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의 전 남편은 누구였나?
이휘호남편은 3명인데 첫번째 남편은 서울대 정외과 출신입니다.
이름을 알 수없구요. 두 번째 남편은 계훈제씨이고 세번 째가 김대중이죠.
계훈제씨는 재야 운동가로서 언제나 고무신과 한복을 입고 김대중과 함께다니던 사람으로서 재야 운동가로서 손꼽는 인물이었는데 약6년전에 작고했습니다. 이희호는 기자들이 물으면 자기는 처녀의 몸으로 김대중에게 시집갔다고 말하곤 했는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희호는 어떻게 김대중을 만났는지 여기에 공개합니다.
1960년대 중반 때는 재야인사들이 주로 명동 성당 건너편에 있는 YWCA에서 활동을 하였지요. 쉽게 말해서 YWCA가 데모꾼들의 집합소 였습니다. 그 때 계훈제씨가 반공법 위반으로 형무소에 가게 되었고
첫째부인(차씨)이 자살한 김대중은 이희호와 함께 감옥에 갇혀있는 계훈제씨를 면회가곤 하였는데 거기에서 김대중이 이희호와 눈이 맞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감옥에 갇힌 사람의 부인을 꼬여 가로첸 셈인데 아주 부도덕한 짓이 아닐 수 없었지요.
김대중의 부인이었던 차씨는 왜 자살했는지 아십니까? 김대중 때문이었습니다. 김대중이가 25살 때 강원도에서 국회의원을 꿈꾸고 있을 때 어린식모를 두었습니다.
하루는 식모가 흐느끼며 울기에 차씨가 왜 우느냐고 하니까 대답을 안 하다가 부인 없는 틈을 타 김대중이 힘으로 덮쳐 강제로 당했다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식모는 겁이 나서 고향에 있는 작은아버지에게 실토하니까 작은아버지가 김대중 집으로 찾아와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색시또한 하늘아래 한사내만 믿고 고향떠나 멀리 시집올 때 이젠 죽어도 시집귀신이 되라는 친정부모님의 지엄한 말씀을 뒤로하고 어린색시는 떠밀다시피 시집와 혹 친정 부모형제가 그리울때는 눈물을 수없이 훔치며 지내다가도 정신다잡고 더욱 열심히 집안어른들, 대가족에 부지러이 밥해 먹이고 힘든 빨래까지 불평 한마디없이 수발해온 자신이 결국은 어리석었고 보람도 없다니...
그런대로 부부정으로 살아 온 서방이지만 그 몹쓸 짓거리로 집안망신 개망신 지경에 정작 여린 색시입장에서 어쩔줄 몰라 며칠을 식음전폐로 몸은 야위어만 갔는데, 주변 시누이와 시부모는 내탓인양 눈총도 예사롭지 않은 같아 두문불출하고 속앓이 하고 있어도 남편은 물론 누구하나 내편들어 위로 해주는 이 없고 하소연 받아 줄사람 없어 며칠밤을 소리없이 눈물로 지세다가 정없는 남편하고 계속 살아 갈 길이 너무 싫다고 생각이 미치자 결국 뒷산에 올라가 잘못 만난 운명을 한탄하며 목매 자살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김대중과 이휘호는 부도덕한 인물이었습니다.
힘없는 어린식모를 덥쳐 강간하고, 자기남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인있는 남자를 빼앗아 남의 남자 품에 안기고...근본이 험한 이런 두 사람 (김대중, 이희호)이 한통속이 되어 백성은 굶기면서 핵무장으로 세계평화를 훼방놓는 北의 세습야만정권을 도우는 친북좌파정권의 원흉으로서 좌파의 집권10여년넘어 탈원전으로 국익파괴등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 국가의 경제도 위기지경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개인영달에 눈이 먼 김대중 슨상에게는 과분하기 짝이없는 노벨상 로비활동에 온 전라도출신 해외 남,북교포까지 나서서 노벨상 수혜자로 만들려고 전심전력 다하였다지요 미국에서 친북요원들은 김정일도 못탄 것이 불평불만었다지만요 노벨상, 북한정권요원 초청등 로비에 얼마나 많은 국고를 썼는지 차기 정권은 반드시 진상조사가 필요하겠지요
친북 교과서를 쓰려고 국정교과서를 한사코 배척하는 정신나간 좌익역사가를 제외하고 이 빗나간 정치사를 제대로 정리가 되지않아 일반국민들은 모르는 줄 아시죠? 좌파정권에 덕많이 본 전라도사람들 제외하고 위사실을 대충 짐작은 하지만 기가차서 삐뚜러진 양심 언제까진가를 지켜볼 뿐입니다
첫댓글 아..그렇쿤요..대충 알았지만요.. 감사합니다.
고인앞에
두번죽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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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내내 그 의 행적이 두고두고 씹혀지고 나라마저 날이 갈수록 좌파의 北과 노략질로 어지러우니 일찌기 부관참시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생시에 잘도 욹어먹은 바보 백성에 자손대대로 고마운 줄 알아야지요
김대중은 북의 일급 간첩인데
무엇을 더 언급 하리요