 멀리까지 들어갔다가 나올 때 물이 막 들어와서 배로 구출된 적이 있었어. 그때 내가 배위에서 헥헥 대며느꼈던 감정은 “수영좀 미리 배워둘걸..” 하는 후회였고 지금 부터라도 수영을 좀 배워둬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그래서 그뒤로 대장님께 물 위에 떠있는법부터 해서 평영하는법을 배웠고, 이집트 다합 숙소앞 바다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었어. 계속 연습하니까 발이 땅에 닿지않아도 물위에 떠있을수 있었고, 평영으로 앞으로 나아갈수도 있었어, 나는 그때 내 한계를 넘어섰고, 또 물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할수있었어. 그 후론 물과 친해져서 물에서 노는데에 있어선 되게 재밌어 했지. 올 해는 물위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 ‘윈드서핑’을 하러 터키 페티예로 갔어. 나는 처음에 서핑이라고 해서 작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서핑을 떠올려서 “비슷한 방법으로 타는건가?” 했는데 완전 다른 방식이었어. 큰 보드 가운데에 달려있는 큰 돛을 내가 조작을 해서 바람의 영향으로 타는건데, 처음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몰라서 헤멨었지. 그리고 또 보드에 올라서서 돛을 잡는데 그 돛 무게 감을 못 잡아서 많이 빠졌었어.
빠지고, 올라가고, 빠지고를 몇 번 하니까 이제 올라서서 바람을 타고 가는것까지는 해냈는데 이 보드를 반대로 돌려서 다시 돌아오는게 문제였어. 보드 위에서 내가 서있는 위치를 직접 움직여서 바꿔야 하는데 한 발자국 움직이면 중심 못 잡아서 빠지고, 바람에 날리는 돛에 맞아서 빠지고 정말 이턴 도는것도 수십번 빠지고 나서야 감을 익히고, 수월하고 돌수있었어. 윈드서핑은 바람과의 싸움이었던거 같아. 무엇이든 어떤걸 극복 하고자 하려면 정말 포기하고싶은 그 순간이 다가왔을떄 그 순간을 견뎌내야, 한계를 극복해낼수 있다고 생각해.
<노 력>
너도 잘 알겠지만 나는 세 살 위로 누나가 한명 있는데, 나랑 누나는 서로 지내온 10대가 정말 상반돼. 누나는 학교를 되게 열심히 다녔고, 학원도 여러 개 다녔어. 항상 학교끝나면 학원, 학원끝나고 집에와서도 책상에 붙어서 계속 공부만 했어. 그리고 누나가 수능 준비를 할떈 누나 방안에선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었어. 나는 어려서부터 놀기 좋아하긴 했지만, 누나를 보면서 나도 공부하면 저렇게 놀지도 못하고 고생만 엄청 하겠지 하고 중학교 올라서부터 노는 친구들 만나 공부도 안했던거 같아. 항상 학교에서 시험볼땐 시험지에다 이름만 쓰고 자거나,omr카드에는 일자로 선을 직 긋곤 했었어, 항상 등수도 300번대 였고 나는 내가 공부를 되게 못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나는 공부면에 있어선 자신감이 낮은편 이었어. 근데 이런 나도 올해 여기와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시험도 진지하게 봤어. 이집트 다합에서 레스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서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실기시험, 필기시험 총 두 번의 시험을 봤었어. 실기시험은 침착하고, 배운대로만 하면 됐었던거여서 그리 어렵진 않았는데 이 필기 시험이 내게 좀 부담이 됐었어. 작년에 오픈워터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필기시험을 봤었는데 재시험을 두 번 보고나서야 통과를 할수있었거든. 그래서 이번엔 “ 꼭 한번에 통과 하자” 고 마음을 먹고 책을 열심히 들여다 봤어. 중요한것들, 시험문제에 나올거 같은것들 밑줄 쳐가며 책에 있는 문제들을 다 풀고 지식복습은 정말 수도없이 들여다 봤어. 심지어 밥먹을 때에도 책을 허벅지에다 올려놓고 봤었는데 그때 윤쌤이 “꼭 공부 못하는애들이 저러더라” 하시는거야. 그래서 나는 그말 듣고 “이번에 한번에 통과뿐만 아니라 높은 점수로 합격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책을 보고 또 보고 했어. 그렇게 시험을 진지하게, 문재도 정확히 읽어가며 풀었고, 대망의 기다리던 채점시간이 다가왔어. 울리시랑 마흐무드가 채점을 다하고 애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통과한 시험지들을 쭉 나눠줬는데 나랑 준휘만이 시험지를 못받은거야. 그래서 나는“아..그렇게 책을 보고 또 보고 했는데 불통과인건가...” 하며 거의 좌절 직전이었는데 알고보니까 학생들중 가장 높은 점수로 합격을 해서 가장 나중에 시험지를 나눠 준거였어. 나는 그시험지를 받고 한번에 합격을 한것도 좋은데, 마음먹은대로 90점이란 점수로 합격을 해서 정말 기뻤어. 결과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는 말이 맞는거 같더라. 어떤것에 내가 시간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성과가 나오는거 같아. 그래서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하고싶은것에는 내가 바라는 만큼의 성과를 낼려고 할거야.
<재 미>
올해 5개의 스포츠를 하면서 그 중 ‘승마’라는 스포츠를 배우기 위해 인도 마테란으로 갔는데 되게 흥미로웠어. 승마를 배우기 전에 말을 타고 달리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내 머릿속에 그말을 타고 푸른 초원을 달리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이 승마가 되게 기대가 많이 됐었어. 처음에 대장님께서 말을 탈 때 ‘앉았다 일어났다’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처음 말을 타고 나서야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어. 인도 왈라 아저씨 한분이 옆에서 같이 말을 타고 내가 탄 말을 끌어주시는데 걷다가,트로팅이라고 일반 걷는 속도보다 좀 빠르게 걷는 그런 형태로 말이 갈떄가 있어. 근데 이때 말 허리가 웨이브를 치면서 말 등이 내 엉덩이를 통통튀겨서 이말 등이 올라올떄 내가 엉덩이를 띄우고, 말등이 내려갈떄 나도 같이 내리고 해야 이제 엉덩이도 안아프고 말등에게도 무리를 안주고 탈수 있는데 나는 처음에 이게 좀 어려웠어. 나는 딱 허벅지에 힘주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거 같은데 엉덩이는 자꾸만 아프고... 어쩌다 한번 말과 타이밍이 맞아서 정말 편하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했는데 “아 이래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라고 하는구나” 하고 느꼈어. 근데 첫 날은 내엉덩이랑 말 등이랑 계속 쿵 떡 쿵 떡 방아만 찍어대서 엉덩이에 멍이 들어가지고 앉을떄마다 불편하고, 또 허벅지랑 종아리에도 멍이 들었었어. 그 뒤로 업앤다운을 제대로 해보다 하고 말을 타고 올림피아 레이스까지 뛰지않고 걸어가는데도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엽습했었어. 그러고 올라가서 말이 트로팅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말이랑 타이밍이 너무 잘맞아서 알아서 업앤다운이 됐고, 엉덩이도 안아프고 정말 편안한 느낌으로 탈 수있었어. 그 후로 선생님들꼐 자세가 좋다는 평도 받았고, 나중엔 왈라가 끌어주지 않아도 내가 혼자 말을 탈수 있었어. 근데 이 말을 조종하는게 쉬운일이 아니더라. 이 줄을 잡을때에도 나 편한대로 잡는게 아니라 이말이 불편해 하지 않게 잡아줘야 하고, 또 방향조절을 할떄 내가 가고싶은 방향으로 줄을 댕기는게 아니라, 가고싶은 방향의 줄을 내쪽으로 당겨줘야 말 입안의 제갈이 말 입꼬리를 자극 해주면서 그 쪽으로 가더라고. 처음엔 줄을 내 쪽으로 안 당기고 가고싶은 방향쪽으로만 당기면서 말이 말을 안듣는다고 발로 계속 차기만 했었는데.. 올바른 방법을 알고 나니까 말한테 미안해지기도 했어. 그 뒤론 말을 탈 때 어떻게 해야 말들이 스트레스를 안 받을까 하며 신경을 많이 많이 썼었어. 말이 뛰다 힘들어 하면 내려서 좀 걸어주고, 풀도 먹이면서 잘뛰었다고 이마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말들과 교감을 할수 있어서 느낌이 새로웠고 좋았어. 그리고 이 말을 조종하는게 어느정도 수월해지면 두발로 냅다뛰는 ‘갤럽’이라는걸 하는데 정말 이때는 체감상 느끼는 속도가 장난 아니야. 그 달리는 순간 만큼은 정말 편안해서 나는 그대로 멈춰있는 느낌인데 양 옆 배경들이 시간여행을 하는것처럼 막 바뀌어. 달릴떄 그 느낌은 내가 사극영화에서 나오는 말타고 달리는 장군이 된 느낌이었어. 말 탈 때 만큼은 자유롭다는 느낌이 들었고 되게 재밌게 즐기면서, 승마가 끝이 날땐 정말 아쉬워 할 정도로 잘 탔던거 같아. 난 올해 승마를 배우면서 재미를 봤어. 나는 스포츠든 , 공부든 뭐든간에 그 안에서 재미를 찾는다면 즐기면서 할 수있다고 생각해.
<시 간>
나는 여기 인도네시아 발리로 와서 이 문집 쓰는데 시간을 참 많이 썼어. 이 문집을 완성하는데 까지 3주 가까이 걸렸던거 같아. 작년엔 문집쓰는데 시갅도 많이 안걸렸고, 그리 어려워하지않았는데 올해는 문집쓰는데 되게 어려워 했어,, 사실 작년엔 써니쌤께서 내가 글을 써 오는것만 해도 “좋아” 하셨는데, 올해는 내가 문집 쓰는게 처음도 아니고 또 10대를 마무리하는 진지한 글이기 때문에 원고를 써서 검사를 맡으로 갈때마다 지적을 해 주셔서 OK싸인을 받을 때 까지 쓰고,쓰고 했어. 계속 다시쓰고, 다시쓰고 하니까 “이게 언제나 끝이 날ᄁᆞ..” 하며 중간에 쓰기 싫은 마음이 들어서 시간을 허투루 쓰기도 했어. 그러다 주제를 다시 잡고 바로 집중을 해서 쓰기 시작했고, 결국엔 확인을 다받고 문집을 끝낼수 있었어. 이렇게 문집에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 서핑에 시간을 많이 내지못해서 서핑을 작년만큼 많이 타지못했어. 그래도 요 몇 번 타는동안 만큼은 서핑에 열심히 하자 하고 숏보드를 잡아서 탔어. 숏보드가 확실히 롱보드 보다 어렵기 하더라고. 보드에 업드려서 패들링하는데 중심 못잡고 휘청대며 빠지고, 일어서지도 못해서 보드위에 무릎꿇고 가거나, 앉아서 가기도했어. 정말 1시간 내리 수 도 없이 물에 빠지고 파도에 휘말리거고 했던거 같아. 그래도 계속해서 시도를 한 끝에 밀어설수 있었어. 하지만 나는 서핑에서도 올해는 숏보드를 타서 작년에 비해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됐지만 이 서핑도 더 탈시간이 많았다면 많은걸 더 시도해보고, 보드위에서 단지 일어서는 것 뿐만 아니라 더 멋있게 탈수있었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어. 그때는 문집에 신경을 쓰느라 몰랐지만 이렇게 다쓰고 나서 보니, 시간은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수없으니까, 그때 그때 마다 시간을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시간을 잘 쓰지 못하면 이렇게 아쉬움만 남게되고, 또 손해를 보는 사람은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이기 때문이야. 한번 느꼈으니 앞으로의 내게 주어진 시간들은 잘 쓰려고 노력할 것이고 시간을 자써서 내가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수 있도록 할거야.
P.S.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하며 편지글 형식으로 써 봤는데, 나 스스로 에게 쓰는거여서 그런지 편하고, 더 솔직하게 써 볼수있었어. 쓰면서 스스로에게 새로운 다짐들을 했고, 나는 앞으로 내가 다짐한대로 잘 준비하며, 살아갈거야.
<내가 꿈꾸는 세상>
앞으로의 미래도 보이지 않았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고, 하고싶은것도 없었던 내게 ‘하반하 세계여행학교“ 라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서 정말 많이 바뀐 나를 봤다. 처음에 하반하에 있을땐 나는 절대 바뀌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환경속에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틀에 박혀 있었던 생각도 바뀌었고 또 여려활동들을 하면서 그 간 내가 진정으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꼈다. 그 감정들을 느끼며 생각하고, 고민할수있었던 시간들이 많았고 새롭게 깨달았으며,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에 생각나는건 바로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바뀔수 있었을까, 또 내가 10대를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 할수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만약 이 하반하에 오지 않겠다고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하반하에 오기전 까지만 해도 나는 학교도 다니지 않고 알바만 하며, 별 생각 없이 대충 살았었다. 그 당시 내가 있었던 환경은 지금과 많이 달랐고, 지금처럼 많은 것을 보고 느낄수 없었기 때문에 2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나는 하고싶은 것이 생겼고, 그로인해 앞서 말 한거처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다. 또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봤다. 먼저 난 한국에 있ㅇ면서 8월달까지 고졸 검정고시를 95점 이상을 목표로 잡고 열심히 공부를 할 것이다. 지금껏 공부를 안해와서 준비하는동안 많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하반하에서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고, 정산에서 영어독해,영어단어들 필수과목들을 놓치지않았던 그 마음으로 열심히 해낼 것이다. 그리고 고졸 졸업장을 ᄄᆞ고 나서 미용 전문대 2년을 다니고, 졸업을 하자마자 바로 군대를 갈 것이다. 전역해서는 헤어샵에 들어가 누군가
밑에서 2년정도 일을하고, 27살쯤엔 다시 하반하에 와서 10개월 간 여행을 하며 그 영상 속 미용사처럼 길거리 걸인들을 멋지게 변화시켜주고 싶고, 많은 경험들을 쌓아 한국에 가서 서른살 쯤엔 내 개인 헤어샵을 열어서 나 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 같이 일을 하고싶다. 그 사람들과 같이 또 해외로 나가서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며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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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써니쌤이 늘 준우가 제2의 우진이가 될거라고 하셨는데 말씀만들어고 너무 맘이 놓였는데 보고서 보니 준우가 1년동안 우진군을 보고 있었다면 본인의 길을 찾아가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됐을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10대의 끝자락을 가장 멋있고 아름답게 보낸 우진군의 노고에 경하를 보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준비를 마친 씩씩하고 멋진 우진군의 미래가 부럽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도전에 무한한 성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우진군 화이팅!!!
우진아 엄마가 흘린 눈물이 하도 많아 이젠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네 글을 몇 줄 읽지도 못하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몇번을 멈추었는지 모르겠어~ 네 글을 끝까지 다 읽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아직 다른 아이들 글을 읽어보지도 못했네~심장의 떨림 때문에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구나.
우진아 정말 고맙다~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주는건 엄마가 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성장하는건 오로지 네 몫이기 때문이야~ 그 몫을 잘 해내주어서 고맙고 자랑스러워~ 엄만 네가 잘 해낼 줄 알았어~ 우진이의 성장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 잘 다져진 내면의 힘을 키워서 너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기를 응원할께~
너의 20대의 든든한 조력자로 적극 지지하고 도울것을 약속할께~ 너의 성장에 큰 힘이 되어 준 하반하를 평생 잊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여 하반하의 명성에 빛을 더할수 있는 우진이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
하고싶은 것이 생기고, 꿈을 꿀 수 있게 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하며, 엄마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고백해줘서 넘 고맙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
남은 시간 건강하게 잘 보내고 귀국날 공항에서 힘껏 안아보자~💖
우진이의 진심이 가득 담긴 글을 보고 코끝이 찡~~ 하다가 우진어머님의 댓글을 보고 눈물이 쏟아진다....우진이도 대견하고 그동안 아들의 방황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밖에 할수없었던 엄마의 마음이 어떤건지 알기에....선물처럼 우진이가 이렇게 성장해주니 부모님에게 더이상의 기쁨은 없으실거같아.
멋지다!!! 우리 비병 회장닝~~
그냥 꼭 안아주고 싶다 우진이..
10대마무리보고서 읽으면서 눈물이 펑펑..ㅠ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우진아~
이글을 읽는 부모님은 더더더 감사의 눈물을 흘리시겠지...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한 10대를 보낸 우진이 수고했고 20대도 잘 만들어가길 바라고 너의 찬란한 20대를 기대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