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한 ‘지방자치의 날’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오늘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2013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했으니 올해가 7번째다. 10월29일로 정한 것은 지방자치 역사에서 1987년 10월29일이 갖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그날은 헌법 개정일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규율하고 있는 ‘87년 헌법’이 탄생한 날이다. 6월 항쟁의 결과였고 대통령 직선제가 개헌의 핵심이었지만 오랜 염원이었던 지방자치도 함께 부활했다.
1991년, 지방의원 선거가 먼저 시작되었다. 1995년 6월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도 함께 실시되었다. 제 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였다. 1961년 5·16 쿠데타로 폐지된 뒤 처음이었다. 1960년에 마지막 지방선거가 있었으니 31년과 35년만이었다.
5·16 쿠데타로 사라진 것은 지방자치뿐만이 아니었다. 반공이 국시로 채택되었고 민주주의는 전면적으로 위축되었다. 1972년의 유신은 아예 민주주의를 부정했다. 대통령 직선제가 폐지되었고, 양심과 언론의 자유는 실종됐다. 야당 탄압은 물론 불법연행과 고문과 간첩조작이 횡행했다. 유신헌법은 부칙에 ‘지방의회의 구성을 조국의 통일 시까지 유예한다’고 못박았다. 지방자치의 완전 실종으로 민주주의는 뿌리채 뽑히고 말았다.
1991년과 1995년,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뜨거웠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지방자치의 날’을 기념한다. 7년째 기려온 법정기념일이지만 뭔가 허전하고 착잡하기 그지없다. 여전히 우리 지방자치는 무늬만이고 속빈 강정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몇 가지만 꼽아본다.
첫째는 강고한 중앙권력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국회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온갖 특혜와 특권을 누리면서, 작은 권력과 권한조차도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나누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지역 기반을 위한 조직책 정도로 여긴다. 주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3월, 대통령이 발의한 분권개헌안도 국회에서 가로막혔다. 정부가 그 대안으로 마련해 발의한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국회가 처리할지는 알 수 없다.
둘째, 과도한 수도권 집중의 문제다. 돈, 인재, 인프라가 온통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은 과밀로, 비수도권은 공동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앙의 정치인들은 한정된 자원과 기업을 비수도권 지역으로 분산하는 일에도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 9월에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겼으니 그 일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셋째, 지방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자질 문제다. ‘욕설로 난장판 된 구미시 의회’, 지난 8월14일자 신문의 기사 제목이었다. 지난 해 10월에는 상주시 의원 3명이 공사계약 특혜, 겸직금지 위반으로 징계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예천군 의원들이 미국 연수중에 가이드 폭행, 접대부 술집 알선 요구 등으로 국제망신까지 떨었다. 주민 복지보다 사익에 더 관심많은 이들이 지방 의원으로 뽑혀 사고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지역별로 경쟁 없는 일당 체제인 것도 지역 정치인의 부패와 일탈을 부추겼다.
넷째, 자질이 부족한 인사가 지방의원과 단체장으로 선출되는 데는 지역민의 책임도 작지 않다. 무관심과 연고주의 투표 관행이 대표적이다. 주민이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방자치는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지역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다섯째, 지역사회 내부의 취약한 혁신역량도 숙제다. 지역의 기업과 대학과 민간단체 등, 혁신 주체들 간 협력체계가 중요한데 대부분의 지역사회가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혁신역량을 키우지 않고 중앙권력에 줄 대거나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에 목매는 관행으로는 주민의 삶의 질 제고를 가져올 수 없다.
‘지방자치의 날’이다. 그런데 공허하고 허전하다. 지방자치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국회가 정쟁에만 빠져 있지 말고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안부터 통과시켜 그 계기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첫댓글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지방자치의 역사를 다시 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강력한 중앙권력과, 과도한 수도권 집중 문제, 지방의원들과 단체장의 자질 문제 등의 지방자치의 한계점과 문제점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기사에서 말하듯이 아직은 지방자치가 부족한 점이 많고 참여도도 낮지만 하루빨리 많은 주민의 참여와 지방자치의 제도와 올바른 권한 분배의 개선으로 지방자치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