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거울을 보니 눈이 이상한 것 같았다. 왠지 좌우의 눈이 다른 느낌이었다. 며칠간 연달아 거울을 보며 눈동자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다. 좌우가 다르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또렷한 것 같기도 하고 더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언뜻 예전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속에 나선형 줄무늬가 있던 색유리 구슬이 연상되었다. 기억 속의 구슬은 예뻤는데 거울 속 눈동자에선 까닭 모를 두려움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내 오른쪽 눈이 이상하지 않냐고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다시 물으니 이번엔 자세히 보는 듯했지만, 역시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렇게 보인다는 거였다. 사실이었겠지만 소심한 나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는 말처럼 들렸다.
가까운 안과에 갔다. 의사는 내 걱정을 듣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백내장 기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백내장이 좀 천천히 진행하도록 하는 처방전을 써주겠다고 했다. 나는 처방전을 들고 간 약국에서도 말했다. 젊은 약사는 내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자기가 보기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하며,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괜찮지 않겠느냐고 위로했다.
추석 성묫길에 안경점을 하는 조카에게 또 내 눈에 관한 고민을 얘기했다. 내 눈을 관찰한 조카도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며, 자기가 검안사로서 수련을 쌓았던 큰 안과를 소개해 주었다.
그 병원 의사의 소견도 앞 의사와 같았다. 다른 점은 일주일마다 백내장의 진행상태를 관찰하여 수술할 날짜를 잡자는 거였다. 나는 의사와 면담할 때마다 눈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 한밤중 어둠 속에서 양 눈을 번갈아 가리고 천장의 밝기를 가늠한 얘기, 어둠 속에서 갑자기 캄캄한 절벽에 부딪힌 듯한 공포를 얘기하기도 했다. 의사는 백내장의 진행을 지켜보는 이외의 말은 없었다.
몇 주일인가 지나자 백내장 수술을 해도 될 때가 되었다고 했다. 먼저 왼쪽 눈 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눈의 수술 일자를 잡으려던 의사가 내 눈의 이상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때야 전문병원에 가서 갑상선기능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갑상선(샘)기능검사. 문득 중학교 생물 교과서의, 긴 목에 왕방울 같은 두 눈이 무섭던 바세도우 씨 병 환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이 이상하다고, 교과서에 등재될 만큼 비중이 높은 갑상선질환 쪽으로는 단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고, 안과에만 얽매였던 나의 맹목에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 병명은 갑상샘기능항진증, 그레이브스 병이었다. CT 촬영 사진에 동공을 잡고 있는 몇 가닥의 근육이,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두꺼웠다. 의사는 오른쪽이 비정상이라고 설명했다. 거울 속에서 처음 이상을 느꼈을 때 바로 치료를 받았더라면 근육이 이렇게 비정상으로 비대해지지 않았을 텐데. 내가 얼마나 허탈해 보였는지 약사가 처방된 약의 용량으로 보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그레이브스 병은 1835년 이 병을 처음으로 보고한 영국인 의사 로버트 제임스 그레이브스의 이름에서 따온 병명이다. 바세도우씨 병, 즉 바제도 병은 1840년 <안구 내 조직 비대에 대한 안구돌출증>이란 논문을 발표한 독일 의학자 카롤 아돌프 폰 바제도의 이름에서 명명되었다. 다 갑상샘기능항진증의 이름이다. 이 병은 여성이 많이 걸리고, 모든 환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유전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어렴풋하지만 나는 갑상샘기능항진증의 다른 증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무렵 나는 미역을 굉장히 많이 먹었다. 미역국을 자주 끓였고, 국 속에 미역을 과다하게 넣었다. 평소에 미역국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미역이 다이어트 식품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갑상샘기능항진증에 걸린 줄도 모르고 한 행동이었다. 과다한 미역 섭취는 내 병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요오드 성분이 함유된 해조류는 갑상선 환자는 삼가야 할 식품이다. 언제나 과유불급이다.
자가면역질환自家免疫疾患. 자가, 남의 집이 아닌 내 집. 면역, ➀ 일정한 돌림병에 걸리지 않게 되어 있는 몸의 상태, ➁ 호되거나 심한 자극을 받아도 크게 예민하게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무디어진 심리 상태. 얼마나 기분 좋고 든든한 낱말들인가. 뜻이 좋은 낱말이 중첩된 뒤에 ‘질환’이 붙으니 과문한 나는 낯설고 뜻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가면역질환,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외부에서 병균이 침입하지도 않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착각을 하여, 자기의 몸을 공격하는 질병이라고 한다. 호시탐탐 적의 침입을 대비하고 있다가 유사시에 죽을 각오로 제 몸을 지켜야 할 항체가 도리어 자기 자신을 공격하다니. 상처의 고름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병균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백혈구의 잔해라고 하지 않던가.
행복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T림프구(백혈구의 일종)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불행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T림프구가 변이되어 거꾸로 자기를 공격하여 염증과 질병을 유발한다고 한다. 마음을 물처럼 맑고 평평하게 지녀 T림프구가 착각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일 것이다. 사백여 년 전 동의보감의 허준 선생께서도 ‘마음이 산란하면 병이 생기고, 마음이 안정되면 병이 저절로 좋아진다.’라고 설파하셨다. 모든 병의 원인은 대부분 마음에서 비롯되고, 긍정적인 마음은 최상의 항체이고 처방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