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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률이상 제17권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6. 성문들 ⑤
1) 성문의 무학승 ⑤
(1) 승대(僧大)는 장가들지 않고 출가하여 산 속 못가[山澤]에서 도둑의 해
를 받으면서 도를 얻었다
사위국에 여(厲)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집이 큰 부자였다. 늙도록 후사(後嗣)가 없었으므로 일월천신(日月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며 온갖 방법을 안 해 본 것이 없었지만 끝내 아이를 얻지 못하였기에 생각하였다.
‘기도를 하고 빌어 봤자 아무 소용도 없구나.’
실망한 나머지 보물과 재산을 흥청망청 다 써 없애 버리고 사업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니 병이란 병은 연이어 걸리고 온갖 재앙과 손해 보는 일만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계집종이나 사내종들도 다 죽어 버리고 온갖 가축들도 새끼를 불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사스런 귀신에게 홀려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난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왜 이렇게 재앙만 겹쳐서 생겨나는 것일까?’
이런 말이나 하고 있으니 꼭 눈먼 봉사가 독을 삼키고도 좋은 약을 먹은 줄로만 알고서 병이 낫기를 바라보지만 마침내 그 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이미 생명 있는 것들을 죽여 제사를 지냈으니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늘의 복을 바라고 있으니 이 어찌 미혹된 것이 아니겠느냐? 세상에는 부처님 도를 이룬 지조 높은 성인이 계시는데, 이렇게 신선의 도를 배워 얻은 자를 응진이라고 부른다. 응진은 깨끗하기가 유리 같아서 오직 정진에만 생각을 두고 그것만을 바라볼 뿐이다. 이 도를 받드는 자는 오직 고요함만을 지켜서 욕심도 없고 구함도 없이 그저 이것만을 낙으로 삼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세에서는 편안함을 얻고 죽어서는 하늘에 가서 태어나게 될 것이니, 나는 언제나 부처님과 3존(尊)을 공양하리라.”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니, 그 부인이 아들을 낳았으므로 이름을 불대(佛大)라고 지었다. 그 후에 다시 아들을 낳았기에 이름을 승대(僧大)라고 지었다. 여는 두 아들을 가르칠 때에 성인의 도로써 보여 주었다.
승대는 품성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워 만물을 사랑하였으며 부처님의 법과 계율을 받들면서 사문을 가까이하고 청정하며 만족할 줄 알았으므로 부모가 매우 사랑하였다.
여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큰아들을 불러 놓고 울면서 이렇게 훈계하였다.
“무릇 태어나면 죽는 것이니, 계율을 지킨 사람은 편안할 것이고, 계율을 범한 사람은 위태롭게 될 것이다. 승대는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청백하다. 이제 너에게 맡긴다.”
이 말을 마치자 바로 죽었다.
승대는 그 후로 자주 그 형에게 “사문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 나라의 법에 “아내를 얻고 싶다”는 말을 “사문이 되고 싶다”는 말로 대신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불대는 그렇게 알고 승대를 장가 보내려고 좋은 집안의 규수를 찾아내었다. 그 규수의 이름은 쾌견(快見)이라 했으며, 아주 단정하고 아름답기가 견줄 데가 없었다.
신부가 시집에 들어와서 당(堂)에 오르자 형은 손님을 모았으니 9족(族)이 모두 기뻐하였다. 형은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아우에게 말하였다.
“오늘 같이 기쁜 날을 맞았는데도 아직도 사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승대는 대답하였다.
“그것이 실로 저의 오랜 소원입니다.”
형은 장난으로 생각하고 말하였다.
“네 맘대로 하거라.”
그러자 아우는 기쁜 마음으로 형에게 절을 하고는 이내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 한 사문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이 젊고 잘생긴 이가 혼자 나무 아래 앉아 있었으므로 아우는 물었다.
“현자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사문이 되셨습니까?”
그 사람은 이미 응진(應眞)의 도를 얻은 사람이었으므로 과거와 미래의 수 없는 겁 동안의 일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승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음란한 짓을 좋아하면 마치 횃불을 가지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아서 그 불꽃이 점차 물러나므로 횃불을 버리지 않으면 그 손을 태우게 되느니라. 마치 까마귀가 입에 문 고기를 매가 쫓아 빼앗는 것과 같아서 까마귀가 고기를 버리지 않으면 재앙이 그의 몸에 미치게 되느니라.’
나는 그 말씀 때문에 사문이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꿀이 묻은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어린아이가 단 것을 탐내어 혀로 핥으면 혀를 잘리는 우환이 생기게 되나니,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은 진실로 그 어리석은 마음을 즐겨서 뒷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제 몸을 태우는 해를 받습니다.
마치 부나비가 불빛을 탐내어 등불에 뛰어들면 몸이 다 타게 될 것이니, 장차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음욕에 미혹된 이는 선악을 가리지 못하고 어진 사람을 멀리하며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하여 날로 어둠 속으로 흘러드나니, 나라를 망치고 많은 사람을 멸망으로 몰다가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갑니다. 악이 달라붙어 죄만 짓는다면 후회한들 어떻게 돌이켜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비유가 많으나 다 싣지 아니한다.
사문이 이렇게 여러 가지로 비유하자, 승대는 그 발 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원컨대 혼탁한 이 세상을 떠나서 청정한 길을 가며 사문의 계율을 받들어서 영화와 복락을 누리게 하옵소서.”
스승은 말하였다.
“잠시 기다리라.”
승대는 말하였다.
“산에 들어가 참선을 하고 싶습니다.”
스승은 말하였다.
“산 속 못가에 사는 사람은 별자리를 잘 배워 두어야 한다. 또 기후와 때를 훤하게 알아야 하고, 언제나 물이나 불, 미숫가루와 꿀 등을 저축하여 놓아야 한다. 왜냐 하면 도둑들이 찾는 물건이 물 아니면 불이거나 또는 미숫가루나 꿀 따위이니, 밤중에서 새벽에 이르는 사이에 와서 요구하면 그들의 뜻대로 내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도둑이 바라는 것을 다 주어야지, 만약 그들의 뜻을 어겼다 하면 도둑은 그대로 사람을 죽이고 만단다.”
승대는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자한 가르침을 공경히 받들고서 물러나 곧장 산으로 들어갔다.
그 형 불대는 생각하였다.
“내 아우가 사문이 되었으니 이제 그 아내와는 살 수 없겠구나.”
쾌견의 용모가 단정하였으므로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일어나 쾌견을 쫓아가 거문고를 가져다 뜯으며 음란한 곡(曲)을 노래하였다.
반짝반짝 빛난 심황[鬱金]이 들판에 났는데
때를 넘겨 꽃 못 따면 버리고 말지.
아름답고 풍만하여 꽃 빛도 새로운데
나와 더불어 함께 기쁨을 누려 보세.
쾌견은 불대의 음란한 욕심을 알아차리고 노래로 대답하였다.
높고 뛰어난 우리의 스승은
천상과 인간에서 높으신 분이요
그 분의 제자는 맑고 깨끗하여
이름을 가로되 사문이라 합니다.
진리를 관(觀)하면 성인이 되고
음란한 짓을 하면 짐승이 되거니
나는 엄숙한 계율을 받을지라.
두 남편을 섬기지 아니하며
끝까지 음란하게는 살지 않으리니
차라리 죽음으로 나아가리라.
불대는 애틋한 곡조에 가엾고 서글픈 가사로 노래를 불렀다.
예전부터 품어 온 연정 더욱 깊어져
일부러 좋은 중매 부탁하였소.
이름을 알리고 점쟁이에게 갔더니
좋은 때라 점괘가 나왔다오.
슬프고도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대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제 그대의 얼굴을 보고 나니
나의 마음 기쁘기 짝이 없소.
이제야말로 합환(合歡)하지 않고서
어찌 공연히 세월을 보내겠소.
이런 맹세는 정해져 있는 것이거늘
숙녀(淑女)께선 어찌하여 의심하시오.
쾌견은 당황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예의를 만드셨으니
높고 낮음에 서열이 있습니다.
아우의 아내는 자식 뻘이 되고
남편의 형님은 아버지뻘이 됩니다.
우리 일가붙이들이 계율을 받들어야
집안이 갈수록 융성하게 일어납니다.
진실하면 성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지만
음란한 짓을 하면 바로 벌레나 쥐가 됩니다.
안타깝습니다, 아주버님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형의 마음은 음욕 때문에 헷갈려 있었으므로, 쾌견은 그의 뜻을 아주 바꿀 수 없음을 알고서 또 노래로 말하였다.
대저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두 가지 일은 멀리해야 하나니
그것은 불효와 음란입니다.
그런 행동은 부처님 계율을 어기는 것이니
하늘이거나 어진 이께서
그의 재앙을 기록하여 둔답니다.
불대는 노래하였다.
그대의 얼굴이 아름답게 빛나니
천하 미녀 중에 이런 얼굴 어디 있겠소.
나의 마음 너무나 기쁘니
높은 산보다도 더합니다.
쾌견은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긋난 광란의 짓을 하려 하는데, 기가 꺾이면 큰 낭패를 보겠구나. 몸 속의 오로(惡露)와 부정한 것을 찾아서 말하리라. 그래야만 물러나겠구나.’
쾌견은 거듭 말하였다.
“아주버님은 저의 몸을 탐내는데, 내 몸 어디가 좋다는 것입니까? 머리에는 아홉 개의 뼈가 있어서 합하여 해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여러 부정한 것을 말하자, 불대는 생각하였다.
‘네가 그렇게 남편을 생각하고 있으니 어찌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내가 아우를 죽여 버리면 그 때는 따르게 될 것이다.’
바로 가서 도둑이 될 사람 서너 명을 모집하여 그 앞에 가서 말하였다.
“우리 집에서 기르던 6적(籍)의 종놈을 아는가. 도망가서 사문이 되었는데 지금 산중에 숨어 있다.”
도둑이 말하였다.
“알고 있습니다.”
불대는 곧 금은을 내어 그에게 주었다.
“너희는 그 종놈을 죽여서 한시 빨리 그의 머리와 몸에 걸쳤던 옷가지와 법복, 그리고 발에 신고 있던 신까지 모두 가지고 돌아오도록 하라. 그러면 내가 다시 그대들에게 금과 은을 더 주겠다.”
도둑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우리가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리다.”
이내 길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그의 아우에게 가서는 불렀다.
“사문아, 너는 빨리 나오너라.”
그의 아우는 나와서 말하였다.
“여러분, 무엇을 구하십니까? 나에게는 물과 불, 그리고 미숫가루와 꿀 등의 맛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밤도 많이 깊었습니다.”
도둑이 말하였다.
“물과 불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미숫가루와 꿀을 찾는 것도 아니다. 또 너에게 시간을 묻지도 않았다. 우리는 단지 너의 머리를 베어 들고 떠나려 하는 것뿐이다.”
그 아우는 듣고 이내 크게 두려워하며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장자나 제후(諸侯)의 아들이 아닙니다. 세속을 버리고 도를 닦는 사람이라 세상과는 다툼도 없습니다. 도를 배운 지 오래지 않아서 아직 수다원[溝港]도 얻지 못했는데, 나를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도둑이 말하였다.
“어서 와서 네 머리나 바쳐라.”
그 아우는 도둑에게 말하였다.
“보물을 얻고자 하시면 내가 형에게 편지를 써서 그대들에게 보물을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도둑이 말하였다.
“바로 그 자네 형님이 우리를 시켜 지금 자네를 죽이도록 한 것일세.”
아우는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이것은 다 아내 때문이로다. 스승께서 먼저 나를 경계하시되 ‘사람이 음란하게 사는 것은 마치 횃불을 가지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아서, 만약 횃불을 버리지 않는다면 불은 장차 자신의 손을 태우게 된다’고 하셨다. 날이 어둡구나.”
그리고는 바로 스승의 경계대로 하려 하면서 슬피 울며 도둑에게 1년 만 살려 주기를 빌었다. 그러나 도둑은 말하였다.
“우리는 빨리 머리를 가지고 떠나야 한다.”
그 아우는 거듭 말하였다.
“제발 바로 죽이지는 마시오. 먼저 나의 한 넓적다리를 끊어서 나의 앞에 두시지요.”
그러자 도둑은 넓적다리 한쪽을 끊어서 그의 앞에 놓았다.
아우가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천인이 그 곁에 와서 말하였다.
“부디 두려워하지 마시오. 굳게 당신의 마음을 지키십시오. 당신이 전세에 축생 안에 있을 적에 사람들이 당신의 고기를 팔기 위하여 끊어서 저울질했던 것이 한 세상에서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옥과 아귀를 모두 차례로 겪으며 고통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니, 이런 고통이 지금만이 아닌 것입니다.”
승대는 천인에게 말하였다.
“부디 나의 스승에게 이 일을 알려 주십시오.”
천인은 이내 스승에게 말하였다.
“도둑이 그를 죽이려 합니다. 당신의 제자는 사람들에게 슬피 울면서 애걸하며 스승을 만나 뵙고자 합니다.”
스승은 이내 날아가서 그를 위하여 설법하였다.
“하늘과 땅과 수미산도 오히려 무너지고 바다도 바짝 말랐다 하면 고작 7일이면 무너지게 된다. 천하에 바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유람(惟藍)인데, 유람이 한 번 일어나면 산과 산이 서로 부닥뜨려 이 바람조차 소멸되느니라. 하물며 너의 조그마한 몸이야 무엇 헤아릴 거리나 되겠느냐? 염불만 하여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되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만나면 이별이 있으며, 영화스런 지위는 보존하기 어렵나니, 몸 또한 그와 같으니라’고 하셨느니라.”
승대는 이내 수다원의 도[溝港道]를 얻었다.
그리고 다시 한쪽의 넓적다리가 끊어지자 거듭 스승의 계율을 생각하며 사다함의 도[瀕來道]를 얻었으며, 도둑이 왼손을 끊자 다시 스승의 계율을 생각하여 아나함의 도[不還道]를 얻었다. 또 도둑이 오른손을 끊으니 다시 스승의 계율을 생각하고 아라한의 도[應眞道]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3악도(惡道)가 두렵지 않게 되었고, 나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다시는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 승대는 말하였다.
“나무껍질을 가져오라.”
바로 나무껍질을 벗겨서 그에게 주었더니, 승대는 가지로 붓을 삼아 스스로 몸의 피를 묻혀 나무껍질에 글을 썼다.
“형님, 지내시는 기거(起居)가 시절 따라 편안하십니까? 두 분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에 나를 형에게 맡겼는데, 형은 그 명을 받들지 않고 어버이의 가르침을 어기었습니다. 또 여색(女色) 때문에 골육(骨肉)끼리 서로 해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양친의 인자한 가르침을 어겼으니 불효가 되었고, 사람 목숨을 죽였으니 불인(不仁)이 되었습니다. 한 축생을 죽여도 그 죄는 적지 않거늘 하물며 아라한[應眞]을 죽여 5역(逆)을 중지하지 아니함이겠습니까? 이제 나는 고요함 속에 잘 노닐게 되어 이로부터는 오래 이별하게 되었으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진실한 도를 숭앙하여 주십시오.”
편지를 끝내자 목을 길게 두 자나 펴면서 도둑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의 머리를 자르라. 마치 진흙 머리를 자르는 것 같으리라. 나는 너희들이 지옥에 떨어질까 그것이 두렵구나.”
도둑은 앞으로 나와서 승대의 머리를 자르고 몸에 입었던 옷과 지팡이, 신과 발우 따위를 가져다 형에게 건네주었다. 형은 금과 은으로써 도둑들에게 크게 사례하였다.
형은 아우의 머리를 가져다 거짓 몸뚱이를 만들어 놓은 위에다 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옷을 덮어 두고는 지팡이와 발우와 신들을 모두 그의 옆에 놓은 다음 쾌견에게 가서 말하였다.
“당신 남편이 돌아왔으니, 문안을 드리시오.”
쾌견은 크게 기뻐하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남편이 눈을 내리깔고 앉아 도를 생각하는 것같이 보였으므로 아내는 감히 부르지도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두루 장만하였다.
“저렇게 도를 생각하고 계시니 나중에 깨어나면 대접하리라.”
기다리다가 한낮이 되었는데도 남편이 영 깨어나지 않는지라, 아내는 그 앞에 나아가 말을 했다.
“해가 지금 벌써 한낮인데 이러다 때를 놓칠까 걱정입니다.”
여전히 그가 대답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겨 옷을 당겨 보았더니 머리가 벗겨지면서 몸이 모두 분산되었으므로 아내는 땅에 주저앉으면서 부르짖었다.
“당신은 끝내 나 때문에 도둑에게 죽음을 당하셨군요.”
애통하고 분해하며 하늘에 호소하다가 간장과 심장이 찢어지면서 피가 입으로부터 솟아나오며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쾌견의 계행이 청백하여 더럽히기 어려움이 허공과 같았고, 마음을 세움이 거룩하고 법다워서 움직이기 어려움이 땅과 같았으며, 참되고 청정한 행이 높아서 미치기 어려움이 하늘과 같았다. 그가 아직 죽기 전에 여러 천인들은 탄식하면서 그의 혼령을 맞아 도리천(忉利天)에 가게 하였다. 잠깐 동안을 인내함으로 인하여 천상의 다하기 어려운 영화를 누리게 된 것이다.
형이 선실(禪室)에 들어가 아우의 머리와 몸이 분산되고 그의 아내가 피를 토하고 죽어 있는 것을 보고는 부르짖었다.
“허허, 내가 하늘을 거역하며 잔혹한 일을 한 결과가 결국 이에 이르렀구나.”
이내 도둑에게 가서 물었다.
“아우가 죽을 때 무슨 유언이라도 있었더냐?”
도둑이 아우의 편지를 그에게 보여 주자, 타이르는 그 말에 슬퍼하고 탄식하며 5장(臟)이 막히고 슬픔에 눈물 콧물이 섞였다.
“나는 어버이 돌아가실 적의 인자한 가르침을 어기어 골육끼리 서로 해쳤고, 또 아라한을 죽였구나.”
심히 울다가 죽었으며 죽자마자 지옥으로 들어갔다. 왕과 신하와 백성들은 슬피 울지 않는 이가 없었고, 맑은 덕을 찬탄하면서 그 아우를 장사지내어 네 개의 손수레[四輦]에 탑을 세웠다. 하늘과 용과 귀신들이 공중에 꽉 메워 꽃을 흩뿌리고 향을 지피면서 목메어 울었다. 그리고 쾌견을 따로 장사지냈는데 나라의 사람들은 슬피 통곡하였으며, 그의 덕을 노래로 찬탄하였다.『불대승대경(佛大僧大經)』에 나온다.
(2) 금천(金天)이 전생에 아내와 함께 물과 또 다른 물건을 스님들에게 보시
하였는데, 금생에는 우물을 얻어서 나오는 물건이 뜻대로 되었다
사위국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의 집은 큰 부자였다. 사내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몸은 금빛을 띄고 있었다. 관상쟁이가 점을 치면서 그의 기이한 모습을 보고 이름을 수월나제바(修越那提婆)[양(梁)나라 말로는 금천(金天)이라 한다.]라고 지었다. 그가 태어난 날에 집안에서는 우물이 하나 저절로 솟아 나왔는데 세로와 너비가 8자나 되었다. 그 물을 길어 써 보니 사람의 마음에 딱 알맞았고, 온갖 바라는 것이 마음먹은 그대로 이내 나왔다.
아이가 점차 자람에 따라 재주가 뛰어나고 두루 모든 일에 통달하였다. 장자는 아이를 너무도 사랑하여 감히 아이의 뜻을 거스르지도 못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의 아들은 얼굴이 잘생겨서 용모야말로 정말 견줄 이가 없다. 반드시 이름난 여인을 구하여 선택하여야겠다. 어디 가서 금빛 얼굴과 아름다운 몸이 나의 아이에게 맞을 만한 여자를 구하여야겠다.’
장자는 곧 여러 장사꾼을 모집하여 두루 돌아다니면서 신붓감을 구하게 하였다.
이 때 염파국(閻婆國)에 큰 장자가 있었고 딸 하나를 두었는데, 이름은 수발나파바소(修跋那波婆蘇)양나라 말로는 광명(光明)이다.였다. 얼굴이 잘생기고 비범하며 몸은 금빛이었고, 처음 태어나는 날에 그 역시 8자의 우물이 저절로 솟았고, 그 우물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의 뜻에 딱 알맞았다.
이 때 그 장자도 역시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딸이 이렇게 잘생겼으니 반드시 잘난 선비를 사위로 얻으리라. 나의 딸과 견줄 만큼 잘나야만 시집을 보낼 것이다.’
그 때 여인의 이름도 멀리 사위국에 퍼졌고, 금천의 이름도 여인의 집에까지 들렸다. 두 장자는 제각기 기뻐하면서 혼인하기를 청하였고, 결혼식을 마치자 사위국으로 돌아왔다.
이 때 금천의 집에서는 좋은 공양 거리를 마련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여 공양하였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그의 청을 받아들이시어 장자와 금천 부부를 위하여 묘한 법을 자세히 펼치셨으니, 모두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정사에 돌아가시자 금천과 그 아내는 부모에게 출가하겠다고 아뢰었다.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였으므로 부부가 함께 부처님께 가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야.”
그러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의가 몸에 입혀지면서 사문이 되었는데, 점차로 교화하시니 모두가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 비바시불(毘婆尸佛)께서 멸도하신 후 남기신 법이 세상에 있을 적의 일이다. 여러 비구들이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교화하다가 한 촌락에 이르렀다. 그곳에 사는 여러 백성들과 뛰어나고 어진 장자들은 여러 스님들이 자기 마을에 온 것을 보고 저마다 다투어 공양을 바쳤다. 그 때에 어느 부부는 가난하여 굶주리고 있었으면서도 매양 생각하였다.
‘우리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재산과 보물이 가득 쌓였었는데 이제 우리 자신은 너무도 가난하니, 어떻게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 것일까? 예전에는 비록 부자였으나 이 성인 스님들을 만나지를 못하였고, 이제는 만나게 되었으나 공양할 돈이 없구나.’
남편이 슬퍼하면서 울자, 아내는 이 모습을 보고 남편에게 말하였다.
‘이제 당신은 옛 집으로 한번 가 보십시오. 낡은 광 안에서 돈이라도 찾아낸다면 그것으로 공양을 하십시다.’
남편은 아내의 말대로 하여 낡은 광 안에서 금전 한 푼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때 아내는 밝은 거울을 하나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것도 함께 마음을 합하여 보시하려 하였다. 새 병 하나를 사다가 깨끗한 물을 가득 담고 그 금전을 병 안의 물 속에 넣었다. 그리고 거울을 그 위에다 놓고 스님들에게 가지고 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였다. 스님들은 병을 받아서 저마다 물을 가져다 발우를 씻고 또 물을 가져다 마시는 이도 있었다.
그 부부는 너무나 기뻐하였으며, 병이 들어 죽어서는 도리천에 가 났는데 그 때의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금천 부부이다.”『현우경(賢愚經)』 제5권에 나온다.
(3) 아사타(阿娑陀)가 비구니의 깨우침을 받고 도를 얻고서는 장사꾼 우두
머리를 제도하다
천호(天護)라는 장사꾼 우두머리가 있었다. 육지의 구나국(求那國)에 가서 언제나 보시하기를 즐겼다. 부처님께 신심을 내었기에 전에 바다에 일을 나가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만약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나는 부처님 법 중에서 5년 동안 대회를 열리라.”
그리하여 하늘과 인간 세상 안에 이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그 때에 어느 한 아라한 비구니가 같이 그 나라에 가게 되었다. 비구니가 자세히 살피며 생각해 보니, 천호가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5년 동안 대회를 열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만 8천의 비구를 청하였는데 그들은 모두가 아라한이었다. 아직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도 갑절 많았고, 범부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 가운데 상좌(上座) 아사타라는 이를 보았더니, 그는 범부이지만 아주 정진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비구니는 승가람(僧伽藍)에 들어가 차례로 예배하고 상좌에게 말하였다.
“대덕은 매우 단엄(端嚴)하지 못합니다.”
상좌는 생각하였다.
“어떻게 나를 보고 단엄하지 않다 할까?”
이내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다가 수염과 머리카락이 긴 것을 보고 즉시 아이를 불러서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았다.
그러나 비구니는 또 말했다.
“단엄하지 않습니다.”
상좌는 다시 아이를 불러서 옷을 빨고 염색을 새로 하게 하였다.
비구니는 또 승가람에 와서 짐짓 말했다.
“그래도 단엄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상좌는 성을 내며 말하였다.
“난 이미 수염과 머리를 깎았고 또 옷도 새로 빨고 염색까지 하여 갈아입었습니다. 어째서 내가 단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인지 어디 말씀해 보십시오.”
비구니가 대답하였다.
“부처님 법에서는 4과(果)를 얻음으로써 단엄해지는 것입니다. 대덕은 장사꾼 우두머리 천호가 사자후(師子吼)로 5년 동안 대회를 연다는 소문을 들으셨는지요?”
대답하였다.
“들었습니다.”
“대덕은 범부로서 으뜸가는 상좌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아라한 대중 안에 있으면서도 먼저 공양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단엄하다 하겠습니까?”
아사타는 그제야 비로소 깨닫고 슬피 울며 괴로워하므로 비구니는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우십니까?”
대답하였다.
“누이여,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비구니는 말하였다.
“여래의 법에는 알맞은 때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대덕은 지금 나치바치사(那哆婆哆寺)로 가셔서 우바급다(優波笈多) 비구를 찾으십시오. 그 비구는 부처님께서 수기하신 이로서, 부처님께서는 ‘나의 제자 중에서 교화가 첫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 비구가 우바급다 있는 곳에 이르자 우바급다가 직접 나와서 영접하면서 말하였다.
“대덕이여, 발을 씻으셨습니까, 씻지 않으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저는 아직 발을 씻지 못했습니다. 우바급다를 뵙고자 합니다.”
이 때 우바급다의 제자가 말하였다.
“대덕이여, 이 분이 바로 우바급다이신데, 직접 나오셔서 대덕을 마중하신 것입니다.”
아사타 장로는 크게 기뻐하면서 스스로 발을 씻었다. 우바급다는 곧 그를 교화하고, 그를 위하여 단월(檀越)을 찾아 목욕을 시키고 음식 등 갖가지로 공양하게 하였다. 그리고 유나(維那)에게 말하였다.
“이제 두 가지 해탈을 얻은 비구가 좌선하는 곳에 들어가리라.”
그 때 1만 8천의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좌선 처소에 들어갔다. 비구는 제1선(禪)의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이 때 우바급다는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었는데, 1만 8천의 아라한도 함께 같은 화광삼매에 들었다. 비구가 그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니, 이에 우바급다가 교화하고 설법하였다. 비구는 정진하며 생각을 하다가 아라한의 과위를 얻고서는 본국으로 돌아왔다. 아라한 비구니는 승가람에 와서 예배하며 말하였다.
“오늘날에야 대덕께서는 단엄하십니다.”
아사타 비구는 대답하였다.
“모두 누이의 힘이십니다.”
5년 동안의 대회에서 천호가 상좌에게 물었다.
“세존의 갖가지 설법은 상좌께서 말씀하신 바와 다름이 없더이다.”
상좌는 대답하였다.
“과거의 세상 91겁 동안에 우리들은 장사꾼 무리를 이끌고 바다 속에 들어가 보물을 캐고, 그 보물을 선박에 가득 채워 염부제로 돌아오기를 서원하였습니다.
이 때 큰바람이 불어 선박이 모래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우리들은 비바시불(毘婆尸佛)을 위하여 모래를 모아 탑을 만들고서 값진 보물로써 공양하였습니다. 이 때 여러 천인들이 우리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면서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7일 후에 큰 홍수가 들 것이니, 그대들은 배를 띄워 염부제에 들어가십시오.’
7일째가 되자, 과연 천인의 말처럼 되었습니다. 그 모래 탑을 세웠던 인연으로 91겁을 지나오면서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았고, 이제는 아라한의 과위를 얻은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을 3보(寶) 모신 곳에서 다 함께 공양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주원(呪願)을 말하겠습니다.
‘생사의 괴로움은 끝이 없습니다. 그대는 이제 출가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주원입니다.”
천호는 뜻을 받들어 이내 사문이 되었으며,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아육왕경(阿育王經)』 제9권에 나온다.
(4) 수라타(修羅陀)가 태 안에 있으면서 어머니의 성품을 온화하게 하였고
정진하여 도를 얻었다
파련불국(巴連弗國)에 수타나(須陀那)라고 하는 장사꾼 우두머리가 있었다. 중음(中陰) 중생이 와서 어머니 태 안에 들어서 어머니로 하여금 질박 정직하고 온화하며 모든 그릇된 생각을 없도록 하였다. 남편이 그 연유를 대사에게 물었더니, 대사는 대답하였다.
“어질고 착한 아이를 잉태하여 그렇습니다. 뒤에 한 아이를 낳을 것이니, 이름을 수라타(修羅陀)라 하십시오.”
아이가 점차 자라서 장성하자 출가를 하겠다고 하므로 부모가 허락하였으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하였다.『아함경(阿含經)』 제25권에 나온다.
(5) 차마(差摩)가 병 때문에 설법을 하고는 마음에 해탈을 얻다
차마(差摩) 비구가 몸에 중한 병이 들어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타사(陀娑) 비구가 간병(看病)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여러 상좌들은 타사 비구에게 병든 이를 위하여 오수음법(五受陰法)을 말해 주라고 시켰다. 타사 비구가 두 번을 거듭 갔다 왔다 하는 것을 보고 차마 비구는 타사 비구에게 말하였다.
“왜 번거롭게 그대로 하여금 분주하게 갔다 왔다 하게 할까. 지팡이를 가지고 오시오. 내가 지팡이를 짚고 직접 저 상좌에게 가 보겠소.”
그 상좌는 멀리서 차마가 지팡이를 짚고 오는 것을 보고 직접 자리를 깔아 앉게 하고서는, 그를 위하여 옛날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였다. 그러자 차마 비구가 이내 설법을 하였고, 설법을 듣고 그 상좌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의 깨끗함을 얻게 되었다. 차마 비구도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차마비구유중병경(差摩比丘喩重病經)』에 나온다.
(6) 구제(拘提)가 여섯 번을 정(定)에서 물러나더니 자신의 몸을 해치고야
증득을 취하다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였다. 제자 구제는 아라한의 과위에서 여섯 번을 물러났었다. 그래서 일곱 번째를 시작하면서는 스스로가 신증(身證)을 깨닫고, 다시 물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날카로운 칼을 구해다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었다. 이 때 악마 파순(波旬)이 비구의 혼신이 어디에 가서 태어났는가를 찾았으나 알 수가 없었으므로 부처님께 가서 묻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구제 비구는 이미 멸도하였다. 신식(神識)이 허공에 처하면서 허공과 합하여 있느니라.”
못된 악마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에 발끈 독심을 일으키며 자기 몸을 푸른 연못에 던져 목욕을 하였다. 그러자 못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물의 성질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이 인연 때문에 여러 비구들은 모두가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다시는 물러나기를 두려워하였다.『설구제비구경(說拘提比丘經)』에 나온다.
(7) 마하로(摩訶盧)가 지식을 아끼다가 둔한 이가 되었는데 고쳐 뉘우치고
서 도를 얻다
옛날에 다마라(多摩羅)라고 하는 한 나라가 있었다. 성에서 7리(里) 떨어진 곳에 정사(精舍)가 있었는데, 5백 명의 사문이 항상 그 안에 살면서 경을 찬탄하고 도를 행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장로 비구 마하로(摩訶盧)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됨이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5백 명의 도인들이 돌아가며 함께 그를 가르쳤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 게송 하나도 외우지 못했다. 그래서 대중이 다 업신여기면서 어울리려 하지도 않고, 언제나 정사를 지키면서 청소나 하도록 시켰다. 뒷날 국왕이 여러 도인들에게 궁중에 들어와서 공양하도록 청하였는데, 마하로 비구는 혼자서 생각하였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미련하게 게송 하나도 몰라서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는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이내 줄을 가지고 후원 가운데 큰 나무 아래로 가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도의 눈[道眼]으로 멀리서 이런 것을 보고 변화로 몸의 반은 사람인 수신(樹神)이 되어서 나타나 꾸짖으셨다.
“이놈, 비구야, 왜 그런 짓을 하느냐?”
마하로는 이내 자신의 쓰라린 괴로움을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변화로 된 신은 다시 꾸짖었다.
“그런 짓은 해서는 안 되느니라. 이제 나의 말을 들어라.
옛날 가섭불(迦葉佛) 때에 너는 삼장(三藏) 사문이었는데, 5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스스로 지혜가 많다고 자만하였기에 뭇 사람들을 업신여겼고, 경전의 뜻을 너무 아껴 아예 남에겐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너는 세상에 태어날 적마다 모든 감관이 미련하게 되었으니, 마땅히 자신의 잘못을 책망해야 하는 것이거늘 왜 자신을 천대하느냐?”
세존께서는 곧 빛나는 본래의 형상을 나타내며 그를 위하여 미묘한 게송을 말씀하셨다. 그러자 마하로는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리고 게송의 뜻을 생각하며 이내 정의(定意)에 들었다가 이윽고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저절로 전생의 수없는 세상에서의 일을 알게 되었고, 3장(藏)의 여러 경전도 바로 꿰뚫어 마음 안에 두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마하로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왕궁의 식사에 가도록 하여라. 5백 명의 도인이 위에 앉아 있지마는 그 모든 도인은 바로 너의 전생의 5백 제자이니, 네가 도리어 그들에게 설법하여 도의 자취[道迹]를 얻게 하고, 아울러 국왕으로 하여금 죄와 복을 분명히 믿게 하라.”
마하로는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왕궁으로 들어가 윗자리에 앉았다. 뭇 사람들은 성을 내면서 왜 저런 짓을 하나 궁금하게 여겼다. 그러나 모두들 왕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서 감히 쫓아내지는 못하고 생각하였다.
‘저놈은 미련해서 달친(達嚫)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놈이다.’
모두들 그렇게 마하로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왕이 음식을 돌리고 손수 술을 따르자, 마하로가 곧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였다. 설법하는 음성은 마치 우레가 치는 것 같았고, 청량한 말솜씨는 마치 빗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도인들은 놀라고 두려워서 스스로 뉘우치다가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마하로가 왕을 위하여 설법하니 깨쳐 알지 못하는 이가 없었고, 여러 신하와 벼슬아치들까지도 모두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법구경비유(法句經譬喩)』 제1권에 나온다.
(8) 주리반특(朱梨槃特)이 쓸기[掃]를 외우다가 비[篲]를 잊어버리고 비를 외우다가는 쓸기를 잊었다
주리반특(朱梨槃特)의 형이 말하였다.
“네가 만약 계율을 지닐 수 없으면 도로 속인이 되어라.”
반특은 기원(祇洹)의 문 앞에 나아가 울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무엇 때문에 슬퍼하느냐?”
형이 하던 말로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겁낼 것 없다. 나는 위없는 선비요, 바르게 깨달은 사람이니라. 너의 형은 비교할 것도 못 되느니라.”
손으로 반특을 이끌고 고요한 방에 가서 비를 잡고 쓰는 것을 가르치며 외우게 하였다. 반특은 쓸기를 외우다가 비를 잊어버리고 비를 외우다가 쓸기를 잊어버렸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서야 비로 쓰는 것을 다시 때를 없앰[除垢]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반특은 생각하였다.
‘재와 흙과 기와와 돌들을 만약 없애 버린다면 이내 깨끗해지는 것이니, 결박(結縛)이 바로 때요, 지혜(智慧)는 능히 없앨 것이로다. 나는 이제 지혜의 빗자루로써 모든 번뇌인 결박을 쓸어 없애야겠다’『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1권에 나온다.
(9) 주리반특(朱梨槃特)이 하나의 게송을 외우되 그 뜻을 잘 알았고, 또 신력으로써 발우를 드리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였다. 반특(槃特)이라고 하는 비구 하나가 새로 출가하였으나 품성이 미련하였다. 부처님께서는 5백의 아라한으로 하여금 날마다 그를 가르치게 하였지만 3년이 지나도록 게송 하나도 알지 못했다. 나라 안의 4중[四輩]도 모두 그의 미련함을 알 정도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가엾이 여기시어 불러서 앞에다 두고는 게송 하나를 일러 주셨다.
입[口]을 지키고 뜻[意]을 껴잡으며 몸[身]으로는 범하지 말아라.
이렇게 수행하는 이라야 세간을 넘어설 수 있느니라.
반특은 부처님의 인자한 은혜를 느끼며 기뻐하는 마음이 열리어 게송을 읊어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네가 나이 다 늙어서 이제야 비로소 게송 하나를 외웠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므로 기특하게 여길 거리가 못 되느니라.
이제 너를 위하여 그 뜻을 해설해 주겠다.
첫째 몸은 셋이요 입은 넷이요 뜻은 셋으로 연유하는 것이니, 그 일어나는 바를 보고 그의 사라지는 바를 살펴야 한다. 삼계(三界)와 5도(道)가 바퀴 돌듯 쉼이 없으니, 그로 말미암아 하늘에 오르고 그로 말미암아 못에 떨어지며, 또 그로 말미암아 도를 얻어서 열반이 저절로 찾아오게 된다.”
그를 위하여 한량없는 미묘한 법을 따로따로 나누어 따져 말씀하여 주시자, 마음이 탁 트이면서 열리어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이 때 5백 명의 비구니는 따로 정사에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비구를 보내어 너희들을 위하여 경법을 말하게 하리라. 내일은 반특의 차례라, 마땅히 가게 되리라.”
여러 비구니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미리 웃음을 띠면서 말하였다.
“내일 오면 우리들이 미리 그 게송을 말하여 그가 부끄러워서 한마디 말도 못 하게 하자.”
다음날 반특이 가자 여러 비구니들은 모두 나와서 예를 갖추고 서로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웃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밥이 나왔고, 밥을 다 먹고 나서 씻고 양치질을 마치자 청하며 설법을 하게 하였다. 반특은 이내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스스로를 낮추며 말하였다.
“박덕하고 재주 없어서 아직도 사문이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완악하고 무딘 면에만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 배운 것이 많지가 않습니다. 오직 하나의 게송만을 알고 대략 그의 뜻을 알 뿐입니다.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그 게송을 펼쳐 말하겠으니, 모두들 조용히 들어주십시오.”
여러 젊은 비구니들이 미리 게송을 하려 하였으나 입이 열리지 않으므로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자신들을 책망하며 머리 조아려 허물을 뉘우쳤다. 반특은 이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몸과 뜻으로 말미암아 연유하는 바와 죄와 복의 안팎과 하늘에 오르고 도를 얻음과 정신을 엄하게 단속하여 생각을 끊고 정(定)에 드는 법들을 낱낱이 분별하여 주었다. 그러자 바로 그 자리에서 비구니들은 그의 설법을 듣고 그의 기이함을 괴이하게 여기며 일심으로 기뻐하면서 모두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뒷날 국왕 바사닉(波斯匿)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정전(正殿)의 모임에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반특의 위신을 나타나게 하려고 발우를 주시면서 가지고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문지기가 그를 알아보고 막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당신은 사문이면서도 게송 하나조차도 확실히 모르지 않소? 무엇 하려고 청을 받아 온 것이오? 속인인 나도 오히려 게송을 알고 있는데, 하물며 사문인 당신이겠습니까? 지혜가 없는 당신에게는 보시를 하여도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니 문 안에 들일 필요도 없소.”
그래서 반특은 문 밖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전각 위에 앉으셨고 물을 돌리기를 마치자, 반특은 발우 가진 팔을 펴서 멀리서 부처님께 드렸다. 왕과 신하들, 그리고 부인과 태자, 그리고 사부 대중들은 팔이 들어온 것은 보이는데 그 형상은 보이지 않으므로 괴이히 여기면서 부처님께 물었다.
“이는 어떤 사람의 팔이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는 현자 반특 비구의 팔이니라.”
왕은 말하였다.
“도를 얻었사옵니까?”
“아까 내가 발우를 가지고 따라오게 하였더니, 문지기가 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밖에서 팔을 뻗쳐 나에게 발우를 준 것뿐입니다.”
바로 반특을 청하여 들어오게 하였더니 위신이 평소보다 갑절이었으므로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듣건대 존자 반특은 본 성품이 우둔하여 이제야 겨우 게송 하나를 알았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인연으로 도를 얻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배움이란 반드시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요,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현자 반특은 한 게송의 이치만을 알지만, 그 정밀한 이치에 정신이 몰입하고, 몸과 입과 뜻을 고요히 하여 마치 천금(天金)같이 하였습니다. 사람이 비록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행하지 않는다면 한갓 의식과 생각만을 잃을 뿐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록 천 개의 장(章)을 외운다 하더라도
글귀의 이치가 바르지 아니하면
하나의 요지(要旨)보다 못한 것이니
듣고서 생각[意]을 없애야 되느니라.
비록 천 마디 말[千言]을 외운다 하더라도
이치를 모르면 무슨 이익이 되랴.
하나의 이치보다도 못한 것이니
듣고 행하여야 제도될 수 있느니라.
비록 경전을 많이 외운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이익이 되랴.
하나의 법 글귀도 이해하여서
행해야만 도를 얻을 수 있느니라.
이 게송을 같이 들은 2백 명의 비구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고, 왕과 여러 신하, 그리고 부인과 태자들은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법구경(法句經)』 제1권에 나온다.
(10) 앙굴만(鴦崛鬘)이 백성들을 난폭하게 죽이다가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아라한 도를 얻다
바가바(婆伽婆)께서 사위성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실 때였다. 그 때 여러 많은 비구들이 때가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다가 바사닉왕의 궁문 밖에서 많은 백성들이 저마다 손을 잡고 슬피 울며 부르짖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나라 땅에는 아주 질이 나쁜 도둑이 있는데 이름은 앙굴만이라고 합니다. 백성들을 죽이는데 포악하여 자비심이라곤 없으므로, 마을에 사는 것이 영 편하지가 않습니다. 백성을 살해하고서는 각기 한 개씩의 손가락을 가져다가 꽃다발을 만들기 때문에 앙굴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 사람을 항복시켜 주옵소서.”
비구들은 걸식을 마치고 불세존께 나아가 위의 일들을 자세하게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내 거기로 가셨다. 이 때 여러 사람들 중에는 땔나무를 짊어진 사람도 있었고, 풀을 인 사람도 있었으며, 밭을 가는 사람도 있었고, 길을 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모두들 세존께로 나아가 말하였다.
“사문이시여, 이 길로는 가시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이 길 중간에는 앙굴만이 있는데,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놈이기 때문입니다. 중생들이 사는 모든 성곽과 촌락이 모두가 그 놈의 괴롭힘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여서는 죽은 사람의 손가락으로 꽃다발을 만든답니다.”
그렇게 세존을 놀라게 하였지만 불세존께서는 앞으로 나아가셨다. 그 때에 앙굴만은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오냐, 저 사문이 동행도 없이 혼자서 오는구나. 내 너를 죽여 주마.’
앙굴만은 허리의 칼을 뽑아서는 곧장 부처님께로 갔다. 세존께서는 그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이내 되돌아서 가셨다. 앙굴만이 있는 힘을 다하여 세존의 뒤를 쫓아 달려갔지만 세존께는 미칠 수가 없었다. 앙굴만은 생각하였다.
‘나는 코끼리를 따라잡을 만큼 달리기를 잘한다. 나는 달리는 말도 따라잡고 수레도 잡을 수 있으며, 포악한 소도 잡을 수 있고 사람도 당연히 따라잡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사문은 걷는 것이 빠르지도 않은데, 내가 있는 힘을 다하여 뛰어도 미칠 수가 없구나.’
앙굴만은 멀리서 세존께 말하였다.
“거기 서시오, 거기 서시오, 사문이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아까부터 그냥 서 있다. 그러나 네가 서지 않는구나.”
그 때 앙굴만은 생각하였다.
“내가 악행을 행하고 있구나.”
앙굴만은 이내 허리에 찼던 칼을 버리고 온몸을 던져 귀명(歸命)하였다. 그리하여 사문이 되어 구족계 받기를 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야.”
수염과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져서 마치 머리를 깎은 것 같았으며, 입고 있던 옷은 가사로 변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설법하시니 아라한이 되었다.
그 때에 왕 바사닉이 4부의 병사[四部兵]들을 모아 그 도둑 앙굴만을 죽이러 가려고 사위성을 나왔다. 세존 계신 곳을 지나며 먼저 부처님께 가서 자세하게 설명하니,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왕이 지금 만약 앙굴만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믿음이 견고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왕은 잡아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만약 잡으면 예배 공경하며 문안을 드릴 것이요, 해칠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흉악하고 인자한 마음이라곤 없는 도둑이 어찌 사문의 행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 앙굴만은 부처님과 멀지 않은 곳에서 가부하고 앉아 곧은 몸으로 뜻을 바르게 잡고 생각을 한 곳에 묶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손을 들어 앙굴만을 가리키시자, 바사닉은 앙굴만을 보고 나서 너무 두려워 옷과 털이 모두 곤두섰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혼자서 그곳으로 가서 왕이 말을 걸어 보십시오.”
바사닉왕은 앙굴만에게 가서 머리 조아려 발에 절하고, 왕은 한쪽 편에 서서 앙굴만에게 물었다.
“존자 앙굴만이여, 지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앙굴만은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저의 이름은 가구(伽瞿)이며, 어머니 이름은 만다야니(蔓多耶尼)이십니다.”
왕은 말하였다.
“당신은 혼자서도 참으로 잘 힘써 정진하십니다. 나는 이제부터 이 몸이 다하도록 존자 가구께 옷과 음식, 병에 필요한 의약, 평상, 침구 등을 아낌없이 공양하겠으며, 언제나 법으로써 지켜 드리겠습니다.”
바사닉왕은 머리 조아려 발에 절하고 세 바퀴를 돌고서 세존께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항복하지 못할 이를 능히 항복시켰나이다.”『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19권에 나온다.
(11) 밀바화타(蜜婆和吒) 등에게는 습기(習氣)가 남아 있었다
어떤 사람이나 설사 온갖 번뇌를 끊었다 하더라도 몸과 입에는 역시 번뇌의 모습을 갖고 있다. 무릇 사람은 보고 들으면 청정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마치 밀바화타 아라한이 5백 세상 동안 원숭이로 살았었기에 이제는 비록 도를 얻었다 해도 아직도 나무에 올라가 뛰노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이내 가벼이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
또 필릉가파차(畢陵伽婆蹉) 아라한은 5백 세상 동안 바라문으로 태어났었기에 업신여기는 마음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제 비록 도를 얻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항하의 수신[恒河水神]에게까지 이런 말투를 쓴다.
“작은 여종아, 흐름을 그쳐라.”
그러므로 항하의 수신이 성이 나서 부처님께 나아가 하소연을 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참회를 하라고 분부하셨지만 그는 여전히 ‘작은 여종’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이 없으시다. 예를 들어 한번은 어떤 바라문이 나쁜 말을 하였는데, 5백 가지의 일을 들어서 부처님께 욕설을 퍼부었지만 부처님께서는 성내는 기색이 없었다. 바라문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즐거워하면서 또 한꺼번에 5백 가지의 착한 일로써 부처님을 찬탄해 보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역시 기뻐하는 기색이 없으셨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번뇌와 습기가 다하셨기 때문에 좋고 싫음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대지도론(大智度論)』 제84권에 나온다.
(12) 형제끼리 재산으로 싸우면서 부처님께 다툼 해결을 청하므로, 그들을 위하여 옛날 일을 말씀하시자 이내 4과(果)를 얻었다
부처님께서는 나열기죽원(羅閱祇竹園) 안에 계셨다. 그 때에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큰 성씨 집안의 네 형제가 집과 재산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사리불(舍利弗)을 만나서는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원컨대 저희들을 위하여 이제부터는 다시는 다투지 않도록 말씀을 하여 주십시오.”
사리불은 말하였다.
“좋습니다. 나에게는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계십니다. 삼계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니, 그대들이 나를 따라 부처님께로 가면 반드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네 형제는 사리불을 따라갔다.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네 사람을 보시고 웃으시며 다섯 가지 빛으로 광명을 내 보이셨다. 네 사람은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뢰었다.
“저희들은 어리석습니다.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 잘 풀어 말씀하시어 저희가 다시는 다투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이름은 유루(惟婁)였느니라. 몸에 병이 들어서 의원을 찾아가 보았더니 약 처방을 지어 주는데, ‘사자의 젖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왕은 이내 사람들을 모집하였다.
‘사자의 젖을 구해 오는 사람에게는 국토를 나누어 봉(封)할 것이요, 아울러 작은 사위로 삼겠다.’
이 때 어느 가난한 사람이 여쭈었다.
‘제가 능히 구해 올 수 있습니다.’
왕은 즉시 떠나도록 허락하였다. 그 사람은 교묘하게도 미리 조사를 하여 먼저 사자가 사는 데를 찾아 놓았다. 그리고는 양을 죽인 다음 포도주 두어 휘[斛]를 마련하여 그 산으로 갔다. 사자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엿보고 있다가 이내 죽인 양과 포도주를 그가 사는 데에 놓아두었다. 사자는 술과 고기를 보고 금방 다 먹고 마셨다. 사자가 크게 취하여 누워 잠이 들자 그 사람이 다가가서 젖을 짜 가지고 기뻐하면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 자기 나라에 도착하기 전에 날이 저물어서 어떤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어 어떤 한 아라한과 함께 잠을 자게 되었다. 사자 젖을 구해 오던 사람은 사자를 쫓느라 험한 길을 지나왔기 때문에 몸이 몹시 피로하여 누워 잠이 들자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때 도인이 그의 몸 안의 6식(識)을 살펴보았더니, 저마다 공을 다투고 있었다.
먼저 발의 신[足神]이 말하였다.
‘발이 있으니까 걸어가서 젖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야.’
그러자 손의 신[手神]도 말하였다.
‘손이 있었기 때문에 젖을 짤 수 있었던 것이지.’
눈의 신[目神]이 다시 말하였다.
‘눈이 있으니까 사자를 보았지.’
귀의 신[耳神]도 다시 말하였다.
‘귀가 있어서 왕이 ≺젖을 구해 오라≻고 한 말을 들었지.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온 것이야.’
혀의 신[舌身]도 지지 않고 말하였다.
‘쓸데없이 너희들이 왜 다투고 있는 거야? 이번 일의 공은 바로 나에게 있어. 이제 너희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렸어.’
마침내 이 사람이 젖을 가지고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제가 지금 사자의 젖을 구해다가 밖에 두었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좌우간에 올리기만 해 보아라.’
왕이 막 젖을 보고 있는데 혀[舌]가 말하였다.
‘이것은 사자의 젖이 아니고 나귀의 젖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성을 내었다.
‘내가 너에게 사자 젖을 가져오라고 하였더니, 나귀 젖을 가져왔단 말인가?’
왕은 바로 그 자리에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 때 함께 잠을 잤던 도인이 신족(神足)으로써 왕 앞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이 사람 말을 믿으십시오. 이것은 분명 사자의 젖입니다. 제가 어제 이 사람과 함께 마을에서 잠을 잤었습니다. 그 때 제가 그의 몸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6식(識)이 서로 일의 공로를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혀가 ≺나는 너희들에게 무조건 반대를 하겠다≻고 하더니 지금 과연 그렇게 하였습니다. 왕께서는 이 젖으로 약을 지으십시오. 그 병은 반드시 나을 것입니다.’
왕은 아라한의 말을 믿고 그 젖으로 약을 지었으며, 딸을 그 사람에게 시집 보내고 아울러 본래 약속한 대로 토지도 봉해 주었다.
도인은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한 사람 몸의 의식조차 서로가 이렇게 어긋나거든,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이 때 젖을 가져온 이는 도인의 은혜를 받고서 사문이 되기를 청하였고, 뜻이 풀리면서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그 때 왕 역시 기뻐하면서 5계를 받고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네 형제는 이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하여 이내 부처님을 따라 비구가 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잠자코 손으로 그들의 머리를 만지시니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면서 맺음[結]이 풀리고 때[垢]가 없어졌다.
아난은 말하였다.
“이 네 사람은 본래 어떠한 공덕으로 지금 경을 듣자마자 바로 이해하고 금방 아라한이 되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 마문불(摩文佛) 때에 사리불은 비구였고, 이 네 사람은 장사꾼이었다. 네 사람이 함께 한 벌의 가사를 사리불에게 올리니, 사리불이 이렇게 주원(呪願)하였느니라.
‘그대들로 하여금 후세에 빨리 제도되어 해탈하게 하리라.’
이런 인연으로 이제 사리불에게서 해탈 받게 되었느니라.”『유루왕사자유비유경(惟婁王師子乳譬喩經)』에 나온다.
(13) 언제나 스님들에게 음식과 의복 공급하는 일을 하다가 도를 얻다
어느 한 남자가 바른 법에 출가하여 물건 공급하는 일[給事]을 잘하였다. 그가 가는 절마다 모든 비구들은 그로 하여금 공급하는 일을 맡게 하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갈수록 더욱더 몸이 고달파졌으므로 혼자서 생각하였다.
‘누가 나를 위하여 설법하고 교화해 주실까? 듣자 하니 마투라국(摩偸羅國)에 우바급다라는 이가 계신다 하는데, 이 분은 부처님께서 수기하시기를 ‘능히 뒤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첫째가 되리라’고 하셨다 한다.‘
그리하여 바로 우바급다에게 가서 예배하고 합장하고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크게 불사(佛事)를 지으시면서 저를 위하여 설법하여 주십시오.”
우바급다는 말하였다.
“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다면, 장차 그대를 위하여 법을 말하리라.”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바급다가 물었다.
“나치파치사(那哆婆哆寺)에 스님들이 몇 분 계시니, 그대는 다시 스님들에게 공급하는 일을 하라.”
대답하였다.
“그곳에는 1만 8천의 아라한이 계시고, 학인은 그 갑절이 있으며, 정진하는 범부는 수도 없나이다.”
그 비구는 즉시 온 대중 스님들을 위하여 공급하는 일을 하며, 모든 스님들로 하여금 오로지 도업(道業)만을 닦을 수 있게 하였다. 어느 날 공급을 맡은 비구가 새벽 일찍 일어나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투라국으로 들어갔다. 새벽에 어떤 한 장자가 나오면서 그를 보고 생각하였다.
‘내가 전에 못 보던 분이구나. 오늘 처음 만났으니 머리 조아려 예배하리라.’
그리고 다시 물었다.
“대덕이시여, 어디서 무슨 일이 있으셔서 여기에 오셨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동쪽 나라로부터 왔습니다. 우바급다에게 와서 법을 들으려 하였는데 우바급다께서는 저로 하여금 스님들을 위하여 공급하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마투라국 사람 가운데 누가 정진하며 누가 정진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장자는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그런 일은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장차 당신을 위하여 대신 스님들에게 온갖 음식과 의복이며 의약을 공급하겠습니다. 제가 모두 비구와 장자들에게 공급할 것이니, 대덕께서는 다른 스님들과 같이 음식과 의복, 그리고 의약품을 받으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장자가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였다.
석 달 동안 안거(安居)하는 때에 이 비구는 그 공양을 받고 도의 과위를 닦아 얻게 되었다.
(14) 나찰(羅刹)을 보고 출가하여 도를 얻다
마투라국(摩偸羅國)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부모에게 출가할 것을 여쭙고, 우바급다(優波笈多)에게 가서 공경 예배하고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제가 비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바급다가 그의 몸을 살펴보니 애욕에 얽매여 있었으나 말하였다.
“잘 왔다. 내가 장차 너에게 출가를 허락하리라.”
남자는 기뻐하면서 발에 예배하고 먼저 잠시 집에 다녀올 것을 청하였다.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하였다.
‘지금 내가 만약 집에 돌아가면 혹시 부모님이 나를 잡아 둘지도 모르겠다.’
저녁이 되자 한 신묘(神廟)『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빈집이라고 하였다. 에서 잠을 잤다. 우바급다는 나찰(羅刹) 둘을 만들어서 하나는 죽은 시체를 들게 하였고, 다른 하나는 빈손으로 같이 묘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두 나찰이 말하였다.
“이건 내가 얻은 것이야.”
서로 자기 것이라 다투다가 해결이 되지 않자,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 누가 시체를 들고 오더냐?”
그 사람은 생각하였다.
‘그래도 거짓말은 할 수가 없지.’
그 사람이 자기가 본 대로 사실대로 그들에게 말하자, 빈손으로 온 귀신이 이내 그의 팔을 끌어다 뜯어먹으려 하였다. 마침 시체를 가지고 왔던 귀신이 그를 도와 뜯어말려서 간신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다가 드디어 해가 돋았다. 이틀을 지난 뒤에 우바급다에게 돌아가서 출가하여 도를 닦았는데, 힘써 정진하며 부지런히 수행하여 아라한 과위를 얻었다.『아육왕경(阿育王經)』 제9권에 나오며, 또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에도 나온다.
(15) 어떤 사람이 재난을 피하려고 출가하여 부처님을 뵙고 도를 이루다
옛날 여러 사람들이 강물 곁에 있다가 수해를 입은 사람이 한량없었는데, 그 중에서 모면한 이는 많은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뿐이었다. 깊은 물에서 모면한 그 사람은 부처님께 가서 사문이 되기를 청하므로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시어 도인들의 맨 끝자리에 있게 하였는데, 속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곤액(困厄)을 여의리라 여기는지라,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설법하고 권하여 도를 행하게 하셨다.
때에 그 비구는 속으로 부끄러워하다가 온갖 만물이 덧없음을 깨달아 알면서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리자 담담하게 생각이 없이 이내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이 되었다.『설위사문경(說爲沙門經)』에 나온다.
(16) 아라한과 코끼리는 전생에 형제였으나 선(善)을 행한 것은 같지 아니하였다
가섭불(迦葉佛) 때에 두 형제가 함께 사문이 되었었다. 형은 계율을 지니고 좌선을 하며 일심으로 도를 구하면서도 보시는 하지 않았고, 아우는 보시로 복을 닦으면서 파계하기를 좋아하였다. 형은 석가(釋迦)에게 출가하여 아라한 도를 얻었지만 언제나 입을 옷이 넉넉하지 못하였고, 먹을 것도 없어서 늘 배가 고팠다. 그 아우는 코끼리로 태어나서 센 힘 때문에 적(敵)을 잘 물리쳤으므로 국왕의 사랑을 받아 금은의 값진 보배와 영락으로 그 몸을 꾸몄다. 게다가 왕은 수백 호(戶)의 읍을 이 코끼리에게 봉(封)하여 주었으므로 그가 바라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었다.
그 때에 형 비구는 세상의 큰 흉년을 만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걸식을 하였으나 이레 동안이나 얻지를 못하였다. 그나마 맨 마지막에야 약간의 설은 밥을 얻어먹어서 간신히 목숨만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 비구는 코끼리가 바로 전세의 아우였음을 알았으므로 이내 코끼리에게 가서 손으로 코끼리의 귀를 붙잡고 그에게 말하였다.
“나와 너는 다 같이 죄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코끼리는 비구의 말을 듣고 잘 생각하다가 이내 전생 일을 알게 되었는데, 전생의 일을 보고서는 근심하고 걱정하며 먹을 수가 없었다. 코끼리를 보살피는 종이 겁이 나서 이내 왕에게 가서 말했다.
“코끼리가 먹지를 않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왕은 코끼리 보살피는 종에게 물었다.
“전에 이 코끼리를 범한 사람은 없었더냐?”
코끼리 보살피는 종이 대답하였다.
“다른 사람은 없사옵고 어떤 한 사문이 코끼리 곁에 다가갔다가 금방 바로 떠나간 일이 있을 뿐입니다.”
왕은 이내 사람을 보내 사문을 찾아서 물었다.
“나의 코끼리 곁에 가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사문은 대답하였다.
“코끼리에게 ‘나와 너는 다 같이 죄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사문은 왕에게 위와 같은 일을 자세히 설명하였으니, 왕은 그 뜻을 이내 깨치고 바로 사문을 석방시켜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였다.『잡비유경(雜譬喩經)』 제4권에 나온다.
(17) 5백 명의 봉사 아이들은 운명이 기구하였으나 부처님을 만나자 눈이 밝아지고 도를 깨쳤다
비사리국(毘舍離國)에 5백 명의 봉사가 있었는데 거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그 때에 부처님을 보는 이면 곱사등이거나 무슨 몹쓸 병을 가진 자이거나 모두 다 낫게 되었고, 가난한 이에게는 옷과 밥을 주었으며, 근심과 걱정과 고통과 재액이 모두 풀린다는 소문이 있었다. 봉사들은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죄가 겹겹이 쌓여서 고통이 대단히 심하다. 만약 부처님을 만난다면 반드시 구제될 것이다. 우리가 다 같이 가서 구걸을 하여 한 사람이 각각 금전 1전씩을 얻는다면, 그것으로써 사람을 사서 부처님 계신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봉사들은 걸식을 하며 길을 가면서 한 사람마다 1전씩 돈을 얻게 되었으므로, 좌우에 지나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누구든 우리들을 사위국까지 데려다 주면, 금전 5백 닢으로 그 노고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러자 어떤 한 사람이 다가왔으므로 함께 돈을 모아 그에게 주었다. 그는 여러 봉사들에게 말하였다.
“서로 잡고 이끌어 당기시오.”
그는 앞에서 인도하며 마갈(摩竭)까지 데리고 갔지만, 여러 봉사들을 텅 빈 늪 속에다 버려두고 가 버렸다. 봉사들은 자기네들이 어느 나라에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서로 손을 붙잡고 우왕좌왕하다가 남의 밭을 밟아 곡식을 부러뜨렸다. 밭 주인이 그것을 보고 발끈 성을 내어서 원망하고 때리고 하였으므로, 거지들은 애걸하면서 이제까지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장자는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심부름꾼을 시켜 봉사들을 사위국에 데려다 주게 하였다. 그들이 마침내 그 나라에 도달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알아보니 세존께서는 이미 마갈제국(摩竭提國)으로 향해 떠나셨다 하였다. 심부름꾼은 봉사들을 데리고 다시 마갈제국으로 향하였다. 봉사들은 부처님을 흠모하며 뵙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기 때문에 육안은 비록 감겼어도 마음 눈은 이미 볼 수 있었고, 기뻐하는 마음이 가득했으므로 피로한 줄을 몰랐다.
드디어 마갈에 이르러서 또 듣자니, 세존께서는 이미 사위국으로 돌아가셨다 하였다. 이렇게 따라다니며 왔다갔다하기를 무릇 일곱 번이나 하였다.
그 때 여래께서 여러 봉사들을 자세히 살피시니 선근이 이미 성숙하였으므로, 한 곳에 머물러서 그들을 기다리시었다. 부처님의 광명을 그들 몸에 닿게 하자 바로 그 자리에서 두 눈이 이내 떠지고 밝아지면서 비로소 여래를 뵐 수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사부 대중에게 둘러싸여 계셨는데, 몸이 마치 자금산(紫金山)과 같이 빛났다. 봉사들은 부처님께로 나아가 온몸을 땅에 던지며 예배하고 이구동성으로 같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옵나니 저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도의 서열에 들게 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들아.”
그러자 수염과 머리가 저절로 떨어지고 법의가 몸에 걸쳐져 있었으며, 거듭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자 아라한이 되었다.『현우경(賢愚經)』 제6권에 나온다.
(18) 전다라(旃陀羅) 아이가 부처님의 인자한 교화를 입고 도를 깨치다
사위성 안에 한 전다라 아이『현우경(賢愚經)』에서는 이제(尼提)라고 한다.』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남의 변소를 쳐 주며 혼자 살고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 성에 들어가 걸식하시다가 그의 집 차례에 이르셨는데, 변소를 치는 아이는 이내 다른 거리로 피신해 버렸다. 여래와 마주치자 그 사람은 생각하였다.
‘나는 똥 같은 더러운 것을 짊어지는 사람인데, 어떻게 세존을 뵈올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다시 연못으로 나아가는데, 부처님께서 멀리서 부르셨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왔느니라.”
그 사람은 대답하였다.
“감히 가까이할 수 없나이다. 세존께서는 가르쳐 경계할 바가 무엇이기에 자비롭게도 저 같은 죄인과 말씀하시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를 제도하여 사문이 되게 하련다.”
그 사람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옥의 축생도 도를 닦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세상에 나온 것은 바로 그 죄와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니라.”
그리고 손으로 그 사람을 붙잡아 허공으로 올라가 항하수 가에 이르러서 그 몸을 목욕시키고, 다시 기원(祇洹)에 오셔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명하여 그를 제도하여 사문으로 만들게 하셨다.
그 사람은 권하고 격려하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날로 새로워졌으므로,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 수다원 과위를 얻었다. 아라한 과위에 이르러서는 여섯 가지 신통을 맑게 꿰뚫어서 나타나고 없어짐이 자유로워졌다.
한번은 커다란 사각형의 바위의 중앙에 앉아서 헌 옷을 깁고 있었다. 왕은 부처님께서 전다라 아이를 제도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석씨 종족의 유명한 성씨 집안 사람이고, 주위에 따르는 제자들도 모두가 네 성바지[四姓]에서 나왔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 궁실에 들어와서 공양과 보시를 받을 때에 내가 온몸을 땅에 던져 발을 잡으면서 예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듣자 하니 여래가 전다라를 제도하셨다 한다. 어떻게 그런 아이한테 예배하고 공경하겠는가? 나는 이제 가서 여래를 좀 나무라 주어야 하겠다.’
왕이 아직 부처님께 도달하기 전에 앞을 보니 마침 비구가 큰 네모진 돌에 앉았는데, 5백의 정거천(淨居天)이 에워싸고 공경하는 자세로 뵙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왕은 나아가서 말하였다.
“번거롭겠지마는 세존께 바사닉왕이 세존을 뵈려 한다고 아뢰어 주십시오.”
비구는 이 말을 듣고 이내 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정사에서 나와 자세히 세존께 아뢰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제 때가 되었는 줄 알지니라.”
비구는 다시 돌아가 돌로부터 솟아나와 왕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분부가 계셨습니다.”
왕은 생각하였다.
‘아까 이 비구는 어떻게 하여 이 단단한 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여 이처럼 나타나고 사라짐이 자유로운가를 물어봐야겠다.’
왕은 부처님께 이르러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가 앉아서 아뢰었다.
“아까 그 비구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오며, 어찌하여 그토록 신력이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바로 변소 치는 사람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이 인연으로써 두 게송을 말씀하셨다.
마치 더럽고 냄새나고 싫은
땅이나 밭, 도랑이나 깊은 구렁이에
향기롭고 깨끗한 연꽃이 피어남 같으리.
어떤가, 대왕이여, 눈이 있는 선비로서
이 꽃을 갖고 싶지는 않으신가.
왕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꽃이 매우 향기롭고 깨끗하다면 가져가 더러운 곳을 장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태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태 안에서도 공덕의 꽃이 피어납니다.”
이 때 왕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사람이야말로 이렇게 빨리 좋은 이익을 얻었사오니, 참으로 불가사의하옵니다. 지금으로부터는 이 비구를 청하여 네 가지 일[四事]을 공양하겠나이다.”『전다라아경(旃陀羅兒經)』에 나온다.
(19) 사냥꾼이 집을 버리고 도를 배운 일이 있었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마갈국(摩竭國) 감리원(甘梨園) 안에 계셨다. 성의 북쪽 석실(石室) 굴 안에 많은 사냥꾼들이 살면서 산에 들어가 사냥을 하였으니, 널리 그물을 쳐 놓고 죽인 사슴만도 수를 셀 수 없었다.
어느 날 또 사냥꾼들이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마침 사슴 한 마리가 그들이 놓은 덫에 걸려서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사냥꾼들이 그 소리를 듣고서 너나없이 모두들 몰려가다가 도리어 자기 덫에 걸려서 다친 사람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비록 또 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다친 상처가 매우 심하였으므로 고통이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사냥꾼들은 각기 서로 부축하여 간신히 집에 돌아와서는 갖가지 고약을 구하여다 그 상처에 붙였다. 집안에서나 친척들은 모두 송장 맞이하듯 하였다.
집에 돌아온 지 열흘 남짓하여 그 중에 다쳤던 중생 중 하나가 자신의 상처가 나은 것을 알게 되었고, 사냥질하던 것을 싫증내게 되었다. 그의 전생의 인연이 제도될 만하고 여러 착한 근본을 심었었기에 이내 스스로 집을 버리고 떠나 도를 배우면서 사문이 되었다.
그 때 한량없는 수백천의 중생들이 세존을 앞뒤로 에워싸고 있었으니,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다. 세존께서는 그 중생들을 위하여 그 뿌리를 뽑아내고 공덕을 닦아서 세워 주시려고 가르침과 경계를 다투어 보이셨다. 영원히 생사를 여의고 언제나 복의 집에 살게 하시면서 대중 안에서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마치 스스로가 만든 화살로
도리어 제 몸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안[內]의 화살 또한 그러하여서
애욕의 화살은 중생을 상하게 하느니라.
그러자 비록 사문이 되기는 하였지만 스스로 깨달아 알지는 못하고 있던 사냥꾼은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오늘에야 우리들을 틀림없이 사냥꾼이라 증명을 하시는구나.’
속으로 부끄러워하면서 본래의 허물을 스스로 반성하며, 호젓한 곳에 있으면서 지관(止觀)을 생각하며 뜻을 매어 산란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행하여 좋은 집안 자제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출가하는 까닭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도를 배우고 위없는 범행(梵行)을 닦아서 몸소 증득하여 스스로 그것을 즐기게 되면, 생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세워져 할 일을 다 마치고 다시는 생사를 받지 않게 되기 때문임을 알았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은 모두가 아라한이 되었고, 6통(通)이 맑게 꿰뚫어 보아서 걸리는 것이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애욕과 괴로움이 같이 생겨 존재함을
바로 능히 깨달아 알 것이니
바람[欲]이 없고 생각[想]이 없이
비구는 전념(專念)해야 제도되느니라.『엽사사가학도경(獵師捨家學道經)』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