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 “불안은 찾아올 죽음 때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타인의 평가 걱정 탓”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남과 비교하는 허영심이 문제”
|타인의 시선 갇히면 죄인 같은 삶… 나의 관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1894년 작 ‘불안’. 많은 철학자가 불안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하이데거는 언젠가 찾아올 죽음이 불안의 근원이라 한 반면, 쇼펜하우어는 그런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걱정이 원인이라고 봤다. 특히 타인의 평가에 대한 우려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짚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마르틴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는 독일의 실존철학자. 주요 저서는 《존재와 시간》이다. 그가 실존사상의 대표자로 간주된 것은, 이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 부분 때문이다. 불안·무(無)·죽음·양심·결의·퇴락(頹落) 등 실존에 관계되는 여러 양태가 매우 조직적·포괄적으로 논술되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플라톤과 칸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고, 과학 기술적 세계관을 반성하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지었다. 한때 공포와 망상에 사로잡혀 기이한 행동을 했었지만, 《부록과 보유》라는 책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비판 정신을 가졌던 염세주의 철학자였다.
《불안의 원인 찾으려 한 철학자들 최근 불안을 다룬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흔히 공포와 불안을 구분할 때 차이점은 대상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 있다. 공포에는 어떤 특정한 대상이 있는 반면, 불안에는 그러한 구체적인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눈앞에 있는 개를 무서워한다면 그것은 공포지만 실재하지 않는 개를 두려워한다면 불안이 될 수 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불안의 원인을 죽음에서 찾는다.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다. 가장 큰 불안의 원인은 누구나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가장 ‘불확실하면서도 확실한 가능성’이다. 죽음은 삶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삶의 안에 있으면서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과 같다. 인간을 포함해 살아 있는 존재라면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도 불안의 원인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본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면 작은 파도와 폭풍을 피해 가도 언젠가 침몰할 수밖에 없는 배처럼 우리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는 죽음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불안의 원인을 먼 미래에 일어날 죽음과 같은 사건이 아니라 지금 잘못된 우리의 삶의 방식에서 찾고 있다. 불안의 원인은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 있다. 모든 행동을 할 때 다른 사람의 견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불안과 염려를 키우게 된다. 허영심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마음에서 남과 비교할 때 생겨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된다.
쇼펜하우어는 지나친 허영심에 관해 “타인의 태도에 대한 이런 관심을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광기나 선천적인 광기의 일종”으로 여긴다. 니체가 ‘영혼의 피부’라고 부를 정도로 ‘허영심’은 인간의 본성을 덮고 있으므로 쉽게 없앨 수도 없다. 모든 허영과 허세에는 타인의 평가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쉽게 상처받고 병적으로 민감한 자존감, 있는 척하면서 자랑하고 뽐내면서 뻐기는 허세에도 그러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불안의 원인이 되는 타인의 평가에 대한 우려와 병적인 집착이 없다면 “사치가 지금의 10분의 1로 줄어들지도 모른다”라고 판단한다. 모든 걱정과 근심, 안달과 성화, 불안과 긴장 등은 대부분 타인의 견해와 관계가 있기에 타인의 시선에 갇히면 누구나 죄인처럼 살아가게 된다.
이처럼 불안의 절반은 남의 평가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다. 만약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면 우리의 인생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두뇌에 비친 그 사람의 모습은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것이고 우연에 내맡겨진 것이라서 참된 본질과는 간접적으로만 관계를 맺을 뿐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유명한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욕심이 허영심과 출세욕, 명예욕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허영심이 지나친 사람은 남과 비교해 자신이 더 높게 평가받으려는 욕심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출세, 인정, 명성, 명예를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에 따르면 “모든 큰 기쁨과 모든 명랑함은 사람들이 타인과 비교해 자신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게 보면 “허영심은 부나 지위, 세력이나 권력으로 타인을 능가해 존경받으려는 마음이거나 같은 속물 가운데 뛰어난 사람과 교제해 그 사람의 후광을 즐기려는 마음”에 불과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명성과 명예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속에 허영심과 함께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지나치게 지닌 자존심과 허영을 숨기고 있을 뿐, 자신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기를 기다린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며 지내면서 자신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얻고자 하는 명성은 말뿐인 거짓 존경에 불과하다. 타인으로부터 더 많은 존경을 받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인지 쇼펜하우어가 지적한다. 예를 들어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관직, 칭호, 공훈, 부와 학문조차도 타인의 견해로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는 사람이 많은데, 언젠가 유명세가 따르리라는 헛된 희망 탓이다. 또 출세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타인의 권위에 종속되어 쉽게 조종받는 일이 생겨난다. 잘 보이기 위해 허리를 굽혀 인사하거나 비굴해져 주눅 드는 일이 많아진다. 또 운 좋게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높은 곳에 올라가더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하지만 후세 사람의 평가에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 모욕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거짓 명성을 가진 사람은 가장 불안하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교할 때 남이 나보다 더 잘되면 시기심과 질투, 그리고 상대적 불행감에 좌절한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독자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들이 본다면 별로 가치가 없는 삶이지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타인의 견해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불안감뿐만 아니라 고독감, 열등감이 함께 사라진다. 우리가 타인의 평가에 노예가 되어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나의 관점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타인의 마음에 기댄 허영심이 아닌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인 자긍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출처: 동아일보 2024년 10월 29일(화) 〈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Daum·Naver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