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묵상을 적을 때 성경구절을 보통은 한 구절을 선택해서 적는다. 그런데 얼마 전 담장안 식구가 보낸 글로 인해서 아~ 성경구절을 좀 많이 적어서 때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한 구절 성경구절의 배경 설명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 손편지를 보낸 담장안 식구는 마약범으로 들어와서 담장안에서 아무런 책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편지 글 부분을 옮겨본다.
*** 임은미선교사님께!
저는 선교사님께서 보내주신 서신을 읽으며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성경책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가 밖에서 정신과 약 때문에 지금에 사건이 나서 마약방에 있다 보니 밖에서 책이 들어오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선교사님께서 보내주시는 주님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정말 너무 편안하고 많은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
담장 밖에는 성경책이 집 안에 몇권씩 있어도 성경을 읽지 않는 교인들이 있는데 담장안에서는 성경을 읽고 싶어도 못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담장안에 어떤 식구는 내가 매일 글로 써서 보내지는 묵상 외에는 그 어느것도 "하나님에 대한 글"을 읽지 못한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나는 내 묵상을 읽는 많은 분들이 성경과 많이 친숙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기때문에 내 묵상에는 성경구절을 길게 옮기는 적이 별로 없는데 위의 글을 보면서 성경을 그대로 좀 써서 보내 볼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성경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우리말성경 사무엘하 24장
10. 다윗은 인구를 조사한 후에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제가 이런 짓을 하다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제가 간구하오니 주의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정말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뭐 그렇게 큰 죄일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 백성들이 몇명인가 세어 보라는 "인구조사"가 왜 하나님으로 하여금 벌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죄였을까?
"인구조사"를 할 때 그 마음의 동기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 준 모든 전쟁들! 하나님이 오롯이 영광을 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한 일은 "내 공로를 내가 한번 세어 보리라! 내가 거느리고 있는 백성이 몇명인가 내가 세어 보리라!" 이런 마음이 동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이 다윗의 마음의 동기를 모르셨을 리가 있을까?
우리들도 대형교회의 숫자를 알게 모르게 자랑하지 않는가? 교회는 내가 마음에 드는 교회 출석하면 되는데 은근히 대형 교회 다니는 교인들은 개척교회 조그만 교회 다니는 것 보다 더 나은 교인이라는 생각 하는가?
부자동네에 큰 교회 다니면 좀 가난한 동네 교인보다 더 나아 보이는 교인이라는 생각 하는가?
"숫자"라고 하는 것!
나는 이전에 사람들이 아마 한번도 안 들어본 나쁜 영에 대한 이름을 붙여 본적이 있는 것 같다. "조횟수의 영!" 유툽하고 난 다음에 내가 내 설교하고 다른 사람들 설교하고 그 조횟수를 많이 비교하게 된 것을 보면서 "어머! 이런거 조횟수의 영!"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조횟수의 영" 나에게서 떠날찌어다!" 이렇게 대적기도 한 적이 있다. ㅎㅎㅎ 아마 "조횟수의 영"이라는 것이 자기 이름인줄도 몰랐다가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화들짝 놀라서 도망간 영들이 있었을거 같다. ㅎㅎㅎ
나는 어저께 선한목자 교회 청년부에 수양회 설교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날짜가 이번에 지방에 어느 청년회 수양회 설교하는 날짜랑 같은 날짜이다.
나 보고 이 날짜를 좀 조정할 수는 없냐고 선한목자 교회에서 물어 왔는데 이 날짜는 지난번 지구촌 교회 청년부에서 물어봐서 거기 갈려고 잠시갈등한 같은 교회인것이다. 선약을 한 교회가 숫자가 적은 지방교회 청년들이고 나중에 초청한 교회는 청년들이 1200명! 순간 1200명이라는 숫자에 작은 교회 청년회 수양회 가는 거 취소하고 숫자 많은 교회 가려고 했다가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애서 지구촌 교회 청년회 수양회를 안 간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선한목자"교회에서 초청이 왔으니 ㅎㅎㅎ 이교회도 청년들 숫자가 많을터인디.. 그래서 선한목자 교회는 처음 선약한 교회에 조정이 가능한가 안 한가 아예 처음부터 물어 보지도 않고 선약한 교회가 있다고 죄송하다고 말씀 드렸다.
초청강사로 많이 다니다 보면 "숫자"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내가 보이는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큰 교회 부흥회가 있고 작은 교회 부흥회가 있고 큰 캠프의 수양회가 있고 작은 규모의 수양회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큰 숫자가 모이면 "영향력"이 더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큰 숫자"를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다윗이 하나님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엄청 회개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다윗이 한 일? "숫자 센 일"이다.
"내가 거느리고 있는 칼을 찬 군사가 몇명인거야? 나 얼마나 큰 군사들의 왕인거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 일이 하나님을 아주 실망케 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칭찬받고 사랑 받았던 리더들의 끝이 모두 다 아름답지는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들 겸손하게 시작했다가 하나님이 그 겸손함을 보고 높여 주었더니 나중에는 자기가 잘나서 높아진 줄 알고 다들 주접(?) 하다가... 용두사미가 된 리더들의 이야기...
사울도 다윗도 다 겸손한 시작을 한 리더들이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하고 숫자의 경쟁에 비교하다가 "시기, 질투의 영"에 노예가 되어 결국은 자결을 하게 된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하고 숫자로 경쟁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 스스로 얼마나 높은가 알아보려고 숫자 파악에 연연했다가 하나님께 엄청 큰 벌을 받았으니 요즘 시대는 "조횟수의 영" 이 이전에는 혹시 "숫자의 영"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오늘 사무엘하 24장은 사무엘하의 제일 마지막장인데 좀 썰렁하네요 주님 그쵸?
읽는 제가 이렇게 썰렁한데 이 일을 당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제가 죄송하네요ㅜㅜ
그런데 저도 이렇지 않다고 말 할 수 없으니 저도 회개해야할 것 같애요 다윗처럼 온 이스라엘 군대를 세어 보아야 할 정도는 아니니 회개는 조금 덜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혼자 스스로 위로를 해 보긴 하지만 하여튼 하나님이 하신 일은 잊고 내가 한 일이 얼마나 되나? 이런거 세어보는것 엄청 큰 죄라는 것을 심비에 잘 새기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제가 맡고 있는 SAM 사역의 스텝들을 만나는데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은 것 같애요.
제가 선교사가 아니고 회사의 고용주였다면 사실 파직을 시켜야 할 일들이 있었지만 저는 이곳에 회사의 고용주로 와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주님이 보시기에 잘 하는 것일까요?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데 아직은 딱히 지혜가 없네요.
하나님을 다 사랑한다고 맡겨진 일을 다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 저도 그렇겠죠? ㅎㅎㅎ
주님이 오늘 스텝들 모임에 좌정하셔서 멋진 리더쉽을 발휘 해 주시면 제가 아주 아주 감사하겠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