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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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1:3, 믿음의 도를 위하여 죄와 힘써 싸우라 2024.2.25.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러니 교회와 성도들은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그것도 “힘써 싸우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것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인하여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입니다. 성도들은 믿음(복음, 진리)를 위하여 아주 격렬하게, 힘써 싸워야 합니다. 교회 내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의 싸움입니다.
유 1: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힘써 싸우다’(에파고니조마이)는 ‘투쟁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대신하여 격렬하고 고된 노력을 기울여 싸우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무엇과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성도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와 싸워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하게 바꾸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성도들이 힘써 싸워야 할 대상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과 그 죄입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다 성도라고 생각하는데, 유다는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왜 가만히 들어왔습니까? 외부의 사람이든 여러분 내면의 죄든 가만히, 또는 몰래 들어와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사람이면 교회를 혼란케 하고, 내면의 죄이면 여러분을 방탕한 죄를 짓게 만들어서 심판을 받게 만듭니다.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가만히’(파레이스두오)는 ‘가만히 들어오다, 몰래 침투하다’는 뜻으로, ‘몰래 한 지역으로 다가가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왜 몰래 들어왔습니까? 처음에 예수를 믿었을 때와는 달리, 지금 그 속 마음은 숨긴채 죄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는”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경건하지 못하다’(아세베스)는 ‘경건하지 못하게, 불경스럽게’란 뜻으로, ‘적절한 존경과 실천이, 특히 하나님에 대해서 결여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존경, 곧 예배를 게을리 하는 죄입니다. 예배를 드리기는 하나 적절한 존경이 없는 죄입니다. 이런 죄와 성도들은 힘써 싸워야 합니다.
‘방탕한 것’(아셀게이아)는 ‘방종, 부도덕함’입니다. 십자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야 합니다.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방탕하고 부도덕한 생활을 하는 죄와 힘써 싸워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교회의 전통이나 도덕적인 억제를 받아들여여야 합니다. 성도들은 자기 육체적인 욕구를 따라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방탕한 생활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들’이라고 했으니, 구원은커녕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도들은 은혜생활해야 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방탕한 죄와 힘써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옛적부터 받기로 한 상급을. 구원을,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권위를 업신여기고 비방하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며칠 전,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4강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감독이 제대로 감독직을 감당하지 않았고, 한국에 머문 기간이 채 2달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표팀 감독직을 감독했으니 얼마나 국가대표팀이 허술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4강전을 앞두고 저녁 먹는 자리에서 축구 대표팀끼리 싸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축구경기 내내 서로 간에 불신임하는 가운데, 공을 주려 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미 경기는 패한 경기여서 결국은 2:0으로 요르단에 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축구 대표팀 문제가 여론의 매도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믿음과 교회 안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먼저는 홀로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려는 죄가 버젓이 교회 안에서나 여러분의 내면에서 일어나기 쉽습니다. 이런 죄와 힘써 싸워야 합니다.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아르네오마이)는 ‘부인하다, 거부하다, 거절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실이 아니라고 선언하다, 어떤 것이나 행동에 대해서 내키지 않거나 부동의함을 표시하다’는 뜻으로, 예수님이 홀로 유일한 주님이시다는 사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세주(메시야)라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거절하는 것입니다. 무슨 죄가 그렇게 합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죄짓는 것으로 사용하는 죄가 그렇게 만듭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여러분이 방탕한 죄를 저지를 때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오 구원자이심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예수님의 주 되신 권위를 업신여기고, 또 그의 영광을 비방하는 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유 1: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업신여기며’(아테테오)는 ‘거절하다, 폐하다, 무효선언하다, 거부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도전하고 또 무효선언함으로써 거절하는 그런 행위들입니다. 주께서 주신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런 주께서 세우신 권위를 업신여겨 거부하고 비방하는 좌와 힘써 싸워야 합니다.
셋째, 심판받지 않도록 다시 생각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젖동생 유다는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죄에 빠져서 심판을 받게 되었는지 실례를 들기 시작합니다. 구체적으로 3가지 예를 듭니다.
첫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멸망받은 자들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아니함으로 심판..
유 1: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둘째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도전하다 심판받은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도, 천사들까지도 심판하셨습니다.
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마지막으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불경건한 죄에 빠지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유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믿는 성도들은 믿지 아니하거나, 자기 지위를 벗어나 하나님께 도전하거나,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과 힘써 싸워야 천국에 들어가 상급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